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 꾸미는 밴드뮤지컬 절망 속 세상을 향한 힘 있는 응원

<달빛요정과 소녀> by 오유경

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작/연출: 민복기
원곡: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진원)
음악감독/편곡: 박소연
단체: 차이무
공연일시: 2019/01/07-01/20
공연장소: SH아트홀
관극일시: 2019/01/19

 

 

‘여기가 어디일까?’ 무대는 살짝 경사진 평평한 빈 공간. 한 쪽에 밴드. 구성은 드럼과 키보드, 기타리스트 2명. 무대 중앙벽면에 무지개. 그리고 새겨진 글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무대 앞면엔 커다란 피뢰침이 박힌 위태로워 보이는 작은 공간이 관객석 앞으로 공격적이듯 나와 있다. 아..본인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이진원’이란 가수를 전혀 몰랐다. 다만 그의 노래, ‘절룩거리네.’를 신기하고 흥미롭게 듣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외엔.. 아 .. 그것이 그의 노래였다는 사실도 공연을 통해 알았고, 가수 이진원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이 작품 《달빛요정과 소녀》를 관객으로서 오롯이 최대한으로 즐기고 이해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공연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단순한 창작뮤지컬연극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버린 오류를 범했으니, 우선 이 잘못을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 그래서 독특하게 비워진 이 경사진 평평한 무대가 바로 이진원이란 가수의 본 활동공간이었으며, ‘달빛요정’은 그의 닉네임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내지 못했다. 즉 공연이 ‘절룩거리네.’라는 노래와 함께 느닷없이 시작되었을 때, 본인은 얼뜨기 관객으로 매우 당황해하고 있었다. 작품 《달빛요정과 소녀》가 실재했던 가수 이진원의 노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며낸 극이며 중심배역이 바로 가수 이진원임을 공연이 15분정도 지나서야 알았다는 것도 반성하며 고백한다. 그러니 지금 이 review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공연의 첫 시작을 혼란 속에서 한동안 방황했던 한 관객의 음악여행감상이라 여겨주시라.

 

2010년 가수 이진원, 곧 ‘달빛요정’은 두 명의 코러스와 함께 활기찬 노래로 무대를 연다. 동시에 BJ ‘늘백’은 2016년 겨울, 대통령탄핵을 외치던 당시 늘 사회의 약자 편에서 정의를 노래하던 故이진원을 추모하며, 그의 주 활동무대였던 옥상에서 그의 노래들을 소개하며 그의 노래들이 지금 탄핵을 외치는 이 순간에 얼마나 큰 울림이 되는 지를 말한다. 이윽고 신나는 ‘달빛요정’의 노래가 몇 곡, 연이어 연주된다. 2019년, 절망에 가득 찬 여고생 한 명이 같은 옥상, 그 위태로운 피뢰침 꼭대기에서 자살을 기도하며 SOS생명전화에 전화를 건다. 그 소녀는 자신을 혹으로 취급하는 엄마의 부당함에 통탄의 한을 토로한다. 이진원의 노래로!

‘난 이제 잊혀질거야. 혼자 이렇게 아무도 몰래. 요정은 없어.’

 

SOS생명전화 이은주는 절망에 빠져 죽음을 선택하려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119와 함께 그 소녀가 있는 옥상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이 때 기적 같은 타임슬립이 일어난다. 2019년 ‘달빛요정’의 옥상에 2010년의 이진원과 2016년의 BJ 늘백이 소녀가 죽음을 선택하려는 그 순간 소환되어 온 것이다. 여기에 생명전화 이은주까지 합세하고 절망에 가득 찼던 쓸쓸한 옥상이 갑자기 북적되며 한껏 들뜬 축제의 장처럼 흥겨워진다. ‘달빛요정’의 노래는 소녀에게 희망과 기원을 불어넣는 힘 있는 응원가가 되어 가슴을 울린다. ‘달려간다. 지금 너에게!’ 소녀는 이들에게 힘을 얻고 외로움을 잊는다. 그들의 희망이 절정을 이루고 그들에게 그들이 왔던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 온다. ‘달빛요정’ 이진원은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 열심히 살고 2019년 모두 다시 이 옥상에서 만나자고 제안한다. 소녀는 한껏 기쁨에 들뜬다. 그 때 BJ 늘백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2016년에서 온 그는 이진원의 죽음을 알린다. 그는 2019년에 이 옥상에 올 수 없다고. 2010년 11월 1일, 이진원은 뇌출혈로 쓰러져 죽는다. 이진원, 그 스스로도 그의 곧 있을 죽음을 알고 크게 당황한다. 소녀는 깊은 실망감에 다시 절망한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게 된 ‘달빛요정’은 절망하는 소녀를 다시 위로한다. 그의 노래로!

‘패배는 일상이 되었어도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모두 기죽지마.’

 

이진원은 소녀에게 약속한다. 열심히 건강관리를 해서 2019년에 꼭 이 옥상으로 다시 오겠다고! 그리고 다시 2019년 그날, 이진원은 정말 다시 나타난다.

‘한 번 더 세상에 맡겨볼까? 이 땅의 정의를..’

 

故이진원은 그의 노래를 통해 절망 속에서 절망을 뚫고 희망을 노래했다. 작품 《달빛요정과 소녀》는 이를 아주 잘 관객에게 전달한다. 마치 절망에 빠져 힘없이 늘어진 사람의 두 손을 힘 있게 꽉 쥐고 불끈 일으켜 세우는 것처럼 말이다. 작품 속 119대원은 소녀가 옥상에서 뛰어내릴 것을 철회했을 때 객석의 모든 불을 환히 켜고 외친다. ‘에어매트 걷어!’ 그 외침이 얼마나 시원하고 가슴 뻥 뚫리는 한마디였는지. 신기할 정도다.

‘세상은 갑분싸. 숨지는 마. 세상은 안 변하지만. 그건 아마 푸른 하늘에 찬란한 햇살에 아름다움을 알고. 한때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다 좋아질거야.’

 

취업준비에 실패한 SOS요원 이은주역의 동생은 죽었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을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에게도 소녀에게 일어난 이런 환상적인 일이 일어나길(‘달빛요정’의 소환) 바란다.

‘패배는 일상이 되었어도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모두 기죽지마.’

 

이진원의 죽음이 알려졌을 때 Fantasy는 비극이 되고 순간 절망은 더 깊어진다. 달빛요정의 소환, 그 Fantasy는 희망이 아닌 절망이 된다. 하지만 이진원의 노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요정은 갔다. 그러나 오늘도 요정은 간다. 그 옥상 위로.’ 옥상은 그의 삶의 방향이고 요정의 노래는 오늘도 절망을 뚫고 희망을 노래한다. 문득 故김광석이 연상되었다. ‘달빛요정’이 소녀, 곧 미래에게 희망을 물려주는 순간, 뭉클한 감동이 전해온다. 쓸쓸한 자신의 결말을 아는 자의 노래란 무엇일까? ‘내가 세상을 사랑한 만큼 아쉬웠다. 아낌없이..그저 실패했을 뿐.’ 피뢰침이 있는 옥상의 꼭대기. 그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故이진원의 노래는 계속된다.

 

덤벼라 세상아.
나에게는 나의 노래가 있다.
한 번 붙어보자.

 

어떻게 기획된 공연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달빛요정과 소녀》에는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배우들이 꾸미는 밴드뮤지컬. 가수들이 부르는 것과 달리 배우들이 부른 이진원의 노래는 이야기와 함께 진정한 말이 되어 힘을 얻는다. 다만 공연의 서두에서 밴드의 연주와 함께 가수의 콘서트처럼 노래만 연이어 연주될 때에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배우의 노래로 초반의 관객의 기운을 사로잡기는 부족함이 보였다. 배우의 노래는 역할의 진심을 우려내야 노래가 관객의 가슴에 정점을 찍는다. 너무 서두른 게 아닐까? 또한 이진원 노래의 스타일의 장점이자 단점일까. 공연 서두엔 노래가 왠지 계속 달리기만 하는 듯하다. 문득 가사가 프로젝터로 공연 막에 투사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관객 가슴 속으로 이진원이라는 가수가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공연서두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이진원, 그는 누구인가?’

 

옥상에 올라 절망을 노래 부르는 소녀. 정말 훌륭한 가창력이었다. 저절로 열렬히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로 실력이 탁월했다. 하지만 곧 본인은 부끄러움에 순간 죄의식과 함께 박수를 치고 싶은 욕망을 애써 억눌렀다. 그러니까 ..절망에 가득 찬 소녀에게 노래를 너무 잘 부른다고 차마 박수를 칠 수 있을까? 기존 뮤지컬의 관례대로 관객으로서 반응하기엔 왠지 맞지 않았다. 또한 공연 초반, 배우들은 음악이 계속되어도 쉽게 덥혀지지 않는 관객의 긴장을 푸는데 어려워 보였다. 2019년 옥상에 소환되어, 가수 이진원이 극의 인물 이진원이 된 순간, 진정 뜻밖의 상황에 부딪치면서 역할로서 연기가 시작되자 배우들은 드디어 자물쇠가 풀린 문을 나서는 것처럼 자유롭게 날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진정 극은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사람에게서 노래가 나오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성이 아닌 감성이 코드가 되어야 한다. 인물뿐 아니라 인물의 정서에 동조된 관객의 정서에 파고들 듯 노래는 들어와야 한다. 작품 《달빛요정과 소녀》의 공연서두에서 사운드의 절박함에 동조할 만큼 관객은 아직 뜨거워지지 않았고 배우들은 잠시 고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여 그 많은 곡을 솔로로 소화한 이진원역의 박진상배우에게 존경을 표한다.

 

포크스푼의 커튼 콜 song.

 

2019년 오늘 지금. 이진원 가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왔다!

 

절박함 속에서 모두가 기도하는 그 기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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