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외전/ 박호영

<리어외전>을 보고

 

박호영(서원대학교 공연영상예술학부 교수)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이다. 이 리어왕을 리어외전으로 풀었다는 고 선 웅 연출 스타일의 작품이 어떻게 재해석되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 리어외전은 무대부터 고전형식의 무대의 개념을 뛰어넘는 모던하고 독특한 무대였다. 출연배우들의 사진을 전시하듯이 올려놓고 모든 배우들이 관객입장과 함께 등장하면서 자신들의 리어왕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공개하였다. 각자 무대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서 입을 가볍게 풀기도 하고 물을 마시기도 하는 모습과 동시에 안내방송으로 “리어외전은 기존의 리어왕을 비틀고 오락형의 리어왕이며 혹 배우들의 대사가 너무 빨라 못 알아 들이시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사라고 생각하시면 된다”는 안내 멘트로 공연은 시작 되었다.

리어가 무대 가운데로 들어와 자신이 리어왕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기존의 리어왕에서 등장하는 광대 역할 대신 코러스9명으로 바꿔서 무대 전환할 때와 극의 상황을 알려주는 서사적인 역할들로 연극의 재미를 더하여 준다.

기존의 코딜리어는 청순하고 얌전하고 지고지순한 역할인데 이번 리어외전에서는 직선적이고 속에 있는 말을 겉으로 다 표현하고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어쩌면 기존에 코딜리어가 겉으로 하지 못했던 말을 한풀이라도 하듯이 다 쏟아내는 인물로 바꿔버렸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은 신파조 형식과 함께 속사포처럼 빠르고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대사들을 구사하였다. 또한 모든 역할의 배우들은 내면의 소리를 겉으로 다 표현해내는 직접적인 연기들을 했다. 그러다보니 너무 관객들에게 설명적이고 훈계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고전에서 볼 수 있는 우아함과 고급스러운 은유적인 셰익스피어의 향기는 느끼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고 선 웅 연출은 이런 빠른 대사법을 구사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미 작품 안에 감정이 다 들어 있는데 배우들이 또 감정연기들을 해버리면 지루하게 느껴지기에 모든 배우들은 빠르고 드라이하게 대사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고 선 웅 연출의 이런 형식구조에 딱 들어맞는 장면들은 건질 수 있었다.

리어에게 유산을 상속받고 변한 첫째 딸 거너릴이 아버지인 리어를 하대시하는 첫 장면이 무척 파워풀하게 9명의 코러스들과 앙상블을 이루었다. 에로틱한 비트 있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거너릴의 모습은 아버지인 리어를 무시하고 짓밟는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다음은 딸들에게 버림받은 리어의 내면을 코러스들이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움직임을 표현한 장면 역시 9명의 코러스 역할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번 리어외전에서 새로운 장면은 치킨하우스(유기노인 수용소)라는 곳인데 이곳으로 끌려온 리어는 신고식을 치러야한다면서 수용소 사람들이 옷을 벗기고 그 상태에서 팬티만 입은 채 조용필에 “허공”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처절하고 쓸쓸한 모습이었으며 시간이 흐르며 점점 미쳐가는 리어의 장면들은 배우 이승철의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노련미와 페이소스가 있었다. 결국은 기존의 리어는 딸들에게 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교훈을 얻었다면 이번 리어외전은 리어 스스로 모든 것을 뒤엎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셋째 딸을 뺀 모든 딸들을 권총으로 다 사살했으며 이렇게 당하고 말년을 죽음으로 내몰릴 수 없다는 리어의 응징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자식한테 무조건적으로 희생하였지만 결국은 돌아오는 건 자식들의 불효와 이기적인 모습들 자신들의 부모를 외면하고 그러므로 해서 자식에게 버림받은 기존의 통속적인 리어왕을 고 선 웅 연출은 독특한 그만의 색깔로 풀어냈다.

리어외전에서 리어는 외친다. “인생 먼지구나. 인생 고단하구나. 말년 중요하구나.” 그리고 “잘들 봐주시고 이 따위로 인생 살지 마시길”

리어왕을 비틀었다는 리어외전은 전체적으로 극이 흘러가는 느낌보다는 오락적이며 에너지 넘치는 볼거리가 다양한 리어외전이었다. 한판 놀아보자는 연출의 의도대로 청승은 떨지 말고 놀면서 즐기면서 느껴보시라는 리어외전이었던 것 이다.

어느 평론가 말대로 고 선 웅 연출은 놀 줄 아는 연출인 것 같다.

그의 무대는 마치 놀이터처럼 미끄럼틀도 있고 그네도 철봉도 있으며 시소도 정글짐도 있어서 심심하지 않게 이것도 저것도 다 타고 놀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놀이기구들을 활용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 선 웅 연출의 한눈팔기 식 미장센은 뜬금없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한편으로 무대 자체를 매우 역동적이고 유쾌하고 재미나게 만들어낸다.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무대는 고 선 웅 연출가가 얼마나 연극적으로 잘 놀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이런 형식으로도 서양의 리어가 아닌 우리네 리어외전으로 탈바꿈시킨 고 선 웅 연출의 창작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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