부록(7)

글_임야비(tristan-1@daum.net)

소설가, 연출가(총체극단 여집합), 클래식 연주회 기획

 

 

부록 제7편에서는 파우스트 연재에서 여러 번 언급된 리스트와 슈만의 소곡을 정리해 보자.

헝가리의 리스트와 독일의 슈만은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다. 몇 년에 걸쳐 음악적 교분이 있긴 했지만, 두 작곡가의 작품 성향은 매우 달랐다. 같은 점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두 작곡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모두 괴테의 파우스트에 천착했다는 점이다. 특히, 둘은 괴테 원작의 비극 1부 중 ‘저녁(Abend)’ 장에서 마가레테(그레트헨)가 읊는 ‘툴레의 왕’에 멋진 음악을 붙였다.  

 

비극 1부. 옷을 갈아입으며 ‘툴레의 왕’을 부르는 그레트헨. Peter Stein 연출 (2000, 하노버)

 

파우스트 비극 1부는 음악극이라도 해도 무방할 만큼 많은 노래가 나온다. 이중 그레트헨이 젊은 파우스트와 마주친 후 집에 돌아와 혼자 부르는 ‘툴레의 왕’은 매우 인기가 높다. 총 6연 24행의 시는 극도로 정교한 운율 위로 사랑의 전설을 흩날린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옷을 벗으면서.) Sie fängt an zu singen, indem sie sich auszieht.

 

옛날에 툴레에 한 임금님 있었네 / 무덤에 닿기까지 변함이 없던 이 / 그이에게 죽으면서 연인이 / 황금잔 하나 주었네.

Es war ein König in Thule / Gar treu bis an das Grab, / Dem sterbend seine Buhle / Einen goldnen Becher gab.

 

그 잔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없었네 / 연회 때마다 그 잔을 비우셨고 /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네 / 그 잔으로 마실 때마다.

Es ging ihm nichts darüber, / Er leert ihn jeden Schmaus; / Die Augen gingen ihm über, / So oft er trank daraus.

 

임금님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 왕국 안 도시들 다 헤아려 / 모두 상속자에게 물려주어도 / 그 잔만은 같이 주지 않았네.

Und als er kam zu sterben, / Zählt’ er seine Städt’ im Reich, / Gönnt’ alles seinem Erben, / Den Becher nicht zugleich.

 

성대한 잔치 베풀어 앉으셨네 / 기사들에 에워싸여 / 오래된 선조들의 누각 / 거기 바닷가 성에서.

Er saß beym Königsmahle,/ Die Ritter um ihn her, / Auf hohem Väter-Saale, / Dort auf dem Schloß am Meer.

 

거기 그 늙은 술꾼이 서서 / 생명의 마지막 뜨거움을 마시고는 / 그 성스러운 잔을 던졌네 / 가득 차오른 물 속으로.

Dort stand der alte Zecher, / Trank letzte Lebensgluth, / Und warf den heiligen Becher / Hinunter in die Fluth.

 

임금님 바라보았네, 그 잔 떨어져, 물에 잠겨 / 바닷속 깊이 가라앉는 모습 / 임금님의 두 눈도 감겨갔네 / 한 방울도 더는 마시지 못했네.

Er sah ihn stürzen, trinken / Und sinken tief ins Meer, / Die Augen thäten ihm sinken, / Trank nie einen Tropfen mehr.

 

(그녀가 장롱을 열고 옷을 건다. 그러다가 보석상자를 본다.)

Sie eröffnet den Schrein, ihre Kleider einzuräumen, und erblickt das Schmuckkästchen.

 

(파우스트 1 – 전영애 옮김; 도서출판 길)

 

먼저 ‘음악으로 듣는 연극 – 파우스트’ 연재 중 무려 여섯 번(1, 3, 4, 13, 20, 33편)이나 등장했던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부터 알아보자.

1843년, 리스트는 이 아름다운 운문을 메조소프라노가 부르고 피아노가 반주하는 가곡으로 완성한다. 그런데 더 세공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13년이 지난 1856년에 두 번째 판본(S.278-2)을 출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0Hy-ZKCQo0

 

바단조의 3/4박자, 조금 빠르게(Allegretto) 시작하는 4분 남짓한 짧은 노래다.

위 악보에서 빨간 원으로 표시한 음형(레b-도-시b, 라b-솔-파)이 특징적인데, 이 음형은 곡의 도입부에서 첫 등장을 한 후, 곡 전반을 지배하다가 곡의 종결부를 장식한다. 반음계적 하향에 디미뉴엔도(점점 작게)까지 붙어 있어서 회한과 우울의 느낌이 짙다. 음악 초반에 전체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작곡가 리스트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장치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노래는 중반부인 3연에서 고조된다. 리스트는 3연의 3행과 4행 ‘모두 상속자에게 물려주어도 / 그 잔만은 같이 주지 않았네. (Gönnt’ alles seinem Erben, / Den Becher nicht zugleich.)’을 가장 강조하고 싶었는지, 바단조에서 라장조로 조바꿈을 하면서 4/4박자로 바뀌고 두 행을 한 번 더 노래한다. 이야기에서도 곧 죽음을 앞둔 왕이 끝까지 먼저 간 연인을 잊지 않으려는 사랑이 드러나는 감동적인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자칭 ‘열광적인 괴테 팬’이자, ‘피아노의 메피스토펠레스’이자, ‘고뇌하는 파우스트 박사’인 리스트는 전조와 반복을 이용해 괴테 운문의 아름다움을 매우 극적으로 연출한다.

4연(성대한 잔치 베풀어 앉으셨네 / 기사들에 에워싸여 Er saß beym Königsmahle,/ Die Ritter um ihn her) 으로 들어가는 부분에선 잔치에 초점을 두어 상향 음계와 셋잇단음표로 화려함을 연출한다. 점점 템포를 조여 5연과 6연에서 긴장을 최고조로 준 후 다시 느려져 도입부의 음형을 재현하고 곡을 끝맺는다. 이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간직한 채로 죽음을 맞는 왕의 내면을 음악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리스트는 이 곡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목소리를 뺀 피아노 독주곡(S.531-4)으로도 편곡했다. 메조소프라노의 과한 감정이 부담스럽다면 피아노만으로 연주한 이 편곡 본을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3xmU4m1-vc

 

 

 

‘툴레의 왕’ 이야기 삽화

 

두 번째 ‘툴레의 왕’은 ‘음악으로 듣는 연극 – 파우스트’ 연재 중 두 번(18, 34편)이나 다뤘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작품이다.

1849년, 슈만은 ‘혼성 합창을 위한 로망스와 발라드 (Op. 67)’을 완성한다. 하이네의 ‘로렐라이’, 뫼리케의 ‘아름다운 로트라우트’, 괴테의 ‘들장미’, 샤미소의 ‘폭풍’이 수록된 합창곡집인데, 가장 중요한 첫 곡으로 파우스트의 ‘툴레의 왕’을 배치했다. 먼저 음악을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SUBTOXrXrdU

 

네 성부의 합창이 파랑 없는 바다처럼 잔잔하다. 슬픔과 고요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왕은 격정으로 치솟지도, 좌절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밋밋한 울림의 연속일 뿐 드라마가 없다. 슈만의 패착이다.

 

혼성 4부 합창의 성부는 여성의 소프라노와 알토 그리고 남성의 테너와 베이스로 구성된다. 그런데 위 악보의 초록색 부분을 보면 테너 솔로가 알토 합창과 테너 합창 사이에 끼어 있다. 보통 매우 중요한 독창을 강조하고 싶을 때 한 줄을 따로 떼어서 기보한다. 그런데 테너 독창의 음정과 박자는 초반에는 소프라노 합창 파트와 같고 곡의 중간을 넘어서는 테너 합창 파트와 함께 진행한다. 이후부터 종지까지는 소프라노와 테너 합창 파트를 오가며 독창한다. 남녀의 음색 차이로 특별한 효과를 내기 위함이라 생각했는데, 음악을 들어보니 독창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 혹 지휘자의 역량 부족이거나 연주자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여러 다른 음원을 들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렇다면 이건 작곡가 슈만의 문제다.

 

밋밋하고 드라마가 없는 합창과 특별한 효과가 없는 독창. 도대체 슈만은 이 아름다운 운문에 어떤 음악적 연출을 의도했을까?

보통 작곡가들은 왕의 내면 또는 그레트헨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그 속에서부터 음을 뽑아낸다. 그런데 슈만의 ‘툴레의 왕’은 인물의 내면보다는 서사에 초점이 있다. 즉, 왕궁의 오랜 시녀나 잔치에 참석한 기사의 눈을 통해 덤덤하게 왕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미 내면을 파헤친 수많은 ‘툴레의 왕’ 음악이 있었기에, 슈만은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이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툴레의 왕(König in Thule)

 

‘툴레의 왕’은 파우스트 비극 1부의 명장면으로, 3년 6개월에 걸친 ‘음악으로 듣는 연극 – 파우스트’ 연재에서도 무려 세 번이나 다뤘다.

차례대로, 2021년 5월 2인(人)이 연주하는 파우스트(2) – 슈베르트의 가곡 ‘툴레의 왕’ (D.367), 2022년 11월 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중 제3부, 2023년 8월 일이백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 구노의 그랜드 오페라 ‘파우스트’ (2) 중 제3막이었다.

여기에 이번 연재의 리스트와 슈만의 곡을 더 했으니, 총 다섯 곡의 라이브러리를 갖춘 셈이다. 설렘으로 혼란스러운 그레트헨 내면이 궁금하다면, 구노와 베를리오즈 그리고 리스트의 음악적 연출을 추천한다. 반대로, 그레트헨의 감정보다는 ‘툴레의 왕’의 서사가 궁금한 분에게는 슈만의 덤덤한 연출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젊고 순박한 처녀의 설렘과 늙은 왕의 지고지순한 서사를 동시에 표현한 연출을 찾는다면, 주저 없이 슈베르트의 가곡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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