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2년 걸작10선
박정기(朴精機)
1, 극단 서울공장의 하유상 작 임형택 연출의 <꽃상여>를 보고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하유상 선생은 〈꽃상여〉(1970)와 〈지상과 천국〉(1972)〈딸들의 연인〉〈여성만세〉등에서 신구세대(新舊世代) 간의 의식의 차이와 물질적 빈곤이나 인간소외(人間疎外) 등을 작품에 반영시켰다. 〈생명동의〉(1970), 〈서글픈 대화〉(1970), 〈방문객〉(1971)에서도 가난으로 소외되고 도외시되는 인간을 그렸다. <결혼기념일〉(1970)에서는 결혼생활과 부부간의 일상적 갈등과 애환을 다루었고, 〈미친 여자와 유령의 남자>에서도 역시 부부생활의 보편성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장막〈꽃상여>와 단막〈업보>〈결혼기념일>〈방문객>은 사실주의 극 양식을 택했으며, 〈생명동의〉는 서사극 형식이고 〈서글픈 대화〉와 〈미친 여자와 유령의 대화>는 모노드라마로 〈지상과 천국>은 뮤지컬 양식으로 집필했다.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 동화마을에 가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만귀정이 있다. 영화감독 김기덕이 1974년 프랑스에 있던 윤정희를 불러내, 신성일 허장강과 함께 영화 <꽃상여>를 촬영할 때 배경이 되었던 장소다. 동화마을 사람들이 엑스트라로 출연을 했고, 그해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 허장강이 조연상을 수상했고, 영화는 미술상도 받았다. 동화마을의 몇 남지 않은 노인들은 지금까지 <꽃상여>의 출연을 회고담으로 들려준다.
<두 메데아>로 2007년 이집트 카이로 국제실험극제에서 임형택이 연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극장을 들어서면 대형 막 중앙하단에 <꽃상여>의 머리 부분이 객석으로 노출이 되어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오케스트라 박스에는 타악기, 현악기, 관현악기, 전자건반악기와 해금 등의 연주자와 성악가가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연극이 시작되면 소복을 한 출연자와 대극장 무대 깊숙한 뒤까지 일망무제(一望無際)로 열린 무대를 볼 수가 있고, 중간부분에 아크릴 같은 투명막이 병풍처럼 세워져 있어, 조명의 각도에 따라 뒷부분이 객석에서 보이지 않게도 되고, 거울처럼 반사가 되어 인물이 투영되기도 하고, 때로는 뒷부분이 운명(運命) 같은 통로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의 여물통이 샘물받이 저장 목으로 사용되고, 평상(平床)은 할머니가 좌정하면, 소박하지만 권위의 상징대(象徵臺)로 위엄이 갖춰지기도 한다.
극의 내용은 대물림 같은 과수댁(寡守宅)의 이야기가 바탕을 이루지만, 세태와 사고의 변화가 극의 주제가 되었듯이, 40여 년 전의 작가서술방식을 21세기 정서와 감각, 그리고 흥취에 어울리도록 연출하였기에, 무대는 역동적이면서도 우리 고유의 정서와 전통을 몽환이나, 환상적인 음악과 무용, 그리고 동작으로 구현해, 세계 어느 곳에 내 놓아도 공감대가 형성될 현대극으로 창출해 놓았다.
한 고을의 대지주이자 좌장격인 노부인과 과수댁이 된 젊고 아름다운 며느리와 예쁜 두 딸, 이집의 일꾼 내외와 두 아들, 그리고 부락사람들의 일상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빈부귀천(貧富貴賤) 출신가문(出身家門)에 상관없이 함께 어울려 놀고 사랑이 꽃망울처럼 피어난다. 평생 남편 외 한 남성의 사진을 품에 간직하고 살지만 수절을 천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노부인, 그러나 젊은 며느리는, 징집되어 동남아 전쟁터로 간 남편이 원주민 여인과의 정을 맺고, 일본군인과 사랑싸움으로 죽게 된 사연을 전해 듣고는, 사연을 전해준 남편동료와 새 살림을 차리기 위해, 딸을 남긴 채 집을 떠난다. 세월이 흐르고, 딸은 장성해 일꾼 아들과의 사랑이 무르익어 급기야 정까지 통하게 된다. 그러나 노부인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쥐약을 먹고 자살한다. 죽은 딸의 영혼과 일꾼 아들의 결혼식이 이루어지고, 일꾼의 아들도 첫날밤 자결해 사랑하는 신부의 뒤를 따른다.
<꽃상여>가 마을사람의 운구타령과 함께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가고, 노부인과 개가를 했던 며느리, 그리고 며느리의 천방지축(天方地軸) 큰딸이 샘물 저장 목 주위에 둘러앉아, 딸이 내미는 돈 봉투를 받으며, 노부인은 평생 간직했던 외간남자의 사진을 털어 버린다,
대단원에서 인습과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듯, 노부인과 며느리, 그리고 딸이 벌이는 세 여인의 춤사위는, 21세기를 향한 한국여인들의 힘찬 날개 짓으로 보여 지는 명장면이었다.
이엘 리가 노부인으로 출연해 원숙미와 고품격으로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펼쳤고, 유나영이 며느리로 출연, 미모의 과수댁이 지닌 농염한 열정을 온 몸으로 표현해, 남성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일꾼부부로 출연한 이미숙과 조재룡의 독특하고 탁월한 성격창출은 그들의 오랜 연기경륜과 함께 연극의 비장침울(悲壯沈鬱)한 상황을 폭소로 전환시켰고, 일꾼 아들 역의 배수진은 천진무구한 딸 역의 강영해와 함께 상큼발랄하고, 순발력있는 연기로 그 체취를 객석에 전달시켰다. 도입과 대단원에 천방지축 종횡무진으로 무대를 독차지한 최아름은 연극의 활력소 역할을 100% 해냈으며, 조재룡, 윤가현, 이도엽, 강학수, 정지은, 이재훤, 김충근 등 저 나름대로의 성격창출이 연극과 어우러지고 연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데 적극 기여했다.
특별출연한 초인의 소리가 극을 환상으로 이끌었고, 김소이와 김정수의 춤사위는 한 마리의 학이나 백조를 연상시키는 우아하고 고귀한 표현으로 연극과 조화를 이루었다.
제작감독 이수연, 공연기획 김연정, 무대디자인 도나 정, 무대미술 하일해, 의상디자인 이주희, 분장디자인 정지호, 사운드 디자인 안창용, 타악기 연주 김학진, 건반연주 김창현, 해금연주 서진영, 베이스세션 원훈영, 국악 소리 이승민. 성악 김지현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돋보여, 하유상 작 비범한 연출가 임형택이 연출한 <꽃상여>를 연말연초 한국연극의 으뜸연극으로 탄생시켰다.
2, 2011 공연예술 인큐베이팅 사업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구성/연출 박장렬 멘토의 <인생>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인생>은 이정((而丁) 박헌영(朴憲永1900~1955)의 일대기다. 박헌영은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하이로 건너가 고려공산당 입당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자대회에 참가한 뒤, 국내에 공산당 조직을 건설하려고 귀국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년 6개월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출감 후 조선공산당과 고려 공산청년회를 조직했고, 공산당 결성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미치광이 행세를 하고 풀려났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 공산대학에서 2년간 공부한 뒤, 상하이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징역 6년을 선고 받아 복역했고, 출감해서 공산주의 조직인 ‘경섬 콤 그룹’을 만들었으나, 일본의 탄압을 받아 전라남도 광주(지금의 광주광역시)에서 은신했다. 조선 정 판사 위조지폐사건으로 미군정이 조선 공산당 간부들에 대해 체포령을 내리자, 북한으로 탈출해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을 합쳐 남조선노동당을 결성하고, 부위원장이 되어 북한에서 당 활동을 지도했다. 북한정권이 수립되자 부수상 및 외상이 되었지만, 김일성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반국가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박헌영은 김단야, 주세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함께 사회주의 활동을 벌였다.
김단야(金丹冶, 1899~1938) 역시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1922년 상하이에 망명하여 고려 공산청년단 책임비서가 되었다. 1925년에는 조선공산당 창당에도 참여하였다. 상하이에서 활동을 계속하던 중 소련의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주세죽(朱世竹, 1901~ 1953)은 러시아 이름은 카레예바이며, 박헌영(朴憲永)의 첫째 부인이다. 190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함흥의 영생여학교에 2년 동안 다녔으며, 3·1운동에 참가하다가 체포되어 1개월간 수감되었다.
1921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음악학교를 다닌 후 이듬해 5월 귀국하였으며, 1924년 5월 허정숙(許貞淑)·박원희(朴元熙)·정종명(鄭鍾鳴) 등과 함께 사회주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결성하고 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1925년 1월 허정숙·박원희 등과 함께 조선여성해방동맹을 결성하였고, 그해 2월 화요회가 전조선운동의 조직적 통일과 근본 방침을 토의하기 위하여 주도한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이 되었으며, 그해 4월 고려공산청년회 중앙후보위원에 선임된 뒤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과 1926년 6월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 때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자 1928년 11월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로 탈출하였다.
1929년 코민테른(인터내셔널_제3인터내셔널)이 모스크바에 설립한 공산주의 운동 지도자 소양교육기관인 동방 노동자 공산대학에 입학하여 1931년 졸업한 후 1932년 상하이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벌였다. 1938년 일본 밀정이라는 혐의로 소련 경찰에 체포된 후 추방되어 카자흐스탄에서 5년 동안 유형생활을 했다.
1940∼1946년 카르마크치의 협동조합에서 일하였으며, 1946년 스탈린 정권에 조선인민공화국으로의 귀국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되었다. 1989년 3월 소련에서 명예가 회복되었다.
김단야는 2005년에, 주세죽은 2007년에, 노무현 정권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나, 대한민국 건국이나 자본주의 체제에 분명 반대했던 인물이다.
소설가 심훈은 <동방의 왕자>에서 박헌영과 주세죽의 사랑을 소설로 그려냈고, 방송작가 김기팔은 방송드라마로 박헌영의 일대기를 써서 시청자의 주목을 집중시켰다. 연극으로는 김민정이 박헌영을 그린 최초의 작가가 아닌가 싶다.
무대는 커다란 격자무늬의 각목에 벽지를 발라 3면 벽 전체에 세우고, 배경 막 쪽과 무대 좌우에 등퇴장 로를 만들어 놓았다. 세자(3尺두) 높이와 두자(2尺) 폭, 그리고 여섯 자(6尺) 길이의 네발달린 탁자 여러 개를 만들어 장면변화에 따라 의자와 함께 가로로 또는 세로로 배치하거나, 사선으로 배치해 변화를 꾀했고, 가축이나 짐승 머리 모양의 전면투구를 쓰기도 하고, 형틀에 매단 허수아비를 등장시키기도 해 극적 분위기를 향상시켰다. 배경 벽면에 간간이 투사되는 동영상과 자막은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키고 소개 또는 설명하기에 적절한 효과를 나타냈다.
연극은 도입에, 어둠 속에서 배경 막 쪽의 등퇴장 로에 강한 역광과 함께 교수형(絞首刑)을 당한 듯싶은 인물의 허수아비가 형구에 주렁주렁 매달린 채 등장한다. 희미한 조명과 함께 주세죽의 독백(獨白)이 무용가의 몸놀림 같은 동작과 함께 시작되고, 잠시 후 박헌영을 비롯한 5, 6명의 등장인물들이 긴 탁자를 옮겨 오기도 하고, 무대 밖으로 끌고 나가기도 하며, 내용전개에 따른 등퇴장과 탁자의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주세죽과 박헌영의 밀착된 관계가 들어나지만, 애정표현은 없이 극이 진행되고, 잠시 후 김단야가 등장하면서 박헌영과 함께 당시 사회주의동맹 결성과 친일파 배격, 미군정 반대 등의 맹렬한 활동이 극 속에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중간휴식시간이 있어 관객들이 잠시 밖으로 나가있는 동안 극장 로비에서 연극이 계속되는가 하면, 사회주의 선전 전단지가 관객에게 배포되고, 관객은 직접 연극에 동참함으로서 체험관극을 하게 된다.
다시 입장해 착석을 하면, 이번에는 질문용지가 배포되고, 무대 전면에 긴 탁자를 연결시켜 마련한 탁자와 의자에 착석한 검은색 정장의 남녀출연자들이, 배포지의 질문순서대로 관객이 질문하면, 출연자들이 번갈아 가며 답변을 해, 사회주의 강연장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박헌영이 김일성과 합세하고, 6 25사변이 발발하는 장면이 배경 막에 동영상으로 투사되면, 연극은 열기를 더해가고, 김일성에 의해 박헌영이 궁지로 몰리고 처형되는 장면까지 배경 막에 영상과 자막으로 역사적 사실을 상세히 소개해, 관객은 깊은 이해와 흥미 속에 연극에 몰입하게 된다.
대단원에서 미모의 주제죽이 도입장면에서처럼 독백을 하고, 형구에 매달린 박헌영 허수아비와 함께, 각종 짐승 탈 전면투구를 쓴 등장인물이 그녀를 에워싸면서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김현아, 장재호, 마광현, 양말복, 김영조, 박기덕, 서재영, 윤종훈, 이현경, 손민효 등의 열연과 손호성, 김철희, 신성아, 최홍준, 최성인, 이주현, 김미영, 신주아, 원채리, 이승호, 조문경, 김민수, 홍성혁 등이 열정이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김민정 구성/연출 박장렬 멘토의 <인생>을 걸작으로 탄생시켰다.
이 연극을 필자는 박헌영 선생의 아들인 원경스님과 함께 관극을 하며, 울고 웃으며 감동을 나눴다. 원경스님은 평택 무봉산 만기사의 주지다. 부친의 역사적 자료를 러시아까지 다니며 10여 년 간 수집 정리해, 이정 박헌영의 일대기 11권을 출간했다. 우리 민족만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 시련과 비극적 인물의 일대기를 많은 사람이 읽고, 또한 연극도 관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3, 극단 백수광부의 소포클레스 작 김승철 연출의 <안티고네>(선돌극장)
<안티고네>는 본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으로,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에테오클레스·폴리네이케스라는 두 오빠와 이스메네라는 여동생이 있다.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찔러 소경이 되어 왕국을 떠난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따라 여러 나라를 방황하다가, 아버지가 콜로노스의 땅에서 죽자 다시 테베로 돌아온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둘러싸고 서로 싸우다가 모두 죽는다. 이때 새 지배자가 된 숙부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를 애국자로, 폴리네이케스를 역적으로 규정짓고는,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체를 들판에 내다버려 새와 짐승의 밥이 되게 한다. 이것이 소포클레스의<안티고네(BC 441)>의 서장이다.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포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체를 수습하여 매장한다.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옥에 가둔다. 그리고 설득한다.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지만 안티고네는 완강히 거부한다. 국법으로 매장이 금지되었지만, 신의 법으로는 매장을 하는 게 원칙이라고 크레온에게 항거한다.
원작에서 <안티고네>는 목을 매어 죽고, 약혼자로 내정되어 있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도 자신의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자살을 함으로써 크레온은 비통에 빠진다.
안티고네는 국가 권력에 당당하게 맞서는 강한 여성을 상징한다. 그 힘은 신(神)의 법칙을 따르는 데서 나온다. 신의 법칙은 곧 자연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티고네>의 주제는 국가 권력과 신의 법칙, 또는 자연의 법칙과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백수광부의 <안티고네>는 2500년 전의 이야기를 현대로 끌어왔다. 무대를 중앙에 두고 객석을 양쪽으로 나누어 만들어놓았다. 무대전체를 짐승의 우리같은 사각의 철망으로 만들어 감옥으로 사용하고, 철망 안 네 귀퉁이에는 술통모양의 의자를 놔두었고, 천정에서 굵은 밧줄 두 개를 늘어뜨려 놓았다. 원작에서 칼과 창 같은 무기 대신 총기를 사용하고, 건반악기와 타악기, 하모니카, 소형 기타, 멜로디온 등을 동쪽 벽 중앙에 배치해, 출연자들의 극의 상황전개에 따른 절묘한 연주와 배경음은 극적 분위기를 100% 상승시켰다. 철망 주변에는 먹칠을 한 종이 등을 여러 개 달아놓았고, 객석 중간 중간과 객석 귀퉁이에 연기자를 배치시켜, 극의 흐름에 따라 모습을 들어내고, 감옥주변을 배회하거나 서성거리도록 동선을 마련해놓고, 객석의 서북쪽 귀퉁이에는 마임이스트가 조각상처럼 허공에 앉아 관객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의상 또한 현대로 설정했지만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느낌이라, 무리가 없었다. 출연자들이 철망중간까지 뛰어올라 매달리고, 철망 안 술통형태의 의자에 올라서거나 밧줄에 매달려 연기를 펼치고, 크레옹에 대한 저항이 출연자 전원의 함성으로 나타날 때에는 마치 서울광장에서의 시위대의 함성 같은 느낌이 들었고, 대단원에서 <안티고네>가 원작에서의 자살대신 총에 맞아 쓰러지기까지 관객은 근거리에서 관람을 하기에, 객석에서 연기자들의 땀방울 하나, 호흡소리 하나까지 상세히 접할 수 있어, 공연의 감동이 배가함을 피부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소포클레스가 2500년 전에 쓴 자신의 작품이, 그리스처럼 맑고 푸른 하늘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공연이 되고, 게다가 세계 각국의 어느 극장에서보다 탁월한 공연이 펼쳐지리라고 상상이나 해 보았을까?
박완규, 박윤정, 서 진, 유성진, 김현중, 김원진, 정 훈, 홍기용, 김란희, 유명훈, 박혁민, 박미란, 이반석, 김경희, 민병욱 등 연기자들의 열연과 성격창출이 극의 수준을 상승시켰고, 박찬호의 무대, 김창기의 조명, 심연주의 음악/작곡, 박가연의 음악지도, 최윤희의 의상, 송영옥의 분장, 장성호, 강일중, 이은경의 사진, 강일중의 영상, 김정락의 음향오퍼 임정묵의 조명오퍼, 유명훈의 조연출, 이희경, 최보미, 이시은의 기획 등 스텝 모두의 활약과 정성이 어우러져 소포클레스 원작, 김승철 재구성/연출의 <안티고네>를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좋을 걸작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4, 명품극단의 도스토예프스키 원작 김태현 극작 김원석 연출의 <THE GAME 죄와 벌>(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도스토예스스키(1821~1881)는 <가난한 사람들(Бедные люди), 1846><분신(Двойник: Петербургская поэма), 1846><네또츠까 네즈바노바(Неточка Незванова), 1849><아저씨의 꿈(Дядюшкин сон), 1859><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Село Степанчиково и его обитатели), 1859><상처받은 사람들(Униженные и оскорбленные), 1861 (다른 번역 제목 : 학대받은 사람들)><죽음의 집의 기록(Записки из мертвого дома), 1862><지하생활자의 수기(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1864><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1866><노름꾼(Игрок), 1867 (다른 번역 제목 : 도박사)><백치(Идиот), 1869><영원한 남편(Вечный муж), 1870><악령(Бесы), 1872><미성년(Подросток), 1875><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Братья Карамазовы), 1880> 등의 소설을 썼고, 그의 모든 작품이 연극으로 공연되거나 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되었다.
소설 <죄와 벌>은 1860년대 페테르스부르크의 빈민가가 배경이다. 찌는 듯이 무더운 여름저녁, 하숙비를 몇 달치나 밀린 초췌한 모습의 대학 중퇴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자기 하숙방에서 거리로 나와 전당포로 발길을 옮긴다. 그에겐 죽은 부친의 보잘 것 없는 연금으로 고향에서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는 늙은 어머니가 계시고,. 또 그의 여동생 두냐는 어느 부유한 집의 가정 교사였으나, 그 집주인이 그녀를 성추행하려들자 그만두었다. 이런 가족을 가난에서 구하고, 중단된 학업을 잇기 위해, 라스콜리니코프는 범죄를 저지를 결심을 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인간의 유형을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으로 나누고, 범인은 비범인에 복종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범인은, 범인을 짓밟고 일어서 새 사회를 이끌어 갈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이한 상념에 빠져 있는 라스콜리니코프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비범인이라고 믿는다. 뒷골목의 어두컴컴한 층계를 올라 전당포에 다다른 그는 주인노파에게 싸구려 시계를 저당 잡히고 약간의 돈을 빌린다. 그는 전당포 주인노파를 이 사회의 기생충 정도로밖에는 여기지 않는다.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노파의 재산을 활용하기 위해서, 노파를 죽이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 여긴다. 이튿날 품속에 도끼를 품고 전당포를 찾아간 라스콜리니코프는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도끼로 노파를 죽이고, 때마침 그곳을 찾아온 노파의 여동생까지도 죽인다. 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는 금품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범행 현장을 빠져 나온다. 범행 뒤, 라스콜리니코프는 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열병을 앓으며 며칠을 몸져눕는다. 극심한 불안감속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뿐 아니라, 또 자기가 죽인 노파들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한편 그의 범행에 이렇다 할 단서가 없자 검사 뽀르피리는 두 노파의 죽음이 그의 각본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혐의를 둘 뿐 그를 범인이라 확신을 하지는 못한다. 뽀르피리는 증거가 없으므로 라스콜리니코프의 양심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한편 라스콜리니코프는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성매매 여성 소냐를 우연히 알게 된다. 소냐는 정신 착란증에 걸린 계모와 자기의 동생들을 위해 성매매를 하지만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다. 누구한테 건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고 싶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를 찾아가 그 모든 것을 고백한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두 손을 꼭 잡고 울면서 말한다. “지금 바로 나가셔서 네거리에 서세요. 그리고 몸을 굽혀 먼저 당신이 더럽힌 땅 위에 키스를 하세요. 그리고 온 천지에 머리를 조아리고 모두가 듣도록 큰소리로 “나는 사람을 죽였다! 라고 외치세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새 빛을 보여 주실 겁니다.” 이튿날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작별을 하고, 라스콜리니코프는 우선 먼저 소냐에게로 간다. 소냐는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꺼내 라스콜리니코프의 가슴에 달아 준다. 경찰서로 향하던 그는 광장에 잠시 멈춰 선다. 갑자기 마음속에 뭉클한 감정이 솟아올라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는 발아래 땅에 입을 맞춘다. 소냐도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본다. 소냐의 모습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기가 어떠한 경우에 처하건, 소냐가 결코 자기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자수한 라스콜리니코프는 8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자수한 정상을 참작해 내린 관대한 선고다. 시베리아 감옥에 이송된 라스콜리니코프의 뒤를 따라간 소냐는 그의 형기가 끝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대학로예술극장의 소극장을 들어서면 바닥에 놓인 줄사다리를 지나 검은색의 사각의 통과, 통의 파인 구멍을 통해 통 안을 들여다보면, 러시아 노파를 몽둥이로 내려치는 장면의 영상을 볼 수가 있다.
무대는 소극장 전체를 검은 밧줄로 거미줄처럼 처 놓았다. 객석까지도 거미줄이 와 있기에 관객은 거미줄을 헤치고 들어가서야 착석을 하게 된다. 배경 막 가까이에는 스피커박스와 턴테이블이 놓여있다. 무대왼쪽에는 철사다리 한 대를 발코니까지 오르도록 걸쳐 놓았고, 중앙무대바닥은 가는 철사로 엮은 사각의 뚜껑이 덮여있어, 뚜껑을 들추면 지하로 내려가게 되어있다. 거미줄 위로 굵은 망사로 된 천이 공중에 가로로 길게, 무대좌우 발코니까지 연결이 되어 출연자가 밟고 지나갈 수 있게 되어있다. 인간거미가 등장해 인간벌레를 거미줄로 엮을 때에는 비닐 두루마리를 풀어 거미줄처럼 칭칭 동여매어 먹잇감으로 붙들어 놓는다.
연극은 도입에 거미집에서 인간거미가 집을 헤집고 나와 마치 무용이나 팬터마임을 하듯 잘 다져진 몸매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무대를 오간다.
무대 좌우의 발코니에 조명이 들어가면, 남녀 각 2인씩 4명의 출연자가 등장 자신을 소개하고 연극의 상황을 개진한다. 또 하나의 매달아 놓은 거미 먹이주머니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헤집고 나오고, 뽀르피리의 등장으로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한 범행추적이 시작된다. 성매매를 하지만 청순해 뵈고 아름다운 모습의 소냐와 라스콜리니코프의 사랑이 살포시 전개되고,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등장에서, 세상에 이런 미녀가 하고 놀랄 정도로 어머니의 모습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희랍의 조각상 같은 모습의 뽀르피리와 그를 보조하는 자묘또프 또한 핸섬하고 남성다운데다가 재치까지 뛰어나니, 6인의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경연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5인의 등장인물이 거미줄인 밧줄에 휘감기기도 하고 몸을 걸치기도 하고, 바닥의 4각 철망을 들추거나 덮으면서 술을 권 커니 작 커니 하기도 하고, 라스콜리니코프가 망사로 연결된 다리를 건널 때나 중간에 정지 상태로 있을 때나, 인간거미가 라스콜리니코프를, 거미줄처럼 비닐두루마리를 풀어 묶을 때에는, 무대전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조형예술의 퍼포먼스 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인간거미가 거미줄로 사용되는 비닐로 무대 좌우를 칭칭 동여매고, 그 안에 붙잡힌 인간벌레를 하나하나 촉수로 건드려 동작을 정지시킨 후 배경 막 가까이 들어 옮기고 마지막으로 라스콜리니코프까지 마법을 쓰듯 움직이게 하여 무대중앙에 고정시킨 후 암전되는 장면직후, 객석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갈채는, 거미줄조형예술전시회를 겸한 인간거미와 인간벌레 퍼포먼스의 성공을 확인하는 우렁찬 효과음으로 들렸다.
남명렬, 김호정, 남기애, 오경태, 채희재, 이정훈 등이 열연이 돋보였고, 임창주의 무대, 박은화의 조명, 이명아의 의상, 권경자의 음향, 강병수의 미디어아트, 서은정의 조연출 등이 기량이 공연의 수준을 상승시켜, 김태현 극작 김원석 연출의 <THE GAME 죄와 벌>을 문제작이자 걸작공연으로 탄생시켰다.
5,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국립극단의 이윤택 작/연출의 <궁리(窮理)>
이 연극은 장영실과 세종, 그리고 각종 천문기구(天文器具)와 기상기기(氣象器機)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장영실의 조상은 원나라 소주, 항주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려에 귀화하여 아산군(牙山君)에 봉해졌던 장서(蔣壻)의 9대손이며 그의 집안은 고려 때부터 대대로 과학기술분야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그의 부친은 고려 말 전서라는 직책을 지낸 장성휘이며 모친은 기녀(妓女)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영실의 신분은 동래현(東萊縣)의 관노(官奴)였다. 그의 과학적 재능으로 태종 때 이미 발탁되어 궁중기술자 업무에 종사하였다. 제련(製鍊) ·축성(築城)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났으며 1421년(세종 3) 세종의 명으로 윤사웅, 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왔다. 1423년(세종 5) 왕의 특명으로 면천(免賤)되어 정5품 상의원(尙衣院) 별좌가 되면서 관노(官奴)의 신분을 벗었고 궁정기술자로 역할을 하였다. 그 후 행사직(行司直)이 되고 1432년 중추원사 이천(李蕆)을 도와 간의대(簡儀臺)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의(天文儀) 제작을 감독하였다. 1433년(세종 15) 정4품 호군(護軍)에 오르고 혼천의(渾天儀) 제작에 착수하여 1년 만에 완성하고 이듬해 동활자(銅活字)인 경자자(庚子字)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활자 갑인자(甲寅字)의 주조를 지휘감독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報漏閣)의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다.
1437년부터 6년 동안 천체관측용 대 ·소간의(大小簡儀),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懸珠日晷)와 천평(天平)일구, 고정된 정남(定南)일구, 앙부(仰釜)일구, 주야(晝夜) 겸용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 자격루의 일종인 흠경각(欽敬閣)의 옥루(玉漏)를 제작 완성하고 경상도 채방(採訪)별감이 되어 구리[銅] ·철(鐵)의 채광 ·제련을 감독하였다. 1441년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水標)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 수 있게 했다. 그 공으로 상호군(上護軍)에 특진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세종이 신병치료차 이천으로 온천욕을 떠나는 길에 그가 감독 제작한 왕의 수레가 부서져 그 책임으로 곤장 80대를 맞고 파직 당하였다. 세종은 곤장 100대의 형을 80대로 감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 뒤 장영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2004년에 극단 아리랑에서 공연한 김남채 작 방은미 연출의 뮤지컬 <천상시계>에서도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가 살았던 조선 시대를 통해 부강한 자주 국가를 꿈꾸는 세종과 박연(朴堧), 이천(李蕆), 등의 이야기를 담아, 외세에 의존하지 않은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해 성공적인 공연을 거둔 바가 있다.
연극 궁리(窮理)의 무대장치는 혼천의(渾天儀)의 이미지를 원용했다. 마치 토성(土星)의 둘레처럼 둥글고 긴 오르막길을 객석 앞부분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무대 뒤까지 연결시켰고, 바로 그 서클 왼쪽 하단과 무대 왼쪽에 내리막길을 만들어 놓았다.
배경막 가까이 2m 높이와 3m 폭, 8~10m 길이의 단을 만들어 놓고, 중앙에 3m 폭, 6, 7m 길이의 거대한 판을 부착해, 등장인물들의 이동에 따라 판이 앞으로 기울면, 45도 경사의 거대한 미끄럼틀이 되기도 한다.
단의 아래쪽은 옥(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등퇴장 로 구실을 한다.
단의 위쪽으로도 배경 막을 열어젖히면 등퇴장 로가 되기도 한다. 단 아래쪽 좌우에는 장면전환에 따라 각종 천문기구와 측우기, 자격루 등 기상관측기기를 만들 때의 소품을 비치했다.
마지막 장면에는 거대한 그물망에 천문도를 영상으로 투사해, 하늘의 별자리로 대미(大尾)를 장식한다.
연극은 도입에 허연 바지저고리를 입은 남녀 출연자들이 대거 단위에 등장해 엎드려 있다가 천둥소리와 폭우 음에 맞춰 짐승 같은 동작을 취하고, 곧이어 세종임금의 거둥이 시작되면 인간수레가 되어 바퀴를 굴리며, 정면으로 전진한다. 천둥의 굉음과 함께 성수대교가 붕괴하듯 판이 앞으로 급작스레 기울면 왕과 인간수레는 함께 쏟아져 흘러내리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이 연출된다. 하지만세종임금은 수레의 파손과 임금자신의 낙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의연한 태도로 대 군주다운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조정대신들은 임금의 낙상을 큰 변괴(變怪)로 받아들이고 책임론과 함께 수레를 제작한 장본인을 잡아들이는 모습에서, 마치 현재의 정치현실을 반영하는 듯싶다. 장영실과 관계자들이 투옥되고, 실록에 기록된 것처럼 태형으로 다스리는 장면은 충격적이고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지만, 그러한 와중에서 주인공 장영실의 측우기, 자격루, 천문도 등의 제작은, 역경을 창의력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연극에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장영실의 재주를 아끼고, 그의 처벌을 원치 않는 세종임금에게, 책임론을 강조하며 장영실을 엄벌에 처하라 조정대신들의 간언은, 정치가나 시위꾼들의 구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극 중간 중간에 벌어지는 민중들의 춤사위나, 음악과 어우러진 팬터마임 같은 동작은 내용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대단원에서 미관말직(微官末職)에서 쫓겨난 장영실과 그의 환영을 따라가려는 세종임금의 미끄럼틀에서의 거듭되는 흘러내림은 관객 모두의 처절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오지만, 장영실이 마지막으로 전한 천문도가 세종임금에 의해 펼쳐지는 순간, 온 천지를 뒤덮는 듯싶은 거대하고 금빛 찬란한 망사막 별자리의 영상 은 객석전체의 탄성과 함께 감동으로 다가와 모두의 가슴과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명장면으로의 마무리였다.
강학수, 이원희가 장영실과 세종임금으로 출연해 새롭고 독특한 연기로 객석의 갈채를 받았다. 곽은태가 더블캐스트로 장영실을 연기한다.
이종구, 조정근, 장재호, 심완준, 전형재 등이 탁월한 기량으로 극의 석가래 역을 했고, 임효돈, 오동식, 유승락, 최승집 등이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으로극의 대들보 구실을 해냈다. 박영숙, 김미영, 한상민 등의 성격창출이 돋보였고, 문호진, 박우식, 김성효, 정준환, 이희성, 한강우가 전혀 때 묻지 않은 호연으로 무대 위에 우뚝 섰다. 신유진, 이정현, 박혜선, 안연주, 주재희, 이하늘 등이 신선하고 순발력 있는 연기로 무대에 활력소가 되었다.
이태섭의 무대장치는 하나의 조형예술작품이었고, 최우정의 음악, 김남진의 안무, 김창기의 조명, 이유숙의 의상이 돋보이는 무대가 되었다. 정윤정의 소품은 수훈 갑이다. 그녀의 소품은 완벽에 가깝다. 윤민철의 음향은 연극의 분위기를 100% 살리는 역할을 했고, 이지연의 분장도 탁월했다. 오동식이 조연출로서의 그 열정과 기량을 집중시켰을 뿐 아니라, 출연자로서의 면모도 출중하게 부각시켰다. 최준명의 조안무, 변오영의 무대감독, 윤성호의 조연출보 등의 열정과 노력이 천재적인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윤택 작/연출의 <궁리(窮理)>를 (재)국립극단의 2012년 상반기의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6,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CJ E&M 제작, 리차드 알피에리(Richard Alfieri)작, 김달중 연출의 <여섯 주 동안 여섯 번의 댄스레슨(Six Dance Lessons in six weeks)>
리차드 알피에리(Richard Alfieri)는 <불의 수확(1996)> <비엔나의 우정(1998)> <푸에토 발라타 스퀴즈(2004)> <시스터즈(2005)>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비엔나의 우정>을 제작한 남미출신 미국작가다.
<여섯 주 동안 여섯 번의 댄스 레슨(Six Dance Lessons in six weeks)>은2001년 미국 L.A에서 초연된 다음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고, 12개 국어로 번역되어 20여 개 국의 50여개 공연단체에 의해 공연이 되었다.
이 연극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춤은 <스윙 댄스>, <탱고>, <왈츠>, <폭스 트로트>, <차차차>, 그리고 <컨템포러리 댄스>다.
<스윙 댄스>란 재즈음악에 맞추어 추는 격렬한 춤을 말한다. 이 스윙 댄스는 1945년까지는 재즈 댄스 또는 스윙(Swing) 혹은 지루박((Jitter Bug) 등으로 호칭되었고, 그 뜻은 넌센스, 엉터리, 야유하다 등의 뜻이다.
발생지는 북아메리카 미시시피(Mississippi)강 하구에 가까운 루이지애나(Louisiana)주의 뉴우 올리안즈(New Orleans)에서 1910년대에 발생한 재즈음악이 1930년 무렵에는 부기우기(Boogie Woogie: 재즈 피아노의 일종) 연주법이 사용되면서 이 음악에 맞추어 추기 시작한 새로운 댄스가 린디 홉(Lindy Hop)이란 춤이었는데, 이 린디 홉에다 북미의 흑인들의 역동적인 동작과 익살 맞는 제스처를 곁들여 춘 새로운 춤을 지루박(Jitter Bug: 일명 스윙 댄스)이라 명명했다.
<탱고>는 스탠더드 댄스(standard dance) 종목 중 하나로 1880년 무렵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층민 지역에서 생겨났다. <탱고>가 처음 등장할 때의 명칭은 ‘바일리 꼰 꼬르떼(baile con corte)’였는데, 그것은 ‘멈추지 않는 춤’이라는 뜻이었다. 그 후 명명된 <탱고>라는 용어의 기원은 아프리카이며 ‘만남의 장소’, ‘특별한 공간’을 의미한다.
<탱고>가 탄생할 무렵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남성은 목이 긴 부츠에 쇠 발톱(spur)을 달고 가우초(gaucho)라는 바지를 입었으며, 여성은 풍성한 스커트를 입었다. 그와 같은 복장으로 춤을 추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율동이 오늘날 <탱고>의 기본 동작이 되었다.
<탱고>의 비약적인 발전은 19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의 탱고는 경쾌하고 활기찼으며, 1915년 무렵 유럽에도 전해져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1920년대가 되자 탱고의 분위기가 바뀌어 우수가 깃든 춤으로 차츰 변하면서 서정적인 춤으로 인식이 되고, 스텝도 실내 무도 스텝으로 부드럽게 변했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춤으로 본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월츠(waltz)>는 프랑스의 <보르타(Volta)>라는 춤에서 기원한다는 학설과 1178년 11월 9일 빠리에서 처음 추어졌다고 문헌기록으로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듯싶지만, 실제로 빠리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16세기부터였다.
<보르타>란 원래가 「돌다」라는 뜻으로 당시의 춤은 원무(Round Dance)였음을 알 수가 있다. <보르타>의 어원은 프랑스의 봐르세(Volse), 독일의 왈저(Walser), 이태리의 왈즈(Walz), 영국의 왈츠(Waltz)등 모두가 빙빙 돌다라는 뜻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일인들은 <왈츠>를 자기네의 지방무용인 「란트러 : Landler」에서 기원하였다고 전한다. 이러한 왈츠가 유럽의 전 지역에서 전성기를 이루게 된 것은 슈베르트나 스트라우스 등 그 외의 많은 음악 대가들이 불멸의 왈츠 명곡들을 작곡하고 부터다. 19세기 초에는 이러한 빠른 템포(1분간 60소절)의 왈츠는 라운드 턴(Round Turn : 360도의 회전)을 사용하는 로터리 왈츠(Rotary Waltz)였다.
19세기 중엽에는 요한 스트라우스 풍의 비엔나 왈츠(Vienna Waltz)가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Wien)에서 시작하여 대중화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국에선 보스톤 왈츠(Boston Waltz)란 것이 발생하여 유행의 물살을 타게 되었다.
<폭스 트로트(fox-trot)>란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미국 서부지방의 <폭스 트로트>로 알려진 말의 걸음걸이에서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다. 여우나 말 따위의 네 발 짐승이, 빠른 걸음걸이로 걸어갈 때의 동작을 <폭스 트로트>로 볼 수 있다. 즉 네 발 짐승의 걸음걸이는 오른쪽의 앞발과 왼쪽의 뒷발, 그리고 왼쪽의 앞발과 오른쪽의 뒷발이 동시에 움직여가는 경쾌한 종종걸음이고, 또한 두 앞발과 두 뒷발이 동시에 움직이는 급속한 걸음걸이인 갤럽(Gallop)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 <폭스 트로트>이다.
<차차차>는 1943년 쿠바의 최대 밴드의 지휘자로 프레도(Palace Prado)가 종래의 룸바 음악에 관악기들의 강한 리듬을 곁들인 새로운 음악, 발 빠른 맘보를, 세 박자의 스텝으로 추도록 변형시킨 것이 <차차차>의 탄생 배경이다.
<차차차>란 어원의 발생은 서인도제도(카리브해역)에서 자생하는 타타(TaTa), 또는 콰콰(KwaKwa)라는 열매를 맺는 나무로 만든 악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므로 <차차차>라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차차”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이 춤을 <차차차>라고 불렀다.
<컨템포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는 모던댄스(modern dance), 즉 현대무용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의 신무용과 구별되는 것으로, 유럽 현대무용의 개척자인 독일의 마리 비그만(Mary Wigman)이 주도적인 인물이다. 춤을 추는 아티스트에 의해 춤의 형식이 자유롭게 결정된다. 현대무용의 대세를 이루는 것이 <컨템포러리 댄스>다.
무대는 거실의 창밖으로 바다가 바라다보이고, 그 잔잔한 물결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그리고 황혼의 햇살을 객석에서 실제인 듯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창 왼쪽에 장식장이 있고, 오디오 세트가 놓여있어 춤을 출 때 적절하게 사용된다. 창 오른쪽에는 조리용 싱크대가 놓인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고, 그 옆에 주방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나 있다. 오른쪽 벽면에는 벽 안쪽 움푹 파인 공간에 냉장고 넣고 문짝을 달아 가려놓았고, 그 오른쪽에는 내실로 들어가는 통로가 보인다. 통로 양쪽에도 장식장이 있고, 벽에는 초상화를 걸어놓았다. 무대 중앙에는 소파와 의자가 놓이고, 소파 옆 작은 탁자위에는 전화기가 보인다. 소파 앞쪽으로 카페트를 깔아두었다. 현관문은 왼쪽 벽에 만들어져 있어 집의 등퇴장 로로 사용되고, 벽에는 작은 책꽂이와 벽모서리에 세워둔 전기스탠드도 보인다.
연극은 도입에 현관의 벨소리가 들리고, 집주인인 나이든 부인이 등장해 누구냐고 묻자, 분명히 남성인데 말씨는 여성 닮은 방문객이 대답을 하고,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인이 문을 열자 젊은 남성이 들이닥친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젊은 남성은 댄스 강사로 나이든 여주인에게 춤을 지도하러 온 것임이 알려진다. 그런데 강사의 차림새나 말씨, 그리고 태도가 여주인의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여주인은 강사에게 남편이 귀가하기 전에 돌아가기를 청한다. 강사는 자신의 처가 와병중이고 생활이 곤궁하다며 재고해 줄 것을 간청하고, 여주인은 마지못해 승낙을 하고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강사의 춤 솜씨가 영화 <긴다리 아저씨>의 “후레드 아스테어”나 춤과 노래의 달인인 스타 “세미 데이비스 주니어”를 능가하는 수준이고, 상대하는 여주인의 춤동작도 초보로 보기에는 너무나 유려한 동작이다. 여하튼 두 사람의 댄스레슨은 그 서장을 아름답게 인상 짓는다. 날자가 바뀌고 춤 강습이 계속되면서 여주인은 남편이 일부러 자리를 피해 외출을 한 거라며, 강사에게 남편귀가 전에 강습을 끝내라는 주문을 하고, 강사는 실은 자기의 처는 남성이며, 자신은 남성호모인 게이라는 고백을 한다. 여주인은 첫눈에 춤 강사를 그런 사람인 것으로 알아 봤다며 자신이 여교사 출신이라는 답변을 한다. 향후 두 사람의 끊임없는 말싸움과 한결같은 실랑이 속에서도 춤 교습이 지속되고, 두 사람의 춤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춤동작으로 객석에 비춰진다, 춤을 추기위해 오디오를 틀 때마다 아래층 노부인으로부터 시끄럽다는 닦달 전화를 받지만, 여주인은 인내심으로 버티며 아래층 부인에게 다정하게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에서 여주인의 교양미가 감지되고, 춤 강사의 그칠 줄 모르는 요설은 차츰 여주인은 물론 객석에까지 용납이 될 정도로 친근감이 형성이 된다. 아래층 전화는 어느 날 갑자기 아래층 노부인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어느 날 여주인은 초췌한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어주고, 몸이 불편해 강습을 못 받겠노라고 하며 수강료 계산을 한다. 춤 강사는 그럴수록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된다며, 여주인이 몸이 불편해도 돌보아줄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여주인에게 무도회에 가자는 권유를 한다.
대단원에서 노부인의 지병인 암과의 투쟁이 알려지고, 노부인의 입원과 퇴원, 그리고 춤 강사의 간병 모습이 잔잔한 파도와 노을이 깃든 창가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펼쳐진다. 숙환으로 기진한 여주인에게 춤 강사는 붉은 노을을 속에서 춤을 추자고 청한다. 마지막인지 모를 두 사람의 춤이 꿈결 속에서처럼 펼쳐진다. 두 사람의 춤은 은하수 위로 긴 자취를 남기고 흐르는 밤하늘의 유성처럼 그 길고 긴 꼬리를 관객의 가슴에 깊이 심어놓는 명무로 연극을 마무리한다.
고두심…..그녀가 일생일대의 명연으로, 관객의 가슴에 뇌리에, 그녀의 열정과 춤, 그리고 체취를 듬뿍 실어 전달한다.
지현준…그의 천재적인 춤사위와 절제된 동작은 깊이 있는 연기와 더불어 그의 발전적인 장래를 예측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무대장치와 조명, 영상과 음악, 음향과 분장은 물론, 의상과 안무에 이르기까지 스텝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톱 클래스였기에 CJ E&M 제작, 리차드 알피에리 작, 김달중 연출의 <여섯 주 동안 여섯 번의 댄스레슨>을 우수작이자 걸작연극이라 평하겠다.
7, 극단 서울무대의 애가서 크리스티 작, 박영희 역, 김성노 연출의 <쥐덫>
애가서 크리스티의 <쥐덫>은 1952년 초연이 이루어진 이래 2012년 그 60주년을 맞게 되었고, 영국 웨스트엔드의 공연을 SH아트홀에 옮겨 재현시킨 공연이다.
무대는 Monkswell 여관의 로비다. 정면에 커다란 창이 벽좌우로 나있고, 기둥에는 사실화인지 사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울창한 가로수와 난간이 달린 시멘트 길이 길게 펼쳐진 풍경화가 걸려있다. 풍경화 아래는 벽난로가 있고 장작불이 타오르는 게 보인다. 벽난로 옆에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창밖으로 호텔 진입로가 있어 내방객이 객석에서 보인다. 현관이 정면 왼쪽에 있고, 문 입구 머리 부분에 Monkswell 간판이 가로 달려있고, 정면 오른쪽에는 2층 객실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왼쪽 벽 가운데에는 책이 잔뜩 꽂힌 책장과 그 양쪽으로 주방과 휴게실로 통하는 문이 나있다. 오른쪽 벽에는 낮은 장식장과 그 위에 전화를 올려놓았고, 내실로 들어가는 통로와 객석 가까이 있는 방에는 피아노가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다. 무대중앙에 소파와 의자가 나란히 놓여있고, 창에는 한겨울이라 성애가 끼어있는 게 보인다. 천정은 여러 개의 굵은 나무가 석가래 모양으로 차례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앙에 샹들리에가 달려 있다. 정면 벽과 좌우의 벽 위쪽에 장식등이 부착되어 있고 입구 오른쪽에 스위치가 있어, 로비 전체의 불과 샹들리에와 장식등을 따로 켜거나 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무대 오른쪽 벽에 Monkswell이라는 간판이 s자가 빠진 채 Monkwell로 쓰여 세워져 있다.
연극은 도입에 암전상태에서 라디오에서 세 마리의 생쥐 노래가 흘러나오고, 폭설과 한파가 계속된다는 소리와 함께 살인사건의 뉴스가 관객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무대가 밝아지면 몰리와 가일즈 내외가 물려받은 저택을 여관으로 개조해서 막 영업을 시작하는 날, 폭설과 한파로 이 여관으로 진입하는 길이 막힌 것으로 전해지고, 곧이어 전화가 걸려오면, 범인이 이 여관이 있는 방향으로 도피를 해서 경찰서에서 경위 한 사람을 파견하겠다는 내용이 전달된다.
첫 번째 손님으로 비대한 몸집의 보일 부인이 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곧이어 밝고 명랑한 성격의 청년 크리스토퍼 렌이 들어와 여관의 분위기를 한껏 상승시킨다. 이어서 품위 있어 뵈는 노신사 메드카프 소령이 여관을 찾아오고, 미모의 젊은 여인 케이스도 여관을 찾아든다. 그리고 훤칠한 중년남성 파라비니치는 우연한 사고로 이 여관에 들게 되는 것으로 설정된다. 마지막으로 핸섬한 청년 트로터 경위가 스키를 타고 이 여관에 도착한다.
트로터 경위는 런던에서 살해당한 라이언 부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왔다며, 라이언 부인을 살해한 사람이 몽크스웰 여관에 와서 또 누군가를 또 살해하려 한다고 전하면서 투숙객의 신상을 파악하는 장면에서 등장인물의 명세서(明細書)가 객석에 전달된다. 향후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경위의 스키가 사라지는가 하면, 여관의 전화선이 절단되는 등 몽크스웰 여관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빠지게 되고, 첫 번째 희생자로 보일부인이 살해된다. 향후 주인과 투숙객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심지어는 몰리와 가이즈 내외까지도 서로를 불신하기에 이르는 장면이 추리 극답게 펼쳐진다.
대단원에서 반전(反轉)과 절묘한 귀결(歸結)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여관의 투숙객인양 연극에 몰입(沒入)하게 되고, 이 8월의 무더위를 오싹 떨게 만들고, 시종일관 긴장감과 공포 속에 관극을 하게 되는 납량특집물(納凉特輯物) 같은 공연이었다.
윤국로가 트로터 경위로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호연으로 연극의 흐름을 주도하고, 한덕호와 유하나는 실제 부부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랄스톤 내외 역을 아름답고 지고지순(地高至純)하게 연기해 냈다. 정상철은 메드카프 소령으로 이 연극의 품격과 품위를 지키는 대들보가 되었고, 조한희는 일상어가 아닌 번역극 조의 대사로 원숙미와 개성을 부각시켰는가 하면, 장우진은 낙천적이고 느물거리는 성격으로 작중인물의 성격을 탁월하게 표현해 냈다. 최광희는 이지적인 면모와 미모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집중시켰으며, 지성우는 쾌활하고 밝고 정감어린 매너로 여성관객의 입가에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도록 만들었다. 서지유와 조은수, 그리고 이정성이 더블캐스트로 출연한다.
제작 권순명, 예술감독 김용현, 미술 이학순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애가서 크리스티 원작 박영희 역 김성노 연출의 <쥐덫>을 영국 웨스트엔드의 공연을 능가할만한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8, 연희단거리패의 테네시 윌리암스 (Tennessee Williams,)작, 이채경 역, 채윤일 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눈빛극장)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여주인공 블랑쉬는 미국 남부의 몰락한 지주의 딸 출신으로 결혼에 실패한 후, 방탕한 생활을 하다 동네에서 쫓겨나 뉴올리언스의 동생 스텔라를 찾아온다. 블랑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와 <묘지>라는 선으로 갈아탄 후 <낙원>역에서 내려 동생의 집에 도착한다. 동생 집에서 자신은 교직에 있다가 휴가차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귀부인 행세를 한다. 한편 동생 스텔라는 난폭한 남편 스탠리에게 혹사당하지만 남편과의 성생활에 만족해 참아가고 있다. 저녁마다 이 집 식탁에서는 노동자들의 포커 판이 벌어지고, 술 마시고 떠드는 소리로 늘 왁자지껄하다. 블랑쉬는 밝은 빛 아래 얼굴을 들어내기를 꺼려하고, 늘 조명이 어둡거나 붉은 갓을 씌운 불빛 아래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모습으로 스탠리의 포커친구 노총각 미치를 유혹해, 결혼하려 하지만 스탠리가 그녀의 행실 나쁜 과거를 폭로하면서 두 사람의 결혼약속은 깨지고 만다. 블랑쉬는 음주로 차츰 신경이 쇠약해져가고, 스텔라가 출산하러 병원에 입원한 날 스탠리는 술에 취한 블랑쉬를 강제로 범한다. 향후 블랑쉬는 정신이상 증세가 심해지고, 사람들이 지켜보는데서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면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1947년 초연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와 제시카 탠디(Jessica Tandy), 킴 헌터(Kim Hunter)가 출연하여 1949년까지 855회의 공연을 이어갔고, 1948년에는 퓰리쳐 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하였다. 이후 1951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에는 말론 브랜도와 함께 비비안 리(Vivien Leigh)가 출연해 아카데미 어워즈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비비안 리와 킴 헌터가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칼 말든(Karl Malden)의 미치 역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향후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도는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상징처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다.
1983년 텔레비젼 리메이크판에서는 안 마가렛 (Ann-Margret) 월터 매튜, 진 해크만, 글렌다 잭슨이 출연했고, 1984년 제작된 영화에서는 안 마그렛 트리트 윌리암스(Treat Williams), 비버리 단젤로(Beverly D’Angelo), 랜디 퀘이드(Randy Quaid) 등이 출연했으나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었다.
1995년 글렌 조단(Glenn Jordan)이 감독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알렉 볼드윈(Alec Baldwin)과 제시카 랭(Jessica Lange), 존 굿맨(John Goodman), 다이안 레인( Diane Lane), 패트리시아 허드(Patricia Herd)가 출연했으나 역시 평은 전작을 추월하지 못했다.
2008년에는 <더 콘스탄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ener)>로 2005년 아카데미 어워즈 수상경력의 여배우 레이첼 와이즈(Rachel Weisz)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 뒤부아(Blanche DuBois) 역으로 런던의 돈마 웨어하우스(Donmar Warehouse) 무대에서 열연해 비비안 리(Vivien Leigh) 이후 새로운 블랑쉬로 절찬을 받는다. 레이첼 와이즈는 2002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더 쉐이프 오브 씽스, The Shape of Things>에서 에블린 역할을 맡아 시어터 월드 어워드(Theatre World Award)를 수상했다.
무대는 거실과 침실이 커튼 하나로 가려지고, 무대오른쪽에 마련된 거실은 조리대와 그 앞에 식탁과 의자들이 놓여있고, 조리대 옆으로 소파 하나만 달랑 놓인 비좁은 방이 있다. 한단 높이의 무대왼쪽의 침실 쪽은 침대와 화장대가 있고, 욕실 겸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문은 전체가 거울이다. 거실에는 천정에서 선풍기가 내려와 돌고, 침실 쪽에는 백열등이 천정에서 내려와 달려있다. 이 집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거실 오른쪽에 보이고, 그 옆은 골목길로 등퇴장 로가 된다. 골목길은 집 뒤, 배경 막 바로 앞으로 해서 한 바퀴 돌아 무대 정면으로 나오기도 한다. 무대 맨 오른쪽에는 남녀악사들이 피아노와 테너 섹소폰 연주를 한다.
연극은 도입에서부터 장면변화마다, 그리고 극의 중간에 남녀 악사의 5, 60년대 재즈음악연주가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또한 열기를 고조시키며 극을 열정적인 색깔로 칠을 해 나간다.
블랑쉬 역의 김소희는 걸음걸이, 대사, 눈빛, 흐느적거리는 동작과 춤에서 테네시 윌리암스의 작중인물을 완벽하고 생생하게 살려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체취까지 객석으로 전달시키는 등 김소희의 새로운 블랑쉬로 탄생시켰다.
스탠리 역의 이승헌은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 같은 잘 다져진 몸매, 빈정거리는 듯싶은 눈빛, 건들거리는 동작, 차분하다가도 발악하듯 퍼붓는 대사, 계산되고 절제된 변신과 폭발은 분명 21세기 스탠리의 전형 그 자체였다.
김하영과 강호석…이토록 출중한 연기자가 있었다니…! 스텔라 역의 김하영과 미치 역의 강호석은 테네시 윌리암스의 작중인물성격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기량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주연의 연기력을 100% 돋보이도록 만든 디딤돌 역할까지 해주었다.
김아라나, 황지하의 연기와 연주, 박근홍, 이건희, 이혜민의 호연은 객석의 갈채를 이끌어냈다.
연출가 채윤일은 무대전체를 평면, 입체, 모서리까지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는 동선운용과 끈적거리고 후덥지근한 뉴 올리안즈 뒷골목 서민가정의 삶의 모습을 눈빛극장 무대에 재현시켜 한 폭의 생생하고 색채 창연(蒼然)한 풍경화가 되었고, 상기 열거한 영화나 공연작들을 능가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창출시켰다.
무대디자인 김경수, 조명디자인 조인곤, 음악 미쓰비 시이치,조명 유영우, 홍보디자인 손청강 등 모두의 기량이 작품 속에 다져져, 연희단거리패의 26주년 기념공연 테네시 윌리암스 원작, 이청강 역, 채윤일 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21세기 가장 걸출한 <A streetcar named desire>로 탄생시켰다.
9,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유리피데스 작 김현탁 연출의 <메디아 온 미디어>(게릴라극장)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BC 406)는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에우리피데스는 기원전 455년에 데뷔한 이후 92편에 이르는 작품을 집필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18편뿐이다. 인간의 정념과 억제할 수 없는 폭력에 내재한 비극을 깊이 있게 그려 낸 비극작가다.
<메디아>는 동방의 나라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이다. 태양의 신인 헤리오스의 손녀이자 키르케의 질녀다. 이아손이 황금의 양모(羊毛)를 찾아서 콜키스에 왔을 때, 그를 사랑한 <메디아>가 양털을 찾아 주고 함께 콜키스를 탈출한다. 아버지와 함께 그녀를 뒤쫓는 동생을 잡아 죽인 후 갈가리 찢어 길에 뿌리고 아버지의 추적을 벗어난다. 이아손과 결혼하여 그의 고향인 이올코스에 갔을 때, 이아손과 그의 아버지 아이손의 적인 펠리아스를 살해하기 위해 펠리아스의 딸들에게 재생의 마법을 보여준다. <메디아>의 마법을 믿은 펠리아스의 딸들은 아버지를 칼로 썰어서 끓는 가마솥에 넣고 살아나기를 기대했으나 펠리아스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 뒤 <메디아>는 이아손과 함께 코린트로 도망한다. 코린트에서 이아손이 국왕 크레온의 딸을 아내로 삼으려고 하자, 메디아는 마법을 써서 왕녀와 국왕을 죽이고 자기 자식까지 죽임으로써 남편에게 보복한 후, 아티카의 왕 아이게우스 곁으로 갔다가 다시 아이게우스와 함께 아테네로 떠난다. 에우리피데스는 <메디아>의 비극적 운명을 희곡으로 썼고, 세네카도<메데아>라는 작품을 썼다
오페라 <메디아 Médée>는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 1760~1842)가 1797년 작곡해 성공을 거두었고, 미술작품으로는 들라크루아( 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 1798 ~ 1863)의 <격노하는 메디아>가 걸작이다.
알폰스 마리아 무하 (Alfons Maria Mucha 1860- 1939)는 체코의 화가이며 장식 예술가로,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그의 <메디아> 역시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로는 피에로 파올로 파조리니 (Pier Paolo Passolini)의 <메디아 1970>가 명작이다. 이 영화에는 오페라의 여왕 마리아 칼라스가 <메디아>로 등장한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메디아>는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옮겨오고, 무대장치 없이 텅 빈 무대공간에 마이크 몇 개와 의자 대여섯 개를 연기자들이 직접 이동하고, 무대 좌우에 옷걸이를 비치해 출연자들이 의상을 갈아입는 모습을 객석에서 볼 수 있도록 설정했다. 다양한 총기 종류나 칼, 그리고 미소라 히바리(みそらひばり 1937- 1989) 흐르는 강물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이라는 일본가요에 이르기까지 연출가 김현탁의 발군의 기량이 연기자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실험적이고 상징성이 높은 문제극으로 만들어 냈다. 특히 TV나 광고, 신문이나 인터넷 매체의 범람을 그대로 반영한 <메디아>의 기자회견 장면이나, 중동을 비롯한 세계 전 지역에서의 끊임없이 발발하는 전쟁뉴스를 직접 대하는 듯싶은 전투장면은 인상적이기도 하다. 특히 인터넷 매체를 통해 포르노 영상물이 범람하듯, 이 연극에서의 정사 장면은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면까지 갖추었다. 대단원에서 일본가요 <흐르는 강물처럼>을 <메디아>가 열창하는 장면은 비록 립싱크이기는 하지만,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메디아>로 김미옥이 출연해 독특하고 탁월한 성격창출과 열연으로 그녀의 멋진 선글라스와 함께 기억에 남는다. 이진성, 최수빈, 염순식, 홍기용, 연해성, 정해용, 박경남 등 극단 성북동 비둘기 단원들의 호연과 이 연극에서의 호흡의 일치가 돋보인 공연이었다.
조연출 김민엽, 기술감독 서지원, 무대감독 김동규, 무대진행 성석주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유리피데스 작 김현탁 연출의 <메디아 온 미디어>를 기억에 오래 남을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10, 터키 트라브존 국립극장 귄괴르 딜멘 칼요운주 작, 유젤 에르텐 연출 <델리 둠룰(Deli Dumrul)>(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터키는 헌법상 국교를 명시하고 있지 않으나 전체 국민의 98% 이상의 절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슬람의 전통과 관행이 매우 중요시되며 특히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종교적 율례의 영향을 받기 쉽다. 또한 금식월(라마단)이 끝나는 날 이후의 3일과 희생 절은 종교 축일로서 성대한 행사가 치러진다.
터키인의 대부분은 스포츠 애호가이며 터키에는 모든 종류의 스포츠 클럽이 있다. 특히 축구나 농구 등의 프로 스포츠가 인기가 높으며, 레슬링은 전통적인 터키의 스포츠로서 올림픽에서 많은 메달을 따고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앙카라와 이스탄불 등 대도시에는 영화관이 많이 있으며 비교적 저렴한 요금으로 관람할 수 있고,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 외에는 연극을 위한 2, 3개의 국립극장 및 콘서트홀이 있어, 10월부터 4월에 이르는 문화시즌에는 오페라, 발레, 연극 등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국립미술관 등에서는 회화 전시회가 개최된다.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으로는 ≪하얀 성≫(1985)≪제브뎃씨와 아들들≫(1982), ≪흑서≫ (1990), ≪새로운 인생≫ (1994), ≪내 이름은 빨강≫ (1998), ≪눈≫ (2002), ≪이스탄불-추억과 도시≫(2003) 등 특유의 개성이 묻어나는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해 왔으며 약 4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델리 둠룰>은 터키의 설화 <데데 코르쿠투>의 주인공 이름이다. 터키를 대표하는 극작가 귄괴로 딜멘 칼요운주(1930~2012)가 터키의 <데데 코루쿠투> 설화를 현대극 양식으로 각색했다. 터키인들의 자긍심과 민족성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터키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연출을 맡은 유젤 에르텐은 “이번 한국 공연을 통해 옛 터키인들의 전통 의상, 언어, 춤 등 터키의 문화예술을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 뜻 깊다”고 전했다.
<데데 코르쿠투 이야기>는 천 년 전 터키 아나톨루의 오우즈 마을에서 맨땅에 나무다리를 만들어 놓고 돈을 내고 건너가게 하는 못된 심보와 돈에 미치광이인 둠룰이 아름다운 엘리프와 사랑에 빠진 후 사랑을 통해 인간의 진정성을 찾게 되면서 악한 성격을 버리고 착한 인간으로 탈바꿈한다는 내용의 설화다.
무대는 개울도 없는 맨 땅에 나무로 건널목 같은 다리를 만들어 놓고, 주인공 둠룰이 길을 가로막고 서서, 다리를 건너면 30전을 받고, 그냥 지나가면 40전을 받는다며, 날 도둑 같은 행태를 보인다, 사람들은 어이없어하고, 또 도적심보라고도 하고, 미쳤다고 놀려대면서 돈을 둠룰에게 쥐어주고 다리를 건넌다. 어느 날 둠를은 코끼리를 동원한 40명의 부호가족의 이동을 자신의 다리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일행 중에는 부호의 딸인 미모의 엘리프의 모습이 보이고, 둠룰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한다. 엘리프는 자신의 일꾼들과 힘을 겨뤄 이기면 돈을 지불하겠노라 제안한다. 건장한 그녀의 하인과 둘룸의 대결이 벌어진다. 힘이 장사인 둘룸은 하인들을 모조리 물리친다. 하인 중 최강자는 둘룸과 친구가 된다. 엘리프도 둘룸에게 살포시 마음을 열어준다. 엘리프는 자신의 집으로 오면 돈을 지불하겠노라며, 자신과 결혼을 하고 싶다면,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 청혼하라고 이른다. 둘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의기양양해 지고, 도적심보도 누그러들지 않은 채 길을 떠난다. 하늘은 보다 못해 둘룸에게 경고를 보낸다. 어느 날 둘룸은 둘룸의 친구를 저승사자가 강제로 데리고 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저승사자에 대항한다. 저승사자는 노해 둘룸을 대신 잡아가겠다며, 둘룸 대신 해 목숨을 바칠 인물이 나설 경우에만 둘룸을 살려주겠노라는 조건을 제시한다. 향후 둘룸은 자신을 대신해 목숨을 희생할 인물을 찾아 헤맨다. 친지와 친구를 찾아보고, 종당에는 부모까지 찾아가지만 무위로 끝난다. 저승사자는 둘룸 대신 사랑하는 옐리프를 잡아가겠노라 이야기 한다. 엘리프도 대신 죽을 뜻이 있음을 밝힌다. 그러나 둘룸은 엘리프 없는 세상에 자신만 생존해 있으면 무엇 하느냐며, 엘리프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늘에 용서를 구한다. 대단원에서 하늘의 용서를 받은 둘룸과 엘리프는 진정한 사랑으로 결합하는데서 연극은 끝이 난다.
파티 도쿠괴즈, 제이넵 에킨 외네르, 카디르 외잔, 우우르 켈레쉬, 제이훈 갠, 에리프 세케르 사카, 파티히 톱주오울루, 시넴 샤힌, 세브키 체파, 우푸크 세네르, 바사크 아나트 외잔, 세브넴 톱주오울루, 두이구 도쿠괴즈, 야부즈 톱주오울루 등 터키국립극장 단원들의 완벽한 호흡일치와 열연과 열창, 그리고 무용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최상급 공연으로 한국관객의 갈채를 받았다.
무대디자인 하칸 뒨다르, 의상 세브기 튀르카이, 조명 육셀 아이마즈, 음악과 무용 살리마 쇠크맨 등 스텝 진의 기량과 열정 역시 조화를 이루어, 터키 트라브죤 국립극장의 귄괴르 딜멘 칼요운주 작, 유젤 에르텐 연출의 <델리 둠룰(Deli Dumrul)>을 명작연극로 만들어, 한국관객에게 정중하게 제공했다.
한국 터키 문화행사교류 추진단의 노고와 열정에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명작연극을 관람할 수 있었음에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