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보/ 최세아

끝물인생들의 봄, 연극 <수안보>

최세아

작: 천정완
연출: 배건탁
단체: 극단 독립극장
공연일시: 2014.03.13-04.06.
공연장소: 설치극장 정美소

 

극단 독립극장의 창작동맹 네 번째 시리즈인 <수안보>는 사회에서 배제되어 버린 인생들을 무대로 불러와 따뜻한 시선을 건네고 다시, 비상을 꿈꾸게 하는 공연이다.

 

1979년 6월에 창단하여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통해 관객들과 꾸준히 만나고 있는 극단 독립극장은 이번 공연이 천정완 작가와의 세 번째 작업이다. <너의 의미>에 이어 <수안보> 역시 노년의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공연을 관극하다 보면 이 시대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사랑이야기에 더 부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안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상적 삶의 영역에서 배제된 외로운 인물들이다. 한 시대의 주역이었지만 환갑이 훌쩍 넘어버리면서 현대의 소외계층으로 전락해버린 김철기, 많은 이들이 특별함을 꿈꾸고 있을 때,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어려운 김영주, 감당하기 버거운 인생의 쓴 맛을 사탕으로나마 중화시켜 보려는 삼십대 강미주, 남자들의 세계는 원래 그렇다, 라는 거친 논리로 세상과 주먹으로 맞서는 조실장, 젊은 나이에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시골로 밀려와 자신의 이름대신 조인성으로 김수현으로 불리며 삶을 버텨내고 있는 박영규는 그야말로 끝물인생을 살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죄의식은 사후발생적인 것에서 더 나아가 마음으로 품은 욕망까지도 의미한다. 김철기는 젊은 시절, 잠깐 만났던 여자와 그 사이에 있던 딸아이를 매몰차게 버렸다는 죄의식이 늘 가슴 속에 남아있고, 강미주는 공부를 꽤 잘하던 오빠의 등록금을 훔쳐 달아났던 단 한 번의 선택이 오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렸다는 죄책감이 있다. 내면의 죄의식을 조금이나마 떨쳐버리기 위해 번 돈을 가족을 찾는 것에 사용하거나 폐인이 된 오빠에게 돈을 보내주며 용서를 구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은 현실에 이들은 좌절하고 지쳐간다. 이처럼 이 둘은 다른 이의 인생을 망쳐놓고 자신만 잘 살아가는 것이 또 다른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잘 살아가기’를 포기한 채, 과거로 퇴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조실장 역시 김영주에 대한 죄의식이 나타난다. 현모양처가 꿈인 김영주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족과 행복한 일상을 꿈꾸는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싶은 여자이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요리를 배우고, 적금을 붓는 등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적인 준비를 해나간다.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서 삶의 퍽퍽함을 느끼는 조실장은 김영주가 적금을 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눈빛이 변하기 시작한다. 김영주에게 사랑을 주는 대가로 돈을 들고 도망가면서 물신에 대한 또 한 명의 욕망은 꿈꾸던 다른 이의 희망을 빼앗아 버린다. 조실장의 죄의식은 폭력으로 나타난다. 자신을 찾아와 아이가 있다는 말을 전하는 김철기와 박영규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지워버리라는 등의 비윤리적인 언어적 폭력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목적이 돈이었을지언정 잠시나마 사랑을 느꼈던 여인에 대한 죄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상대에게 속고, 속이는 과정에서 상처를 고스란히 받는 그들은 타자와의 관계맺음이 신물이 날 법도 하지만 그들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또 다른 타자와의 관계맺음을 통해서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을 한다. 김철기는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을 상실한 채 스스로 위축된 인물이다. 거울 속에 비춰지는 자신의 얼굴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자존심 좀 챙기고 살자는 조실장의 말에 화도 낼 줄 모르는 인물이다. 조실장이 자신의 월급을 일부를 떼어먹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내민 만원을 팽개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런 김철기가 강미주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죄를 고백한다. 고백은 용기를 수반하는 일이다. 듣는 이의 이해가 없다면 이 둘 사이에 유지되던 관계가 깨지기 때문이다. 뒤늦게 찾은 사랑이 자신의 고백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김철기는 강미주에게 용기를 낸다. 자존감이 낮고 용기가 없던 그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다시, 세상으로, 공동체로 회기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삶이 공동체를 벗어난 삶이었다면 미래는 강미주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그 안에 속하여 사랑하며 살고싶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강미주 역시 동일하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은밀하게 숨겨왔던 고백을 통하여 타자와 진정한 관계를 맺고 다시 공동체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김철기는 아직 펴지 않은 벚꽃을 향해 외친다. “벚나무들아, 언제 필거냐, 게으름 피우지 말고 빨리 펴라.” 이 외침은 벚나무를 향하고 있지만 결국 아직 펴지 못한 자신의 인생을 향해 던지는 말이며 동시에 척박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의 말이다. 절규에 가까운 그 외침은 관객에게 뭉클함을 전한다. 강미주 역시 벚나무 아래에서 일본의 선승 잇큐의 시를 읊는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그 속엔 벚꽃이 없네.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는가.’ 강미주는 벚나무와 자신의 인생을 동일시하면서 언젠가는 화려하게 피어날 미래를 꿈꾸고 있다. 이 공연의 장점은 이 지점에 있다. 끝물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에게 손을 내밀어 희망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과 불빛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건네며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는다.

 

이렇게 감동적으로 끝날 것 같은 공연은 관객들에게 뜬금없는 반전을 선사한다. 희망을 찾아가는 듯처럼 보였던 그들의 인생은 조실장과 강민주의 배신으로 또다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 극의 아쉬운 점은 언제부터 조실장과 강민주가 함께 이 일을 계획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조실장이 강민주를 처음 <수안보> 클럽에 데리고 온 그 시점부터인지, 아니면 녹록치 않는 삶에 굴복하여 둘이 작당을 했는지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공연 마지막에서 이들의 사랑이 진심이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계획하고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그 당시에 사랑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선 없는 반전은 반갑지 않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대사를 한번 듣고 기억하지 못한다. 연극은 일회성이다. 그 날 연기했던 배우의 발성에 문제가 있었다든가, 관객들이 휴대폰을 끄지 않아 울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 시점에 공연은 계속 진행될 것이며, 관객들은 몰입도가 떨어져 배우들의 대사를 듣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그만큼 연극은 그 날의 무대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작가는 단 한 번의 대사로 관객들이 다 알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사의 변주나 행동을 통해 복선을 적절히 배치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또다시 상처를 받은 김철기와 김영주는 각자 다른 방법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김영주는 박영규의 사랑을 통해, 김철기는 강미주가 말하던 탐스러운 벚꽃이 만발한 수안보를 찾아가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작품 제목이기도 한 수안보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실제로 위치하고 있으며 과거에 신혼여행지 혹은 온천 여행지로 최대 호황기를 추억으로 품고 있는 장소이다. 해외여행이 일반적이 되어버린 현재, 수안보는 과거의 부흥했던 기억을 간직한 채 화려한 그 시적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수반되고 있다. 작품은 재도약을 꿈꾸는 한 지역에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인물들을 빗대어 상징적으로 표현해낸다.

 

김철기가 찾은 수안보는 벚꽃이 만발한 봄이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죽은 듯이 보였던 생명들이 움트는 시기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은 끝물 인생들의 또 다른 희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희망은 태생적으로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다. <수안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찾아낸 희망이 어쩌면 화려하게 꽃을 못 피울 수도 있다. 그러나 벚꽃이 내리는 무대를 보면서 관객들은 인생에서 어설픈 꽃 한송이조차 피워내지 못했던 끝물 인생들의 ‘봄’도 화려하게 피어나길 응원하게 된다. 또 그리되리라 믿는다.

 

무대는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마치 인물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 같은 진회색의 두터운  벽과 조명으로 연출된 앙상한 나뭇가지는 단 한번도 펴보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그들의 인생을 말하는 것처럼 공간은 애잔한 느낌을 전한다. 이들이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할 때에는 비즈를 사용한 벚꽃들을 조명을 통해 핑크빛으로 물든 화려한 무대를 보여준다. 비즈를 길게 늘어뜨린 무대 사이사이를 인물들이 걸어가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대 연출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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