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재진

무대가 세상을 바꿀 있을까?

이재진

 

2차 대전의 여파로 적잖이 많은 예술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독일의 경우만 예로 들어본다. [멋쟁이 신사]로 우리에게 알려진 하젠클레버(Walter Hasenclever. 1890-1940)와 같은 극작가는 나치의 야욕이 세계대전으로 노골화 되자 지식인으로서 이를 막기 위해 어떤 손도 써보지 못한 자신 스스로를 용서 할 수가  없었다. 멀리서 나치의 탱크소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수용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후, 많은 문인들이 한참 일 할 나이에 붓을 던지고 자살이란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토마스 만의 아들 클라우스 만(Klaus Mann. 1906-1949)은 전쟁의 잔혹함을 체험하며 지성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죄책감 속에서 좌절했다.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 1921-1947)와 같이 전쟁의 처절함 속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 죽어간 시인도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문 밖에서](Draußen vor der Tür. 1947)가 연속극으로 전파를 타자 전 독일의 거리는 온통 텅 비웠고 라디오 앞에 앉은 시민들은 숨죽이며 작가의 흐느낌에 함께 눈물을 흘렸다.

 

붓끝으로 싸우던 전사가 불의와 모순에 맞붙었을 때 어찌 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죽음 이외는 항거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지성인들, 지식인들, 예술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붓끝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는 1950년대 유럽에서 가장 크게 관심을 끌었던 주제였다. 다시 말해 예술이, 시가, 소설이, 연극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반문하며 예술가들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계몽주의 시대, 고전주의 시대의 연극무대는 인간을 계몽하고 교화하는 ‘도덕적 산실’(Schiller)로서의 역할을 크게 하였는데!!!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를 비판하며 11개의 ‘포이어바흐명제’ (Feuerbachthese. 1845)를 제시했다. 베를린 훔볼트(Humboldt) 대학에 들어서면 건물 벽에 이 중 열한 번째의 명제가 크게 붙어있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여러모로 분석은 해놓았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Die Ph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ömmt darauf an, sie zu verändern. / Philosophers have hitherto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is to change it.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이념투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세상을 변화될 수 있는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브레히트의 희곡작품에서 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헤겔, 마르크스에서 출발한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부정의 부정’이란 변증법적 기법을 동원한다. 만년에 자신의 서사극을 변증법적 연극(das dialektische Theater)이라 불렀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납치된 관객’을 되찾아 오기 위해 무대를 비워놓고 기다린다. 관객을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내어 제정신을 가지고 현실(진실)을 인식하고 직시시키기 위해 헤겔의 변증법을 무대에 실용화 한다. 브레히트는 무대와 관객을 ‘낯설게’ 만든다. “알려져 있는 것이란 모름지기 잘 알려져 있기에 바로 그래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란 헤겔의 인식론은 그러므로 브레히트의 무대철학과 일치한다.

 

극단 민예의 [햄릿 피살사건]의 무대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로 시작한다. 배우들은 꼭꼭 숨으라고 계속 노래하지만, 누구에게 무엇을 숨기라는 것인가? 누가 무엇을 감추고 싶은 것인가? 햄릿은 부왕의 죽음을 둘러싸고 진실을 파헤치려 든다. 모두가 말하는 진실은 다르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그런 진실을 얻어 내고자 한다. 그런데 진실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다 자신은 진실을 말한다고 주장하는데?! 진실을 왜 감추려드는 것일까?

 

중세 천문학자들은 진실을 알아도 말할 수 없었다. 태양이 돌고 있고 지구는 우주의 중심으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위 천동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하여 프톨레마이오스를 거쳐 중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2000여년이나 계속 진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교회는 우주의 중심이 바로 교황이 앉아 있는 이 땅덩이란 사실에 조금의 의혹도 갖지 않았다. 이를 거짓이라 말하는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진실을 알면서도 밝히지 못하고 주저하며 일생을 살았다. 임종의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의 진실이 담긴 저서가 출판되어 간신히 잡아본다. 케플러는 신이 만든 완벽한 우주에서 지구가 둥근 원이 아닌 삐딱한 타원의 궤도를 돌고 있음을 알고 너무나 죄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뛰어넘은 철학자요 천문학자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는 그만 이단자의 이름을 붙여 종교재판소가 태워죽이고 말았다. 갈릴레이는 진실을 알면서도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다행히 제자들이 너무 막강해서(제자 중에는 추기경이나 주교가 수두룩했으니까!) 죽음은 면했지만 종교재판소에서 갈릴레이는 자신이 믿는 진실을 부정하고 이를 부인하였다. 갈릴레이는 죄인의 몸으로 여생을 보낸다. 브레히트의 [갈릴레이 생애]에서 제자 안드레아는 이런 스승에게 실망하며 오열한다. “불행한 나라, 너에게는 영웅이란 없단 말인가! (Unglücklich das Land, das keine Helden hat! / Unhappy the land that has no heroes!)” 갈릴레이는 자책한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한낱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거짓이라 부르는 그런 사람은 범죄자인 것이다. ”

Wer die Wahrheit nicht weiß, der ist bloß ein Dummkopf. Aber wer sie weiß und sie eine Lüge nennt, der ist ein Verbrecher!

Who does Not Know the Truth, is simply a Fool. Yet who Knows the Truth and Calls it a Lie, is a Criminal.”

 

극단 민예의 [햄릿 왕 피살 사건]은 연습을 많이 한 무대란 인상을 받았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무대는 재판장이 된다.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국력이 분열되고 쇠약해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역을 여럿이 흥정하며 바꾸고 나누어 갖는다. 극적 재미와 빠른 무대전환을 위해 순간순간 도구를 움직여 장면을 바꾼다. 하지만 무대는 전체적으로 너무 단순했다. 의도적이었겠지만 의상이나 무대도구들이 단색으로 단조롭고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률적으로 흐르는 통에 끝내 지루함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은 즉 무대는 아마추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때로는 단순함에서 벗어나려는 변칙적인 변화가 일어났더라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 무대에서의 지루함이란, 밋밋함이란 관객에 대한 무례이며 과장해서 말하면 범죄행위이다. 이 자리에서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1929-1995)의 [햄릿기계] (Die Hamletmaschine. 1977)을 간단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입장을 조명하고 있다. 단편소설 같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드라마는 언어적 유희와 언어적 횡포로 가득하다. “나는 햄릿이었다.”로 극은 시작한다.

 

“국장을 알리는 조종소리. 햄릿이었던 나는 장례행렬을 멈추어 세우고 아버지의 관을 부수고 시신을 조각내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던져주었다. 장례의 슬픔은 환호로 바뀌고 그 환호소리는 쩝쩝거리는 소리에 묻혔다. 빈 관위에서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는 갓 과부가 된 어머니를 덮쳤다.”

 

햄릿은 어머니를 다시 숫처녀로 만들어 주겠다며 어머니의 속옷을 찢어 던져버리고 덤벼들었다. 폭력을 저주하고 그에 저항하던 햄릿은 이제 스스로 폭력을 일삼는다. 오필리아가 등장한다. 희생당하는 나약한 여인이 아니라 복수의 여인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이제 포기했다.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도록 문이란 문을 모두 부시어버린다, 온 세상의 고함소리 까지도. 창문도 나는 부수어 버린다. 피 흐르는 두 손으로 내가 사랑한 사내들의 사진을 찢어버린다. 침대에서 나를 사랑해준 그 사내들, 식탈위에서 의자에서 방바닥에서도. 감옥 같은 이 소굴에 불을 지른다. 그 불속에 입고 있던 옷을 모두 집어던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가 독자의 눈을 어지럽히고 괴기스럽고 난잡한 말들이 관객의 귀를 시끄럽게 울린다. 무대는 잔혹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다섯 장면으로 된 짧은 이 괴기스런 작품은 이렇게 계속 이어간다. 대사는 거의 없다. 더 이상 나는 하이너 뮐러가 경영하는(!) ‘셰익스피어 공장’(Shakespeare Factory)을 배회할 수 없다.

연극무대는 다른 오락 매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랫동안 싸우고 또 싸웠다. 이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연극의 살아남기 위한 일련의 발버둥이 바로 (서양)연극사(演劇史)이다. 1970년대 80년대의 유럽연극의 특징은 무대의 법정화에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비롯해서 고전작품들의 무대를 마구 법정으로 끌어드리려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일어났다. 모든 문제를 나름대로 죄를 묻고 단죄하는 법정이 되었다. 햄릿이 드물지 않게 기관총을 들고 무대에 뛰어나온다. 선정적인 장면도 그에 못지않게 자주 일어난다. 몇 년 전에 죽은 차덱(Peter Zadek. 1926-2009)의 연출을 나는 몇 번 보았다. 보훔(Bochum) 극장에서 연출한 [오셀로]에서는 주인공이 데스데모나를 목을 졸라 죽이는 마지막 장면을 섹스 하는 장면과 아주 똑같이 연출했다. 1988년 함부르크 극장에서 차덱이 베데킨트(Frank Wedekind. 1864-1918)의 [룰루](Lulu. 1913)를 연출했다. 독일 공영방송에서는 이 공연을  녹화하여 방영했다. 원작에 충실하게 연출했지만 거의 4시간 동안이나 여주인공이 벌거벗고 무대를 뛰어다니는 바람에 독일 해설자도 공영방송에서 내보내기에는 좀 민망하다는 표현을 썼다.

 

이미 다른 기회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로마 시대에는 사형수를 사다가 무대에서 목을 잘랐다. 하지만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이나 짐승들이 벌리는 잔인성에는 경쟁이 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커다란 콜로세움에 물을 가득 채워 넣고 벌리는 해전(海戰)하고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가 활약하던 시대에도 극장 옆에서 곰 하나와 용맹한 여러 사나이들이 싸움판을 벌리면 관객들은 그곳으로 몰려가게 마련이었다. 때로는 캥거루에 권투장갑을 끼어주고 인간과 권투시합을 벌리기도 했다. 이런 흥미진진한 오락물이 등장할 때 마다 연극무대는 고전하며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 몸부림쳤다. 계몽주의, 고전주의시대에는 그래도  인간의 심성과 지성을 일깨우고 인간의 본질을 찾기 위해 헤맸다. 기능과 역할을 내세운 연극은 웬만큼 살아남았다. 하지만 20세기가 다가오면서 라디오, 영화가 등장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벽에 걸려있던 그림이 움직여 나다니고 귀족들이나 즐기던 오페라의 황홀한 음악이 길거리로 흘러나왔다. 참호 속에서 죽어가는 병사에게 봐그너의 음악은 아편이상의 진정제가 되어주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봐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감격의 눈물 속에 이들 병사들은 기꺼이 조국을 위해 눈을 감았다. 급속히 발전해 나가는 영화나 라디오의 기술적 발전에 연극은 속수무책이었다. 부조리극, 서사극 등이 출현했다. 침 튀기는 격정적인 표현주의 연극으로는 이들과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변증법적 서사극은 무대를 통해 이념을 실현하려던 무대혁명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매체에 맞서 관객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나름대로의 몸부림이었다.

 

19세기 중엽 파리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작품은 바로 꼬냐르 형제가 쓴 [삼색기장] (Cogniard. La Cocarde tricolore. 1831)이란 희극이다. 三色旗는 프랑스 국기(國旗)를 뜻하기도 하지만 이 희극의 주인공은 쇼뱅(Nicholas Chauvin)이란 인물이다. 실존인물이었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이 젊은이는 나폴레옹 군대에 입대해서 17번이나 부상을 당할 정도로 용감무쌍하고 충성심이 뜨거운 병사로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이 친히 큰 상을 내리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맹목적이고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애국주의를 “쇼뱅이즘” 혹은 “쇼비니즘 (Chauvinism)”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용감무쌍하고 충성심이 강했던 이 병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국가권력이 지난 선거에 개입했다며 우리 사회는 분열되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크던 작던 간에 어떤 말을 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 21세기를 맞이한 마당에 선진국대열에 합류했다는 국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를 용납할 수는 없다. 이를 연극무대가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나의 해석이 맞는지는 몰라도  [햄릿 왕 피살 사건]은 진실은 숨기려 해도 감출 수 없다는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내세우려 드는 우리의 요즘 정치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당신은 어떤 진실을 원하는지” 서로 묻는 진실게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면 된다!”의  허깨비 같은 무서운 믿음이 고질병으로 남아 유령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서로의 진실을 우기며 따지다가 어느 틈에 깊이 분열되어 방황하고 있다. 늘 그러하듯 자신이 더 정당하다며 분노를 참지 못하며 서로를 비방하고 비난한다. 어느 쪽이던 크게 내세우는 시끄러운 논리의 근저에는 애국이고 정의고 평화가 자리하고 있다. 근시안적이고 무지한 이들의 역사관, 세계관을, 이성을 잃은 이런 광기를 바로 “쇼뱅이즘”이라 부른다.

 

쇼뱅 병사에게는 한없이 높이 우러러 볼 수 있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말 위에 그윽이 앉아 있었다. 쇼뱅에게는 미친 듯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삼색기 나부끼는 프랑스라는 조국이 있었다. 그럼 우리에게는? 우리에게도 조국은 있지 않은가? 우리의 조국은 위아래로 찢겨 망신창이가 되어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에게는 기댈만한 전통이 그나마 남아있지 않을까? 우리 스스로 모두 쓸어버리고 이제는 쉰둥이를 낳은 축 늘어진 늙은 여인의 가슴처럼 앙상한 가슴뼈에 간신히 달라붙어있을 뿐인데!! 우리에게 믿음은? 멀리서 건너온 믿음은 성글기도 전에 변질되어 버렸다. 그런 온갖 퇴색된 변형된 믿음으로 우리의 허한 영혼을 메워줄 수 있단 말인가! 오랫동안 살아남으며 가슴 깊숙이 간직해 온 한(恨)이란 기다림의 끈질김이 우리에게는 그래도 힘이 되지 않을까? 한의 푸념은 우리의 어머니 세대에 모두 말라버리고 가뭄에 벌어진 논바닥처럼 갈라져있는데?!

 

때로는 독재의 그늘에 숨어 있던 무리가, 때로는 권력의 시녀로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때로는 그런 권력과 타협하며 호의호식하던 일부 무리가 힘을 얻더니 어느새 큰 소리 치기 시작한다. 이들의 반대편에 서서 손해만 보고 있었다고 억울해 하는 또 다른 무리들의 입에서도 흘러나오는 소리는 한결같다. 국가며 조국이며 애국이란 단어가 잠시도 떠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쇼뱅이니스트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이들에게 국가는 물론 조국도 없다. 국가를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괴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종교의 일각에서 진실을 밝히라고 입을 크게 벌리자 이들 무리들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키려고도 시도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Render to Caesar the things that are Caesar’s, and 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Gebt dem Kaiser, was des Kaisers ist, und Gott, was Gottes ist” 그런데 황제의 것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황제의 동전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 예수는 허약하고 병들고 힘없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에게 위안과 안식을 주리라 약속했다. 예수는 그 당시 사회를 변화시키고 변혁시키려던 사회개혁주의자였다. 예수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지 않았다.

 

종교가 진실을 밝히자고 나서는데 무대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지금 정치적 연극을 주창하며, 무대의 정치화를 부르짖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주제나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며 무대를 온통 정치판으로 꾸미던 선동적이고 시끄러운 피스카토르(Erwin Piscator. 1893-1966)의 정치극은 이미 끝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종교도 그렇지만 연극은 더더욱 현실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무대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숨긴다고 진실이 영원히 묻히는 것도 아니다. 진실을 거짓이라 말한다면 이는 범죄행위이지만 진실을 알면서 이를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며 침묵을 지킨다면 이 또한 커다란 범죄행위가 될 것이다. 거짓이 보이면 들추어내고, 모순이 보이면 고쳐 나가야 한다. 연극의 기능과 역할이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붓끝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무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까? 나는 그간 그럴 수 있다고 기대하며 그렇게 희망하며 그렇게 믿으며 그렇게 노래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나의 꿈은 점점 한낱 동화와 같은 허황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에 실망한 나머지 나는 [햄릿 왕 피살사건]의 공연을 보고 그 무대를 볼모로 삼아 너무 많은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 셈이다. 아니면 연극인으로서 너무 무력하고 무능한 나 자신을 변호하고 변명하기 위해 무엇이던 인질로 붙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최후의 수단을 보여준 지난 세기의 연극선배들이 너무 부럽고 한편, 마냥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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