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아시아 연출가전 총평/ 박정기

2014 아시아 연출가전 총평

 박정기

 

 

2014 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 김성노)가 마련한 아시아 연출가전은 헨릭 입센(Henrik Ibsen)의 <유령(Gengangere)>을 한국의 연출가 위성신, 러시아의 연출가 막심 노비코프(Maxim Novikov),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연출가 왕충(王翀) 등 3인의 연출가에 의해 3월 27일부터 4월 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3인이 연출한 유령은 나름대로 개성과 특성이 두드러져 색다른 <유령>으로 창출되었기에 성공적인 공연이 되었다.

3인의 연출작을 공연순서대로 평하겠다.

 

1, 위성신 연출의 <유령 BLACK &WHITE>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 김성노)의 2014 아시아 연출가전, 헨릭 입센의 유령(Gengangere) 첫 번째 공연, 한국 연출가 위성신의 <유령 BLACK &WHITE>을 관람했다.

 

헨릭 입센(Henrik Ibsen 1828~1908)근현대극의 시발점에 자리한 근대 사상과 여성 해방 운동에 깊은 영향을 끼친 20세기 북구의 위대한 극작가다.

 

노르웨이 시엔에서 출생한 입센은 집안의 파산으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15세 되던 해 그림스타드로 떠나 약방의 도제로 일했다. 독학으로 진학을 준비하며 신문에 풍자만화와 시를 기고하고, 파리의 2월 혁명에 감명을 받아 국왕에게 시를 헌정하는 등 정치와 사회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 입센은, 1850년에 발표한 단막극 <전사의 무덤>이 공연되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희곡 집필에 몰두하는 한편, 친구들과 함께 사회주의적 성향의 주간 신문 <사람>을 창간하여 활동한다.

 

1851년 노르웨이 극장의 전속 작가 겸 무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극작을 위한 밑거름을 쌓던 입센은, 1864년 유럽 전역을 떠돌며 주요 작품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06년 뇌졸중으로 사망할 때까지 꾸준히 집필한 희곡 30여 편은, 한 작품 한 작품 극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며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입센의 대표작이자 근대극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인형의 집>과 <유령>은 초연과 동시에 그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뜨거운 호평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뜻하지 않은 사건을 계기로 남편의 이중성을 느끼고 집을 떠나는 <인형의 집> 속 노라와, 마치 〈가출하지 않은 노라〉를 가정한 듯한 <유령> 속 알빙 부인의 모습을 통해, 입센은 여성성의 허구와 진실을 그려내고 나아가 종교와 사회의 부패 그리고 인습과 고정관념을 비판적 시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근대 사상과 여성 해방 운동의 단초를 제공했다.

입센의 다른 작품으로는 운문극 <브란>과 극시 <페르 귄트>를 비롯해 <들오리>, <바다에서 온 여인> 등이 있다.

 

유령 (Gengangere)의 여주인공 알빙 부인은 애정이 없는 결혼에 못 견디어 집을 나간다. 알빙 부인의 첫사랑의 남성이었지만, 현재는 성직자인 만데르스 목사의 설득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사회적 명성은 있으나 방탕한 생활로 몸을 버려 폐인이 된 남편의 시중을 들고, 남편의 사후에는 그 유산으로 남편을 기념하는 고아원까지 세운다. 그러나 고아원은 불타버리고, 파리 유학 중에 돌아온 아들 오스왈드는 음주로 몸을 망쳐가며 자신의 집 하녀를 사랑하지만, 그 하녀 레지이네가 바로 아버지의 불륜으로부터 태어난 자신의 누이동생이라는 것을 알고는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성병의 유전으로 죽음에 도달하게 되고, 자식의 죽음 앞에서 통곡과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알빙 부인의 모습에서 연극은 대미를 장식한다.

 

무대는 백색의 크고 작은 문틀과 격자무늬의 커다란 창, 백색의 원탁과 의자, 그리고 소파와 의자를 배치하고, 정면 배경 가까이에 천정에서 창문틀을 줄에 달아 매달아 놓았다.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백색 정장과 백색 모자를 쓴 아버지 알빙 대위의 유령을 극중에 등장시켜 극적효과를 상승시킨다. 또한 원작의 주축을 이루는 대사 외에는 많은 부분을 삭제, 축약시킨 연출을 했다.

 

알빙 부인 변민지, 오스왈드 이성호, 만데르스 목사 노광흔, 목수 엥스트란트 서수현, 레지이네 김화영, 유령 박광재 등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무대디자인 이윤수, 음악감독 박소연, 조명디자인 김상조, 의상디자인 김민경, 움직임지도 서정선, 조연출 이상희 등 모두의 노력이 하나가 되어 헨릭 입센 작, 위성신 각색 연출의 <유령 BLACK &WHITE>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2, 막심 노비코프 연출의 <유령>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아시아 연출가전 두 번째 작품은, 헨릭 입센(Henrik Ibsen)의 <유령(Gengangere)>을 러시아의 연출가 막심 노비코프(Maxim Novikov)가 연출했다.

 

막심 노비코프(Maxim Novikov)는 러시아 국립연극대학교수이고, 모스코바 스타니슬랍스키 드라마극장 예술조감독이다.

 

무대는 건축건설현장 외벽에 철제 기둥을 가로세로 엮어서 그 사이사이에 받침대를 받쳐놓은 것처럼, 배경 가까이에 철제 엮은 기둥 아래위로 받침대를 만들어 출연자들이 오르고 내리게 만들어놓았다. 맨 오른쪽 가설물에는 바퀴가 달려, 장면변화에 따라 이동시켜 배치하기도 한다.

 

이 공연에는 유령이 여러 명 등장한다. 철제 물통을 들고 물을 끼얹는가 하면 물통을 두드려 긴박감을 조성하기도 하고, 연주하듯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 군무를 하고 철제 난간위에 자리해 알빙 부인의 환상 속에 자주 등장한다. 고아원에 불이 날 때에는 불 끄는 군중 역할도 하고, 대단원에서 오스왈드의 시체를 받쳐 들고 사라진다.

 

원작에서처럼, 연극은 도입에 목수 엥스트란드가 등장해 딸 레지이네를 찾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새로 그럴듯한 주점을 개업하려는 엥스트란드의 계획은 성직자 만데르스 목사를 가식과 위선으로 꼬드겨 자신의 계획에 동조하도록 만든다.

 

알빙 부인에게는 항상 남편 알빙 대위의 유령이 심경의 변화에 맞춰 등장하고, 남편의 유산으로 세우려는 고아원의 개원이 눈앞에 다가오지만, 부인의 주위를 배회하는 유령의 모습은 사라지려 들지를 않는다.

 

부인의 아들 오스왈드가 등장하고, 오스왈드는 하녀 레지이네를 대할 때마다, 왕자 햄릿이 오필리아를 대하듯 하고, 레지이네도 이에 동조를 하지만, 마님인 알빙 부인이 나타나면 놀이를 그치고, 하녀의 신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엥스트란드의 딸이자, 이집의 하녀인 레지이네는, 사실은 알빙 저택에서 하녀로 일하던 레지이네의 어머니와 알빙 부인의 남편, 알빙 대위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여식이다. 그러니 오스왈드와는, 어머니가 다를 뿐, 젊은 두 사람은 남매지간이다.

 

알빙 부인은 아들 오스왈드와 레지이네의 관계가 심상치 않자, 두 젊은 남녀가 남매지간임을 밝히려 한다. 알빙 부인이 오스왈드와 레지이네를 부른 후 바로 이 사실을 밝히려 할 때, 멀리 고아원 쪽에서 불길이 오른다. 군중소리와 함께 고아원에 불이 난 것을 알게 되자, 불을 끄러 오스왈드와 레지이네가 고아원으로 달려가니, 결국 알빙 부인은 두 젊은이가 남매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만다.

 

불은 껐으나 고아원은 잿더미로 변하고, 엥스트란드와 만데르스 목사가 등장해, 불이 난 원인을 만데르스 목사가 촛불을 심지를 끊어 버린 것이 대패 밥에 인화가 되어 불이 번진 것이라며, 엥스트란드가 자신이 옆에서 지켜봤다며, 떼를 쓰듯 만데르스 목사에게 뒤집어씌운다. 만데르스 목사는 부인을 하지만, 엥스트란드의 강변에 또다시 속아 넘어가, 이번에도 엥스트란드의 사업에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더 이상 떠들지 않도록 그의 입을 막는다.

 

대단원에서 오스왈드는 레지이네와 결합하려 들지만, 오스왈드는 아버지로부터 유전된 치명적 병으로 인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된다. 오스왈드는 바퀴달린 가설물을 이동시키며, 햄릿의 3막 1장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다…..”를 읊조리며, 레지이네와 어울리지만, 결국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다. 유령들이 다가와 이동 가설물에서 쓰러져 죽는 오스왈드를 떠받쳐 들고 퇴장하면, 알빙 부인이, 아들과 더불어 사라진 유령들의 빈 공간에 돌아앉아 기도하듯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알빙 부인 김성미, 오스왈드 김승환, 만데르스 전익수. 엥스트란드 김성철, 레지이네 연해성, 그리고 유령으로 김홍근, 유성주, 정용락, 지현호, 유경훈이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열연으로 관객을 1시간 30분 동안 극에 몰입시킨다. 특히 김성미, 김승환, 전익수, 김성철, 연해성의 호연은 살만하다.

 

조연출 통역 장우현, 조명 황동규, 의상 김정향, 음악 서상완 등 스텝진의 노력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막심 노비코프 연출의 <유령>을, 연출력이 감지되고, 기억에 길이 남는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3, 왕충 연출의 <유령 2.0>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아시아 연출가전 헨릭 입센 작, 중화인민공화국 왕충(王翀) 연출의 <유령 2.0>을 관람했다.

 

무대정면에 스크린을 내리고, 안쪽 왼편에 식탁과 의자를 세로 방향으로 놓고, 벽에는 그림 없는 액자를 여러 개 달아놓았다. 의자 위에도 액자를 올려놓았다. 무대 오른편에는 전자건반악기와 기기를 다루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 극은 시종일관 3인의 촬영담당자가 출연자들의 연기를 촬영해, 곧바로 정면 스크린에 영상이 투사되도록 하고, 출연자들의 중요대사도 문자를 스크린에 투사하는 방법으로 시종일관 공연을 이끌어 간다. 연기자들은 무대에서 대사하듯 입과 입술만 움직일 뿐, 무성영화장면에서처럼 대사는 들리지가 않는다. 들리는 것은 음악과 출연자의 병적인 기침소리 뿐이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이 극에서는 원작희곡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알빙 부인의 남편 알빙 대위와 알빙 저택의 하녀였던 레지이네의 어머니, 그리고 알빙 대위의 정부들, 목수 엥스트란드의 정부 등이 유령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모든 출연자들은 창백한 얼굴바탕에 퀭한 눈 분장으로 유령을 연상시킨다. 왕충의 연극 <유령 2.0>은 출연자 전원이 유령의 모습으로 <유령 2.0>을 연기한다.

 

연극의 도입에 등장하는 목수 엥스트란드가, 선원의 집을 지을 작정이니, 딸 레지이네더러 알빙 저택을 떠나 자신에게로 와 새 일을 맡아 하라고 권하나, 레지이네는 거절을 한다.  알빙 대위의 유지로 고아원 개원일이 다가오자 그 일을 책임지고 있는 만데르스 목사가 알빙 부인을 찾아온다. 과거 알빙 대위가 여러 여인들과 무질서한 성 접촉을 하고, 부부 금실이 파괴되자, 알빙 부인은 집을 뛰쳐나와 만데르스 목사에게 몸과 마음을 의지하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만데르스 목사의 거절로 그 일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향후 두 사람의 감정은 평상을 넘어서는 밀착된 감정을 유지하고 있다. 엥스트란드는 만데르스 목사가 자신의 사업에 동조를 하도록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한다. 엥스트란드와 만데르스 목사는 고아원 개원에 참석하러 퇴장한다. 그 때 알빙 부인의 아들 오스왈드가 허랑방탕한 생활에서 치명적인 병을 얻고 귀가한다. 알빙 부인은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인다. 오스왈드는 하녀 레지이네를 보자마자 사랑과 욕정을 동시에 느끼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레지이네도 마찬가지 심정으로 오스왈드를 대한다. 오스왈드와 레지이네의 밀착을 눈치 챈 알빙 부인은, 과거 알빙 대위와 이집 하녀였던 레이지네의 어머니와의 불륜관계로 해서 레지이네가 태어난 사실을 아들인 오스왈드에게 알리려 한다. 그때 만데르스 목사가 고개를 떨어뜨린 모습으로 등장을 한다. 엥스트란드가 그 뒤를 따라 들어온다. 엥스트란드의 말로는 만데르스 목사가 들고 있던 촛불로 해서 고아원이 전소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엥스트란드는 그러한 사실을 입을 봉하고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노라는 약속으로, 만데르스 목사를 자신의 사업에 동조하도록 묶어둔다. 오스왈드는 레지이네에게 청혼을 하고, 알빙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알빙 부인은 고아원 화재와 아들 오스왈드의 청혼, 그리고 발작적 기침과 함께 알코홀에 몸을  의지하는 오스왈드의 모습, 그리고 의사로부터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오스왈드의 병원진단서를 보고충격을 받는다. 대단원에서 레지이네 역시 오스왈드의 치명적인 병을 알고, 알빙 저택을 떠나는 장면과, 죽어가는 오스왈드를 껴안고 괴로워하며 통곡하는 알빙 부인의 모습에서 무언극은 영상과 함께 마무리가 된다.

 

김현아가 알빙 부인, 목사 이형우, 목수 김재형, 아들 우동헌, 하녀 김민선, 알빙 대위 김영택, 레지이네의 어머니 박미선, 어린시절의 오스왈드 배성민, 의사 김춘식, 정부 김록운 김진아 장 정 등 출연자 전원의 무언극은, 관객을 오히려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영상과 문자영상으로 연극을 이끌어 가는 독특한 연출력을 감지하게 된다.

 

조연출과 통역 이광복, 통역 이배, 조명 황동규, 의장다자인 김정향, 음악감독 서상완, 편집 김록운 장정, 촬영 김춘식 김진아 김재형, 디지털 피아노 김현아 김민선 김록운 통역 장정 무대 이주은 등 스텝 모두의 기량과 열정이 드러나, 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 김성노)의 아시아연출가전, 헨릭입센 작, 중화인민공화국 왕충(王翀) 연출의 <유령 2.0>을 독특하고 기억에 남을 영상연극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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