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조기 대선이 거의 확실하다. 대선 때마다 각 후보들의 공약집에는 예술 진흥 정책이 들어간다. 그런 일이 몇 번 있다 보니 예술은 거의 구색 맞추기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때가 되면 다시 제안을 하게 된다. 그나마 얘기를 안 하면 아무 의견이 없는 것으로,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매도당할까 두려워 마지못해 억지로 몇 글자 끄적여 보기로 한다.
-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산
문화예술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요소임을 전 국민이 인식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 공공 방송사는 반드시 일정 비율 이상의 문화예술 관련 콘텐츠를 제작 배포하여야 한다. 이는 일종의 방송 쿼터제로 뉴스부터 교양프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시간대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정이 필요하다. 즉 예를 들어 황금 시간대에는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밖에 없는 선정적이거나 강렬한 프로그램보다는 문화예술 기반의 교양 프로그램을 방송함으로써 가족 간에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든가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 안정적 문화예술 예산 확보
문화예술 예산은 우선 술, 담배, 사행성 오락, 게임, 복권 등에 붙는 세금에서 일정 부분을 문화예술세로 확보한다. 단순히 예산이 그쪽에서 오는 개념이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분리돼 있어야 한다. 이는 과거 복권기금이 예술 지원 예산으로 들어오면서 사업 취지가 훼손되었던 사례 등을 생각할 때 당연하다.
현재 고갈 상태인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재확충 방안으로 일정액 이상의 문화산업과 예술 판매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금 공제를 한다. 이에 있어 문화산업의 범위는 가능한 한 크게 잡는다. 즉 예를 들어 디자인이 필요한 산업 부분 전체에서, 연기가 필요한 영상 부분 전체에서 일정 비율로 기금 공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기금의 용도는 기초예술 지원, 예술인복지기금 등으로 하되, 해당 분야와 전체 예술 분야에 대해서 적정한 비율을 정한다. (예; 영화에서 공제한 기금의 경우 독립영화 등 자체 취약 부분에 50%, 전체 예술 중 취약 부분에 50%)
- 문화예술 관련 법령 정비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된 이후 여러 법이 신설되고 폐지되면서 어떤 곳은 중첩되고 어떤 부분에서는 사각이 발생하는 등 상당히 어지러운 상태이므로 반드시 이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
- 국립예술기록원 부활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독립했다 다시 통합된 예술기록원(구 예술자료원)을 다시 독립시켜 모든 예술 관련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는 명실상부한 기록원이 되도록 한다.
- 문화예술 행정의 합리화
현재 문화예술위원회는 민간 주도라는 원래 취지가 완전히 퇴색했다. 예술 현장으로부터 상향식으로 의견이 수렴되고 필요한 정책이나 사업이 드러날 수 있도록 분야별 민간 주도 위원회가 필요하다.
이에 있어 장르별로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1안이라면 몇 개로 묶는 것이 2안일 텐데, 2안의 경우 공연예술, 시각예술, 문학예술, 영상예술, 전통예술 정도의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아 복잡하다는 식으로 1안을 무조건 배제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2안은 또 하나의 시행착오가 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분야별 위원회가 구성된 후 그 협의체로서 현재의 문화예술위원회를 존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각 위원회에서 수립된 정책을 조정하고 확정짓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그 명칭이 어떻게 되든 문화예술위원회에서 결정한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도록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분야별 위원회는 중앙뿐 아니라 지역에도 구성되어야 하는데, 정책에 대한 실행 계획은 분야별로, 지역별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있어 문화예술위원회는 각 분야별 위원회에 대하여, 또 각 분야별 위원회는 지역 위원회에 대하여 큰 차원의 정책을 제시한 후 일종의 컨설팅 센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종 계획의 결정은 현장과 가까운 작은 단위에서 하는 것이 옳다.
- 예술 지원정책의 기조 전환 필요
현재 우리나라 예술 지원은 공모 중심이다. 그러나 예술은 일반 사업 지원하듯이 해서는 결코 좋은 결과를 이루기 어렵다. 따라서 지원정책의 기조 변화가 필요하다.
그 첫 번째는 지금과 같은 공모제 중심이 아닌, 기성 단체 또는 개인에 대한 ‘찾아서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신청을 받을 수도 있으나 지원기관의 제안에 대해 동의 표명만 있어도 되는 정도가 좋다. 그 이후 해당 단체나 개인, 또 계획에 대한 검토 및 판단은 지원기관이 맡아야 한다.
두 번째는 ‘맞춰서 지원’이다. 현재 일부 컨설팅 지원이나 인적 네트워킹 지원이 실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예산 지원에만 한정된 형태이다. 즉 거의 모든 것을 갖춘 대상에게 부족한 일부를 채워주는 지원도 필요하지만 극히 일부만 가진 대상에게 나머지 부분을 채워주는 지원 형태도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어 관객이 들 수 있는 상업적 작품이라면 융자 또는 투자 유치나 홍보 마케팅 지원이 알맞을 것이다. 이에 비해 예술성은 있지만 관객이 쉽게 선택하지 않을 작품이라면 관람료 대부분을 지원하는 방책이 필요할 것이다. 또 외국 작품 저작권에 어려움이 있으면 그것을 해결해주고 인적 정보력이 약하면 그것을 도와줄 일이다.
세 번째는 ‘무조건 지원’이다.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고 지원을 신청하면 일단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다. 물론 일정 기간 후에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대단히 엄격하고 일생 지울 수 없는 기록이 될 평가라면 ‘무조건’의 위험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사전지원과 사후지원, 직접지원과 간접지원, 다액소건(선택과 집중)과 소액다건, 단년도 지원과 다년간 지원, 일시 지원과 지속 지원 등의 서로 상반되는 원칙들을 적절히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선택과 집중 원칙에 의거 선택되지 않은 개인 및 단체, 그리고 신진 개인 및 단체가 일정 요건을 갖추어 신청할 경우 ‘무조건 지원’ 원칙에 따라 최소한의 사전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단 이 경우 지원의 한도는 분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연이라면 최소한의 액수를 사전 지원하고 간접지원으로 단기간의 공연장 지원을 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 예술인(예술가 및 예술단체) 육성 방안
1) 국공립 예술단체 확대
◆ 국립 예술 단체는 권역별로 있어야 하고, 각 단체는 적어도 연고 지역 공연팀, 지방 순회 공연팀, 해외 순회 공연팀, 연습중인 팀 등 최소 4개 팀이 필요하다.
◆ 광역단위도 이에 준해야 하며, 기초단위도 최소한 5개 정도의 공립 예술단체를 운영하여야 한다. 기초단위마다 대부분 최신식 대규모 공연장으로 문예회관이 들어선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당연한 수준이다.
2) 연고 예술인 제도
◆ 따라서 국공립 예술단체에 대한 대책과 병행하여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그리고 읍면동 차원에서 연고 예술인 및 연고 예술단체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함.
◆ 연고 예술인 및 연고 예술단체가 생산한 예술작품은 우선 문화상품으로서 판매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주민들을 위한 향유 대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임.
◆ 더불어 연고 예술인 및 연고 예술단체는 일반인을 위한 예술교육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일반인 예술 동아리의 지원자 역할을 할 수 있음.
◆ 이를 위한 방법으로 ‘찾아가는 문화 활동 활성화’, ‘기존 문화예술시설 활용 공연 및 전시회 활성화’(이상 주민들의 예술 감상 기회 확대), ‘시민 동아리 리더 교육 활성화’, ‘주민 동아리 지원 활성화’(이상 주민들의 예술 체험 기회 확대)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음.
3) ‘생활 속의 예술’ 실현
◆ 예술인들의 사회적 역할을 확립하는 가장 좋은 토대로 예술인들의 교육적 기능 발휘를 극대화하는 정책이 필요함.
◆ 이를 위해 기초자치단체 차원은 물론 읍면동 단위와 더 작은 단위까지 연고 예술인 및 연고 예술단체를 일반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에 있어 공연예술은 연고 예술인 또는 연고 예술단체가, 시각예술이나 문학예술은 연고 예술인들이 연고 지역에 상주하며 자신의 예술행위와 병행하여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의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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