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현장의 소리를 들으려면/ 오세곤

(제38호 편집인의 글)

 

진정한 현장의 소리를 들으려면

 

정책 결정자들은 항상 현장의 소리를 잘 듣겠다고 한다. 그러나 예술 현장에서 그 말을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모르는 채 무슨 정책이 발표되면 으레 불만이 터져 나온다. 물론 내용이 만족스러우면 그래도 넘어가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과정과 절차에 대하여 지적하게 된다. 그럼 어김없이 여러 차례 공지하면서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결정했다는 해명이 뒤따른다. 결국 정보 부재 현상을 초래한 예술인들의 무관심이 문제의 주범이 되고 만다.

물론 예술인들은 창작에 몰두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즉 무관심은 어찌 보면 예술인들의 당연한 특성이다. 어떤 정책을 결정하는 데 현장 의견 청취가 필수적이라 할 때 그 현장의 특성을 살피는 것은 필수적이다. 창작 외에는 무관심한 예술인들에게 접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냥 의례적인 공지로 알리고 이런 일에 특별히 민감한 몇몇 사람의 의견을 들은 뒤 그걸 반영해서 결정하는 정책은 아무리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해도 실제 현실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자문위원으로 선호하는 현장 전문가들이 있다. 꽤 강경한 목소리로 지적을 하지만 대부분 사소한 주변 사항일 뿐 정작 공무원들이 미리 정해 놓은 큰 흐름에 대해서는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인사들이다. 이 경우 공무원은 주인이고 현장 전문가는 손님이다. 남의 집 일에 조언을 해주러 가면 주인의 기본 생각을 존중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남의 집이고 남의 일인가? 절대로 아니다. 바로 예술 현장을 좌우하는 예술계의 일이다.

그럼 결국 내 일이니 내가 각성해야 하는 것일까? 무관심을 떨쳐버리고 우리 일에 관심을 갖자는 계몽이 필요한 것일까? 물론 그런 노력도 일부 필요하다. 그러나 그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게다가 예술인의 특성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칫 그런 각성에 초점을 맞출 경우 실제 달라지는 것 없이 스스로 자책만 하다 마는 꼴이 된다.

핵심은 공무원들의 태도 변화이다.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 파고들어 정말 문제를 파악하는 능력과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 외에는 무관심한 예술인들에게 다가가 성의와 끈기로써 내용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렇게 완전하게 내용을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영양가 있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내뱉는 의견은 위험하다. 자신이 잘 이해했다고 오해할 경우 더욱 그렇다. 물론 내용을 잘 파악했어도 부적절한 사심이 개입되면 결과는 더 나쁘다.

정부 산하 기관의 책임자를 뽑는 과정도 비슷하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오리무중인 경우가 많다. 연극 관련만 해도 그렇다.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 명동예술극장, 정동극장, 한국공연예술센터, 국립극단 등의 대표를 결정할 때 연극계 의견을 수렴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 했다. 그래서 추천위원회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안전한 대안은 되지 못 한다. 앞서 자문위원의 경우처럼 추천위원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선택이 자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제도보다는 자세에 있다. 예술인이 주인이고 공무원은 그 주인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럼 그 주인이 정말 뭘 원하는지,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끝까지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경우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에 대하여 어설픈 경제 논리 내지 효율성을 들이대서는 결코 안 된다. 완전한 파악을 바탕으로 수립된 완벽한 정밀도의 정책이 아니라면 오히려 현장에 악영향만 미치고 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장도 망가지고 정책을 담당한 공무원의 인생도 허사가 되는 셈이다. 진정한 예술 진흥을 인생 성공의 지표로 삼는 공무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2013년 12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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