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 이주영

우아한 발악 – <평상>

 

이주영(연극평론가)

 

 

작 : 윤미현

연출 : 김승철

드라마터그 : 배선애

단체 : 창작공동체 아르케

공연일시 : 2014.04.24~05.18

공연장소 : 선돌극장

관극일시 : 2014.04.25

 

품위가 있는 발악이다. 격을 갖췄다. 우아한 놀이로 말끔히 포장된 두 인물의 처절한 몸부림.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평상>(윤미현 작, 김승철 연출)에서 모자(母子)가 펼쳐 보이는 풍경이다. 마치 창고를 연상케 하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응봉동 사모님(한보람 분)은 존재하지 않는 가정부를 연신 외쳐대고, 그의 아들(서왕석 분)은 사명감을 갖고 응봉동 사모님의 재산인 부루마블의 토지와 자금을 관리한다. 철거 위기에 놓여 있는 집에서 나름의 신념을 갖고 눌어붙어 있는 이들은 중산층 코스프레로 현재의 불안한 상황을 되받아 친다.

집을 불안하고 위태로운 공간으로 그린 작품들이 심심치 않게 대학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여기가 집이다>(장우재 작, 연출), <노크하지 않는 집>(김애란 작, 이항나 연출) 등은 동시대의 집이 갖는 의미에 대해 묻는 작품들이었다. 윤미현 작가의 작품 또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젊은 후시딘>에서 비루한 집의 설정, 그 공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아니 버텨내는 가족의 울부짖음, 그리고 도무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타개책이 보이지 않기에 환상으로 밖에 내놓을 수 없었던 그 씁쓸한 해결책 등을 통해서 현대 사회에서의 집이 갖는 안락함을 부정하고 전복시켰다. <평상>에서도 이 부정과 전복의 시선은 유효하게 작동한다.

응봉동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그의 아들이 살아가는 집의 모든 구성물들이 낡았다. 이 낡음이 앤틱의 효과를 주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물건의 가치와 사용가능 여부를 의심케 한다. 우아한 중산층을 연기하는 사모님과 그의 아들은 수돗물을 알프스 하이디가 마시는 생수로, 목탁 소리를 골프공 치는 소리로 세팅하였지만, 그들의 환경은 정돈이 아닌 널브러짐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낡음, 널브러짐 등은 이 가족이 버텨온 세월의 흔적에 다름 아니다.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기에는 매년 장마가 이들의 집을 공격하였고, 정돈된 삶을 살기에는 자본이 이들을 비껴갔다. 작품은 이들의 피폐한 삶의 흔적을 소품에만 머물지 않고 청각적 이미지로도 연출한다. 천장에서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빗물. 극장 안을 채우며 쉴 새 없이 뱉어내는 인물들의 대화 사이에 비집고 들어오는 이 처량한 소리의 파급력과 울림은 상당히 크다. 중산층 코스프레가 비루한 삶을 버티기 위한 이들의 발악적 퍼포먼스였다면, 빗물은 쥐어짜듯 발악했지만 그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이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그래서 새어나오는 이들의 처절한 울음과도 같다.

작품은 배달의 민족으로 이동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이들 가족의 모습을 아파트족과 대비시킨다. 이들에게 아파트는 안락하고 안정적인 주거공간이며, 이들이 행하는 코스프레의 모델은 아파트족이다. 아파트족과 지하족이라 새로운 종족 탄생이 씁쓸하지만 그 설정이 흥미롭다. 단, 이 두 종족을 엮어내는 방식이 다소 아쉽다. 이 두 종족의 대비가 작품 내에서 나름의 은유를 갖고 작동하고는 있지만 그 비유가 너무 직접적이고 빤하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극작의 아쉬움은 <젊은 후시딘>에서도 반복되었는데, 국회의원을 비난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물론 이러한 설정이 작품이 내놓은 문제의식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겠으나, 친절한 비유와 문제의식의 직접적 노출은 종종 작품의 탄력을 떨어트린다.

응봉동 사장님이 돌아왔다. 사장님은 강원도에서 새로운 주거공간을 발견했다. 이들이 이주해야 할 강원도의 주거 환경은 재래식 화장실과 비닐하우스 등으로 인테리어되어 있다. 중산층 코스프레에서 어느새 신념만은 중산층으로 이동해버린 응봉동 사모님과 그의 아들은 이주를 거부한다. 사장님은 떠났고, 모자는 평상에 남았다. 집의 붕괴는 가족의 붕괴로 이어졌다. 붕괴의 연쇄다. 다음의 붕괴가 무엇일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붕괴가 멈추고 희망이 찾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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