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최세아

외로운 자들의 사랑법: 연극 <봄날은 간다>

 

 

최 세 아

 

 

작: 최창근

연출: 김경익

출연: 길해연, 김지성, 정석원

공연일시: 2014. 06. 16 ~ 07. 20.

공연장소: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

 

 

 

<봄날은 간다>는 제38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무대 미술상, 남자 연기상 3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2014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다시 무대에 올랐다.

 

대학로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리는 최창근 작가의 데뷔작인 <봄날은 간다>는 극 초반부터 서정적인 언어로 점철되어 있다. “얼마나 더 가야하냐”는 아내의 물음에 “봄볕 한 줌 만큼만”이라고 답하는 남편의 대사는 공연장에 들어선 관객들의 시간을 느리게 맞춰놓는다. 이와 같은 시(詩)적인 언어는 무대와도 잘 어울린다. 초단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과는 달리 바람 소리, 풍경 소리가 들리는 고즈넉한 무대는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다”는 극 중 아내 대사처럼 관객들로 하여금 일상에서 벗어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공연에 젖어들도록 이끈다.

 

무대는 작은 언덕의 산길이다. 어머니의 묘소에 성묘하러 가는 젊은 부부는 이곳에 잠시 머물러 과거 자신들의 사랑을 회상하고, 추억한다. 극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진행되는데 그 기억의 중심에는 항상 어머니가 존재한다. 따라서 부부의 과거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고아원에서 어머니가 남편을 데리고 오면서 관계가 시작된다. 도처가 까마득한 절벽이고, 깊은 수렁이었던 남편에게 어머니는 “가족은 한 곳에 모여서 살아야 하는 법”이라며 손을 내민다. 태어나면서부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가족이기에 남편은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든든함을 느낀다. 극이 중반까지 진행되는 동안 어머니의 친딸인 줄로만 알았던 아내(수아) 역시 아버지의 전처소생임이 밝혀진다. 따라서 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이 셋은 비혈연 관계로 맺어진 가족임이 드러난다. 가족 해체로 인하여 1인 가족, 비혈연 가족, 부부 중심의 가족 등 새로운 가족 형태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는 요즘,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첫 공연이 2001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당시 <봄날은 간다>는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질서를 벗어난 새로운 가족 양상을 제시한 공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혈연 관계로 묶인 이들은 가족이 되어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으며 살아간다. 공허한 마음이 허기로 이어져 ‘배고파’를 입에 달고 살았던 남편도, 남편의 사랑이 아픈 몸에 대한 동정에 가까운 연민은 아닐까 걱정하는 아내도, 그리움인지 슬픔인지도 모르는 오래비(수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꽁꽁 숨겨놓고 살다가 한꺼번에 확 쏟아 붓고 마는 아픈 햇살 같은 사랑을 하는 어머니도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모여 신 개념의 가족을 구성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지지대가 되어 살아간다. 정들고 나면 거기가 고향이듯, 정 주고 살면 그게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소소한 행복과 친밀감을 느낀다. 그러나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이들의 삶에 균열이 일어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만나 ‘오랫동안 아파한 시간’을 겪어야 진정한 가족이 되듯이 이복 남매간에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눈치 채면서 이들도 한차례 갈등을 겪는다. 다락에 잠들어 있는 남매를 때려도 보고, 타일러도 보지만 이복 남매의 사랑은 시련 속에서 더욱 견고해질 뿐이다.

 

천둥 번개가 치던 밤, 가족으로 생각했던 어머니의 입에 ‘남’이라는 말을 듣고 남편은 집을 나간다. 남편이 없는 집에서 아내는 함께 떠나지 않은 것을 후회하다가 급기야 어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마음에 잠시 품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런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 본 아내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죄의식에 시달린다. 남편이 다시 돌아왔을 때, 몸져누운 어머니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남사당패에서 만났던 오래비(수아 아버지)가 기별도 없이 떠나 핏덩이를 안고 오기까지 그 오랜 기다림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이 기다림으로 다시 바뀐 그 세월이 트라우마가 되어 아내(수아)에게만큼은 자신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 어릴 때 심하게 앓은 이후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는 몸이 된 아내(수아)를 차마 맡길 수 없었던 안타까운 마음이 혼재되어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내(수아)를 부탁하고 눈을 감는다.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가는 여정은 인물들이 화해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는 곧 정서적 유대감으로 묶이는 진정한 가족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고도 내 어매요?”라고 악을 쓰는 자식 앞에서 힘없이 “내가 너한테 뭘 그리 잘못했냐”고 되묻는 어머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아픈 시간을 부여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구체적인 누군가로 인해 아팠다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깝기 때문에 쉽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할퀸다. 갈등에 근원적인 해결보다는 서둘러 봉합해버리려 하는 것은 가족의 속성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이해하고, 쉽게 버리지 않을 거라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이 잠깐 품었던 ‘무슨 일이든 일어나길 바란’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여기는 아내는 뒤늦게 어머니의 묘소에서 용서를 구한다. 그런 아내에게 어머니의 영혼은 “그 때는 모두가 다 힘든 시기였다며” 다독이는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도록 한다.

 

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거닐던 곳은 언덕이다. 인물들이 겪은 모든 감정이 결국 어머니의 사랑으로 품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듯 무대 중앙에 위치한 언덕은 마치 어머니가 한복 치마를 입고 앉은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여인의 젖가슴 같은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결말이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여 울림을 준 것에 큰 박수를 보내지만 이들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한없이 아쉬웠다. 이들 가족이 비혈연 관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부부 역시 입양을 통해 새로운 가족 관계를 충분히 형성할 수 있었다. 작가가 그러한 가능성을 염두 해 두었다는 것은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앞으로 새로운 가족이 더 늘텐데…” 라고 말하는 인물의 대사는 새로운 가족의 양상을 또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공연은 아내가 남편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봄날은 간다>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봄은 정서적 풍요를 경험했던 누군가를 사랑했던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 시간 안에  놓여있는 우리는, 혹은 앞으로 놓일 우리는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봄날은 간다>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봄날의 모습을 조금은 느린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배우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연이다. 남은 기간 동안에도 공연장을 찾는 관객의 마음에 잃어버린 정서를 찾아줄 수 있는 공연이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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