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원/ 오유경

백묵원: 유전유죄 무전무죄

– 제9회 여성연출가전

 

오유경(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원작: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각색, 연출: 김민경
공연일시: 2014년 10월 14일 ~ 19일
공연장소: 상명아트홀 2관
공연단체: 극단 노마드

 

 

 

도전적인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6명의 배우들. 직접 연주되는 음악과 함께 관객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정성을 다해 노래한다.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이 보다 더 뚜렷할 순 없을 거다. 가장 브레히트다운 순간이다. 1930년대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차용된, 원작 《코카서스의 백묵원》에는 없는 부분. 느닷없이 공연대본의 한 부분을 한 페이지 넘게 여기에 옮겨보는 이유다.

 

코러스 : 언젠가 이곳에 늙은 여자가 한 사람 나타났습니다.

          그 여자는 먹을 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빵은 군인들이 다 처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차가운 하수도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숲속의 작은 새들은 침묵했다.

모든 나뭇가지 끝에 정적이 깃들고

모든 산봉우리에서 그대는

숨결조차 느끼지 못한다.

 

  코러스 : 언젠가 이곳에 사망진단 의사가 한 사람 나타났습니다.

        이 늙은 여자는 사망진단서를 떼어날라는군, 하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배고픈 여자를 파묻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이 늙은 여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의사만 혼자서 이 늙은 여자를 비웃었습니다.

 

작은 새들도 숲속에서 침묵했다.

모든 나뭇가지 끝에 정적이 깃들고

모든 산봉우리에서 그대는

숨결조차 느끼지 못한다.

 

코러스 : 언젠가 이곳에 이상한 남자가 한 사람 나타났습니다.

                 이 남자는 질서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이 일에 수상한 점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늙은 여자에게 일종의 친구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먹을 수 있어야 해, 자-, 하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숲속의 작은 새들은 침묵했다.

모든 나뭇가지 끝에 정적이 깃들고

모든 산봉우리에서 그대는 

숨결조차 느끼지 못한다.

 

코러스 : 그때 갑자기 이곳에 경찰관이 한 사람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은 고무로 만든 곤봉을 휴대하고 와서

그 남자의 뒤통수를 갈겨 묵사발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남자도 아무 말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경찰관은 무슨 소리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숲속의 작은 새들은 침묵한다.

모든 나뭇가지 끝에 정적이 깃들고

모든 산봉우리에서 그대는 숨결조차 느끼지 못한다.

 

코러스 : 언제가 이곳에 수염을 기른 남자 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이 일이 

오직 그 이상한 남자와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총소리가 울릴 때까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구더기가 그들의 살을 뚫고 뼈 속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 수염을 기른 남자들도 아무 말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숲속의 작은 새들은 침묵했다.

모든 나뭇가지 끝에 정적이 깃들고

모든 산봉우리에서 그대는 

숨결조차 느끼지 못한다.

 

코러스 : 그때 갑자기 이곳에 네 사람의 사나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군인들과 한번 담판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은 기관총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나이들은 아무 말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이마의 주름살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숲속의 작은 새들은 침묵했다.

모든 나뭇가지 끝에 정적이 깃들고

모든 산봉우리에서 그대는

숨결조차 느끼지 못한다.

 

약자의 불행을 비웃고 사회 불의에 침묵하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순수하고 젊은 목소리! 바보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정직한,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 김민경 각색 및 연출, 극단 노마드의 《백묵원: 유전유죄 무전무죄》다.

 

생생한 음악과 공을 주고받듯 작품 속 인물들을 서로 주고받으며(toss) 연기하는 6명의 배우들. 화려하고 장식적인 움직임은 절제하고, 단순하고 명료한 몸짓만으로 충분히 매끄럽고 즐거운 공연리듬을 만든다. 거추장스런 장식은 모두 떼어내고 6개의 큐빅과 잘게 부서진 신문지-언론이 죽었다는 것을 상징-로만 가득 찬 무대. 배우들의 움직임을 따라 부딪치는 종잇조각의 경쾌한 소리가 작품에 생동감을 더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 검색되는 전쟁의 상황. SNS로 주고받는 무대 속 인물들(네티즌들)의 대화 속에서 자신이 처한 위급한 전쟁의 상황, 국가의 위기, 이웃의 죽음마저 먼 나라 불구경하듯 모두 하나의 관심의 유희로만 즐기고 버리는 요즘 세태 풍자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브레히트를 2014년 지금 여기로 가져온 이유일 거다.

 

극단 노마드는 김민경 연출을 중심으로 《백묵원: 유전유죄 무전무죄》까지 총 8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2006년에 창단했으니 올해로 8년째. 그들도 어느덧 강산이 한 번은 변할 만큼 우여곡절 많은 세월을 함께 겪었다. 잘 알려지지 않는 젊은 극단이 그렇듯, 아직 농익지 않은 부족한 기술과 각종 지원금 리스트에서 매 번 제외되는 열악한 재정적 어려움, 자신들만의 연극예술의 색깔이 무엇인지 채 찾아지기도 전에 강박(强迫)처럼 버티기 위해 올려야 하는 무대 속에서 정체성의 몸살도 심히 앓았다. 연출의 태생적 십자가인양 그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고 가던 김민경 연출에게 이번 공연만은 그만 내려놓고 싶은, 내려놓아야만 하는 무게였다. 위기의 순간, 노마드의 단원들은 서로를 굳건히 의지했고 연출의 짐을 나누어졌다. 8명의 단원들이 이벤트성 공연에 함께 출연했고 그 출연료를 서로를 위해 내 놓았다. 함께 하고자 한 그들의 마음은 공연이 가진 메시지만큼이나 절실하고 순수했다. 그 정신은 부족함을 모두 뛰어넘는 감동이 되어 관객의 마음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다. 마음이 하나 되는 배우들의 멋진 앙상블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각색자 김민경 연출은 원래 이현화作 <우리들끼리만의 한 번>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나라전체에 만연된 집단 우울증 앞에서 그녀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잊지 맙시다. 행동합시다.’라고들 하는데 난 뭘 할 수 있을까?” 작품을 갑작스럽게 바꾸고도 연출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강박. 종교에 가까운 고전에 대한 신봉. 고전 작품을 이 시대로 가져와야 한다는 부담감. 지난 연출작들에 대한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는 두려움. 감히 그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거라는 피 말리는 고민 속에 공연 2주전에야 완성된 각색대본을 배우들에게 줄 수 있었다.

 

작품 《백묵원: 유전유죄 무전무죄》은 브레히트의 그 기본적인 기법에는 충실하면서, 내용은 브레히트의 원작과 달리 그루쉐가 아닌 아츠닥을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 재구성되어 진행된다. 前 권력자의 충실한 하인이었으나 現 권력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진다는 이유로 판사라는 권력 자리에 앉았던 아츠닥. 그러나 그가 얼떨결에 前 권력자의 도망을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現 권력자로부터 판사자리를 박탈당하고 사형을 언도받는다. 그러나 또 다시 前 권력자가 現 권력자를 밀어내고 복귀함으로써, 아츠닥은 교살되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前 권력자로부터 보은인사발령을 받고 판사라는 권력의 자리에 다시 앉게 된다.

 

권력자가 바뀌어도 민중에겐 똑같이 고달픈 삶. 이 권력자에서 저 권력자로만 바뀔 뿐 민중에게 세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 세파 속에서 민중이 할 수 있는 일은 때마다 기발한 지혜로 위기를 넘기며 가까스로 생존을 이어가는 것뿐이다. 지혜가 가져온 천운도 일시적이다. 언제 다시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 권력자들에게 민중의 목숨은 단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해석에 달려있을 뿐이다. 아츠닥을 통해 작품 《백묵원: 유전유죄 무전무죄》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천을 뒤집어쓰고 밧줄로 목이 졸리는 순간. 정말 ‘꼴깍’ 숨이 넘어가는 그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아츠닥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이 무슨 개 같은 일인가?’ ‘지금 내 목숨 갖고 장난해?’ 아츠닥의 표정에서 우리는 살았다는 안도감, 운이 좋았다는 기쁨, 살려준 권력자에 대한 고마움이 아닌, 자신의 목숨이 장난감처럼 취급되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읽힌다. 그의 세상에 대한 복수와 같은 재판. 마지막 판정. 거기에 또 다른 바보 같은 민중, 그루쉐가 있다.

 

김민경 연출은 여러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가 떠올랐다고 했다. ‘예술만의 예술은 가치를 잃을 수밖에 없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이다.’ 그리고 학교 때 은사이셨던 김석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렇지. 그럼에도 세상은 잘 굴러가지. 그렇지만 넌 잘 굴러가는 톱니바퀴에 작은 모래 알갱이가 되렴.” 가진 자의 만행과 폐해가 그렇게 만연되어 있는데도 세상이 아무런 일 없는 듯 잘 돌아가는 꼴이 하도 개탄스러워 비뚤어진 마음으로 던진 질문에 하신 말씀이란다.

 

본인도 아직 세상이 언젠가는 성취할 사회정의에 대한 판타지를 꿈꾼다. 브레히트가 연극예술의 목적으로 두었던 사회정화와 그 교육에 관한 의무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점점 잊혀 져 간다. 아니 점점 더 외면하고 싶어진다. 극단 노마드! 그들도 지금의 초심을 잃지 않길! 꼭 붙들고 잃어가는 내 정신에 오늘처럼 신선한 전기충격을 가해 주기 바란다. 잊지 말라고! 행동하라고! 침묵하면 정말 영원히 사라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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