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듣는 연극(6)/ 임야비

음악으로 듣는 연극

– 임야비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 (6)

 

초겨울에 연재를 시작한 ‘음악으로 듣는 연극 – 셰익스피어 편’이 6개월의 시간을 지나 이제 여름의 문턱 앞에 섰다. 총 5회에 걸쳐 셰익스피어의 전(全) 비극과 사극의 음악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이제 무거운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고 가볍고 상쾌한 마음으로 셰익스피어 희극의 음악화를 알아보자. 그 첫 편은 응당 ‘한여름 밤의 꿈’이다.

1. 한여름 밤의 꿈

Theseus: Lovers and madmen have such seething brains,
Such shaping fantasies, that apprehend / More than cool reason ever comprehends.
The lunatic, the lover and the poet / Are of imagination all compact:

테세우스: 연인과 광인은 머리가 펄펄 끓는데다,

상상력이 마구 모양을 꾸며 내는지라, 그 공상을 차가운 이성은 결코 이해할 수 없지.

 광인, 연인, 그리고 시인은 모두 상상력이 조밀하단 말야:

– A Midsummer’ Night’s Dream; Act 5 Scene 1

셰익스피어 희극 편의 연재를 시작하기 앞서 전체 희극 중에서 음악화된 자료를 살펴 보았는데, 한여름 밤의 꿈, 좋을 대로 하시던지(As you like it), 폭풍우(Tempest) 세 작품의 음악화가 다른 희극 작품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중에서도 한 여름 밤의 꿈은 400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극부수음악, 오페라, 관현악곡, 가곡 등 가장 다양한 형태로 음악화가 이루어 졌다.

이 중에서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음악은 ‘결혼 행진곡’으로 유명한 멘델스존의 극부수음악 ‘한여름 밤의 꿈’일 것이다. 이 곡은 결혼 행진곡 만큼 유명한 서곡(Op.21)과 극을 상연하면서 부수적으로 연주되는 13곡의 관현악곡(Op.61)으로 이루어져 있다.

멘델스존은 서양음악사의 천재 작곡가들 중에 한 명인데, 서곡은 17세의 멘델스존이 누나와 같이 연극을 관람한 후 그 감흥을 간직하기 위해 순식간에 작곡되었다고 한다. 서곡은 10분 정도의 관현악곡으로 연극에서 느껴지는 요정들의 짓궂은 장난끼, 요란법석한 사랑 싸움, 환상적인 숲 속의 정취, 동화적이고 경쾌한 해피 엔딩이 그대로 음화되어 있는 명곡중의 명곡이다. 이 서곡만으로도 연극 한편을 그대로 담아낸 것과도 다름없는 인상을 주며, 원작의 줄거리를 알고 있거나 연극을 관람한 적이 있는 상태에서 들으면 엄청난 공감각적인 시너지를 경험할 수 있다. 음악 자체가 너무 좋기도 하지만, 극부수음악으로서 가장 완벽한 서곡이라고 평가되는 이 곡을 17세에 작곡한 멘델스존의 천재성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3곡의 부수음악은 연극 상연을 위해서 서곡이 작곡된 지 17년 후에 작곡되었다. 이 중 Scherzo(스케르초), Intermezzo(간주곡), Nocturn(야상곡), Wedding March(결혼 행진곡)을 서곡과 묶어서 총 5 곡의 관현악 모음곡으로 연주하는 것이 관례이다. 17년이나 지나 서곡과 연결되는 다른 곡을 작곡했지만 전체의 통일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음악적 개성과 연극적인 연결성이 뚜렷하여 듣는 이의 귀를 사로 잡는 곡들이다.

덧붙여 연극계 종사자 내지는 음악연출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일명 ‘풀버전’ 한여름 밤의 꿈을 권하고 싶다. 위에서 소개한 모든 곡들이 관현악으로 연주되는 것은 물론 나레이터 (통상 연극배우 또는 성우가 맡는다)와 소프라노와 알토 두 명의 성악가 그리고 합창이 포함되어 있는 그야말로 연극을 실시간으로 옮겨 놓은 음반이다. 오디오 시스템이 없었을 1800년대 연극 상연에서 음악의 역할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서 좀 더 자세히 연극의 음악화를 알아보려는 분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음악자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풀버전으로 녹음된 음반으로 세이지 오자와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연주한 음반(DG, 1992)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로 유명한 독일의 작곡가 칼 오르프(Carl Orff, 1895-1982)가 한여름 밤의 꿈의 극부수음악을 작곡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뿐더러 연주는커녕 음반 또한 전무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충분한 곡임 분명하고, 듣다 보면 음악이 너무 익살맞고 전개가 너무 흥미로워서 쉽게 빠져드는 숨겨진 보석과 같은 음악이다. 등장인물이 노래를 하기보다는 대사를 하기 때문에 오페라라기 보다는 극부수음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은 대사가 주가 되는 Melodram(멜로드라마), Dialog(대화), Lied(가곡)와 관현악으로만 이루어진 Introduction(도입곡), Marsch(행진곡), Vorspiel(전주곡)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80분간의 플레이 타임 중 절반이상이 음악 없는 대사이지만 배우들의 생기 넘치는 발성과 감정 표현이 무대 위 발걸음 소리, 관중들의 탄성과 박수 소리 등과 함께 잘 어우러지게 녹음되어 있어서 실제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여기에 오케스트라가 작게는 단순한 효과음부터 풍경 묘사, 등장인물의 감정 묘사, 막간음악 그리고 분위기 환기를 위한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한편의 ‘총체예술’을 완성해 간다.

거의 유일한 녹음으로 크리스티안 폰 게렌의 지휘로 CPO레이블에서 녹음한 2장짜리 음반이 있다. 쉴레겔이 독일어로 번역한 대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정확한 공식 제목은 Ein Sommernachtstraum; Schauspiel mit Musik nach der Ubersetzung von A. W. Schlegel (한여름 밤의 꿈; 쉴레겔의 번역에 의한 극부수음악)이다. 참고로 오르프는 현대음악 작곡가로 분류되지만 그의 음악은 난해한 현대음악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즉 아무런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멋진 음악이니 독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이 음악을 피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17세기의 영국의 작곡가 헨리 퍼셀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기반으로 한 오페라 ‘요정의 여왕(The Fairy Queen)’을 작곡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가장 왕성하게 상연되던 시기에 작곡된 점과 같은 영국 출신이라는 점에서 한여름 밤의 꿈의 음악화에 있어서 가장 적자(嫡子)라고 여겨지는 곡이다. 하지만 그 작곡경위가 불분명하고, 리브레토(오페라용 대본)의 작가 또한 미상이어서 이 음악과 셰익스피어와의 연관성은 아직 의문투성이다. 또한 아직 오페라라는 장르가 확립되기 전이어서 음악은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나 전체의 줄거리를 따르기 보다는 파편적인 춤곡들의 나열로 남아있다. 즉 고(古)음악을 이용하여 현대적인 연출을 할 수 있는 아주 특이한 기호의 연출가 존재하지 않는 한, 이 음악으로 온전히 연극을 상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음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은 3곡에서 6곡의 춤곡으로 구성된 모음곡 형식이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연극이 끝나면 에필로그에서 배우들이 모두 나와 관객들을 향해 춤을 추었다고 한다. 퍼셀의 이 춤곡들(지그, 샤콘느, 론도, 에코 등)은 당시 배우들이 흥을 돋구기 위해서 신나게 추었을 춤의 배경음악과 그 맥을 같이한다. 셰익스피어 원작과의 연관성을 염두하고 들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당시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고음악의 아름답고 청아한 음색에 귀기울여 보는 것도 좋은 감상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퍼셀이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를 음악으로 만들었다면 베버는 요정의 왕 ’오베론’을 오페라로 작곡했다. 베버는 그의 대표 오페라 ‘마탄의 사수’로 근대 독일 오페라의 개척자로서의 위치를 곤고히 했고, 오베론은 그가 영국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최후의 오페라이다. 오페라의 대본이 독일의 시인 크리스토퍼 마틴 빌란트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쓴 서사시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오페라는 원작에 비해 내용이 심하게 단순 축소 왜곡 되었다. 그래서 이 곡 또한 퍼셀의 ‘요정의 여왕’과 마찬가지로 원작의 음악화에 있어서는 ‘한 다리 건너’의 서자(庶子)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지니고 있다.

오페라의 상연은 고사하고 전곡 음반조차 많지 않지만, 서곡만은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이다. 서주를 포함하는 소나타형식의 구성으로 오페라에 나오는 주요 선율을 모아서 만든 서곡이다. 서주에서 숲 속의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호른과 현으로 표현된다. 이어지는 제시부에서 요정과 마법의 경쾌한 주제와 꼬여만 가는 사랑의 안타까운 주제가 번갈아 가며 연주된다. 한마디로 이 로맨틱 코메디에 딱 어울리는 요란법석하며 흐뭇하며 가벼운 9분짜리 음악이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관현악 서곡 ‘한여름 밤의 꿈 Op.108’은 셰익스피어를 원작으로 하는 그의 11곡의 관현악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음악의 첫 시작부터 귀를 잡아 당기는 매력이 넘쳐 흐른다. 몽환적인 하프와 현의 아르페지오 단순한 선율 위로 플룻, 오보에, 클라리넷 등의 목관이 뛰어 노는데 드뷔시의 ‘목신 오후의 전주곡’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줄거리와 인물보다는 이미지 형성에 초점을 맞춘 작곡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음악으로 이야기의 시작을 소개하는 듯한 설레임 가득한 음악적 이미지가 감상자의 심장을 뛰게 한다.

한 연극 작품이 각각의 다른 작곡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그 연극적 이미지가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되는지가 궁금하다면 멘델스존, 베버,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관현악 서곡을 비교 감상해보자. 단언하건대 완전히 다른 음악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심상이 든다. 왜일까?

Die Schwalbe, die den Sommer bringt, / der Spatz, der Zeisig fein,

Die Lerche, die sich lustig schwingt / bis in den Himmel ‘nein.

Der Kukuck, der der Grasmück’/ so gern ins Nestchen heckt,

Und lacht darob mit arger Tück’, / und manchen Ehemann neckt.

 

The ousel cock, so black of hue, / With orange-tawny bill,

The throstle with his note so true, / The wren with little quill.

The finch, the sparrow, and the lark, / The plain-song cuckoo gray,

Whose note full many a man doth mark, / And dares not answer nay.

깃털이 너무 새까만 검은노래지빠귀, 부리는 오렌지 황갈색, 검은노래지빠귀 노래는 그리 진실하고, 가냘픈 갈대 피리 굴뚝새.

되새, 참새, 그리고 종다리, 단선율 뻐국새는 회색, 그 소리, 숱한 사내들 듣기는 하지만, 감히 ‘아니’라고 대답 못하네-

– A Midsummer’ Night’s Dream; Act 3 Scene 1

후기 낭만의 어둡고 심오한 가곡 작곡가 휴고 볼프는 한여름 밤의 꿈의 3막 1장에서 당나귀 머리로 변한 바텀이 부르는 노래를 밝고 가벼운 가곡으로 만들었다. 1분 남짓의 짧은 곡으로, 당혹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래를 불러대는 바텀의 무식한 호기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 다음 편은 ‘뮤즈를 울린 극작가 – 셰익스피어’ 제 7편이자 희극의 제 2편으로 ‘As you like it’, ‘Measure for measure’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 원문은 Stanley Wells, Gary Taylor의 ‘William Shakespeare The Complete Works Second Edition’ (Oxford), 번역본은 김정환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을 참조 인용하였습니다.

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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