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최상의 ‘로또복권’/ 우상전

배우는 최상의 ‘로또복권’

 

우 상전(연극배우)

 

이번에 보내 온 ‘오늘의 서울연극’ 33호를 열자, 편집인 오세곤교수의 비명소리(?)가 진동하고 있었다. 교육부가 예술대학의 취업률을 따진다는 것이다.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왜 취업률을 따지는지는 쓰여 있지 않았다. 아마 교육부가 취업률을 따져 이에 따른 지원금을 줄이거나 페널티를 주는 모양이다. 그래서 대학을 운영하는 교수들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인 것 같다. 특히 서울예술대학의 고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1. 학생들이 진정으로 취업을 원하고 있는가?

2. 정말로 학교는 학생들의 취업을 걱정하고 있는가?

3. 왜 우리에게는 유일한 취업인 ‘국공립극단’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나 같은 학교실정에 어두운 사람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왜 이런 상황인데도 대학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연극과나 이와 유사한 학과를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률로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는 학과를 어째서 대학은 없애지 않는 것일까? 그것도 날로 늘어만 가는 것일까? 실제로는 교수들만 ‘맘고생’을 하지 학교는 막대한 이익을 보는 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또 연극대학의 커리큘럼을 들여다보면 학생들에게 사회에 진출해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공부를 시키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연극분야에 직장을 구할 유일한 곳이 국공립극단인데 이게 과연 우리에게 바람직한 시스템인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다른 곳에 진출할 업종은 있는가? 기획파트나 조명 등 거의 한정된 분야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격증’을 연극대학에만 주는 것도 아니어서 예술대에서 취업은 오로지 학교교사가 유일한데 이것도 연극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10여 년 전에 학전의 김민기대표와 그의 친구인 음대교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커피숍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김대표가 친구에게

“음대에서도 뮤지컬을 가르쳐 배우를 배출해봐!”

“안돼”

“왜?”

“뮤지컬로 밥벌이를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래도 안정적인 음악교사룰 하려 고 들지!”

음대도 음악교사 자리마저 없으면 취업률로 비명을 지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교사 자리도 없는 연극대학에 왠 취업률은?

동숭동에 미모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여자대학이 있어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 대학의 배우출신의 교수는 단호하게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배우가 되지 못하면 회사에 가서 비서라도 해야 할 것 아니니! 그러니 우선 예쁜 애들을 뽑아야 해” 졸업 후에 취업을 걱정하는 것이다. 아마 배우출신이어서 그나마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예대는 입시철이면 신문에 졸업생 중에 연예계에서 성공한 배우들의 인물사진을 대대적으로 광고해 많은 지원자들이 입학만 하면 모두가 유명 연예인이 되는 줄 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교수들을 들볶을 게 아니라 유명연예인을 대량 배출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취업에 연연할까? 그리고 교육부는 취업률을 따지기 전에 학교교사 자리도 마련하지 않고 연극영화학과를 대학에 줄줄이 인가한 ‘수퍼 갑’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교육부가 ‘등록된 극장’에서의 졸업생들의 출연회수를 취업률로 따진다는데, 그렇다면 실험실습비를 조금씩 모아 대관이 없어 텅텅 비는 대형극장을 빌려 대형공연을 ‘트리플 배역’으로 연예인으로 성공한 선배동문들과 함께 출연시켜, 그것도 몇 차례 시도해서 교육부의 요구조건을 맞추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학생들이 진정으로 취업을 원할까?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말 연극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취업을 원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갖고 있다. 이건 학교도 마찬가지다. 나는 연극영화학과야말로 음대와 미대, 또 체육학과하고는 처지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연극영화학과의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은 취업을 해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솔직히 그들이 취업을 목표로 했다면 왜 연극과에 지원을 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그들은 매달 월급을 받는 정규직에 취업이 되어도 행복해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취업률’은 오로지 연극대학(교수포함) 자신들에게 필요한 ‘생존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어째서 그럴까? 한마디로 배우라는 직업이 최상의 ‘로또복권’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로또복권’이고 어째서 ‘최상’인지를 지금부터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왜 배우가 ‘로또복권’인가?

 

솔직히 배우는 한국에서 최상의 ‘로또복권’이다. 이런 ‘잠재력’을 잉태하고 있는 대학들이 좀스럽게 교육부의 ‘취업률 닦달’을 걱정하는 것은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난번에 왜 전업예술가가 존재할 수 없는 나라에서 오로지 연극인들(특히 배우들)만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들이대는지를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그때 내가 ‘나중에’라는 말을 빼먹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흥분해서(?) 그 말을 놓친 것 같다.

또 그 다음에는 ‘연극원’의 혁신을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이와 연관된 실질적인 이야기를 이제는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연극과’가 취업률을 걱정하는 판국에 ‘왜 배우가 최상의 ’로또복권‘인가’는 배우들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연극과 지망생들은 이미 매스컴을 통해서 연극을 하면 ‘배가 고프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도 왜 배우가 되려고 이처럼 구름처럼 대드는(?) 것일까?

또 설령 모르고 입학했다고 해도 조금만 생활해 보면 금방 눈치 챌 수 있는 일인데도 이를 무시한 채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투성이의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왜?’라는 의문을 진지하게 받아드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지난 시대에는 가난한 예술가의 상징이 ‘시인’이었는데 이제는 ‘연극인’으로 바뀌었다고 말이다. 이처럼 ‘연극인’들 중에서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배우들이 가난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현실에서도 가장 많은 지망자가 몰리는 곳이 바로 대입시에서 연극영화학과 계열이다. 그럼 이런 이율배반적인 현실은 어떻게 해서 생겼나는 것일까?

한편으론 이것이야말로 배우가 ‘로또복권’임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배우라는 ‘복권’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기 때문에 이런 사행심(?)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럼 정말로 배우가 ‘로또복권’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그래야 연극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배우들의 현실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이른바 ‘연극사회의 현실’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거야말로 연극판의 ‘사회적 인식’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아이돌 고시’

 

얼마 전에 방송에서 ‘아이돌 고시’라는 타이들로 기획방송을 한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 현재 한국에서 아이돌을 꿈꾸는 청소년이 대략 100만 명 정도 될 것이라고 방송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아이돌로 데뷔를 하는 수는 대략 250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른바 ‘아이돌 고시’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했다.

이 고시를 통과하기 위한 ‘학원’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합격을 해도 기획사의 연습실에서 처절하게 연습하면서 데뷔를 꿈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럼 왜 이렇게 우리의 청소년들이 이토록 각박한 ‘아이돌 투기’(?)에 몸을 던지고 있는가를 조망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게 작금의 우리의 현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아이돌’이 ‘로또복권’의 당첨에 비유되는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매주 평균적으로 7명의 당첨자가 나오니 일 년이면 대략 330명 쯤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복권의 1등 당첨과 아이돌이 되겠다고 나서는 일은 확률적으로도 흡사한 면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럼 왜 ‘배우고시’인가?

 

내가 50대 중반에 접어들자 주변의 지인들과 그들 자녀들의 진학 상담(?)을 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들 자녀들이 ‘연극영화학과’를 가겠다고 나서면 일단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

“너, 사법고시에 일 년에 몇 명이 합격하는지 아니?”

“300명!” 이렇게 해서 점점 합격생 수가 늘어나 나중에는 급속히 6백 명, 1천 명으로 늘었다.

“니 아들이 태어날 때 그해에 대략 몇 명이나 태어났는지 아니?”

“대략 50만 명 정도?”

나중에는 대전시 인구만큼이 해마다 출생한다고 했다.

“그래! 그럼 50만 중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해 그것도 법조인 ‘자격증’을 받는 사람이 겨우 그 정도야!”

그리고 매해 45만 명 정도가 수능을 본다고 알려져 있을 때였다.

“그럼 그 50만중에 배우가 되는 사람은 매해 얼마나 될 것 같아? 그렇게 물으면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를 헤아려보지 않아 모르는 게 당연했다.

“배우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한해 50명도 힘들어! 그러니까 사법고시합격률보다 몇 배가 어려운거야? 거기다 배우는 ‘자격증’도 없어, 이렇게 힘든 게 배우가 되는 길이야!”

“너희 아들이 사법고시를 목표로 법대에 간다고 하면 너는 어떻게 하겠어? 자식의 성적이나 실력을 어름해보고 말리거나 권하겠지?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따져보고 진학을 결정해!”

아마 이런 것들을 따져서 자녀를 연극영화학과에 입학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 배우가 되는 사회현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어두운 게 현실이어서 그렇다. 어쩌면 배우들의 화려한 일면만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나치게 쉽게 여기던지… 한마디로 이에 대한 인식이 학부모나 당사자에게 없었던 게 사실이다.

아니 그보다도 사법시험처럼 자기 자식에 대한 자질을 판단하고 평가할 잣대(기준)가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태반의 지망생들은 ‘장래 희망’을 내세워 또는 본인의 자신감이나 목표를 내세우면서 부모들에게 고집을 피우고 우겨대서 할 수 없이 진학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이래도 저래도 대학을 가기 힘든 성적이니,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배우의 길- 투기하는 심정으로 ‘배우질’로 들이대는 게 현실일 것이다.

하긴 대학의 교수들도 자신들이 ‘복권’이라는 사행심(?)에 빠져있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에게 엘리트주의와 아카데미즘만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그럼 왜 복권 중에서도 ‘최상’일까?

 

1. 투자가 없어서

 

복권에서 행운을 얻으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즉 복권을 사야 한다. 그것도 대부분이 오랫동안 복권을 사다가 행운이 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배우가 되는 길은 그렇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이다. 우연히 길거리를 걷다가 캐스터에게 발탁되어 ‘운명처럼’ 스타덤에 올라 하루아침에 거금을 쥐기도 하는 게 바로 배우의 세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사행심’에 빠지게 되는 게 배우가 되는 길인 것이다.

 

2. 명예가 뒤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처럼 복권으로 거금을 쥐어도 자기 자신을 내놓고 뽐내지를 못한다. 숨어서 전전긍긍하기 일쑤다. 그런데 스타가 된 배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운을 뽐낼 수 있다. 그래서 엄청난 ‘팬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는가!

 

3. 엄청난 거금을 쥘 수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복권에 당첨되어도 미국처럼 거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정부에서 사행성을 부추기게 된다고 해서 규제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타가 된 배우는 그렇지 않다. 단시간에 엄청난 거금을 쥘 수 있다. 몇 백억 대의 거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배우가 몇 백억 대의 빌딩의 소유자가 되어 매스컴을 타기도 한다.

 

4. 가장 빠른 신분상승이 가능

 

젊은 사람이 단시간에 가장 신속하게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게 배우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전업예술가가 존재할 수 없는 현실인데도 이런 일확천금과 신분상승을 목표로 지망자가 몰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취업률이 낮아도 연극영화학과의 지원자는 줄지 않는 것이다. 교육부 관리들에게 잘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우리를 다른 장르와 차별화해 달라고…

 

5. 그 밖의 장점들

 

무엇보다도 배우가 되는 길에는 학교 성적도 (물론 수능성적도)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모든 ‘전공 자격’이 수능이나 학교성적으로 결정되는 나라에서 배우는 예외다. 자격시험에서 최하등급의 성적을 받아도 대학으로부터 배우가 될 자질만 인정받으면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도록 입시제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배우질’은 ‘대물림’도 불가능하다. 기업처럼 ‘상속’도 되지 않는다. 아무리 국민배우라는 칭송을 받아도 자식에게는 자기의 직업을 원하는 대로 물려줄 수 없는 게 ‘배우’라는 직종이다. 그래서 이 판에 최불암, 이순재선생의 자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배우의 길에 -복권 당첨에 도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배우란 원래 학벌이나 출신이 문제시 되지 않는다. 따라서 배우로서의 재질만 갖고 태어나면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는 인간의 삶에서 이보다 더 평등한 ‘기회균등’의 직종은 없을 것이다.

거기다 배우의 재료(도구)는 바로 ‘배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의 몸과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언어가 전부다. 그래서 이른바 ‘재료비’도 들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려면 화구를 사야 하고 음악을 하려면 악기도 구입해야 한다. 하다못해 성악가는 피아노와 반주자라도 있어야 하고, 판소리를 하려면 고수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배우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지금처럼 자연스러움만을 추구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배우질’을 하겠다고 별도로 교육이나 훈련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끼’만 있으면 된다. 이보다 더 편하고 신경 쓸 일 없는 직업이 어디에 있는가?

또 무용이나 음악, 또는 운동선수처럼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레슨을 받거나 조기교육이나 훈련을 받으려고 막대한 투자를 일찍부터 할 필요도 없다. 단기간에 취득이 가능한 운전면허시험처럼 ‘입시용’ 연기만 잘 익혀 교수들 눈에 잘 띠기만 해도 얼마든지 ‘입학의 행운’을 얻을 수 있는 게 배우의 입문이다.

이것은 기성배우들에게는 불행(?)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른 직종처럼 ‘전문가’의 레슨이 없으니 부수입이 거의 없을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어디 그 뿐인가! 배우에게는 체중을 조절하는 다이어트를 하는 고통도 뒤따르지 않는다. 왜냐면 이마저도 ‘개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우들은 술도 마음껏 마셔도 된다. 다른 직종에서는 공연 중에 무대에서 에어컨마저도 틀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목에 무리가 와서 소리가 안 나온다고 해서 그렇단다.

하지만 배우에게는 그런 것도 없다. 그래서 담배도 마음대로 피우곤 한다. 그저 자유롭게 생활을 하면 되는 게 배우다. 한마디로 ‘끼’만 있으면 ‘무사태평’이 지배하는 게 바로 ‘배우질’이다.

또 배우는 다른 장르처럼 더블 배역도 하지 않는다. 몸이나 목을 무리하게 사용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 따라서 출연자 간에 경쟁유발이 없어 다른 장르처럼 마음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다 얼굴과 몸의 생김새도 따질 필요가 없다. 이것도 여배우에게 한정된 이야기다. 왜? 사실 배우는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을 형상화하는 직업이어서 ‘못생겨도’ 상관이 없다. 현실에 ‘못생긴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지망생의 못생긴 외모가 바로 배우로서의 ‘개성’이 되어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런 위대한(?) 강점들을 가지고 있는 게 배우라는 직업인데. 겨우 교육부는 ‘취업타령’이나 하고 있고, 또 대학은 이런 강점을 살리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한국은 ‘복권당첨’으로 K- POP과 ‘싸이’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는데, 겨우 대학들은 취업률을 가지고 교육부와 실랑이를 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오래된 연극대학들의 이중성

 

학교 캠퍼스에 들어서면 연예인으로 성공한 동문들의 사진을 아주 폼 나게 기수별로 분류해 붙여놓은 대학이 있다. 그럼 이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 홍보게시판을 매일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아마 나도 언젠가는 그 곳에 내 사진이 붙기를 희망하고 고대하면서 ‘복권당첨’에 정진할 것이다.

또 앞에서도 말했듯, 입학철에 지원 대학에서 제시하는 연예인으로 성공한 동문들의 홍보사진을 보고 ‘꿈에 부풀어’ 입학한 학생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학교에 다닐까? 그곳에 자신의 사진이 실리는 희망으로, 꿈에서도 ‘복권의 1등 당첨’을 외칠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교실에 들어서면 낯익은 연예인이 앉아있기도 한다. 어느 때는 그가 촬영장으로 타고 다니는 ‘밴 승용차’를 타고 등교라도 하는 날엔 바보천치가 아닌 이상 학생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아마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나도 반드시 1등 복권에 당첨되고 말 것이다.”

학생들에게 연예기획사를 물어보면 누가 그 회사 소속 연예인인가에서부터 회사 족보를 쭉 꾀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영화사도 통달해서 제작한 영화와 흥행 성적에서부터 앞으로 제작할 예정인 영화는 물론, 이미 캐스팅된 배우들까지 모르는 게 없다.

학교 수업보다는 매일 사이트를 뒤져서 어디 가서 오디션을 볼 것인가 등 ‘복권당첨’에 몰두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탓에 입학한지 한 학기만 지나면 조금 예민한 학생들에게는 약간의 정신질환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아이러니하게도) 학교와 교수들은 성공한 선배들의 홍보사진만 걸어놓았지 제자들의 ‘복권당첨’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가르치는 건 머리만 아프고 써먹을 데도 없는 교양도서로 읽으면 충분할 연극개론이나 동양연극사 등만 가르치려고 든다. 왜? 국공립에 입단할 때도 연극의 이론시험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용적인 측면에서 하다못해 ‘영상연기’라도 철저히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도 본인들은 연극판에서 나타나서 각종 연극상의 심사위원으로, 또는 극단의 지원금 심사나 하고 다니지를 않나, 세미나장에 이론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을 대동하고 나가서 ‘복권당첨’과는 거리가 먼 고상한 예술론이나 펴고 있으니, 기업으로 치면 시장의 현실에 어두운, 소비자의 취향을 모르는 무능한 수준미달의 CEO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서 취업을 독촉하는 교육부와 총장을 아무런 힘도 없는 오세곤교수를 붙들고 원망이나 하고 있는 게 고작이니…

솔직히 동문인 연예인 사진을 내걸어 ‘복권당첨’을 자극하면서 학생들을 뽑았으면 교수들이 앞장서서 연예기획사를 찾아다니며 전단을 뿌리고, 영화사 사장이라도 만나러 다니는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학생들이 원치도 않는 연극판이나 기웃거리니 결과적으로 연극대학 교수들은 모순에 극치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마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학교를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이 ‘사진홍보’를 하고 특채로라도 해서 연예인을 뽑아야 한다고, 과연 진심일까? 자기들의 제자가 복권에 당첨되면 학교의 명예를 세워주었다고 흡족해하며 은근히 자랑을 하고 다니면서, 연극판에 나타나면 엘리트의식을 내세워 예술가인 척하는 두 얼굴의 야누스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 또 내심으로는 학생들을 ‘복권당첨’에 내몰면서 자신들은 학식이 고매한 학자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 재미있는 통계자료가 있다. 교사의 93%가 “동료교사가 자기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응답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교사들 거의 대부분이 자기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의 75%가 자신들이 사교육 관련 상담 요청을 받으면 “사교육을 받지 말라”고 대답한다고 한단다.

자기들은 사교육을 시키면서 남이 시키겠다고 하면 말리는 격이다. 어쩌면 이런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게 교육의 생리일지도 모르겠다. 더욱 한국에서는

그래서 ‘연예인 홍보’로 학생을 모으는 대학들이 교육의 모든 커리큘럼과 정신은 ‘연극성’을 앞세워 학생들을 ‘연극인의 자존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모순에 허덕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학생들을 모을 때는 그들에게 연예인을 꿈꾸는 ‘복권당첨’의 정신을 자극하면서도, 입학을 하면 ‘언제 그랬니?’ 하듯이 예술가 정신과 ‘연극공부’를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게 우리 대학의 현실인 것이다.

그러니 학생들은 물론이고 연극계 전체가 대혼란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학생들의 ‘복권당첨’을 위해 노력할 거라고 선언을 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적 현실과 배우들의 정서를 인정하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 대학은 연예인을 양성하겠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겠다! 우리는 학생들이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되는 게 목표다! 세상이 변해서 어쩔 수 없다! 이미 산업화를 이룬 한국에서 연극으로는 건져낼 게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외치면서 학생들과 연극인들을 혼란에서 건져내는 게 급선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건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 기존의 교수들이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표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폐교하기 전까지는 이런 이중성과 혼란을 극복하기 힘들어질 것이며, 따라서 교수들도 취업률의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왜 우리에게는 국공립극단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이러한 우리의 현실에서 배우지망생들에게 취업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왜냐면 배우에게 취업은 근본적으로 ‘복권당첨’을 노리다가 세월이 넘쳐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걱정하는 ‘근심거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공립에서 단원이 되는 과정을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연기력에 자신이 있어 ‘로또복권’을 노리는 젊은 친구들은 절대로 입단을 원치 않는다. 현장에서 ‘개고생’을 해본 뒤에나, 그것도 아니면 복권을 포기한 배우들이 차선의 방책으로 입단을 고려하는 게 현실이다.

유능하고 ‘팬클럽’을 이끌고 다니는 젊은 뮤지컬 배우가 ‘국립뮤지컬단’이 생겨 단원을 모은다고 해도 그가 뭐가 아쉬워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뮤지컬단에 근무하기를 원하겠는가를 상정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뮤지컬계는 국립단체에 대해 전혀 운운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 뮤지컬이 사양산업이 되면 나이든 배우들이 나서서 자신들도 ‘취업’(?)이 가능하도록 ‘국립단체’를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을 칠 건 뻔하다.

따라서 국공립극단의 시스템은 독일이나 프랑스, 스웨덴처럼 배우에게 ‘복권당첨’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나라에서나 알맞은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 한국처럼 배우에게 항상 ‘복권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에서는 이를 포기한 배우만이 ‘취업’으로 선택하게 되는 게 국공립극단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이나 일본에는 국공립극단이 없거나 있어도 단원을 두지 않는 간판뿐인 게 현실이다. 이것은 이들 나라들이 지나치게 경제적으로 ‘자본화’를 지향하는데 따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번 ‘한국연극’지에 원로이신 김의경 선생이 ‘세종시에 국립극단을’ 하는 글을, 유민영 선생이 ‘국립극단에 단원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의 글을 실으셨다. 하지만 한국처럼 ‘복권당첨’이 점점 심화되는 나라에서는 선생님들의 주장이 그다지 바람직한 충고가 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단원을 둔다고 해도 젊은 단원들은 항상 ‘복권에 당첨’되는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예술환경’에 놓인 현실에서 교육부가 졸업하는 배우지망생들에게 취업률을 따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을 모르는 ‘관료적 발상’에 지나지 않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복권당첨을 위한 노력

 

아무리 복권당첨이 행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복권 애호가’들은 그저 ‘감 떨어질 때까지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지는 않는다. 당첨을 위한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행운을 얻더라도 빨리 얻으려고 죽도록 노력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복권 애호가들이 사이트를 만들어 여러 가지 연구와 실험을 시도하기도 하고 당첨의 비법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빠른 시간에 복권에 당첨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의 수의 배합도 연구하고 수학과 과학을 도입해 직접 실천해 보기도 한다. 물론 복권 판매소 앞에도 1등으로 당첨된 곳이라고 크게 써 붙여놓아 고객을 끌기도 한다.

그렇다면 배우지망생들과 대학들은 이런 ‘연구정신’을 발휘하고 있는가? 그런데 내가 보기에 전혀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배우가 ‘최상의 복권’이라는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복권이 ‘비문명적’인 이유

 

아무리 복권이 인간에게 돈과 신분상승을 가져다주는 최상의 행운이라고 해도 ‘비문명적’이라는 사실은 피하기 힘들다. 왜냐면 일단 복권은 개인의 재능이나 노력이 미치는 힘보다는 ‘요행’이 지배하는 판이어서 그렇다.

우선 복권은 당첨자 한사람에게 상금을 몰아주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당첨이 안 되면 아무런 보상이 없게 마련이다.

따라서 배우도 당첨이 되는 극소수의 ‘스타’ 한사람에게만 영광이 몰리게 마련이어서 당첨이 되지 못하면 가난과 싸워야 한다. 당첨만 되면 모든 행운이 한순간에 몰려오지만 그렇지 못하면 비참한 생활을 영유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결과는 너무나 비문명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 일반적인 복권은 여벌의 행운을 얻는 일이어서 다른 생업을 유지하면서 당첨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배우들은 다른 생업이 없이 배우가 전업이어서 ‘배우복권’에 당첨되지 못하면 전혀 수입이 없어 극심한 고생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따라서 ‘배우질’이 지나치게 복권과 같은 사행심으로만 치달으면 자칫 인생을 망칠 수 있음에도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행심은 인간의 정신을 너무나 쉽게 황폐화시키는 결함을 갖고 있다. 따라서 배우는 당첨되기 전까지 마음고생이 심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마음의 자세(힐링)를 갖지 않으면 정신건강을 크게 해치게 되는 것에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령 아직 판단이 약해서 학생들이 그런 환경에 쉽게 노출된다고 해도 대기만성을 노리도록 체계적 연기훈련과 정신교육을 병행해서 오랫동안 내공을 쌓아 완성된 배우가 되도록 각별히 심혈을 기우려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를 개선할 방법은 없는가?

 

그렇다면 배우의 세계를 ‘비문명적’인 사행심이 지배하지 않는 문명의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왜냐면 아무리 ‘배우질’이 최상의 복권당첨이라 해도 사행심과 행운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바른 세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게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의 사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할리우드에서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성공하려면 최소한 35세가 넘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미국은 우리처럼 벼락치기로 갑자기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들은 대학 교육에서부터 연극으로, 그리고 TV로 또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코스가 완벽하게 잘 짜여 져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이 과정을 통해서 오랜 숙련기간을 통해 내공을 쌓아가면서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꿈꾸게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도 이제는 서서히 내공을 쌓아 인정을 받는 생태계가 정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우가 그냥 ‘소모품’으로 전락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배우가 ‘소모품’으로 전락하면 넓은 의미에서 자원이 고갈되는 현실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막으려면 먼저 연극계가 배우의 잠재력을 발견해가면서 내공이 쌓여 ‘복권으로 당첨’되는 시스템으로 바꾸어 가는 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교육체계를 연극인들이 정립해 나가야 한다. 무작정 자신에게 없는 재능이 살아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정신적인 소모는 실제로 엄청나게 크다.

그런 다음에 이에 따른 노력과 좋은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입시에서부터 이런 시스템이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재능이나 잠재력을 발견하는 것은 ‘고산증’을 알아내는 것과 흡사해서 직접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알 수 없듯이 -현재의 상태에서 미래를 예측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연기의 잠재력을 발견하기 위한 방법론의 연구가 무엇보다도 급선무다.

 

스탠포드 MBA의 수업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MBA과정에서 전 수강생이 다 듣는 최고의 강좌를 소개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강좌의 특징은 수업을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연극식 – 미리 설정된 주제를 갖고 상호간에 대화를 주고받는 연극방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고, 강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 자신이 자기가 기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는가를 스스로 평가토록 한다는데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수업을 받은 학생 중에는 자기가 재능을 없음을 알고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연극대학은 학생들의 재능을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서 입증하지 못하고, 입학 전의 학원 강사들에 의존하거나 아니면 입학 후에는 기획사나 영화사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제자들에게 권위를 가지려면 수업 방식을 통해서 제자들의 재능을 체크하는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자꾸만 학교를 버리고 휴학을 한 후에 기획사와 영화사를 전전하면서 자기의 재능을 확인해보려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교수가 ‘복권에 당첨’된 제자를 4년이나 가르쳤으면서도 “나는 걔가 그렇게 재능 있는 줄 몰랐어!” 이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재능발견 프로그램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연극대학의 커다란 불찰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학생들의 ‘복권당첨’을 위해서도, 학생 자신들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를 스스로 판단케 할 프로그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동시에 비록 배우로서는 재능이 없다고 판단되더라도 자신들이 꾸민 프로그램을 통해서 연극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은 연출가나 스텝으로도 얼마든지 진로를 바꿔 연극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런 방식의 수업은 ‘한 번의 사냥으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배우가 되는 잠재력(기질)은?

 

‘최상의 복권’인 배우가 될 수 있는 행운은 바로 학벌도 스펙도 아니다. 더구나 생김새도 아니다. 타고난 기질만 뛰어나다면 누구나 복권의 행운을 얻을 수 있어서 그렇다. 따라서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타고난 연기적 기질이다. 흔히 ‘끼’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 극적상황을 자기 자신의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

둘, 자기 통제력

셋, 타고난 언어감각

넷, 상상력과 해석력

다섯, 열정과 집중력

 

물론 ‘신체적 조건’만 들여다보아도 선천성 자질은 금방 알 수 있다.

어찌되었든 화술에 서툴면 복권의 꿈을 접어야 하는데. 화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은

 

1. 목이 가늘고 가슴이 잘 발달하지 못한 사람

2. 대체로 여자보다는 남자

3. 잘생긴 사람 – 이래서 미남 미녀들이 ‘발연기’ 소리를 듣는다.

4. 몸이 유연한 사람

움직임 배우들이 입만 열면 연기가 안 되는 이유

5. 축농증이나 비염이 심하거나 앞니를 교정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좋은 연기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공부 잘 했던 배우 김태희가 ‘발연기’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도 알고 보면 이런 신체적 조건 때문이다. 즉 그의 미모가 선천적 재능을 방해하고, 앞니교정이 가져온 핸디캡이다. 이처럼 신체조건도 연기에 많은 장애를 일으키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배우 지현준의 인터뷰

 

모노드라마 ‘나는 나의 아내다’에 출연하는 지현준이 주간지 중앙SUNDAY (6월 23일)와 인터뷰를 했다. 요사이 인터뷰마저도 뮤지컬 배우에 쏠려 있어서 연극배우가 매스컴과 인터뷰를 하는 것도 참 귀한 일에 속하게 된 게 현실이다. 그 중 한 대목을 옮겨보기로 하겠다.

 

– 하지만 결국 방송에 도전했다.

“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셨을 땐데, 어려서부터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셨다. (중략) 9년 동안 한 번도 (연극하는 걸) 반대하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쓰러지시더니 날 붙잡고 ‘너 TV에 한 번만 나오면 안 되겠니’ 하시는데 9년 동안 지하실에서 생판 모르는 관객을 위해 뒹굴면서 정작 곁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한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자존심만 세울 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연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방송 나가니 고혈압이 싹 나으셨다.(웃음)”

 

– 돌아보면 어떤 의미였나

“연기가 박살하는 계기가 됐다. 연극만 하며 살았던 놈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갖고 있던,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내 세계 안에서 만의 연기가 깨졌다. 거기 안 나갔으면 안 깨졌을 거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연기도 할 줄 알아야 되는데 괜히 폼 잡는다고 잘하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연기만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그렇게 박살이 나니 남의 얘기가 들리기 시작하고, 시야가 넓어지더라. TV연기자건 누구나 다른 사람이 해주는 얘기는 일단 들어야 되는 것 같다. 새로운 건 내 안에 없고, 항상 밖에 있더라.”

 

– 그런 ‘업그레이드’된 연기력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 이하 생략 –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소망, 그리고 연극을 고수하는 것을 ‘자존심’으로 여기는 연극배우들의 인식과 ‘내 세계 안에서 만의 연기’, 그리고 ‘폼 잡는 연기’, ‘어렵게만 접근하는 연극연기’, TV에 출연하지 않았으면 깨지지 않았을 자신의 연기에 대한 소회, 질문자가 ‘연기력의 업그레이드’로 규정한 TV에서의 연기 등이다.

그동안 사람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많이 불쾌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 지현준의 인터뷰를 통해서 현재 한국연극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히 알 수 있듯이, TV에서 업그레이드된 연기를 체험했다고 하는 그의 말에 모두가 조금은 놀랬을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숙지하고 있는 연극판에 널려있는 ‘불편한 진실’을 단지 내가 글로 말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배우들에게 솔직한 내심을 물으면 지현준처럼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술자리에서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하지만 연극판에서는 누구도 일부러 ‘나서서’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려고 하지 않아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연극의 ‘상대성 이론’

 

이런 모순과 이중성, 갈등을 벗어던지려면 연극에 ‘상대성 이론’을 정착화(의식화)시키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간단히 이 이론을 설명하면, 가령 우리 연극계는 ‘상업극’이야말로 해서는 안 될 연극이고 실험극은 장려해야 하는 연극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상업, 오락극을 경멸한다. 이미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정신적으로 훈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연극대학이 이의 진원지다.

이래서는 상업극은 물론이고 실험예술연극까지도 발전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바로 나의 ‘상대성 논리’의 골자다.

이 논리가 정착을 못하니 우리의 상업극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어 한번 본 관객들은 절대로 다시는 극장을 찾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이 정착해서 상업극이 제대로 된 오락적인 가치를 간직하고 있으면 처음 관극을 하는 관객들에게 당연히 어필되어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관극을 하는 습관을 갖게 해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상업극이 지루하고 자기의 정신세계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여기게 되면 이제는 ‘예술극’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상업극과 새로운 실험극이 ‘동반성장’을 꾀할 수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뛰어난 예술가를 양성하는 길을 지나치게 정부지원에 의지 않고서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인재가 순순환하는 구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극계가 마치 상업극을 하면 ‘매국노’ 또는 ‘수준이하의 연극인’으로 매도를 하는 풍토를 조성하니 상업극은 여전히 조잡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실험극은 영원히 관객도 없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해 협소한 혜화동1번지에서 옹색함에 묻혀 지내는 것이다.

대학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대학들이 ‘복권당첨’을 내세우고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TV나 영상연기를 장악했더라면, 학생들의 ‘복권당첨’의 욕구도 만족시키면서 배우 지현준처럼 성장된 모습으로 다시금 연극연기의 진수를 맛보고자 무대를 밟게 되는, 9년을 허송세월하지도 않는 순순환이 가능한 연극계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연극교육을 앞세우고 예술의 향기를 쏟아내는 듯하면서도, 안으로는 제자들의 ‘복권당첨’을 노리는 이중성을 보이니 ‘죽도 밥도’ 아닌 참혹한 결과를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상대성이론’이 정착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국공립극단의 육성은커녕 (연극판의 생리로 미루어) 또다시 관객들의 외면을 재촉하는 단체로 전락될 뿐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국공립극단은 반드시 ‘예술성’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분명 ‘엘리트주의자’들은 떠들어 댈 것이다. 하지만 말이 좋아 예술성이지. 결국 재미도 없는 난해한 연극이 예술성으로 둔갑할 것이다.

왜? 그들 입에서 “나라 돈을 쓰면서 일부 연극 엘리트들(특히 평론가)만이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들지 말고, 모든 국민들을 즐겁게 하는 대중에 접근하는 연극을 하라!” 이런 말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예술성도 이루지 못한 채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국공립극단으로, 어설픈 ‘실험극장’이 되어 또다시 존폐가 거론되는 국공립극단이 될 게 뻔하다.

지금도 연극인들이 술자리에서 입만 열면, 국공립극단이 예술성을 취하면 ‘수준미달’이라고 욕하고, 상업성을 취하면 지원금이 아깝다며 ‘정신없는 단체’라는 비난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해서 관객들의 호응도 얻지 못하면 당연히 국공립단원들은 존재감을 갖지 못한 채 ‘취업’으로 만족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연극에 ‘상대성 논리’가 정착하지 못하는 한 육성이 불가능한 게 연극대학이요, 국공립극단이다.

단원들이 존재감을 상실한 채 내심으로 ‘취업’으로 만족하고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국공립극단의 예술성을 살려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국공립의 단원을 110명으로 늘려 월급을 주자고 하면 연극계를 걱정하는 애국심의 발로(?)로 인정받고, 이를 우려하는 나 같은 사람은 ‘매국적 행태’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대성 이론’이 발동되지 못하는 한 설령 배우들은 취업이 되었다고 해도 기쁨은 잠시이고 항상 불만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배우가 ‘복권에 당첨’되어야 존재감이 생겨 스스로 만족감을 느껴야 하는 직업이어서 그렇다.

 

배우에게는 존재감(자존감)이 있어야!

 

배우에게 취업보다도 존재감이 더 중요한 것은 배우가 남(관객) 앞에 나서야 존재감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아무리 월급을 많이 줘도, 이른바 자신을 알아주는 ‘팬’이 없으면 존재감(자존감)을 가질 수 없는 직종인 것이다.

배우출신인 유인촌 장관이 옛 국립극단 단원들에게 연극배우출신으로 TV에 가서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를 지칭하며 “왜 아무개가 국립극단 공연무대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가? 그래야 국립으로서 존재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따졌다고 한다.

이처럼 아무리 국립극단원이라도 대중적 인기가 없으면 항상 존재감에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게 배우라는 업종이다. 따라서 연극의 ‘상대성 이론’으로의 정착은 아주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대중의 인기가 없으면 (존재감을 가질 수 없어) 연극에서 아무리 거창한 상을 수상해도, 또 국공립의 단원이라는 명예를 가져도 내심으로 불만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게 배우들의 생리다. 나도 국립극단에서 월급을 받아 보았지만 존재감이 없으면 평범한 샐러리맨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따라서 연극배우들이 겨우 ‘평론가’를 통해서 존재감을 얻게 되는 상황에서는 배우로서의 ‘열정’을 가질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주인공을 해도 존재감이 없으면 존재감이 있는 단연만도 못한 게 배우다.

이건 가장 가까운 부모형제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배우 지현준의 어머니도 TV출연을 갈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TV출연을 보자 ‘고혈압’이 멈춘 것이다.

꼭 돈 때문만이 아니다. 배우에게는 궁극적으로 존재감이 있어야 해서 그렇다. 그리고 존재감만 충족되면 국공립의 단원이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존재감이 생존보다 더 우위에 있어서 그렇다.

따라서 연극이 활성화되려면 배우들에게 존재감을 심어줄 수 있는 ‘알아주고 박수를 쳐주는’ 관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내용도 알 수 없는 ‘예술성’으로 고작 평론가들로부터의 호응이 전부이니 자본화된 사회체제에서 연극배우들이 움츠려들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나의 이런 주장으로 많은 연극인들이 배우를 바라보는 인식에 변화가 생겼으면 하는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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