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한철이다/ 김태희

계절과 계절의 사이, 흔들리는 인생에 대하여

김태희

 

작 연출 : 황이선

드라마터그 : 이주영

단체 : 공상집단 뚱딴지

공연일시 : 2014. 10.15 – 11.2

공연장소 : 선돌극장

관극일시 : 2014/10/23

 

이 계절에서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순간을 느껴본 적 있는가. 계절이란 어차피 연속된 시간의 개념이라, 잊고 있으면 어느새 다음 계절이 찾아오고 정신 차려 보면 슬며시 다른 얼굴로 변하기 마련이다. 문득 유난히 높아진 하늘을 목격하거나, 유리에 맺힌 찬 이슬을 발견한다면 그제야 비로소 계절이 변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유난히 자신이 도래할 순서임을 티내는 계절이 있는데, 그건 바로 봄이다. 황이선 작 연출의 <봄은 한 철이다>는 바로 그 순간, 봄이 도래하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 작품이다.

흔히 인생에 봄이 왔다고 하면, 새싹이 돋아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그 순간을 상기할지도 모르겠다. 긴 겨울처럼 지리멸렬한 인생이 지나가고, 꽃처럼 인생이 피어나는 그 순간을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보기 좋게 그런 믿음을 배반해버린다.

작품은 꽃샘추위가 시작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3월, 봄이긴 하지만 새벽에는 영하 5도까지 내려가고 여전히 보일러를 돌려야만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하는 계절이다. 겨울도 아니고 완연한 봄도 아닌 계절처럼, 한철이 살고 있는 공간도 정체성이 모호하다. 한철 부부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아이 둘을 기르며 살아간다. 이들은 재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데, 변변한 공장도 하나 없이 삶도 노동도 모두 거실에서 이루어진다. 마치 겨울도 봄도 아닌 계절처럼, 한철은 이 공간에서 일에 집중 할 수도 휴식에 집중 할 수도 없다. 휴식의 공간이자 노동의 공간인 집은 그 자체로 한철의 삶을 대변한다. 그의 삶은 지상도 아니고 지하도 아닌 집처럼, 완전히 나락에 빠져있지도 완전히 바깥 세상에 속해있지도 않다.

한철은 열심히 일을 해서 지금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만, 삶의 무게는 그를 짓누르고 있다. 사춘기 딸의 반항도 그를 힘들게 하고, 점점 상태가 악화되는 어머니도 그를 힘들게 한다. 자꾸 집으로 전화를 하는 채권자 박사장도 그를 압박하고, 무엇보다 가장으로서 무기력하다는 자괴감이 그를 힘들게 한다.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추운 날씨를 빙자해 어머니의 죽음을 방기하기로 결심한다. 신파나 흔한 이야기로 흘러 갈 수 있었던 드라마가 반전을 일으키는 것은 이 대목에서다.

애초에 아들 한철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머니가 얼어 죽기를 바라면서 두꺼운 솜이불을 가져다줄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보일러 수리공에게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머지 식구들을 모두 전기 이불위에서 자게 하는 그의 모습은, 분명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철의 바람은 아들 우리가 할머니의 품에서 잠들면서 수포로 돌아간다. 할머니를 좋아하는 우리는 밤새 전기요에서 나와 할머니의 이부자리에 들어갔고, 이 둘은 밤새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추위를 이겨낸다. 죽을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살아나면서 한철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한철을 둘러싼 긴장감은 그렇게 허무하게 이완되어 버리고 만다.

작품의 긴장감을 책임지는 것은 사실 한철이 아니라 한철의 딸 한들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한들은 사사건건 아빠 엄마와 갈등을 빚는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한들의 분신이 나타나 한들과 소리 지르고 싸우고 머리채를 잡고 몸싸움을 벌인다. 다른 인물들의 서사가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면 한들의 서사만 연극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들은 등장부터 자살을 생각하거나, 폭식증/거식증을 암시하며, 잔잔한 극의 흐름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끊임없이 궁금증을 유발하던 한들의 행동이, 사실은 박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해 빚어진 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객석은 충격에 빠지고 서사는 극단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사건은, 아버지가 할머니를 죽이려던 밤이 지나고 급하게 마무리 되어버린다. 한들은 전혀 아버지의 의도를 알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죽지 않음으로 인해 아버지의 긴장감이 해소되어버리자 – 사실은 둘의 서사는 전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함에도 – 한들의 내적 갈등 역시 눈 녹 듯 정리되어 버리고 만다. 한철과 아내는 가난하지만, 자식에겐 매우 헌신적인 부모다. 한철은 돈이 없어도 딸 한들의 교복만은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어 하며, 그런 한철에게 아내는 “그저 들이 밖에 모르지”라며 농을 건넨다. 요컨대, 한들은 한철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한들이 겪은 일련의 사건은 들만의 것일 수 없고, 한철의 인생에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한들의 서사와 심경 변화가 한철의 서사와 긴밀하게 엮여야만 하는 이유는 이 지점에 근거한다.

극중 인물들은 습관처럼 봄에 대해 이야기하고 봄을 기다린다. 마치 봄이 오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것 같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듯이, 인물들은 봄이 되면 재봉일이 잘 풀려 돈이 들어올 거고, 우리의 상황도 더 나아질 것 같다는 식의 대사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은 순진한 바람일 뿐이다. 어머니가 죽지 않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 될 리도 없고 없던 돈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작품 마지막에 암시되듯, 딸 한들이 박사장에게 성추행 당했음을 아버지에게 고백할 예정이다. 박사장은 한철의 사업 파트너이자 채권자이기 때문에, 한철의 삶은 앞으로도 더 고단하고 지리멸렬해질 예정이다. 코앞에 닥칠 일은 전혀 모른 채, 안도하는 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씁쓸한가. 결국 삶이라는 게 늘 이렇게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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