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Christmas
– <의자는 잘못 없다>
이 양 숙
‘의자는 잘못 없다’에서 진하게 남은 잔상 세 가지는 무대 뒤편에 세워진 나무 벽 위로 흐르던 영상, 의자의 모양새,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다. 겨울, 저녁 무렵, 인적 드문 어느 후미진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는 영상을 보며,‘알프레드 프로프록의 연가’에서의 그 골목길에서의 쓸쓸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분위기가 떠올랐다. 네 명의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티스푼으로 인생을 재던’알프레드 프로프록처럼 무능하고 고독한 인생들이다.
강명규는 실직당하고, 아내의 눈치를 보며 취직 준비를 하는 어디 하나 마음 둘 곳 없는 무력해진 젊은 남자이다. 마치 큐피터의 화살에 맞은 듯 가구점에 놓여있던 의자에 어느 한 순간 마음을 빼앗긴 것도 그의 고독이 만들어낸 집착이다. 그의 아내 송지애는 남편의 퇴직금으로 겨우 연명하는 형편 때문에 임신까지 미루며 궁핍하게 살면서도 맞벌이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바가지만 긁어대는데, 그녀 역시 무력하다. 가구점의 주인인 문덕수는 아내와 사별한 후 딸의 마음까지 잃어버린, 딸을 사랑하지만, 표현할 줄 모르고, 구속하고 윽박을 질러대지만, 정작 딸에게 철저히 거절당해 쓸쓸한 중년의 홀아비이다. 마지막으로, 문덕수의 딸이자 의자를 만든 장본인인 미대생 문선미는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 때문이라고 여겨 아버지를 싫어하고 그에게 반항하면서도, 정작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도 못하고, 대신 자신을 학대하고 방치하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의자는‘사랑받지 못한 존재’인 그녀 자신의 페르소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의자는 천 조각 하나 없이 나무 골격으로만 만들어져 앙상하고 볼품없는데다, 의자로서의 기능도 상실된 채, 가구점 앞에 버려진 듯 놓여있는 흉물일 뿐이다.
그런, 의자를 가운데 두고 네 명의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킨다. 그렇게 격렬한 실랑이를 벌이더니, 마무될 즈음에 느닷없이 무협지장면 같은 환타지가 펼쳐지고, 생뚱스럽게 앞에서 전개되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착한 결말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어찌보면, 다소 정신없고 부산한 스토리 전개와 과장된 몸짓과 코믹한 연기들이 어설프고,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웃긴데 슬프고, 어설픈데 진실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볼 때, 배를 잡고 웃으면서도 마음 켠이 짠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한 마디로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고독하고 삭막한 현실과 탐심,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의 본성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해 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비극만큼 우스운 것은 없을테니까…
그래도 보잘 것 없는 의자 하나로 인해서 고독하고 쓸쓸했던 네 사람은 각자 서로 관계를 맺게 된다. 처음으로 의자에 사람이 앉아보는 장면도 연출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얻은 메시지는 의자는 의자로 만들어진 이상 의자로서의 기능을 해야 하고, 사람 역시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대끼며 싸울지언정 서로 관계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끝으로, 마지막 무대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종이가 뿌려질 때도 장관이었지만, 처음의 썰렁하고 쓸쓸했던 무대와 달리 마지막 무대에는 신나게 뿌려졌던 종이들이 무대 위, 의자에 한 가득 쌓여있었다. 현장에서는 몰랐는데, 찍었던 사진을 보고 이 글을 쓰다 보니, 그 장면은 흡사, 밤새 내린 함박눈이 온 세상을 가득 덮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I dreamed of a white Christmas’ ,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이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이…’ 노래소리가 들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침에 쌓은 눈을 보는 그 순간처럼 지금 생각하니 더 좋은 느낌이다. 쌓인 ‘종이 눈’에서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