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템플>
글_노윤아
작/공동연출 민준호
안무/연출 심새인
제작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장소 유니플렉스 1관
일시 2020.10.02 ~ 2020.10.11
오늘날 우리는 남들처럼 살아가기에 급급하고 내 이익과 연관되지 않은 남의 일을 들여다볼 정도의 여유조차 없다. 남들과 같지 않다면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이 아니고, 사회가 내세우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시작부터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름을 틀림으로 정의하는 세상에서 남들과 다른 시각을 가졌던 템플 그랜딘 박사는 의사가 평생 말하지 못 할 것이라고 단언하던 자폐증 아이에서 세계적인 동물학자로 성장한다. 1947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자폐증 진단을 받았던 템플은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 헌신적인 어머니와 칼록 선생님의 도움으로 세상을 향한 문을 연다. 이 극은 템플의 이야기를 ‘피지컬 씨어터’로 구성하여 그처럼 자유롭게 장르의 구분을 넘나든다.
‘템플’은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에게 다가간다.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을 소개하며 관객에게 말을 걸고 마치 중계하듯 관객에게 템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준다. 피지컬 씨어터라는 설명에 걸맞게 소품을 최소화하고 배우들이 직접 소품을 연기하며 신체를 한껏 활용하여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선보인다. 또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관객들에게 익숙한 배경음악과 반복되는 대사로 웃음을 자아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의 무게를 덜어낸다.
정답이 존재하는 세상
당시 미국의 권위 있는 의사들은 자폐의 원인을 ‘냉장고 엄마’에서 찾았다. 프로이트를 맹신하는 지식인들의 권위 앞에서 중추신경계의 작용 때문에 발생하는 자폐는 무관심한 엄마 때문에 생긴 병으로 규정되었다. 의사들은 템플에게서 그들이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탕으로 답을 유도했고 그렇게 내린 결론은 정답이 되었다. 그들이 가진 권위는 템플 어머니의 반론을 묵살하고 그들의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템플을 비정상으로 만들었다.
사진 같은 기억력을 자랑하는 템플이 희미하게 떠올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중학교 때의 기억은 사회가 제시하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이들이 겪는 고통의 크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사춘기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과 템플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고 방관한 캠프의 책임자들은 템플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이때 엄마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장면을 암흑 속에서 플래시라이트를 비추는 것으로 연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잘못됨을 알면서도 그 누구도 바로 잡으려 않았다는 문제의 방치는 명백한 잘못이다. 자칫 그냥 넘어갈 뻔한 일을 암흑 속에서 플래시라이트로 비추어 밝힌 행동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느껴졌다.
금이 간 알
템플은 그에게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는 마운틴 컨트리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템플은 더 이상 ‘특이한’ 아이가 아닌 보통의 아이다. 칼록 선생님은 아무도 발견 못한 템플의 천재성을 알아본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사진처럼 세세하게 기억하는 템플의 기억력에 경탄하며 그를 ‘기적 같은 아이’라고 칭한다. 그동안 템플을 부르는 말은 부정적인 단어가 대부분이었다. 자폐아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템플은 타인이 규정한 한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칼록 선생님은 템플이 언어를 그림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타인이 지정한 템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배우들은 템플이 언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몸으로 표현한다. 이는 관객을 템플의 입장에 위치 시켜 그를 이해하는 데 크게 공헌한다. 칼록 선생님의 도움으로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템플의 재능은 꽃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신경발작은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로 남는다. 그가 겪는 신경발작을 끈을 활용해 연출한 부분은 그의 고통을 일부분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전화 소리에도 신경발작이 올 정도로 심각했던 사춘기 성장호르몬으로 인한 신경발작은 꽃피는 템플의 재능에 제동을 걸었다. 해결책은 압박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템플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은 어머니의 포옹마저 이해할 수 없고 견디기 힘든 감각으로 느끼던 템플에게 압박기는 포옹이 선사하는 안정감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깊은 애정과 배려를 보여준 어머니와 칼록 선생님은 성장하는 템플의 곁을 지켰다. 사회에서 이미 편견 어린 시선으로 자폐아의 한계를 그을 때, 두 사람은 템플이 가진 남들과 다른 시각이 굉장한 장점이자 능력임을 템플이 깨우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다.
문을 열고 비상(飛上)하다
템플은 스스로 건물의 4층을 올라가 천국의 문을 연다. 이 극에서 문은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네모난 프레임은 템플이 세상에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열어야 하는 문이자 그가 열어야 했던 마음, 성장을 위해 내디뎌야 했던 걸음을 상징한다. 문은 또한 템플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권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문을 두고 마주한 세상의 권위와 템플은 당당히 맞서며 전진한다.
템플이 문을 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그 혼자서는 결코 열어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은 자명하다. 그가 문을 여는 행동은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를 상기시킨다. 알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것처럼, 템플은 문을 열고 새처럼 자유롭게 재능을 펼친다. 이 부분에 이르러 관객은 템플의 성장기를 지켜보며 그가 겪었던 고통과 어려움에 깊게 공감하기 때문에 마침내 그가 이루어낸 성장에 큰 감격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미리 단정 지었던 일들을 보란 듯이 해낸 템플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한다. 그는 당당하게 그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들을 마주하고 자폐는 병이 아닌 다른 언어임을 증명한다. 그는 틀리지 않았다. 그저 다를 뿐이다.
틀림과 다름의 차이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쉽게 정답과 오답을 구분한다. 정답이 아니면 오답이라는 이분법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틀리다고 말하는 사회에 템플은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님을 전한다.
템플이 고안한 동물 친화적인 시설은 그가 동물처럼 그림으로 사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 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템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사랑과 이해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템플’은 사랑을 누군가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라 말한다. 부당한 권위로 오답이 된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조차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서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사랑임을. 성장에 있어 그 누구도 외톨이가 되지 않고 따스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템플’은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와 배려심이 깃든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시사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템플’은 다름을 바라보는 사회의 태도를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며 함께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