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 최하은

고독하지만 황홀한 정화(淨化)의 오르가즘: 연극 <변태>

 

최하은(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제목에서 풍기는 일차적인 느낌 탓에 <변태>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로 가득 차 있을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변태’는 pervert가 아닌 metamorphosis이다. 극은 소영, 효석, 동탁이라는 세 서로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이질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이 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즉 변태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감각적이고 시적인 극중 언어들과 더불어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이었으며, 인물들 중에서도 소영이 기존에 편입되어 있던 남의 세계에서 탈주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오롯이 구축하는 과정은 카타르시스(淨化)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느 한 인물의 편을 들고자 하지 않았던 연출의 중립을 지키는 뚝심이 가장 돋보였다.

효석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파리 날리는 도서 대여점을 운영하며 정육점 사장 동탁에게 시를 가르치는 시인이다. 그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며, 아내 소영과의 사이도 순탄치 않다. 그는 깨끗하고 숭고한 관념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거부하지만 한편으로는 밤마다 포르노를 보는 포르노 중독자의 면모를 보인다. 아내인 소영은 이러한 효석을 못마땅해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숨기고 있다. 사실은 소영 역시도 시에 소양이 있고 시작(詩作)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나,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효석 대신 그녀가 학교에서 독서 강사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 효석에게 시를 배우는 정육점 사장 동탁은 비록 배운 것이 없어 열등감을 느끼지만, 생활력과 사업 수완이 뛰어나 무척 부유하며 시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보다시피 이상의 세 인물은 본질적으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게끔 짜여 있다. 특히 효석과 동탁이 그렇다. 누가 누구에게 특별한 악의를 갖지 않더라도 이들의 삶의 방식 자체가 서로의 콤플렉스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와 고기로 대변되는 예술과 장사, 이상과 현실, 관념과 실존의 대립은 그대로 효석과 동탁이라는 두 인물의 대립으로 구현된다. 이들 둘이 각자 갖는 세계는 아주 확고할 뿐만 아니라 상호 배타적이다. 효석은 동탁의 부를 부러워하지만 그 스스로 정육점 사장이 될 생각도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동탁은 효석의 시인으로서의 숭고함과 고매함을 동경하지만 무지한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상호 배타적인 두 세계는 서로 간에 울타리를 부딪치며 별개의 것으로 각각 존재한다.

본격적인 충돌과 그로 인한 균열은 동탁의 세계가 효석의 세계를 침범함으로써 일어난다. 동탁이 시인으로서 등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길잡이가 되어준 것이 효석이라는 점이다. 실존에 든든한 기반을 둔 ‘최강의 지구인’ 동탁의 세계가 자신의 여리고 섬세한, ‘무균실’과 같은 세계를 침범하자 ‘ET’ 효석은 그 오염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린다.

하지만 이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혹은 끊임없이 갈팡질팡함으로서 자신의 실존을 향한 좁고 험한 길을 걸어가는 소영의 인물이 셋 가운데에서는 가장 인상적이다. 극의 초입에 소영은 효석의 세계를 지켜주는 방파제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때에 그녀의 독립적인 세계는 구축되어 있지 않으며 소영은 전통적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특히 남편이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예술과 관념의 세계에 집착하는 인물이며 그로 인해 소영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초반부에서 그녀의 인물성은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나중에 남편에게 질려서 저 정육점 사장과 불륜을 저지르겠군.’ 이런 식으로 관객이 흔한 통속극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소영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히 동탁과 관계를 맺었으나 그것은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여성성의 표현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육체관계를 맺는 것은 그간 시와 예술, 숭고한 이상과 관념으로만 이루어져 있던 효석의 닫힌 세계에 스스로도 편입되어 있던 그녀의 그 세계로부터 도주하기 위한, 세계를 깨고 나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고 보인다. 그것은 실상 소영이 효석으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실존을 탐색하고 조탁하여 완성해내기 위한 지난한 전투였던 것이다. ‘나랑 한 판 붙어, 홍익 3동 최강의 지구인.’ 화성인 ET의 아내로서 그의 무균실을 지키기 위해 반평생을 바쳐온 그녀가, 부와 성공으로 그들 내외의 자기혐오를 한계까지 자극한 동탁의 눈앞에서 속옷을 벗어던지면서 외친다. 이러한 모습이 어떤 관객, 특히 여성 관객에게는 불편하게 비추어질 수도 있다. 흔해빠진 클리셰로서 ‘여성이 자신의 성을 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소영은 가련한 여자가 아닌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 소영이 겪은바 가장 실체적이고 실존적인 인간인 동탁과 정말로 한 번 ‘맞붙어’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녀의 유혹에 동탁이 넘어온 것이 곧 육신의 욕망에 진 동탁의 패배였다고 볼 수 있다.

소영은 동탁과 관계한 후 ‘민중과 지식인’의 책 페이지를 찢어 동탁의 잔여물을 닦아낸다. 동탁의 잔여물로 더러워진 ‘민중과 지식인’의 한 페이지. 그것을 구겨서 버리는 소영. 이것은 소영이 ‘민중과 지식인’ 페이지로 대변되는 효석의 세계에서 도망치는 데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하여 동탁의 세계에 다시 편입되어 버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영은 변태에 성공했다. 효석의 정신의 세계를 깨뜨리고 나왔으나 동탁의 몸의 세계에 매입당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에 그려진 동탁과 소영의 관계는 육체관계를 갖는 애인이나 부부간이 아닌,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시인과 시인의 관계였을 것이라고 과감히 유추한다. 둘의 육체관계는 아마도 둘이 ‘맞붙은’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소영은 한 명의 시인이 되었고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사실 자신의 오롯한 세계를 가지고 독립하는 것은 남자 혹은 여자의 특권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권리이자 욕망이다. 그 과정이 결코 떳떳하지 않았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 크나큰 상처가 되었을 수 있고, 소영 본인에게조차 큰 상실과 자기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안겨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에서 소영은 손을 사타구니 사이에 집어넣고 몸을 꼬며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knocking on heaven’s door)’ 듯한 쾌락의 절정에 도달한다. 자위는 남과 남이 뒤섞이는 섹스와는 달리 스스로가 자신의 몸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결과물을 얻어내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 장면을 나는 남을 상처입힘으로써 스스로가 하나의 인간 개체로 완성되었다는 소영의 죄책감 섞인 쾌락의 발현이라고 해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포스터에서도 그리고 극 전반의 비중에서도 알 수 있듯 극의 포커스는 소영의 변태에 맞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척점에 서있다 할 수 있는 동탁과 효석의 인물상이 부정적으로만 그려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효석의 변을 듣고 있을 때에는 효석에게 구구절절 공감할 수 있었고, 동탁의 미워할 수 없는 순수한 모습을 보면 또 그에게 호감이 갔다. 소영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극의 중심이었으며 시종 관객의 숨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세 인물에 대해서 모두 호의적인 이해와 존경과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와 연출이 인물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 극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제작의 변에서 “어느 누가 옳다고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고 한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사실 인물의 갈등으로 사건을 전개해나가야 하는 극이라는 장르에서 작가와 연출이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작가의 생각을 대변하는 어느 한 인물의 편을 보다 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일지도 모른다. 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호소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극은 그 함정을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소영이 마지막에 두 발로 우뚝 서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을 깨듯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고, 그러나 손을 내민 다른 세계에 편입되는 것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내는 변태의 완결. 그것은 조금 고독하지만 황홀한 정화(淨化)의 오르가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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