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고린을 꿈꾸는 두 남자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 ”
<벚꽃의 기억, 니나>
이연심(경기여자고등학교 교사)
작/연출 : 석성예
단 체: 극단 노을
공연일시: 2018.06.13. ~ 2018.06.14.
공연장소: 노을 소극장
관극일시: 2018.06.13.(수) 19:00
‘극단 노을’의 <벚꽃의 기억, 니나>는 제9회 현대극 페스티벌의 4번째 작품으로 안톤 체호프의 명작 <갈매기>를 ‘패러디 기법’을 활용해 트레블레프 코스차가 아닌 야코프의 시선으로 ‘다시 보기’를 한다.
패러디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이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패러디는 모방적 풍자이며 희극적 개작이다. 즉 모방과 변용이고 재미있는 비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패러디 ‘한’ 작품 안에는 패러디 ‘된’ 원작이 살아 숨 쉰다. 따라서 패러디 기법에서는 이중적 구조가 필수적이라 하겠다. 작가이자 연출자인 석성예는 원작 <갈매기>의 트레블레프의 자살 사건을 비틀고 연극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창작해 냈다.
체호프의 <갈매기> 초연 당시를 연상시키듯, 흥행에 참패한 야코프가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 홀로 앉아 있고 도른이 찾아온다. 도른은 코스차의 저택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연극은 과거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야코프는 코스차의 부탁으로 니나를 찾아 가게 되고 첫눈에 반한다. 니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유명한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고 있고 야코프는 로미오가 된 듯 니나의 모습에 넋이 나간다. 패러디 속의 또 다른 패러디다. 야코프의 니나에 대한 사랑을 알아챈 코스차는 야코프에게 대필을 제안한다. 코스차와 야코프의 욕망이 위험한 거래를 체결한다. 코스차는 엄마인 아르까지나의 사랑과 관심, 작가로서의 인정, 그녀가 만들어 주는 명성과 명예를 욕망하고, 야코프는 니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작가로서의 예술성, 명성을 욕망한다. 두 사람의 욕망은 아르까지나와 니나의 사랑을 받는 트리고린에서 만난다. 코스차는 ‘아르까지나의 트리고린’이 갖고 있는 것을 갈망하고 야코프는 ‘니나의 트리고린’이 갖고 있을 것을 갈망한다. 결국 트리고린으로 상징되는 두 남자의 욕망이 위험한 거래를 하는 것이다. 마침내 야코프가 대필한 작품은 코스차에게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주고 야코프에게는 트리고린을 따라 떠났던 니나를 돌아오게 한다. 다시 만나게 된 세 사람. 대필의 진실을 알게 된 니나, 작가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코스차, 대필 작품을 태워버리는 야코프가 격렬한 다툼을 하게 되고 코스차는 니나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이야기는 벚꽃 동산을 사랑했던 니나에 대한 야코프의 기억이 주요 골격이다. 연출자는 연극의 장면과 대사, 인물에 이중적 구조를 적절히 실현하고 있다. 니나와 야코프의 첫 만남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하게 한다. 니나를 향한 야코프의 마음을 고백하려는 순간, 니나는 트리고린을 향한 사랑을 깨닫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대화하고 있으나 통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나 마음은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다. 체호프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대화하고 있으나 사실은 소통하지 않는’ 대사 기법을 연상하게 한다. 연극에는 등장하지 않는 트리고린은 니나와 아르까지나의 사랑을 받는 인물인 동시에 코스차와 야코프의 욕망의 상징으로 겹쳐진다. 연극은 지루함이 느껴질 새 없이 템포있게 진행되었으며 작가의 필력이 드러나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는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야코프와 니나, 코스차 등 각 인물의 행동이나 대사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인 부분도 드러난다. 인물간의 갈등이나 인물의 현재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역사가 약해 야코프와 니나, 코스차의 결정적 선택을 이해하기 힘들고 감정의 흐름이 작위적이다. 유명해져야 하는 코스차의 절박함, 대필을 결정해야만 하는 야코프의 니나에 대한 절절한 사랑, 극의 진행과정상 각 인물의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각 배우들의 연기 탓이라기보다 이야기 구성이 치밀하지 않은 탓이다. 이러한 결점은 배우들이 인물의 성격을 유지하고 행동의 당위를 찾아가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며, 결국 작품의 설득력은 힘을 잃을 수 있다.
무대는 동화적이고 아기자기하다. 연출가는 가우디의 건축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 콘셉트를 구축했다고 고백한다. 그러서인가? 무대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용하여 벚꽃 동산을 형상화하고 있으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등장하는 과자로 만든 집이 있을 법하다. 야코프가 과거 사랑했던 니나에 대한 아픈 기억들을 간직한 공간을 표현하기엔 동화적 감성이 지나치게 강하다. 또 무대 오른편에 세워진 검은 벽면은 날카로운 사각 모양을 반복 배치해 놓았는데 관객의 시선을 주목시키기는 하나 그 만큼의 활용도는 없으며, 전체적인 디자인의 통일성을 해치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장면에 따른 감정의 깊이나 긴장감을 좀 더 진중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 코스차(김종석 분), 도른(맹상렬 분), 야코프(정대용 분)가 서로 비슷한 호흡과 화술을 사용하고 있어 분화된 성격구축이 위태로워 보이며, 각 인물간의 욕망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충돌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또한 트리고린에게 버림을 받고 폐인이 되어 돌아온 니나(이정현 분)의 모습이나 대사는 상처 받은 영혼을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라 공감하기 힘들다.
패러디는 원전에 대한 모방이며 해석이고 비평이다. 따라서 원전의 대사가 삽입되거나 장면이 모방될 수 있다. 그러나 원전을 삽입하거나 모방하는 데 있어 경계할 부분이 있다. 패러디를 함으로써 재미와 비평, 그리고 작품성까지 한꺼번에 획득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아는 사람들끼리만 재미있고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소외감마저 불러일으켜 오히려 정말 재미없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원전의 대사와 장면을 삽입하거나 모방할 때는 다양한 관객에 대한 철저한 계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이 연극을 공부하거나 연극을 잘 아는 사람들을 주요 관객으로 하지 않는 다면, 원전 <갈매기>와 체호프를 잘 아는 사람에서부터 전혀 알지 못하는 문외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관객층을 고려하여 패러디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부분에서 <벚꽃의 기억, 니나>에 삽입된 원전 <갈매기>의 대사와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타니슬랍스키 등은 한 번 더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제 <벚꽃의 기억, 니나>이 초연 되었다. 작가의 필력, 연출력, 그리고 공연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재공연이 될 때는 좀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되길 기대하며, 이 <벚꽃의 기억, 니나>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이 체호프와 그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그렇게 <갈매기>를 패러디한 <벚꽃의 기억, 니나>가 체호프에 대한 오마주가 되어 준다면 일석이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