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 7월 논평] 한팩과 드라마센터를 현장 전문 예술인들에게 돌려주어라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 7월 논평

 

<한팩과 드라마센터를 현장 전문 예술인들에게 돌려주어라>

 

한국 연극계에서는 지난 2008년에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을 기념하며 많은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특히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의 전반적인 조명과 함께 미래의 100년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등 과거, 현재, 미래를 진단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우리 연극의 실상은 100년 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상황과 환경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아무도 권하거나 강요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기적처럼 성을 쌓다가 허물어뜨리고, 걷고 또 걷다 넘어지고, 그야말로 독립운동 하듯이 끈질기게 분투하고 생존해온 어려운 시간들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 연극은 몇 가지 기념비적인 토대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대학로극장지대로 상징되는 단일밀집지역 극장 환경이 그 하나이고, 전국 70여개 대학의 다양한 연극 관련 학과가 또 그 하나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제작 환경의 전문화와 분업화를 들 수 있겠다.

 

돌이켜 보건데 1908년 원각사에서 <은세계>가 공연되고 난 이후 연극전용극장이 탄생하기까지 우리 극장 역사는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져 갔다. 원각사의 소실, 최초 연극 전용극장인 동양극장의 폐관과 해체, 드라마센터의 개관과 사유화,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의 관료화, 그리고 카페 떼아뜨르, 에저또소극장, 민예소극장, 실험소극장 등의 탄생과 소멸을 거쳐, 2014년 현재 대학로와 인근 지역의 연극 관련 극장은 200여개에 이르고 있다. 연극인 스스로도 이 수치를 대할 때마다 다소 놀라곤 한다. 왜냐하면 1981년에 문예회관 대․소극장(현재 아르코예술극장 대․소극장)이 개관한 이래 한 세대 만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1981년 아르코예술극장이 개관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연극인회관에 대한 연극인의 절실함이 반영되어 서울대 문리대 자리인 현재 위치에 개관하게 되었다. 개관 첫해인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소극장 평균 공연일수가 280일에 이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연장의 절대적 필요성이 읽혀지고 있는 단적인 예인 것이다. 하물며 30년이 지난 지금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아진 극단 수를 감안해볼 때 이와 같은 공공성을 지닌 공연장이 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오죽하면 서울연극협회에서 자체자금으로 시중 대관료의 60%를 인하하여 2012년에 예술공간 서울, 2013년에 예술공간 SM을 운영하고 있겠는가! 오는 8월에는 (구)우석레파토리를 인수하여 새로운 이름으로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문화예술정책과 육성책이 발표될 때마다 그 중심에 현장 예술인들의 목소리와는 동떨어진 사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 화들짝 놀라곤 하였다. 가까운 예로 국립극단 예술 감독 지명에 따른 혼란은 관료주의의 전횡을 예고하는 서막에 불과했다. 이어서 터져 나온 한국공연예술센터-이하 한팩-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의 귀속 발표는 한마디로 앞서 언급한 ‘아무도 권하거나 강요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기적처럼 성을 쌓다가 허물어뜨리고, 걷고 또 걷다 넘어지고, 그야말로 독립운동 하듯이 끈질기게 분투하고 생존해온’ 현장 예술인들을 깡그리 무시한 처사이다. 이는 바로 예술인들을 위한 행정이 아닌 관료 자신들을 위한 행정의 극치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우리의 역사에 남을 것이다.

 

대학로에서도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한팩은 공연예술진흥 사업 및 공연문화의 보존․계승․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2010년에 출범하였는데, 아르코예술극장 대, 소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대, 소극장, 대학로예술극장 3관을 운영하는 한국공연예술을 대표하는 공공기관으로서는 유일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 서울연극인들이 지켜본 이제까지의 한팩의 운영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대다수의 민간 극단이 겪고 있는 말할 수 없이 열악한 극장 대관에 대한 압박감을 해소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한팩이 자체 기획공연까지 함으로써, 본래의 설립 목적인 공공성을 저해하고 현장의 정서를 저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더더욱 불과 4년도 되지 않아 다시 원점으로 돌리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창조적 문화콘텐츠의 싹을 뭉개버리는 한심한 문화 융성정책의 결정판이라는 하겠다.

 

대학로는 과거 30년 전과 비교 불가능한 임대료 상승의 여파로 대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오히려 단기간 공연이 확산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길은 한팩의 기능을 지금보다 월등히 높여야 한다. 사실 이 한팩을 탄생시킨 주체는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학로연극지대를 일구어 낸 현장 전문연극인들의 공이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팩을 현장 전문 예술인들에게 돌려주라는 것이다.

 

남산예술센터인 구 드라마센터에 대해서도 우리 연극인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드라마센터는 1958년부터 추진되어 약 4년만인 1962년에 문을 열었는데, 이 드라마센터는 유치진의 노력과 기부, 록펠러 재단과 한미재단의 10만불 원조, 정부의 부지 협조, 그리고 사회각계각층에서 건축자재 등을 기증받아 세익스피어의 <햄릿>으로 개관 공연을 하였다. 하지만 공연장 유지는 쉽지 않았다. 제작극회와 실험극장과의 전속계약, 재즈 공연, 미8군 쇼, 영화 상영, 극단 드라마센터 등에 의해 공연을 이어 가게 된다. 이렇게 되자 1966년 한국일보에서 드라마센터의 사유화에 대한 비판의 기사가 나오게 되자 유치진은 “드라마센터는 절대로 사유화되지 않습니다. 우선 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관절 그 건물이 사복을 채울 만한 건더기가 됩니까?” 라고 강하게 부인하기에 이른다. 이런 와중에 연극계의 숙원이었던 연극아카데미도 발족하였는데, 1974년에 서울예술전문학교로 인가 받아 1979년에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성장하였다. 이때부터 이미 유치진이 극구 부정하였던 사유화는 완성되어 버렸다. 이후 서울예술대학교로 개명하고 드라마센터를 떠나 2001년에 안산으로 완전히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서울시에서 남산예술센터를 매년 10억원을 임대료로 지불하면서 운영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산예술센터는 이제 연극인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남산예술센터는 이 땅의 연극인들의 소망을 안고 탄생한 최초의 연극인을 위한 연극전용극장이었다. 물론 유치진의 노력은 우리 연극계에 그 무엇으로도 폄하될 수 없는 사안이다. 하지만 그가 고백하였듯이 남산예술센터는 절대로 사유화 되어서는 안 되는 연극인 모두의 고향과 같은 곳이며, 전문예술인들에게 환원하는 것이 그의 유지를 받드는 길일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남산예술센터-구 드라마센터-, 금천예술공장, 문래 예술공장, 신당 창작 아케이드, 연희 문학창작촌, 성북예술창작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예술정책임에 틀림없다. 이 중에서 남산예술센터와 한팩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연극인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고향과 같은 곳이기에, 그리고 설립 당시의 모습을 지금까지 잘 보존하고 있는 이곳은 연극인들의 품으로 되돌려줄 때가 왔다고 본다.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변변한 연극 박물관 하나 없다. 이곳이 연극박물관으로 꾸며진다면 연극인이면 그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장 전문 예술인들이 온 마음을 다하여 수준 높은 창작의 의욕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사용 가능한 곳이기도 한 곳이다.

 

한팩과 남산의 드라마센터-남산예술센터-를 현장 전문 예술인들에게 돌려주어라. 그것이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문화융성’에 다가갈 수 있는 진정한 첫걸음일 것이다.

 

 

 

One thought on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 7월 논평] 한팩과 드라마센터를 현장 전문 예술인들에게 돌려주어라

  1. 천만번 찬성할 좋은 의견이다. 그런데 나는 이에 대한 추가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왜? 우리만의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대극장공간을 유지할 제반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못하다.
    1. 우선 명동예술극장만 해도 창작극을 공연하면 무대가 꾸며지질 않는다. 이건 남산예술센터의 운명에서도 알 수 있다. 창작극의 육성을 내세웠지만 ‘개점휴업’상태다.
    2. 다음은 연출가의 능력의 부족이다. 이런 커다란 무대를 꾸려갈 연출력이 부족하다.
    3. 연기력도 마찬가지다. 발성이 안 돼 인물창조가 불가능할 정도다.
    4. 이런 대극장을 주면 그 다음에 운영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5. 그리고 대극장을 어떻게 관객으로 채울 것인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대극장이 적어 이에 대한 기술축적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으나, 아르코대극장, 대학로 예술극장, 남산, 국립극장, 명동극장 등이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는 형편에서 한번도 이런 디테일에 대해서는 의견을 나눈적도 없고, 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도, 자체의 반성이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적도 없다.
    부모로부터 큰 아파트를 물려받아도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없어 들어가 살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립극단의 많은 예산(57억)으로 이제는 ‘헛짓’그만하고 장래와 미래를 준비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지원금을 되지도 않을 소극장 제작비로 그만 탕진하고, 미래를 위해서 개인들의 기량과 기술습득을 위해서 써야 한다. 왜? 이제는 소극장으로는 좋은 관객을 모을 수 없다. 발전을 기약하기에도 한계점에 도달했다.
    배우들만 해도 그렇다. 학교교육이 부실하면 재교육이라도 제대로 시켜서 대극장에 세워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국립극단은 많은 예산을 조잡한 공연으로 탕진하고 있으며, 외국이나 국내에서라도 새로운 안목의 교육자를 불러야 하지 않는가? 기본적이 기술과 재능이 없으니 대극장 공연이 되지를 않는다.
    이런 형편이라면 한팩이나 남산을 주어도 고민이다. 명동극장공연의 관객수준이 이제는 국립창극단 관객수준만큼도 안 되는 것은 현장인들이 기본기가 없이 무대에 나서기 때문이다. 정책적 비전과 기술적 비전을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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