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공연총평/ 박정기

박정기의 공연산책 2014년 11월 공연총평

 

박정기

 

11월에는 각 극단의 열정과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 많이 공연되었고, 제14회 2인극 페스티벌과 서울연극협회 각 지부의 공연이 이어졌다. 11월 공연작 중 우수작과 서울연극협회 가 지부의 공연을 평하고, 2인극 페스티벌은 별도로 평하겠다.

1, 극단 노을의 조지 오웰 원작, 전형재 각색, 송미숙 연출의 <몰리의 리본>

노을소극장에서 극단 노을의 조지 오웰 작, 전형재 각색, 송미숙 연출의 <몰리의 리본>을 관람했다.

<몰리의 리본>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동물농장>을 재창작한 연극이다.

내용은 어느 장원 농장에서 평소에 소홀한 대우를 받고 있던 가축들이 반란을 일으키라는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호소에 힘입어 반란을 일으킨다. 농장주 존스와 관리인들을 내쫓고 동물들 스스로가 농장을 경영한다. 농장의 이름도 <동물 농장>을 바꾼다. 비교적 지능이 발달한 돼지인 나폴레옹, 스노우 볼, 그리고 스퀼러의 지도와 계획 아래 모든 동물들은 평등한 동물공화국 건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돼지들의 주도하에 일요회의도 열고 문맹퇴치의 학습시간도 갖게 되어 말과 오리새끼에 이르기까지 주인의식을 갖고 농장의 운영에 참여하게 되어 그야말로 평등의 이념에 입각한 이상적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풍차 건설을 계기로 주동인물들 간의 권력투쟁이 노출된다. 이상주의자 스노우 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축출된다. 나폴레옹은 간교한 스퀼러를 대변자로 내세워 동물들을 설득도 하고 조작도 하며 개 9마리를 앞장 세워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그야 말로 완전한 독재체제를 세운다. 농장 운영의 방침도 바꾸어 중의를 모으던 일요회의도 폐지하고 모든 일을 나폴레옹과 그의 측근들에 의해 임의로 결정하며 풍차의 건설을 빙자해서 동물들의 자유를 허물어뜨리고 존스가 다시 쳐들어온다는 위험과 스노우 볼에 대한 반동 낙인을 동물들의 내적 불만을 외적인 공포 분위기로 제압한다. 돼지들은 불평하거나 항의하는 동물을 첩자로 몰아 숙청하기도 하고 옛날처럼 작업량을 늘이고 식량배급을 줄이기로 한다.

반면에 나폴레옹을 둘러싼 지배계급은 존스 시대의 인간보다 더 사치스러운 생활 속에서 호의호식한다. 그들은 존스가 살던 농가 집으로 이사해서 술을 마시고 침대에서 자며 옷을 걸쳐 입고 자기네 자녀용 교실을 짓고 심지어는 자기들의 적인 인간들과 상거래를 트고 돈을 만지기 시작한다.

<동물 농장>은 인간 사회의 악폐라고 주정하던 그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던 혁명은 완전히 타락되고 정책마다 위협과 명분만이 동원될 뿐이었다. 칠 계명도 수정되고 우직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만 하던 복서는 인간의 도살장에 팔렸고 마침내 그들은 두 다리로 서서 채찍을 들고 동물들을 감시한다. “두 다리는 나쁘고 내 다리는 좋다”던 구호는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욱 좋다”는 구호로 둔갑을 했고,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가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더욱 평등하다 로 바뀐 것이다

무대는 농장 안이다. 여러 개의 나무상자가 쌓여있고, 벽에는 커다란 칠판이 있다. 특히 상수 쪽의 벽면은 <동물농장>의 규례를 적어놓고 칠판으로 사용한다. 무대 좌우에 등퇴장 로가 있다. 음악은 출연자들이 합창으로 러시아 민요 스텐카 라진의 가사를 바꿔 부른다.

스텐카라친(Razin, Stepan Timofeyevich, 1630~1671)은 돈 강 유역의 부유한 카자크 가문 출신으로, 카자크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증오하여, 무산(無産) 카자크와 도망한 농노(農奴)를 규합, 1667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볼가 강 하류와 카스피 해 연안을 휩쓸고 다닌 혁명가다.

1670년 다시 볼가로 진출, 강어귀의 아스트라한을 점령한 뒤 북상(北上)하여 볼가 중류까지의 광대한 지역의 농민을 지주와 관리들에 대항하는 반란에 합류시켰다. 그러나 그해 10월 반란군은 심비르스크(현재의 울리야노프스크) 교외에서 정부군에 대패하여, 스텐카라친은 남쪽으로 도망쳐 돈 강에서 재기(再起)를 꾀하였으나, 이듬해 4월 체포되어 모스크바로 압송 처형되었다. 이 반란은 러시아 역사상 대규모의 농민반란으로서, 그는 민요(스텐카 라진)로도 불리어 오랫동안 러시아 농민의 기억에 남았다.

연극은 도입에 인형극 놀이를 하듯, 굴절된 동작의 오리여인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출연자들이 소나, 말, 염소, 돼지 등의 특징을 몸에 부착하고, 등장해 연극을 이끌어 간다. 가끔 1인 2역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각기 동물의 특성과 동작을 제대로 표현해 낸다. 합창을 하고 군무도 하면서 시종일관 친 대중적으로 공연이 계속되기에 관객과의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된다. 극의 내용이 흡사 익숙한 정치적 상황에 비견되고, 전개되는 과정이 관객이 직접 겪는 느낌으로 연출되고, 여성출연자의 리본의 상징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에 극의 몰입도가 상상이상이다.

박우열, 오주석, 전형재, 박지우, 이일균, 박새롬, 김동훈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독특한 성격창출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박미란, 조명디자인 이상근, 분장디자인 정지호, 의상 장주영, 조연출 이사랑, 기획 손동영 등 제작진의 기량이 드러나, 극단 노을의 오세곤 예술감독, 조지 오웰 작, 전형재 각색, 송미숙 연출의 <몰리의 리본>을 기억할만한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2, 국립극장의 알리기에리 단테 원작, 고연옥 재창작, 한태숙 연출의 <단테의 신곡>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알리기에리 단테(Alighieri Dante) 원작, 고연옥 재창작, 한태숙 연출의 <단테의 신곡(Divina Commedia)>을 관람했다.

고연옥(1971~)은 동아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부산MBC아동문학대상 소년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동화작가로 활동하였으며,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꿈이라면 좋았겠지>가 당선되어 희곡작가로 첫 발을 내딛었다. 시사월간지의 기자로, 방송국 시사프로 구성작가로 일했다. 2000년 결혼 후 서울로 이사하였고, 2001년 청송보호감호소의 수형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다룬 <인류 최초의 키스>가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올해의 우수희곡에 선정되었다.

2003년, 한 독거노인의 죽음을 통해 물질만능시대의 단면과 죽음의 의미를 짚은 <웃어라 무덤아>가 역시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03 대산창작기금 희곡부문에 선정되었다. 2004년 한국희곡문학상 수상하고, 2006년에는 극단 배우세상, 박근형 연출로, 제도권에서 일탈해 있다는 이유로 강간치사사건의 주범이 된 소년들의 이야기 <일주일>이, 극단 제이티컬쳐, 문삼화 연출로 한 하급장교를 통해 계급과 구조 속에 자아를 상실해 가는 군대 구성원들에 대한 <백중사 이야기>가 공연되었다. 그리하여 <인류 최초의 키스>, <일주일>, <백중사 이야기> 세 작품에 대해 ‘사회극 삼부작’, 혹은 ‘남성 삼부작’이라고 회자되었다. 2007년, 현대사회 공간의 이질성과 위험성을 다룬 <발자국 안에서>가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서울연극제에 출품되어 대상, 연출상, 희곡상을 수상하였고, 2011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희곡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엄마를 부탁해>, <내가 까마귀였을 때> <지하생활자들> 그 외 다수인 앞날이 기대되는 미모의 여류극작가이다.

단테(Alighieri Dante) 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최고의 시성이다. 그에 의해 이탈리아 문학은 물론 라틴 문학에서 독립된 유럽의 방언 문학이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다. 19세기 이탈리아의 시인이었던 우고 포스콜로는 단테를 가리켜 전 인류의 시성이라고 했다. 단테는 생애 동안(1265~1321) 수없이 많은 글을 썼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유명한 <신곡 La divina commedia>(1310~21)이다. 사후의 세계를 편력하는 일종의 환상여행기 같은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작품의 저작 연대는 신비의 베일 속에 감춰져 있지만, 대략 1300년 이후로 추정된다. 인간의 선과 악, 그에 따른 은총과 벌의 갖가지 양상들이 작품 구석구석에 배어 있으며 환상과 역사, 신화와 종교, 온갖 학문과 예술 등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신곡>은 죄와 벌의 세계를 다룬 <지옥편 Inferno>, 전생의 죄를 말끔히 씻어내는 정화의 세계<연옥편 Purgatorio>, 환희와 은총, 그리고 하느님의 축복만이 존재하는 천상의 세계 <천국편 Paradiso>등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테가 정치적인 이유로 고국을 등지고 정처 없는 유랑생활을 하면서 집필했던 <신곡>은 모두 100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11음절 3연체의 정형시이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기조에 깔고 시를 썼으며 시에 시인 자신이 산문으로 해설을 붙여 <신생 La vita nuova>(1293)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사실상 <신곡>의 전편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탈리아어로 쓴 또 하나의 중요한 작품은 <향연 Il convivio>(1304경~07)이라는 철학적 수필집으로, 이 작품은 라틴어 시대에 보이티우스가 썼던 <철학의 위안 De Consolatione Philosophiae>(5권, 1473)과 형식·내용이 비슷하다. 단테는 <향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방법론으로 중세의 문화와 철학을 재점검하고 그 핵심을 정리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 작품을 통해 마침내 고양된 방언 산문을 완성한 셈이다. 그는 <신생>에서 시도했던 산문정신을 <향연>에서 발전시키려고 했는데, <신곡>에 나타나 있는 시정신이 그러하듯 단테는 중세의 시학과 수사학에 바탕을 둔 방언의 개발이라는 근대정신을 태동시켰다. 단테를 일컬어 중세의 막내, 근대의 맏형이라고 하는데, 이는 곧 중세문화에 뿌리를 내려 그 뿌리에서 영양을 취해 새로운 시기의 기운을 꽃피웠다는 뜻이다. 이것은 <신곡>·<신생>·<향연>이 라틴어가 아닌 방언으로 씌어져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신곡>의 구성은 단순하다. 일반적으로 단테 자신으로 추정되는 한 인간이 기적적으로 저승세계로 여행 할 수 있게 되어 지옥·연옥·천국에 사는 영혼들을 찾아가게 된다. 그에게는 안내자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이고 또 하나는 ‘천국’을 소개하는 베아트리체이다.

<신곡>의 구조를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는 곡(曲 canto)이다. 이 시는 100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크게 <지옥편>·<연옥편>·<천국편>의 3편으로 나뉘어져 기법상 각 부마다 33개의 곡이 있다. 그러나 <지옥편>에는 시 전체의 서문 역할을 하는 곡이 하나 더 있다.

단테의 지옥으로의 여행은 세상을 떠나는 영혼의 행동을 나타내며, 또한 이것은 우연히도 그리스도 자신이 죽은 계절과 일치하고 있다.<지옥편>은 잘못된 출발을 나타내는데, 이곳에서 주인공 단테는 타락한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데 다소 방해가 되었던 해로운 가치들을 깨닫는다. 이러한 <지옥편>의 복귀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단테가 지옥에 떨어진 망자들의 명부를 보는 것으로 상상력이 확대된다.

<연옥편>에서는 주인공의 영혼이 갱생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시작된다. <연옥편>에서는 본보기로 나타나는 인물이 거의 없다. 회개자들 모두가 인생의 길을 따라 순례하는 순례자들이다. 이상적인 그리스도교적 심상의 생활을 순례행각과 가장 어울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연옥편>에서 단테는 구이니첼리와 만난 다음 단테는 바로 지상 낙원에서 오래도록 기다린 베아트리체와 재회하게 된다. 단테의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는 이곳에서 다른 안내자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베르길리우스는 한 사람의 명문가를 넘어선 로마 제국의 시인이자 단테에게 대단히 중요한 현자(saggio)였고, 도덕적 스승이었다.

<천국편>에서는 진정한 영웅적 실현이 이루어진다. 단테의 시는 죽음을 거부한 과거의 인물들을 묘사한다. 고조부인 카차구이다, 성 프란키스쿠스, 성 도미니쿠스, 성 베르나르두스 같은 인물들을 만나면서 단테는 자신을 승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천국편>은 실현과 완성의 시이다. 그것은 앞의 2편에 이미 묘사되었던 것을 실현하고 있으며, 미학적으로는 기대와 회고로 이루어진 정교한 시 체계를 완성하고 있다.

무대는 배경에서부터 무대전면까지 커다란 미끄럼틀 같은 급경사의 바닥을 조성하고, 거기에 군데군데 직사각의 함정 같은 공간을 만들어 출연자들의 등퇴장 로가 된다. 전봇대 같은 철제조형물 기둥을 바닥에서 천정까지 세워 출연자들이 기어오르고 또 내려오기도 하며, 유리로 된 고층건물의 수많은 창문과 창살에 매어달린 인물군상, 그리고 그 전체가 무대 오른편으로 움직여 모습을 감추도록 연출된다. 배경에 영상으로 투사된 안개와 구름이 분위기 상승을 주도하고, 출연자의 분장과 의상 또한 <지옥> <연옥> <천국>에서의 인물군상에 제대로 어울리는데다가, 오케스트라 박스에서의 연주자들의 연주는 물론, 오페라 가수, 창극인, 뮤지컬 가수의 열창은 관객을 무아지경으로 이끌어 간다.

단테 역의 지현준은 지난번 <길 떠나는 가족>에서 이중섭 역으로의 호연 이후 이번 <단테의 신곡>에서의 호연과 열연으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비르길리우수 역의 정동환은 금년 <메피스토>에서 보인 발군의 성격창출 물론 이번 공연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다.

베아트리체 역의 김미진… 이런 여배우가 있었다니… 그녀는 열창과 열연으로 관객 모두의 베아트리체가 되는 느낌이었다.

프란체스카와 사피아 역의 박정자, 나이 지긋한 그녀가 이번 공연에서 보인 관능의 화신 같은 모습은 그녀의 연기력의 극치를 유감없이 내보인 호연이라 평하겠다.

미노스 역의 김금미, 카론 천사 역의 이시웅은 그들의 기량이 세계정상임을 확인시켰고, 하드리아와 로메오 역의 최원석, 단테의 내면과 늙은 단테 역의 김은석, 우골리노와 천사 역의 오승용, 파울로와 마르코 역의 박종태는 중후한 기량으로 이번 공연의 지주 역을 해냈다.

대장마귀 역의 서정금, 루시페르와 천사역의 김인휘는 탁월하고 놀라운 성량으로 관객의 귀를 티우는 기량을 발휘했고, 자살나무와 오비초 역의 황성대와 자살나무와 친자식 역의 이기돈도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필리포와 굴리엘모 역의 심완준, 마귀, 미친궁둥이, 아마타 역의 황순미, 마틸다, 마귀엉킨수염, 안셀무치오 역의 이지혜, 가도 역의 최순진은 연극의 주춧돌 역할을 해냈고, 자작나무, 의붓자식 역의 전운종, 마귀 썩은 젖,포레세 역의 권겸민, 마귀, 성난발톱 역의 고승조, 소녀 역의 김경민, 치암폴로 역의 박성우, 미라 역의 남궁혜윤, 천국의 시민 역의 박정우 소년과 천국의 시민 역의 김지율 소녀 등 출연자 전원의 연기는 한국연극의 발전적 앞날을 예측하기에 충분했다.

오케스트라 지휘 박상후, 바이올린 악장 박진희, 김나형, 안정선, 이소라, 민상아, 첼로 주윤아, 김복경, 박동규, 더불베이스 이지아, 퍼거션 김유정, 피아노 이승윤, 가야금 손주희, 피리 천성대의 연주가 극에 절묘하게 어울려 분위기 창출을 주도했다.

자문 박상진, 드러마터그 조만수, 작곡 및 음악감독 이태원 홍정민, 오케스트레이션 채석진, 무대디자인 이태섭, 조명디자인 김창기, 안무 이경은, 의상디자인 김우성, 소품디자인 강민숙, 분장디자인 백지영, 영상디자인 최찬숙, 음향디자인 김호성, 음향효과디자인 지미 세르, 무대협력디자인 박은혜, 무대감독 안훈기, 조연출 김 정 강소희 김지현 등 제작진의 기량과 열정이 돋보여, 국립극자의 알리기에리 단테(Alighieri Dante) 원작, 고연옥 재창작, 한태숙 연출의 <단테의 신곡(Divina Commedia)>을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3, LG아트센터와 에이콤인터내셔날 제작 게오르그 뷔히너 원작, 크리스 브로더릭 극본 작사, 롭 셰퍼드 크리스 브로더릭 황규동 작곡, 윤호진 연출의 <뮤지컬 보이체크>

LG아트센터에서 (주)에이콤인터내셔날의 게오르크 뷔히너 원작, 크리스 브로더릭 극본 작사, 롭 셰퍼드 크리스 브로더릭 황규동 공동작곡의 <뮤지컬 보이체크>를 관람했다.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는 24세에 요절한 천재적인 작가다. 그는 독일에서 1813년에 태어나고 1837년에 스위스에서 사망했다.

뷔히너는 소시 적부터 글쓰기는 재주가 있었다. 1823년 3월 학교 축제일에 <과일을 먹을 때 주의하세요! (Vorsicht bei Genusse des Ebstes!)>라는 라틴어로 글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낭독발표하고, 1830년 9월에는 자신이 다니던 김나지움의 공식 축제에 <카토에 관한 연설, 자살 옹호론(Rede über Cato>을 발표했고, 1831년 김나지움의 졸업식에서 <메네니우스 아그리파 (Menenius Agrippa)>라는 이름으로 산상에 모인 민중들이 로마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글을 라틴어로 발표했다.

다름슈타트에서 김나지움을 마친 그는 1831년부터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의 의학부에서 의학과 자연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 시절에 그는 자신이 세를 들어 살던 집 주인(목사)의 딸인 빌헬미네 얘글레 Wilhelmine(Minna) Jaegle와 비밀리에 약혼을 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2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그는 1833년에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 기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계속했는데, 이때 그는 역사와 철학도 아울러 공부했으며, 한편으로 정치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즉 그는 1834년에 인권협회를 창설하고, 헤센의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헤센 대공국의 반동적 사회 상황에 저항했다. 1834년 7월에 뷔히너는 부츠바하 출신의 학교장 바이디히 (F. L. Weidig)와 함께 ‘헤센급전’이라는 독일 최초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띤 전단을 작성하여 농민들에게 살포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기센을 떠나 다름슈타트에 있는 부모의 집에 숨어살면서 체포된 동료들의 구출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이 무렵인 1835년 2월에 그는 첫 희곡 <당통의 죽음 (Dantons Tod)>을 썼다. 그러나 같은 해 3월에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후 독일에서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슈트라스부르크로 도망한다. 6월에는 뷔히너에 대한 공개수배로 더 이상 고국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지만, 7월말에 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구츠코 Gutzkow의 도움으로 <당통의 죽음>이 독일에서 출판된다. 동년 5월에 중편소설 <렌츠 (Lenz)>를 집필해 9월에 완성하고, 10월에는 빅톨 유고 Victor Hugo의 드라마 두 편 <Lucrèce Borgia>와 <Marie Tudor>를 번역한다. 그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한편으로 돌 잉어의 신경조직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에 이 연구논문을 취리히 대학의 철학부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다. 1836년에 들어 뷔히너는 세 차례에 걸쳐(4월 13일, 4월 20일, 5월 4일) 슈트라스부르크의 자연역사협회에서 물고기의 신경조직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초여름에는 <레옹세와 레나 (Leonce und Lena)>를 집필하고 <보이첵 (Woyzeck)>의 구상작업에 들어간다. 같은 해 9월에 박사학위논문이 통과되어 취리히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다. 10월에는 거처를 취리히로 옮기고, 11월 초에 <두개골신경에 관하여>라는 테마로 취리히 대학에서 시험강의를 하고, 겨울에 <보이첵>을 완성한다. 1837년 1월말에 그는 치명적인 병에 걸리고, 2월부터는 병석에 눕게 된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 그의 의식은 혼미상태에 들어가고, 2월 19일에 뷔히너는 더 이상 깨어나지 못하고 영면한다. 이틀 후 그는 취리히의 크라우트 가르텐이란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보이첵>의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프레드리히 요한 프란츠 보이첵, 육군 일등병 제 2연대 2대대 4중대 소총수,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마리가 있다. 보이첵은 군대에서는 상사의 면도를 해 주며, 의사의 명령에 따라 매일 완두콩만 먹고, 소변 량이나 감정의 상태를 점검 당한다. 가난하기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삶의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나약한 인간 보이첵을, 의사는 자유의지를 상실한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고, 자신의 실험용 집토끼인양 이용하고 학대한다. 이렇듯 계속되는 정신적, 육체적인 착취로 인하여 보이첵은 점점 극심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친 보이첵과 더불어 마리는 자신의 답답한 현실 속에서 어떠한 탈출구도 찾지 못한 채 정신적 고립감에 지쳐간다. 어느 날, 한 가설무대에서 악대장은 보이첵과 함께 온 마리에게 눈독을 들인다. 악대장은 마리에게 야성적 손길을 뻗친다. 마리는 육체적, 경제적 능력을 지닌 매력남 악대장의 유혹에 이끌려 그와 통정을 하게 된다. 보이첵은 악대장과 마리의 관계를 눈치 챈다. 그러나 보이첵으로서는 어떤 항의나 항변도 못하고 그저 가슴에 묻어둘 뿐이다. 의사와 중대장은 그러한 보이첵을 조롱하고 보이첵에게 야유를 퍼붓는다. 견디다 못해 보이첵은 마침내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사랑하는 여인인 마리를 살해한다.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는 같은 사건을 소재로 소설 <카르멘>을 썼다. 메리메의 카르멘은 1845년에 발표되었지만, 오랫동안 비평가들에게 묵살당해 온 불운한 작품이었다. 메리메의 사후 비제가 <카르멘>을 오페라로 만들어 성공함에 따라 메리메 원작 소설 <카르멘>의 진가도 널리 인정받게 되었고. 뷔히너의 희곡 <보이체크>도 새롭게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비제는 오페라 <카르멘>의 초연의 실패로 요절했고, 뷔히너 역시 <보이체크>를 완성하지 못하고 요절했다. 모두 19세기에 발생한 일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태와 생활, 그리고 사람들의 자유분방(自由奔放)한 사고는 <보이체크>나 <카르멘>을 재평가하게 되었고, 드디어 21세기인 오늘날에는 <카르멘>은 세계도처의 극장에서 공연되는 최고의 인기 오페라가 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보이체크> 역시 마찬가지다.

무대는 하수 쪽에 커다란 목선의 바닥이나, 고층나무계단의 안쪽 같은 형태의 가리개를 2중으로 세우고, 상수 쪽에는 대로변 3층 목제 건물이 있고, 1층은 출입구로 보이고, 2층부터 방마다 베란다가 있고, 나무창살 난간이 있다. 장면변화에 따라 목제건물의 중앙부분이 무대중앙으로 돌출되면, 건물 이층의 침실과 어린이 요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면변화에 따라 3층 건물의 배경 막에 근접한 부분이 돌출되면, 층과 방의 칸칸마다 성매매업소 여인들의 관능적인 모습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3층 건물의 객석 가까운 부분이 돌출되면, 카페풍의 주점이 펼쳐지고, 상수 쪽 객석 가까이에서 한자 높이와 세자 폭 그리고 열두 자 길이의 단이 돌출되면, 군대 내무반의 일실이고, 단 위에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장난감이 놓여있다. 이 건물이 어둠에 쌓이면, 호수 가에 골 풀 풍경이 전개되고, 풀숲 사이로 통로가 보이고, 배경 막에 구름과 둥근달의 영상이 투사된다. 그리고 별도로 곡예단, 유랑극단의 이동무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배경의 달이 처음에는 부드러운 주황색이었다가 차츰 핏빛으로 변하고 후반부에는 은빛으로 변해 극의 흐름과 어우러진다. 대단원에는 황량한 골 풀만 보이는 호숫가의 공터로, 손수레에 관을 두 개 싣고 등퇴장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뮤지컬은 1부와 2부로 구성이 되고, 오케스트라 박스 안에 연주자와 연주석이 마련되고, 지휘자의 지휘하는 뒷모습이 보인다. 작중인물의 합창, 이중창, 독창, 그리고 춤이 이국적 정취를 풍기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창출에 따른 음색과 출연자들의 열창이 제대로 연출된다.

도입에 병사들의 행진과 함께 합창이 시작되고, 무대중앙에 집결하면서 뒤처져 들어오는 보이첵의 기운 빠진 모습과 이를 보고 상관이 기합을 주는 장면에 관객의 머리가 갸웃 둥 하면, 보이첵은 의사의 인체시험대상으로 일정한 대가를 받고 완두콩만 먹는다는 설정이고, 그 이유가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인체시험대상이 되었다는 노래로 전달이 된다. 의과대학에서 교수노릇을 하는 의학박사, 부대의 상관, 그리고 군악대의 대장이 등장하면서, 보이첵과 미모의 아내 마리가 아기를 데리고 나들이 하는 모습을 본 군악대장이 마리에게 음심을 품는 장면이 연출된다. 아름다운 보석목걸이로 마리의 환심을 사고 통정을 하는 군악대장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그런데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종당에는 보이첵의 귀에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조롱하는 군상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드디어 보이첵이 복수를 하려 결심하고 군악대장을 찾지만 오히려 두드려 맞고 실신하기에 이른다. 인체실험대상이 되어 의학박사로부터 받은 돈과 군악대장이 폭력의 대가로 던져준 돈으로 보이첵은 상점에서 칼을 한 자루 산다. 그리고 마리를 찾아가 자신을 배반했다며 칼로 찌른다. 마리를 죽인 후 보이첵은 노래를 부른다. 사랑하면 불륜을 저지른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그러나 죽인 뒤에 부르는 그런 노래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대단원은 보이첵과 마리의 시신을 담은 두 개의 관을 수레에 싣고, 보이첵과 친했던 동료 병사가 끌고 들어온다. 마을 여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오고, 다 함께 노래를 부른 후, 다시 관을 끌고 퇴장하는 장면에서 공연은 마무리가 된다.

김다현과 김수용이 보이첵, 김소향이 마리, 김법래가 군악대장으로 출연해 탁월한 가창력과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정의욱이 중대장, 박성환이 의학박사, 박송권이 동료병사, 김영완이 중사로 출연해 역시 열창과 열연으로 박수를 받는다. 임선애가 마을 노인, 김태현이 쇼맨으로 출중한 기량을 드러낸다. 임의재, 주홍균, 홍준기, 이 강, 정은규, 황경석, 이호진, 이종민, 구준모, 김아름, 김순주, 홍광선, 황한나, 김려원, 이아름솔 등 출연자 전원의 가창력과 열창이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관객의 찬탄과 환호를 받는다.

공동작곡 작사 황규동, 음악감독 편곡 장소영, 안무 이란영, 각색 한국어가사 안재승, 오케스트라 지휘 염규현, 음악조감독 정혜지 김지영 임진희, 드럼 노용진, 기타 윤행재 박상진, 키보드 윤정로 우종화, 바이올린 김지은 김민희, 첼로 연금영 이영림, 트럼펫 김남철 박도강, 혼 박종석, 트럼본 황교진, 베스 트럼본 조현신 등 연주자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뮤지컬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무대디자인 박동우, 조명디자인 고희선, 음향디자인 권도경, 의상디자인 이은경, 분장 헤어디자인 양희선, 소품디자인 임희정 등 제작진 모두의 기량이 드러나, LG아트센터와 (주)에이콤인터내셔날 제작,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 원작, 크리스 브로더릭(Chris Broderick) 극본 작사, 롭 셰퍼드(Rob Shepherd) 크리스 브로더릭(Chris Broderick) 황규동 공동작곡의 <뮤지컬 보이체크(Woyzeck)>를 기억에 길이 남을 음악극으로 만들어 냈다.

4, 극단 백수광부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의 <날아다니는 돌>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극단 백수광부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의 <날아다니는 돌>을 관람했다.

2014년 3월 9일 20시경에 날아다니는 돌인 운석(隕石)이 전국적으로 낙하현상이 목격됐다. 진주와 수원에선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차량 블랙박스에 그 영상이 포착됐다. 그 후 10일 진주 대곡면 단목리에서 첫 번째 운석이, 11일엔 미천면 오방리에서 두 번째 운석이, 16일엔 오방리에서 세 번째 운석 추정 암석이 발견됐다. 동영상을 분석한 한국천문연구원은 꼬리를 가지고 길게 떨어진 것으로 보아 우주에서 진입한 소행성이 대기권에서 불타 폭발하는 전형적인 유성(流星)이라고 밝혔다. 얼마 전 소치 동계올림픽 시 특별 제작된 7개의 운석메달 가격은 순금의 40배에 달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 관계로 운석 로또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아직도 진주 등지로 향하고 있다 한다.

​조선 성종 때(1492)에도 진주에 운석이 떨어진 일이 있었다. 경상도 관찰사 이극돈(李克墩)이 병사가 땅을 파고 찾아낸 복령(茯苓) 모양의 운석에 대해 조정에 보고하였다. 그러나 왕은 운석을 돈으로 보는 현대인들과는 달리 불길하게 여겨 “올려 보내지 말라”고 하였다.

​세종대왕의 경우, 1423년 황해도 강음현의 운석을 괴이한 현상으로 간주하고 해괴제(解怪祭)를 행하였다.隕(떨어질 운)에 石(돌 석)자를 쓰는 隕石(별똥돌)의 최초 출전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이다. 노나라 희공 16년(B.C.644) 봄, 송나라에 5개의 隕石이 떨어졌다. 같은 달, 본래 풍우를 잘 견디는 ‘익’이라고 하는 6마리의 바닷새가 바람에 밀려 송나라의 도읍까지 뒤로 날아갔다. 불길함을 느낀 송양공은 주나라의 내사 숙흥에게 그 조짐과 길흉을 물었다. 숙흥의 본심은 운석이란 길흉과는 무관한 자연의 조화라는 생각이었지만,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올해는 노나라에 불상사가 많겠고, 내년엔 제나라에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양공께서는 제후들을 얻어 패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거짓 답변하였다.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결과는 다음과 같다. 5개의 운석과 같은 수인 5년 뒤 초나라 사람들이 양공을 우(盂)에서 잡아 송을 쳤고, 양공이 항복을 청하자 풀어 주었다. 그리고 6마리의 바닷새와 같은 수인 6년이 되는 해에 초나라와 홍(泓)에서 싸워 송나라 군대가 대패하였다. 바닷새가 바람에 뒤로 밀려나듯 송나라가 패배한 것이다. 이로 볼 때, 운석은 로또가 아니라 하늘이 이 땅에 근신하라고 던진 경고 차원의 돌이 아닐까 돌아볼 일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운석과 세월호 사건을 연관 짓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연극 <날아다니는 돌>은 1억 5천 만 원을 주고 운석(隕石)을 구입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주인공 청년이 결혼비용 삼아 저축한 돈인데, 운석구입으로 날려, 결국 결혼상대인 여인은 그 금액상당 예금통장을 갖고 있는 다른 남성에게 시집을 간다는 이야기다.

주인공 청년은 80세의 숙부로부터 <날아다니는 돌>에 관한 이야기와 그 돌을 소유한 사람은 운명이 바뀔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강원도 산골로 그 돌을 소유하고 있다는 한 도서관지기였던 인물을 찾아간다. 열다섯 번을 찾아간 후에 청년은 소유자인 인물과 만나게 되고, 그가 소지한 고서 속에서 <날아다니는 돌>에 관한 역사적 내력과 접한다. 청년이 그 돌을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요구하니, 인물은 거절을 한다. 청년은 실망과 함께 돌아와 숙부에게 그 사실을 전한다. 그런데 숙부는 내세(來世)에 여인으로 태어나기를 바라고, 죽기 전까지 여성복장과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여성처럼 화장까지 한다. 그런 숙부의 임종일이 다가오면서 유언처럼 조카가 날아다니는 돌을 가져다 보여주기를 원한다. 청년은 결혼상대여인도 뿌리치고 다시 강원도로 향한다.

그 사이에 이웃에서 늘 상 청년과 여인의 동태를 은밀히 지켜보던 남성이 청년이 강원도로 간 사이에 여인을 유혹한다.
강원도에서 <날아다니는 돌>의 소유자인 인물과 다시 대면한 청년은 자신의 숙부 이름과 근황을 소개하고, 돌을 자신에게 팔라고 애원한다. 숙부의 이름을 듣고는 그 인물은 당장 청년과 함께 상경한다. 그리고 숙부에게 오랜만이라고 정중하게 절을 한다. 숙부 덕에 결국 청년은 돌을 구입하게 되지만, 상대여인은 청년의 빈 통장을 보고 당장 마음이 변한다, 그리고 1억 5천 만 원의 예금통장을 소유하고 있는 이웃남성에게로 달려가 혼례를 치른다. 물론 청년에게 청첩장을 쥐어주고. 이웃남성과 여인은 웨딩마치와 함께 결혼식을 올린다. 청년도 참석을 한다.

대단원에서 운명이 바뀐다는 <날아다니는 돌>과 고서를 넣은 나무함을 방 한가운데 놓고 텅 빈 방에 홀로 앉아있는 청년의 허탈한 모습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무대는 텅 빈 무대에 조명으로 원룸 건물 밀집지역을 나타낸다. 무대바닥 한가운데가 주인공의 원룸으로 설정이 된다. 출입구와 통행금지 표지판이 객석 왼쪽 가까이에 있고, 배경 가까이에 접는 사다리가 있어, 통행금지 표지판을 한 남성이 등장해 배경 쪽에 가져다 버리고 사다리에 올라가 주인공을 지켜보는 이웃집 남성역을 하고, 주인공의 일기를 펴서 낭독하기도 한다. 무대바닥에 조그만 구멍을 만들어 열고 닫게 해 놓고, 숙부의 병실장면에는 병실침상을 들여다 사용하고, 강원도의 날아다니는 돌의 소유자인 인물의 집은 무대 오른쪽 객석 가까이에 바위로 보이는 조형물 한 개와 그 위에 앉은 돌 소유자의 모습으로 연출된다. 무대 오른쪽 객석 가까이에 피아노가 놓여 있어 미모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해 직접 베토벤의 월광, 드뷔시의 달빛, 라벨의 소나티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파르티타를 연주해 극의 분위기를 황홀한 감상의 세계로 몰아간다.

오현경이 숙부로 출연해 여장남성으로의 독특한 성격창출을 해 보인다. 한명구가 돌의 보관자 역으로 중후한 기량을 발휘한다. 박수영이 이웃남성과 해설자 역으로 호연을 한다. 이명행이 주인공 청년으로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이경미가 연인으로 출연해 예쁜 모습과 붉은 색 의상 그리고 웨딩드레스로 무대를 밝게 만들고, 호연으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국형, 조 현, 문법준의 호연도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특별출연한 김정선의 피아노 연주는 가히 일품이다. 그녀의 연주로, 연극 <날아다니는 돌>은, 천상을 날아다니는 마법의 운석(隕石)으로 탈바꿈을 한 느낌이다.

드라마터그 김옥란, 무대 윤시중, 무대어시스트 김윤진, 조명 김영빈, 음악 김은정, 영상 윤형철, 의상 박소영, 소품 구은혜, 안무 양은숙, 조연출 하동기 백정희, 사진 이강물, 그래픽 다홍디자인, 기획 홍보 코르코르디움 등 제작진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극단 백수광부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의 <날아다니는 돌>을 창의력이 돋보이고, 연출력이 감지되는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5, 극단 여행자의 마리오 살라자르 작, 윤꽃방실 역, 양정웅 연출의 <히에론 완전한 세상>

혜화동 선돌극장에서 극단 여행자의 마리오 살라차르(Mario Salazar) 작, 윤방실 역, 양정웅 연출의 <히에론 완전한 세상(Hieron. Vollkommene Welt) >을 관람했다.

마리오 살라자르(Mario Salazar 1980~)는 베를린 출생으로 현재 서울에 거주 중이다. 그는 주한독일문화원에서 베를린장벽 붕괴 25주년과 관련 이에 대한 그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마리오 살라자르(Mario Salazar)는 1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에세이집 <유리>에서 1989년 독일의 통일 전과 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벽붕괴 당시 아직 소년이었던 유리는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개인적이고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다. 당시 외적인 상황은 유리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비쳐진다. 그리하여 정치적 사건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장면들이 보여진다. 작가는 “독일민주공화국 DDR에 금은 없다”,”카시오” 그리고 “모든 게 빛난다”를 소개한다.

마리오 살라자르(Mario Salazar)는 라틴 아메리카 학, 정치학 그리고 북 아메리카 학을 베를린자유대학교와 칠레 대학교에서 전공했고, 그 후 라이프치히 독일 문학 인스티튜트에서 공부했다. 그는 산문과 희곡을 쓴다. 베를린 도이췌스 테아테르에서 그의 작품 <히에론. 완전한 세상(Hieron. Vollkommene Welt) >이 2013년 8월 30일 초연되었으며, 마리오 살라자르(Mario Salazar)는 현재 서울에서 서간소설 <한스>를 쓰고 있다.

이 연극은 BC 5세기경 시칠리아의 독재통치를 한 히에론(Hieron)과 그를 추종 보필한 시모니데스(Simonides)의 이야기다. 히에론(Hieron)은 시칠리아에 있는 시라큐수(Syracuse)의 참주(BC 478~467/466 재위)였다. 그는 독재통치를 했으나 문학을 후원해 아이스킬로스·핀다로스·바킬리데스의 찬사를 받았다. 시모니데스(Simonides BC556~BC468)는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섬 케오스(Ceos) 출신의 서정시인이다.

아이스킬로스(Aischylos, BC525년/524년 – BC456년/455)는 시칠리아 참주 히에론 1세의 요청에 따라 시라큐스(시칠리아 섬에 있는 도시)에서 〈페르시아 사람들〉을 공연했다. 그는 이때 시라큐스에서 〈에트나의 여인들〉이라는 야외극을 무대에 올린 적도 있었다. 아이스킬로스는 마라톤 전투의 영웅들을 기념하는 연극경연대회에서 시모니데스(Simonides)가 우승을 차지하자 자존심이 상해서 홧김에 시칠리아 섬으로 갔다고도 하고, 그의 연극이 공연되는 도중에 극장 좌석이 무너지자 동포들의 미신적인 분노를 피해 시칠리아 섬으로 건너갔다고도 한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가 독재참주 히에론 1세의 궁정으로 간 것은 평소 그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행동이다. 즉 〈묶인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desmotes〉에서 그토록 독재참주를 혐오한 시인이 어떻게 〈에트나의 여인들>에서는 독재참주 히에론(Hieron)과 시모니데스(Simonides)를 등장시켜, 새 도시 에트나를 세운 데 대해 경의를 표하고, 그를 칭송하는 작품을 쓸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에 대한 아이스킬로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정의는 제우스의 옥좌 옆에 앉아서……정의로운 사람들의 정의로운 생활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찬양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경고라고 볼 수 있으며, 아이스킬로스는 독재자 히에론에게 이런 정의를 이상으로 삼으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라쿠사에서 〈페르시아 사람들〉을 공연한 것도 이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히에론은 BC 474년에 이탈리아 키메에서 에트루리아인들을 격퇴했다. 그러자 아이스킬로스는 경쟁과 증오심은 이제 가라앉혀야 하며, 동쪽과 서쪽의 이방인 침략자들을 물리친 현재, 그리스는 자유와 정의의 깃발 아래 단결해야 한다고 〈에트나의 여인들>에서 부르짖는다.

마리오 살라자르(Mario Salazar)는 <에트나의 여인들>의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옮겨 재창작했다. 나치독일시대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나폴레옹시대도 생각나게 한다. 그 뿐이 아니라 과거의 우리나라나 현재의 북한의 정치상황을 떠올리게도 된다.

독재자 히에론은 시모니데스의 국정보필을 받아 신격으로 존중되고, 백성은 노동에만 전력을 다해 크리스마스 외에는 쉬는 날이 없다. 또한 접근이 금지된 장소가 있어 국민의 못 들어가고, 신체접촉도 금지조항이며, 노동을 안 할 시에는 처형되고, 군주인 히에론의 모습을 직접 보는 사람 역시 처형되는 기괴한 법치주의 국가다. 그렇기에 국민은 군주 히에론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설사 히에론을 대면해도 그가 군주임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 극에 등장하는 가족도 크리스마스 날에만 가족과 만난다. 가장인 아버지는 이런 기계적이고 고정된 생활에 회의와 거부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아버지는 이런 틀에 박힌 고정된 생활이 아니라, 자유의 대한 의지와 자유로운 생활을 원한다고 가족에게 밝힌다. 아내는 큰 일 날 소리라 며 펄쩍 뛰며 놀란다. 아들은 말을 그간 말을 잊었고, 딸은 노동을 하지 않은 벌로 곧 처형을 받게 되어있다. 아버지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지내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한편 히에론은 시모니데스와 거대한 모니터로 국민의 동태를 지켜본다. 그러다가 실증이 나, 거리로 나들이를 나간다. 물론 시모니데스와 동행을 한다. 그러다가 금지된 장소를 둘러보던 한 가족의 가장, 자유를 원하던 바로 그 가장과 스쳐 지나가게 된다. 히에론이나, 가장이나 깜짝 놀란다. 가장은 히에론이 군주임을 알아 볼 리가 없지만, 금지된 장소에 접근했다는 것 때문에 급히 모습을 감춘다. 히에론은 시모니데스에게 지금 한 인물을 보지 못 했느냐고 묻는다. 다른 장소로 시선을 돌리고 있던 시모니데스는 당연히 못 보았노라고 이야기를 한다. 히에론은 가장이 사라진 방향으로 시모니데스를 보내 찾으라고 명한다. 행방을 감춘 가장을 시모니데스가 찾을 리가 없다. 시모니데스는 빈손으로 되돌아온다. 한편 가장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가족과 모인자리에서 자신이 히에론을 만난 사실을 고백한다. 가족들은 그 소리에 충격을 받는다. 틀에 박힌 생활과 고정된 사고에 응고된 가족에게는 아버지의 이런 행동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가족의 동요와 분열이 결국 가족 살해라는 파탄지경으로 몰고 간다. 향후 히에론과 시모니데스가 금지구역에 나타난 가장문제 뿐 아니라, 국민들 전반문제로 의사가 갈린다. 그러나 시모니데스는 히에론을 성군이라는 칭송과 히에론 덕분에 나라는 지상낙원이 되었다는 말 만 할 뿐 일언반구도 반대나 다른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다. 군주의 모습조차모르는 백성, 금기지역을 무단출입하는 백성, 성군의 용안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백성의 동태에서, 히에론은 회의를 느끼고, 실망감에 빠진다. 그리고 탓을 시모니데스에게 돌리고 그를 다그친다. 그러나 시모니데스는 히에론 칭송문구 외에는 다른 말을 잊은 듯 칭송만 반복한다. 결국 히에론은 시모니데스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결을 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선돌극장의 중앙에 가로지른 무대를 마련하고, 무대 앞뒤로 객석을 마련했다. 가로지른 무대 좌우 벽면에 영상을 투사해, 히에론의 모니터로 사용을 한다. 전선을 갑자기 연결해 불이 들어오듯, 뿌지직 소리와 함께 조명이 켜지면서 장면전환이 되고, 가로지른 무대 양쪽에 등퇴장 로가 있다. 객석에서 관객을 초청해 극에 동참시키고, 독약이나 총을 맞고 쓰러지는 연기를 하도록 청한다.

김대진이 히에론, 김상보가 시모니데스, 전중용이 가장, 김은희가 부인, 장지아가 딸, 남윤호가 아들로 출연해,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로 갈채를 받는다.

드라마트루기 이단비, 무대디자인 이은규, 음향디자인 이범훈, 영상디자인 저스트에펙트 김장연, 조명디자인 김성구, 조명어시스트 지소연, 조명크루 김병희·이재문, 음악 허 안, 사진 이강물, 무대감독/음향오퍼 김동균, 무대제작 드림아트 김희진, 자막오퍼 도광원, 조명오퍼 정수영, 영상오퍼 류세린, 일러스트 송준영, 기획홍보 코르코르디움 등 제작진의 열정과 기량이 일치되어, 극단 여행자의 마리오 사라자르(Mario Salazar) 작, 윤꽃방실 역, 양정웅 연출의 <히에론. 완전한 세상(Hieron. Vollkommene Welt)>을 오래오래 생각하도록 만드는 명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6, 국립극단의 제이슨 밀러 작, 김윤철 역, 채승훈 연출의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명동예술극장에서 (재)국립극단의 제이슨 밀러 작, 김윤철 역, 채승훈 연출의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을 관람했다.

이 극은 제이슨 밀러(Jason Miller1939년 04월 22일~2001년 05월 13일)가 쓴 <That Championship Season>을 번역한 작품이다.

​제이슨 밀러는 뉴욕 동부의 Long Island City에서 태어난 배우 겸 작가다.제이슨 밀러가 33세에 발표한 이 작품은 1972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면서 일약 ‘손튼 와일더’의 <우리 마을> (1938년도 퓰리쳐 상), ‘아더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1938년도 퓰리쳐 상)과 같은 ‘아메리칸 클래식’ 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That Championship Season>은 브로드웨이에서만 연속 844회, 모두 988회 공연되면서,1972-73년도 브로드웨이 최우수 작품상으로 <토니 상>을 수상했고, 타임지에 의하여 1970년대 최우수연극 베스트 10 에 선정됐으며, 1972년도 뉴욕 연극평론가협회상과, 드라마 데스크 최우수 신인 극작가상, 1973년도 퓰리쳐상등 모든 상을 휩쓸었다.

<That Championship Season>은 제이슨 밀러가 직접 감독해 1994년 브루스던, 스테이시키치, 로버트미첨, 마틴쉰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극작가 제이슨 밀러는 우리나라에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1973년 워너 브라더스 제작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카라스’ 신부 역을 맡았던 사람이라고 해야 “아, 그 사람 !할 정도다.

​<That Championship Season>은 경기고 동문들의 연극모임인 1991년 화동연우회가 창립공연작으로 국내 초연한 작품이다. 2001년에는 화동연우회 초연에서 감독 역을 맡아 열연했던 故(고) 이낙훈 선생의 추모공연으로 꾸며졌다.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에서의 재공연에서는 선생의 생질인 연극배우 최용민이 똑같은 역할로 등장해 고인의 예술 혼을 기렸다. 초연 연출가인 김광림이 재공연 연출도 맡았으며 최용민 외에 이대영(배우), 이현우(순천향대 교수), 유태웅(탤런트) 신용욱 등 이 출연했다. 학전’대표 김민기가 진행, 성악가 박성현이 대소도구를 맡았다.

2001년 12월 7일부터 16일까지 학전 소극장 블루에서 <이런 동창들>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That Championship Season>은 명 연극으로 기억에 남는다.

(주)국립극단이 제작한 <That Championship Season>의 무대는 집형태의 조형물이 정면 왼쪽에 부착되어 있고, 여섯 자 높이의 단이 무대좌우로 연결되어있고, 중앙이 등퇴장 로로 사용된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양쪽으로 있어, 왼쪽 계단으로는 침상으로, 오른쪽 계단으로는 화장실로 오르도록 되어있다. 침상은 적색 조명을 비춰, 덮은 천이 온통 새빨갛다. 화장실 문짝은 떼어져, 용변 시에는 휘장을 친다. 화장실 아래쪽은 창고로 사용되고,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있다. 바로 창고 앞에 커다란 냉장고가 있어, 출연자들이 각종 주류를 꺼내 마신다. 계단을 내려서면 탁자와 의자가 놓이고, 무대중앙 객석 가까이에 놓인 챔피언 트로피가 눈에 띈다. 소형 라디오, 술병과 술잔, 캔 맥주 등의 소품도 제대로 갖추어 지고, 출연자들의 의상이 그들의 직업과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강렬한 효과음으로 장면변화를 꾀하고, 챔피언이 되었을 당시의 경기장면을 녹음으로 틀어놓기도 해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미국 동부의 조그만 도시 싸우쓰 스크랜튼은 시장선거 열기로 한창 뜨겁다. 현재 시장인 죠지 싯코프스키(George Sitkowski)는 젊은 유태계 미국인 노만 샤만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죠지는 과거 고등학교 동기동창들이자 고등학교 당시 농구 선수들이었던 친구들, 사업가 필(Phil Romano)과 중학교 교장 선생인 제임스(James Daley), 그리고 당시의 은사였던 농구 부 감독 선생님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형평을 유지하나 여러 가지 악재와 엄청난 자금을 동원한 샤맨의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다 그들은 25년 전 펜실베니아주 고등학교 대항 농구선수권대회 우승을 기념하는 모임 겸 동창회를 개최하여 당시 영광의 주인공들 중 마틴을 제외한 죠지, 필, 제임스, 그리고 제임스의 동생이자 방탕한 길로 빠져버린 톰(Tom Daley), 그리고 옛 감독까지 모두 모여서 우승컵을 앞에 놓고 25년 전의 그 영광의 순간들을 되새겨 본다. 그러나 그날 밤 그 자리에서 시장선거운동에서 고전을 하고 있는 죠지의 문제 때문에 이들은 난생 처음 심하게 반목하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서로를 질시하고 갈등을 한다. 필은 사업가다운 계산에 따라 승산 없는 죠지로 부터 발을 떼려고 하고, 그것을 알아챈 제임스는 필을 설득하나 여의치 않자 필이 죠지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폭로하고 만다. 그로인해 그들은 감독 앞에서 심하게 다툰다. 감독은 일대 일 설득으로도 효과가 없자 옛날 농구경기 결승전 실황중계 녹음테이프를 틀어준다. 그러자 그들은 옛날의 그 감격을 되살리고 서로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단합한다.

박용수가 감독, 김태훈이 필 로마노, 김동완이 조지 시코우스키, 이종무가 제임스 데일리, 박완규가 톰 데일리로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과 출중한 기량으로 열연을 해 갈채를 받는다.

무대 표종현, 조명 신 호, 의상 김우성, 음향 윤민철, 소품 이루현, 분장 이지현, 무대감독 조윤근, 기술감독 신용수, 조연출 한형민, 제작총괄 박현숙 그 외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주)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제임스 밀러 원작, 김윤철 번역, 채승훈 연출의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7, 극단 이와삼의 장우재 작 연출 <미국 아버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이와삼의 자우재 작 연출의 <미국 아버지>를 관람했다.

장우재는 배우, 극작가, 연출가로 탁월한 기량을 인정받고, <차력사와 아코디언> <지상으로부터 20미터> <악당의 조건> <그때 각각> <이형사님 수사법> <머리통 상해사건> <木浦의 눈물> <여기가 집이다> <환도열차>를 발표공연하고, 2009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 2013년 <여기가 집이다>로 서울연극제 대상수상, <미국 아버지>는 2013년 명동예술극장 희곡공모 최우수작이다. 희곡집으로 <차력사와 아코디언>을 출판하고, 현재 극단 이와삼의 대표다.

2001년 9월 11일 07시 59분 92명의 승객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 소속 AA11편이 보스턴을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날아올랐다. 이어 08시 1분 45명을 태운 유나이티드 항공의 UA93편이 뉴저지주에서 샌프란시스코로, 08시 14분 65명을 태운 유나이티드 항공의 UA175편이 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09시 64명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의 AA77편이 워싱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각각 향했다.

08시 45분 AA11편이 항로를 바꾸어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과 충돌한 직후인 09시 3분 UA175편이 남쪽 건물과 충돌하였다. 09시 40분 AA77편이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과 충돌하고, 이어 약 9시 59분 경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이 붕괴된 뒤, 10시 3분 UA93편이 피츠버그 동남쪽에 추락하였다. 10시 30분 경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고, 이 여파로 인해 17시 20분 47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부속건물인 7호 빌딩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고, 세계 경제의 중심부이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은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의 자존심이 일거에 무너진 것은 차치하고, 이 세기의 대폭발 테러로 인해 90여 개국 2,800∼3,50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CNN 방송망을 타고 시시각각으로 사건 실황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세계 역시 경악하였다.

세계경제도 이 동시 다발 테러 앞에서는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국제금리가 단숨에 하락하고, 세계 증권시장이 흔들렸다. 미국은 사건 직후 일주일간 증권시장을 열지도 못하였으며, 미국을 오가는 모든 국제 항공선도 차단되었다.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일컬어 ‘제2의 진주만 공격’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미국 건국 이래 본토의 중심부가 외부의 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 전원 사망, 워싱턴 국방부 청사 사망 또는 실종 125명, 세계무역센터 사망 또는 실종 2,500~3,000명 등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명 피해만도 2,800~3,500명에 달한다. 경제적인 피해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1조 4300억 원), 테러 응징을 위한 긴급지출안 400억 달러(약 52조 원),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 달러(약 52조 원) 외에 각종 경제활동이나 재산상 피해를 더하면 화폐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납치당한 4대의 항공기에는 3~5명의 납치범들이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조사 결과 범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출신의 조종사들로 알려졌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과 그의 추종 조직인 알 카에다(Al-Qaeda)를 주요 용의자로 보고 있으며, 그 밖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산하의 무장조직인 하마스(HAMAS), 이슬람원리주의 기구인 지하드,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다른 이슬람 테러조직들도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과 충돌한 직후인 09시 31분, 부시(George W. Bush) 미국 대통령은 이 테러사건을 ‘미국에 대한 명백한 테러 공격’으로 규정하고, 이어 전국의 정부 건물에 대피령을 내리는 한편, 국제연합·시어스 타워 등 주요 건물을 폐쇄하였다. 같은 날 금융시장 폐장 결정을 내린 뒤, 뉴욕과 워싱턴에 해군의 구축함 등 장비를 파견하였다.

9월 12일 테러 개입자들에 대해 사전 경고 없이 보복할 것을 천명하고, 이튿날 부시 대통령은 ‘이 테러를 21세기 첫 전쟁’으로 규정하였다. 9월 15일 빈 라덴이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상군 투입 결정을 내리는 한편, 아프가니스탄의 인접국인 파키스탄을 설득해 영공 개방 등의 약속을 받아내고, 작전명을 ‘무한정의 작전’으로 명명한 뒤 보복전쟁에 들어갔다.

같은 해 10월 7일,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영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공항과 탈레반 국방부, 잘랄라바드 공항, 칸다하르 탈레반 지휘사령부, 헤라트공항 유류저장고, 마자르 이샤리프 탈레반 군장비 집결지, 콘두즈 탈레반 지역군사작전 지휘소 등에 50기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 알 카에다의 훈련 캠프와 탈레반 정부의 군사시설 등에 엄격히 제한된 선별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제한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미국·영국 연합군은 2001년 10월 9일 아프가니스탄 주변에 350여 기의 항공 전력을 배치하고, 아프가니스탄 영토에서 자유로운 전·폭격기를 이용한 공습과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군을 앞세워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함락하였다. 이어 다음달 22일 연합군은 반 탈레반 정권인 과도정부를 수립함으로써 탈레반과의 전쟁을 종결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 전쟁의 목표로 삼았던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 카에다를 뿌리뽑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끝내지 않고 이후 중동으로 눈을 돌려 2003년 3월 20일에는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20일 만에 완전 함락시키고 새로운 과도정부를 출범시키는 등 대 테러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아랍국가와의 적대관계 속에서, 이라크에서 일을 하던 한 미국인 청년을 알카에다 무장병사들이 칼로 목을 자르는 영상이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죽은 청년의 아버지가 영국 전쟁저지연합에 편지를 발송한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이슬람 국가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 부시를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백악관과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평화를 요구한다. 장차가 아니라, 지금 당장 평화를.

<미국 아버지>는 위의 역사적 실화를 연극으로 구성했다.

​<미국 아버지>는 과거 연극인이었으나, 현재는 마약중독자로 아들과 살고 있다. 아들은 이슬람 여인과 결혼을 해서 막 아기가 태어날 판이다. 아버지는 마약환각 때문인지, 젊은 시절의 자신의 모습과 사랑했던 여인,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 연극인 동료와 몰래 성 접촉을 하는 장면을 본 후, 여인이건 친구건 불신을 하게 되고, 자포자기 겸 마약에 빠져 여생을 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아버지는 결혼을 했지만 아내와는 일찍 사별을 했다. 그런데 아들이 중동으로 일을 하러 떠난다. 갓 결혼을 하고 아내가 임신을 했어도, 돈을 벌어야 하기에….

​아버지는 애써 말렸지만, 소용이 없다. 그런 그 아들이 중동에서 알카에다 무장병사에게 목이 잘린다. 아버지는 뉴욕 무역센터가 붕궤되는 모습을 보고 고소하다고 웃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런 그의 아들을 알카에다가 무참하게 참수한 것이다.

​그 후 아버지는 갓난아기를 자신이 기르겠노라 결심을 하고, 며느리나 사돈 영감내외가 아기를 데려다 기르겠다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돈 내외나, 며느리나, 자신들은 이슬람국가 출신이기는 하지만 이슬람사람이 아니라, 현재는 미국사람이라며, 자신들이 아기를 데려다 잘 기르겠다고 애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이 아버지에게는 당나귀 귀에 찬송가 부르기다.

​결국 사돈 내외와 며느리는 울면서 돌아간다. 그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기가 앓기 시작한다. 아버지로서는 병든 아기까지 돌보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고집대로 며느리나 사돈을 부르지 않고, 경황 중에도 상용하던 마약을 가까이 한다. 환각상태 속에서 과거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연인, 그리고 연극인 동료,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의 모습과 마주한다. 모두가 아버지에게 이른다. 며느리와 사돈내외에게 아기를 맡기라고…. 아버지는 자신의 고집과 마약의 환각상태 속에서 엽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무대는 정면에 커다란 창이 배경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창 양쪽에 회색의 기둥과 벽이 연결되고, 오른 쪽 벽에는 등이 부착되어 있다. 무대 좌우로 세 개씩의 창문이 천정에 내려진 끈에 달려있고, 유리는 없다. 무대 좌우에 실내로 들어가는 방문이 각기 두 개씩 있다. 이 집의 출입문은 커다란 창문이 난 정면 왼쪽에 있다. 창 앞으로 탁자와 의자가 놓이고, 그 주위에 술병이 잔뜩 놓여있다. 출입문과 탁자와 의자가 놓인 좌우로 연결된 두자 높이의 단을 내려서면, 거실의 마루가 되고, 마루 오른쪽에 긴 안락의자와 등받이의자, 그리고 탁자가 있고, 장면이 바뀌면 이 안락의자의 위치가 변한다. 객석 아주 가까이에 한자 높이에 세자 폭과 서른여섯 자 길이의 단을 놓아 출연자들의 통로 역할을 하고, 집의 외곽도 통행로가 된다. 총소리로 장면이 마무리되고, 커다란 창쪽 배경에 영상을 투사해, 맨해튼 무역센터 붕괴영상이라든가, 부시 대통령의 모습, 그리고 알 카에다 무장괴한의 미국인 청년 살해 장면이 투사되면서 배경전체에 선혈이 흐르는 장면을 동화로 보여준다. 갓난아기는 인형으로 대체해 등장시킨다.

윤상화가 아버지로 출연해 혼신의 열정으로 일생일대의 명연을 보인다. 이동혁이 아들, 이기현이 아버지의 젊은 모습, 이정미가 사돈댁, 박기륭이 사돈영감, 김경익이 연극인 동료, 김동규가 아들의 동료, 김정민이 며느리, 강선애가 기자, 정 원이 아버지의 청년시절의 연인, 심원석이 아들의 동료, 곽정화가 기자, 강병구가 기자, 고광준이 분신으로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연극을 이끌어간다.

무대 신승렬, 조명 김성구, 의상 오수현, 음악 조선형, 영상 윤민철, 분장 장경숙, 조연출 최윤희, 맨토 심재찬, 드라마투르크 박근형, 조명오퍼 김유리, 음향오퍼 권형준, 영상오퍼 이수빈, 무대감독 이준영, 그래픽디자인 사진 김 솔, 홍보마케팅 바나나문 프로젝트 등 제작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이오삼의 장우재 작 연출의 <미국 아버지>를 한 편의 명화 같은 명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8, 극단 천지와 수현재컴퍼니 제작, 어니스트 톰슨 작, 문삼화 역, 이종한 연출의 <황금연못>

대학로 대명문화공장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극단 천지와 (주)수현재컴퍼니 공동제작, 어니스트 톰슨(Ernest Thompson) 작, 문삼화 역, 이종한 연출의 <황금연못(On Golden Pond)>을 관람했다.

<황금 연못(On Golden Pond)>은 미국의 신예 극작가 어니스트 톰슨((Ernest Thompson 1949~)이 27세 때에 쓴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1981년에 영화로 제작되고, 평생을 배우의 삶을 산 헨리 폰다의 마지막 작품이다. 영화 <황금연못>은 제5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1982)에서 헨리 폰다가 남우주연상, 캐서린 헵번이 여우주연상, 어니스트 톰슨이 시나리오 상을 수상했다.

내용은 40년 가까이, 겨울철만 빼고는 봄부터 가을까지 해마다 이 <황금연못>의 별장에서 지내는 노부부에게 아버지의 80회 생신에 맞춰, 오랜만에 딸이 찾아온다. 그리고 혼자 온 것이 아니라, 딸이 결혼할 치과의사를 하는 새 남자와 그 남자의 아들인 소년도 함께…. 딸은 새 남자와 유럽여행을 떠나기 위해, 소년을 부모에게 맡긴다. 이 연극에서 딸은 어머니와는 무척 가깝지만 아버지와는 냉랭한 사이로 설정이 된다. 아버지는 평소 딸과 대화도 않고, 딸을 등한시하는 심정을 보였기에, 42세가 되도록 딸은 아버지를 미워한다. 생일날 아버지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생일노래합창을 한 후, 소년을 남기고 젊은 남녀는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는 소년과 낚시를 다니기 시작하고, 소설을 읽히면서 차츰 가까워진다. 할아버지와 소년은 둘 만의 농담도 한다. 여행길에 딸은 소년의 아버지인 새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부모에게 맡긴 소년의 안부를 묻는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딸에게 소년이 아버지와 무척 잘 지내고 있다는 대답을 한다. 결혼한 딸 내외가 돌아온다. 아버지에게 여전히 미움을 갖고 있는 딸에게 어머니는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한다. 딸이 거부의사를 나타내자 어머니는 버럭 역정까지 낸다. 딸은 어머니의 역정에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딸 부부가 소년을 데리고 떠나는 장면에서, 소년이 할아버지를 친 할아버지처럼 좋아하고, 자주 <황금연못>을 찾겠다는 약속을 하는 소년의 모습을 딸은 주의 깊게 본다. 딸 부부와 소년은 노부부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난다. 얼마 뒤에 딸은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한다. 어머니는 딸과 통화중 전화기를 아버지에게 건넨다. 딸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사랑해요” 라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친다. 아버지도 얼떨결에 “나도 너를 사랑한다.”라고 대답한다. 새로 사위가 된 남자도 아버지라고 다정하게 부른다. 설사 본심이 아니라고 해도 다정한 통화가 나이 든 아버지와 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황금연못>에 가을이 깊어간다. 곧 차가운 겨울이 닥치기 전에 노부부는 여느 때처럼 이 고장을 떠나려고 짐을 꾸린다. 그런데 남편이 가벼운 짐짝 하나도 제대로 들지를 못하고, 쓰러진다. 아내는 놀래 남편에게 달려간다. 한동안 꼼짝도 못하던 남편이 푸시시 일어난다.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며, 아내는 일단 안심을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이 <황금연못> 별장에서 추운 계절을 그대로 지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늙은 남편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힌다. 노부부의 첫 번째 <황금연못>에서의 겨울나기가 시작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는 노부부의 별장이다. 정면의 창밖으로 <황금연못>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창 왼쪽에 출입문이 있고, 벽에는 선반이 있어 모자를 잔뜩 얹어놓았다. 창 앞에 낮은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다, 창 오른쪽으로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벽에 그림과 사진액자들이 걸려있다. 그 계단으로 옥상까지 오르도록 되어있고, 옥상에는 난간이 만들어져 있다. 계단아래 창고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무대 오른쪽에는 책이 잔뜩 꽂힌 책장과 방문이 있다. 무대 오른 쪽 마루에는 긴 안락의자와 탁자, 그 좌우에 걸상과 등받이 없는 사각의 의자가 있고, 무대 왼쪽 마루에도 낮은 원형탁자와 의자가 있다. 탁자 위에는 금색을 입힌 고풍스런 전화기가 놓여 있다. 무대 왼쪽 벽에도 문이 있고 그 옆으로 벽난로로 보이는 조형물이 있다. 낚싯대, 책, 짐짝, 약 등의 소품과 배달부의 우편물, 여행용 가방, 그리고 생일 케이크가 연극 진행에 따라 출연자들이 가지고 등장한다. 조명의 강약으로 극적장면을 강조하거나, 부각시킨다. 음악도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이순재가 아버지, 나문희가 어머니, 우미화가 딸, 이주원이 딸의 어린 시절의 친구인 배달부, 이도엽이 딸의 새 남자인 치과의사, 홍시로가 소년으로 출연해,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특히 이순재 나문희 두 출연자의 호연은 1981년에 제작된 영화 <황금연못>의 헨리 폰다나 캐서린 헵번에 비견되는 탁월하고 출중한 연기이기에, 모처럼 명작에 어울리는 명연기를 감상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한 공연이었다. 신구와 성병숙이 더블캐스팅 되어 출연한다.

무대 소품디자인 김혜지, 조명디자인 황종량, 음악디자인 최인양, 의상디자인 정현정, 분장디자인 백지영, 음향감독 이순용 등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이 일치되어, 극단 천지(대표 김남호 김영수)와 (주)수현재컴퍼니(대표 조재현) 공동제작, 어니스트 톰슨(Ernest Thompson) 작, 문삼화 역, 이종한 연출의 <황금연못(On Golden Pond)>을 친 대중적인 공연이자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9, 극단 코끼리만보의 한현주 작, 김동현 연출의 <그 샘에 고인 말>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극단 코끼리만보의 한현주 작, 김동현 연출의 <그 샘에 고인 말>을 관람했다.

한현주(1978년~)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출신으로 <878m의 봄>으로 제1회 벽산희곡상을 수상했다, <소년이 그랬다> <우릴 봤을까?> <개천의 용간지> 그 외의 작품을 발표 공연한 앞날이 기대되는 예쁜 작가다.

김동현은 <먼지아기> <매일 만나기에는 우리는 너무 사랑했었다> <키스> <고래가 사는 어항> <맥베드, the show> <오월의 신부>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405호 아줌마는 참 착하시다> <오랑캐여자 옹녀> <맥베드, the show>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착한사람, 조양규> <하얀앵두> <다윈의 거북이> <33개의 변주곡> <먼데서 온 여자> <템페스트> 그 외의 다수 작을 연출한 우수한 연출가다.

<그 샘에 고인 말>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한 재개발지역의 허름한 두 채의 두 칸 방 자리 집과 한 칸 방 자리 집에서 살고 있는 나이 많은 할머니와 흰머리가 보이는 며느리, 그리고 중년의 부부, 그리고 집을 떠나갔다가 돌아온 손자의 이야기다. 이 집터 앞 둔덕에 있는 우물에는 과거에는 물맛이 무척 좋았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물이 마른 것으로 설정이 되고, 그 속에는 40년 전 행방을 감춘 할머니의 아들의 혼령(魂靈)이 시시때때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들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는 가출을 한 아들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곧 헐리게 될 이 집을 떠나기를 거부하고, 행여 며느리가 자신을 버리고 혼자 떠날까 전전긍긍(戰戰兢兢)한다. 이들과 함께 살았던 중년의 부부도 새로 이사할 곳을 찾아 헤매다 마땅한 곳이 없었는지, 되돌아 와 다시 함께 살기를 청한다.

할머니는 아들의 귀가를 믿고, 아들의 옷을 여전히 집에 보관하고 있다. 며느리가 내다 버리려다 할머니가 알아차리고 역정을 내면, 세탁을 하려고 내온 것이라고 변명을 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할머니는 노인들이 흔히 그렇듯이 혼잣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물 속에서 혼령이 불쑥 솟아올라 할머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양쪽이 다 대화를 하지만, 상대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할머니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젊은 시절에는 무척 미인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가고, 며느리 또한 그에 못 지 않은 미모라, 젊은 시절에는 사내들의 시선을 끌었음도 하지만, 할머니는 백발이 보이는 며느리를 아직도 누가 업어갈까 여전히 걱정을 하고, 중년부부의 사내에게까지도 의혹의 눈초리를 던진다.

이럴 때 가출을 했던 손자가 되돌아온다. 이 집 며느리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또 한명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돌아온 손자는 이모보기를 꺼려하고, 차려다 준 밥상도 이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야, 방에서 나와 허겁지겁 먹는다. 손자는 자주 휴대전화로 어디론가 통화를 하고, 현재 자신과 연루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이 곳으로 한동안 피신을 한 듯싶다.

할머니가 허리를 다쳐 병원으로 가야할 일이 생기고, 집을 비운 후 며느리가 우물가로 간다. 역시 남편의 혼령이 솟아올라 아내를 반기지만, 아내가 혼령을 볼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2인의 어우러짐이 현실을 능가하는 환상으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재개발지역의 기계굉음이 차츰 커지고, 손자의 일이 잘 해결되었음이 휴대전화의 통화소리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터전에서 살던 인물들은 재개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정든 가옥을 떠나야 할 순간을 맞는다. 우물 속의 혼령도 우물 밖으로 나온다. 가족과 혼령이 비로소 이별을 한다. 바로 이때 메말랐던 우물에 예전처럼 샘물이 펑펑 솟아나게 되고, 사람들이 이 놀라운 광경을 들여다보는데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에는 낮은 언덕과 허름한 거물 두 채가 자리를 잡는다. 무대 하수쪽에 낮은 둔덕에 우물이 보이고, 우물 오른쪽에 디딤돌이 있다. 우물 뒤로 잡목 숲이 펼쳐지고 언덕길이 나있다. 정면에 방 두 칸짜리 집이 있고, 그 오른편에 방 한 칸짜리 집이 있다. 커다란 평상이 마당에 놓여있다. 무대 오른 쪽에는 빨래를 널 나무기둥과 줄이 연결되어 있고, 짐 꾸러미, 옷 보따리, 그 외 소품과 유모차와 지팡이를 출연자들이 사용한다. 우물 속 혼령의 의상은 아주 낡고 허름한 의상을 착용한다.

전국향이 할머니, 천정하가 며느리, 임진순이 중년남편, 강명주가 중년주부, 전박찬이 샘의 혼령, 문성복이 손자로 출연해,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특히 전국향과 천정하 2인의 대비되는 연기와 성격창출은, 드넓은 호수를 건너는 한척의 배의 양쪽 노의 역할을 하듯 연극을 성공으로 이끌어 는 동력이 된다.

드라마터그 손원정, 무대 손호성, 조명 김영빈, 음악 민경현, 분장 이동민, 의상 강정화, 조연출 김소영 등 제작진의 기량이 드러나, 극단 코끼리만보의 한현주 작, 김동현 연출의 <그 샘에 고인 말>을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10, 국립국악원의 이윤택 작 연출의 음악극 <공무도하(公無渡河)>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류형선 작곡, 이윤택 작 연출의 음악극 <공무도하(公無渡河)>를 관람했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고조선 때에 진졸(津卒)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었다고 전하는 노래다.

출전문헌인 《고금주(古今注)》에 의하면, 어느 날 곽리자고가 강가에서 백수광부(白首狂夫)의 뒤를 따라 물에 빠져 죽은 어느 여인(곧 백수광부의 아내)의 애처로운 광경을 보고 돌아와 여옥에게 이야기하였더니, 여옥이 그 여인의 슬픔을 표현한 노래를 지어 공후(箜篌)에 맞추어 부른 것이라 한다. 연대적으로 보아 한국 문학사상(文學史上)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으나 확실한 제작 연대와 원가(原歌)는 알 수 없고, 이 노래의 한역가(漢譯歌)인 듯한 4구(句)로 된 한문 표기의 짧은 노래가 전한다. 그 한역가는 다음과 같다.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公將奈何(임은 건너지 말 것이지, 임은 물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으시니, 임은 마침내 어이 하리요)’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의하면,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 죽으니 그의 아내는 통곡하여 울다가 슬피 공후를 타며 노래를 부른 후 자기도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내용에 따라, 원작자(原作者)는 백수광부의 아내이며 이를 노래로 정착시킨 사람이 여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 전하는 가사가 시경체(詩經體)인 것으로 보아 당시 중국에서 성행한 시경체가 한국에도 영향을 준 것이라 보기도 한다.

《공후인(箜篌引)》은 악곡(樂曲)의 명칭이고 작품명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공후인(箜篌引)》으로 통칭하고 있다. 한편, 기록에 나오는 조선이 중국의 지명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중국의 악부시(樂府詩)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음악극 <공무도하>는 새로 건립된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이사한 중년남성이 자신의 아파트 동수와 호수를 기억을 못해 벌이는 이야기다. 중년남성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고, 아내의 휴대전화번호도 기억을 못 한다는 설정이고, 이 남성은 부근 하천 둑에 있는 한 포장마차에 들어가 망연자실(茫然自失)해 하다가, 포장마차의 나이든 여주인의 인도에 따라 과거로 되돌아가면서 전생에 이른다. 그의 전생은 삼국시대 고구려(高句麗) 사람이고, 아내와 자식을 남겨두고, 백제 땅으로 온조를 따라 떠나간다. 이 음악극에서는 내용을 복선으로 깔아, 한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사의 제의를 받고 <연변일기>라는 작품의 소재를 얻기 위해 직접 연변을 방문한다. 작가는 연길의 한 음식점에서 동포여인과 상면하고, 그 여인의 아름다운 노래와 미모에 반한다. 그 여인은 북한 여인이고 남편이 행방불명되어 연길로 나이어린 아들과 함께 와, 음식점 손님을 접대하고, 노래도 부르고 성매매까지 하는 처지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이 평양음악대학 출신임을 밝힌다. 작가는 이 여인에게 구혼을 하고,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호적에 넣고, 동거에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행방을 감춘다. 작가는 백방으로 아내를 찾다가 두만강을 건너 북으로 들어간다. 당연히 북한 경비대에게 잡힌다. 북한군은 취조 중 작가가 별다른 뜻 없이 단순히 아내를 찾기 위해 도강을 한 것임을 알고는 자신들이 이용할 가치가 없는 자임을 판단하고, 판문점을 통해 되돌려 보낸다. 남한에서는 불법 입북한 명목으로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2년 뒤에 석방시킨다. 작가는 석방되자마자 다시 연변으로 간다. 그리고 또다시 입북을 해, 그리던 아내와 만나 아들과 함께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탈출한다. 그러나 북한 경비병의 눈에 띠게 되고, 경비병의 사격으로 아내와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는다.

한편 아파트를 찾으려던 중년남성은 휴대전화를 찾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 자신의 아파트 동수와 호수를 확인하면서 삼국시대의 과거와도 결별을 하고 현실로 되돌아오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는 길고 가는 끈을 천정에서 바닥까지 촘촘히 배경 전체와 그 앞 무대 양쪽에 늘어뜨리고, 그 끈에 백두산 천지, 두만강 부근 연변풍경 영상 등을 투사해 극적효과를 높이고, 오케스트라 박스에 50인의 국악관현악단이 자리를 잡고, 극의 도입에서부터 대단원에 이르기까지 연주로써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출연자들 역시 타악기로 흥을 북돋아, 출연자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한다. 의상 또한 시대적 변화에 맞는 의상과 소품 그리고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잘 어울렸고, 포장마차, 수레, 무대한 가운데 서있는 나무 한그루에 이르기까지 극의 내용과 조화를 이룬 수준급 대소도구였고, 무대 왼쪽 남녀 해설자 겸 도창의 좌석배치도 인상에 남는다.

안숙선,유미리, 정민영, 손재영, 허정승, 임재현, 안이호, 김봉영, 방수미, 박진희, 유지숙, 조경희, 이금미, 이졍규, 김병오, 최병재, 박성호, 양명희, 박현숙, 이주은, 위희경, 김민경, 조준희, 강효주, 김세윤, 채수현, 박현영, 조정희, 이종화, 신진원, 김미성, 특별출연 윤종식, 김다빛 등 출연자 전원의 열창과 무용, 그리고 호연은 관객의 탄성과 갈채를 받기에 충분하다.

김혜자, 김태은, 김진정, 김영신, 이지은, 이미영, 권문숙, 박민지, 조은주, 이윤정, 박지애, 이도경, 아하경, 이혜경, 고은비, 최나리, 권덕연 등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춤사위도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꽹과리 박상인, 북 임용남, 징 강병혁, 장구 유지형, 열두발 상모 이명모, 무속장구 이승우 등 풍악수들의 출연도 극의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지휘 류형선, 연주자 임준형, 김정수, 이창우, 주민경, 김용수, 박치환, 이승헌, 황세원, 김보미, 박계전, 김준희, 안경희, 이소라, 여수연, 이지혜, 임은정, 박세연, 이지언, 박영승, 서정곤, 김준영, 유수지, 이화연, 윤나금, 서수복, 황영남, 김태정, 정명선, 안은경, 김연수, 고검재, 이범석 등 국악관현악단의 연주도 고품격 고수준으로 음악극과 조화를 이루고, 노래에 날개를 달아 돋보이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

총제작 김해숙, 작창감독 판소리 작창 안숙선, 음악감독 작곡 편곡 류형선, 안무감독 한명옥, 서도소리작창 유지숙, 연기감독 김미숙, 조연출 이승우, 덧배기춤지도 하용부, 안무 최경자 안덕기 협력안무 연기자움직임 김윤규, 암악조감독 최병삼 김영길 박치완, 기술감독 조인곤, 무대디자인 김경수, 의상디자인 송은주, 조명디자인 조승희, 영상PD 이용의, 영상디자인 이도경, 분장디자인 김종한, 음향디자인 고종진, 미디프로그래밍 전찬율, 효과음 이채욱, 타악편곡 서수복, 편곡 노래지도 악보 김아현, 등 제작진의 기량과 열정이 드러나, 국립국악원의 이윤택 작 연출의 음악극 <공무도하(公無渡河)>를 한폭의 명화 같은 음악극으로 탄생시켰다.

11, 서대문연극협회 로얄씨어터와 극단 청춘의 윤여성 예술감독, 이상용 작, 류근혜 연출의 <부모님 전 상서>

서대문문화체육회관 대극장에서 극단 로얄씨어터와 실버극단 청춘의 윤여성 예술감독, 이상용 작, 류근혜 연출의 <부모님 전 상서>를 관람했다.

<부모님 전 상서>는 악극이다. 1930, 40년대에 활발한 공연을 펼쳤던 악극은 당시 전성기를 이루었다. 1950년대 6 25 동란 중에도 전방에서는 병사들을, 후방에서는 피난민들을 위한 악극공연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피난시절 악극단들과 군 예대는 문화적으로 공동화(空洞化)된 서울보다는 피난민들이 모인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그 활동은 전전(戰前)의 것을 반복, 재생산하는 데 그치고, 공연은 계속되었지만 새로운 창작물은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후에는 악극이 영화나 여성국극, 그리고 각종 쇼 등의 다양한 볼거리의 홍수 속에서 서울의 중앙 무대에서 차츰 사라지게 된다.

1950년대에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악극단은 전옥이 이끄는 백조가극단이었는데, 이 단체는 1930년대 <화류비련> 같은 통속적 신파극의 영향 아래 여주인공의 수난을 부각시켜 관객의 동정을 이끌어내는 <노래하는 신파비극>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백조가극단처럼 전쟁 중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악극단들도 전후에는 흥행의 부진 속에서 <버라이어티 쇼>를 첨가하는 등의 자구책을 탐구했지만, 결과는 악극의 퇴조만 더욱 가속화시켰을 뿐이었다.

1950년대 중반 악극단 출신 연예인들이 대거 영화나 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관객들은 새로 등장한 대중연예들로 눈을 돌리면서, 악극은 궁핍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노스탤지어’로 호명될 뿐 빠르게 잊혀져갔다.

그러나 2000년대를 전후해 극단 가교를 비롯한 몇 개 극단에서 악극공연이 이루어지고, 현재는 한국연극배우협회와 한국악극보존회에서 대도시 및 지방순회를 통한 악극공연이 중장년층과 노년층의 관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음은 주목할 일이다.

서대문문화회관과 극단 로얄씨어터에서 60세 이상의 단원으로 이루어진 “극단 청춘”을 통해 <홍도야 울지마라(2008년)> <이수일과 심순애(2009년)> <굳세어라 금순아(2010년)> <유랑극단(2011년)> <애수의 소야곡(2012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2013년)> 등을 공연해 왔다.

악극 <부모님 전상서>는 부모의 병 치료와 호구지책으로 부자 집 씨받이로 팔려간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내용이다.

1950년대 농촌지역 서민들의 애환과 빈한한 삶이 펼쳐지고, 부잣집 가장의 뻔뻔스런 엽색행각이 아들을 얻기 위해서라는 구실로 펼쳐진다. 주인공 처녀가 떠돌이 행상녀의 소개로 아들이 없는 부잣집 씨받이로 들어가게 되고, 씨받이 구실을 못해 결국 그 집에서 쫓겨나 술집작부신세로까지 전락하지만, 여주인공을 사랑하던 고향 청년의 도움으로 귀향을 한다. 그러나 그리워했던 부모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뒤에 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무대는 배경에 영상으로 산골 한 마을의 초가집이 투사되고, 장면이 바뀌면 기왓골이 번듯한 부잣집 가옥과 너른 마당이 펼쳐진다. 그리고 도시 술집밀집지역의 한 주점이 무대가 되는가 하면, 대단원에서 다시 산골마을의 초가집 영상으로 마무리가 된다.

노래는 귀에 익은 흘러간 대중가요에서부터 최신가요와 동요를 극중의 출연자들이 열창하고, 춤 솜씨도 자랑을 한다. 특히 부자 집 바람둥이 가장 역의 박영갑이 극의 도입에서부터 장면이 바뀔 때 마다 등장해 신파조의 대사로 해설을 하는 장면이라든가, 각설이 떼와 중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장끼 자랑 같은 열창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작중인물인 일부 남성 역을 여성출연자로 대체한 것과 일인다역도 볼거리고, 극중 인물들이 의상을 갈아입고 등장해 벌이는 노래솜씨와 율동은 관객을 열광시키고, 주인공 차영숙의 열연과 열창은 극의 수준을 100%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화자, 한성자, 송영희, 이승주, 박영갑, 김만수, 홍순화, 김정애, 김종임, 한현옥, 박태분, 차영숙, 윤정호, 양경애, 김세미, 감찬행, 촤화자, 안영실, 한경숙, 유재연, 남상학, 김춘자, 이상희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열창과 무용은 기성극단 못지않은 감탄과 감동, 그리고 폭소와 눈물을 객석에 선사했다.

음악감독 한 철, 무대제작 및 영상제작 박인환, 조명오퍼 김진웅, 음향오퍼 이슬이, 무선오퍼 이태민, 영상오퍼 양준서, 촬영 최희영, 기획홍보 도영희, 진행 권남희 유준기 강희영 등 제작진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로얄씨어터와 극단 청춘의 윤여성 예술감독, 이상용 작, 류근혜 연출의 <어머님 전 상서>를 독특하고 탁월한 악극으로 창출시켰다.

12, 서초연극협회 <제9회 조선왕조 친잠례 재현행사>

경복궁 함화당과 집경당 앞 넓은 마당에서 서초연극협회와 한국의생활문화원, 그리고 친잠례보존회의 <제9회 조선왕조 친잠례 재현행사>가 열렸다.

한국의생활문화원 오이순 원장의 예술총감독과 박소동 민족문화추진회 교수의 친잠례 의궤번역, 그리고 박정기의 행사대본과 연출로 <제9회 조선왕조 친잠례 재현행사>가 이루어졌다.

<친잠례 재현행사>는 왕과 왕비, 혜빈, 왕세손빈과 내외명부, 잠모 그 외 100여명의 궁중여인들이 고증에 따른 의상을 입고 등장하기에, 50여 년 간 조선왕조의 궁중복식을 연구하고 제작한 한국의생활문화원 오이순 원장의 수백여벌의 궁중의상제공이 없으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행사다. 10년 가까이 행사를 주관하고 계속한 오이순 원장의 집념과 노력이 <제9회 조선왕조 친잠례 재현행사>에서 그 면모가 드러나 빛을 발했다.

한나라 때 사마천이 쓴《사기》를 일명 蠶史(잠사)라고 한다. 사마천이 宮刑(궁형: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을 받고 회복을 위해 蠶室(잠실)에 보내져서 그곳에서 사기를 집필했기 때문이다. 누에 키우는 방을 잠실이라고 한다.

조선 초기, 세종 때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두었다. 지금의 서대문구에 있는 것을 西蠶室(서잠실)이라 하고 송파구에 있는 것을 東蠶室이라 했다. 잠실의 국립양잠소에 해당하는 蠶室都會(잠실도회)가 이곳에 설치되어 지명이름이 유래되었다. 본래 잠실은 한강의 지류인 탄천 하구에 있어, 큰물이 지면 사방에 물이 들어 꼭 섬 모양으로 물 위에 떠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浮里島(부리도)라고도 불렸다. 조선 前期(전기) 서울에는 총 3개의 잠실이 있었는데 후에 서초구 잠원동에 생긴 잠실을 新잠실이라고 했다.

의복을 만드는 데 원료가 되는 양잠이 중요했기 때문에 세종 때와 성종 때까지 양잠을 장려했으며 양잠의 主공급원이 되는 누에와 뽕나무를 신성시 여겼다. 부리도의 부렴마을에서는 뽕나무를 수호신으로 삼아 매년 10월에 桑神祭(상신제)를 지냈다. 조선왕조에서는 백성에게 양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장려하기 위해 先蠶祭(선잠제)와 親蠶禮(친잠례)를 행했다.

선잠제는 인간에게 처음으로 누에치는 법을 가르쳤던 西陵氏(서릉씨)를 치제 제사하는 의례다. 《國朝五禮儀: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선잠제는 5일간의 齋戒(재계)와 2일간의 제수 陳設(진설), 전날의 犧牲(희생: 제물로 쓰이는 살아있는 소) 검사와 香祝(향축) 전달 같은 준비 단계를 거쳐 제사 당일 헌관이 제단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의식은 奠幣(전폐)와 酌獻(작헌), 送神(송신)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친잠례는 조선왕조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주체가 되었던 국가의례였다. 선잠제 후 왕비가 직접 採桑檀(채상단)에서 뽕잎 5가지를 따고, 내외명부 1품은 7가지, 내외명부 2품과 3품은 9가지를 차례대로 따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채상을 마치고 內外命婦(궁중에 봉직한 女官, 왕실·종친의 여자 및 文武官의 처)가 잠실에서 뽕잎을 누에에게 주면 친잠례가 끝난다.

무대는 함화당과 집경당 앞마당에 높이 1m, 가로 12m, 세로 10m의 무대를 가설하고, 선잠제의 제사상과 제기와 제수용품은 물론, 관세위에서 손을 씻을 용기, 그리고 임금이 앉을 용상도 준비했다. 마당에는 광주리마다 뽕잎을 담아놓고, 누에 수천마리를 풀어 뽕잎 먹는 광경을 보도록 했다. 남쪽에 막차를 지어, 그곳에서 분장을 하고, 출연자의 대기 장소가 되도록 했다. 집경당 안에는 국화차와 한과, 그리고 다식을 마련해 관람객이 시식을 하도록 했다. 우중충한 날씨였으나 다행스럽게 행사 중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행사를 마치자 폭우가 쏟아졌다.

출연진은 영조대왕 전양재, 정순왕후 이연환, 왕세손(정조) 최영준, 혜빈(혜경궁 홍씨) 황인영, 왕세손빈 권민경, 대비 김옥영 성의순, 공주 박현진, 화순옹주 양국희, 내명부 황매숙 김정주 이경복, 외명부 민지영, 서현자, 집례 황명희, 대축 정순임, 상의 한경희, 집준 김화수, 봉작 박다영, 전작 김경미, 봉향 홍선희, 봉로 오미화, 전빈 지순희 이영숙, 집건자 김혜수 장혜란, 황등 오유진 김연희, 상공 이남순, 상전 한지민, 상복 홍현주, 상기 고재희, 용선 왕정혜 변부용, 봉선 김보연 장유정, 작선 현승진, 홍일산 유인선, 사찬 문인옥, 상공 이남순, 전제 김해마, 여시 김순호 이민정 이국주, 잠모 홍현주 이미애 이미선 박은숙 홍선희 오미화 김혜수 장혜란, 집광 홍서영 박가영 서지현 김예원 김하늘 문사랑 문세준 조문경, 집구 이연수 최지원, 사찬 정성진 이춘복 유승균 등 출연자 전원의 열정과 노력이 친잠례 재현행사의 수준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우리것 보존회의 홍성덕 총장의 서언과 김정주의 대북연주가 행사에 박진감을 가했고, 아리예술단의 민지영 단장 외 13인의 태평무와 어린이무용단의 청사초롱이 관객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오이순 원장과 박현진 총무의 사회, 그리고 이상은의 영어통역, 황명희의 창홀이 국내 관람객을 물론 좌중의 외국대사와 외국인들의 이해와 감상을 돕는 역할을 해, 서초연극협회와 한국의생활문화원(원장 오이순), 그리고 친잠례보존회(회장 성의순) 주최, 박소동 친잠례의궤번역, 박정기 행사대본/연출의 <제9회 조선왕조 친잠례 재형행사>를 성공적인 행사로 마무리 했다.

13, 서대문연극협회의 화요예술무대 낭독공연 윤여성 예술감독, 정미경 작, 류근혜 연출의 <밤이여 나뉘어라>

서대문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서대문연극협회 화요예술무대 낭독공연, 윤여성 예술감독, 정미경 작, 류근혜 연출의 <밤이여, 나뉘어라>를 관람했다.

정미경은 1960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으로 당선되어 등단했지만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다. 긴 공백기를 거쳐 2001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단편소설 <비소여인>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한 뒤 2002년 첫 장편소설인 <장밋빛 인생>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긴 공백기를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정미경은 <장밋빛 인생>을 비롯해서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2005), <아프리카의 별>(2010) 총 세 편의 장편소설과 <나의 피투성이 연인>(2004),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2006), <내 아들의 연인>(2008)과 같은 세 권의 단편집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6년 「밤이여, 나뉘어라」라는 단편소설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정미경 작가의 부군은 서울대 미대 김병종 교수다.

정미경의<‘밤이여 나뉘어라>는 늘 낮같이 환한 세계에서 최고의 주목을 받았던 천재의사의 파멸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나’는 전에 의학도였지만 천재인 친구에게 눌려 영화감독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나는 친구에게 실력은 물론 사랑하는 여자까지 빼앗겼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그러나 노르웨이 영화제에 초대받아 참석한 나는 노르웨이 의학연구소에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바로 그 친구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의 부인이 된 나의 첫사랑 여인과 대면한다. 그런데 나의 친구인 천재의학도는 알코홀 중독자의 모습으로 파멸의 길로 가고 있는 모습과 접하게 된다. 영화감독인 나는 과거 의대생활 속에서 친구로 인하여 어둠을 맛보았지만, 그 친구는 어둠을 맛보지 못한 채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생활하고 있다. 마치 열차가 전복되기 전까지 무한질주 하면서도 언제 부서질지 모르듯이…

밤이면서도 낮과 같이 환한 운자크레보의 백야, 그것을 그린 뭉크전시관의 백야, 환한 대낮처럼 실패를 모르고 주목받으면서 살다가 저물어가는 천재적인 의사, 의사인 친구로 인하여 밤처럼 살다가 이제 낮으로 향해가는 영화감독의 대칭구조로 이 소설은 되어있다.

결국 친구를 찾아간 ‘나’는 실망만 한 채 차라리 만나지 않은 것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숙소인 호텔로 돌아온다. 그 때 밖에서 ‘나’를 찾는 알콜중독자인 친구의 거친 절규가 들려오고 직원으로부터 손님이 찾는다는 연락이 온다. 하지만 ‘나’는 그를 모른다고 답한다.

유대시인 넬리 작스의 시에 곡을 붙인 윤이상의 교향곡 <밤이여, 나뉘어라>에서 제목을 따온 정미경의 소설을 서대문연극협회에서 희곡으로 각색해 낭독공연이 이루어졌다.

낭독공연이라도 건반악기를 출연자가 직접 연주를 하면서 열창을 해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낭독공연을 마치 연극연습 초반의 합독과 작품분석과정을 보여주듯 하기에 관객의 몰입과 공감대가 100% 형성된 고수준 고품격의 낭독공연이라 평하겠다.

강희영, 도영희, 박영숙, 한선희, 김진웅, 윤여성 등 출연자의 열정이 제대로 드러나고, 정춘권, 이상근, 권남희, 이란희, 김수진, 윤혜진, 이슬이, 양준서, 이태민 등 제작진의 노력이 하나가 되어, 서대문연극협회의 화요예술무대 윤여성 예술감독, 정미경 작, 류근혜 연출의 <밤이여, 나뉘어라>를 성공적인 낭독공연으로 창출시켰다.

14, 중구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의 <화통 콘서트>

장충동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중구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與民)의 <화통(畵通)콘서트>를 관람했다.

<화통(畵通)콘서트>는 우리의 옛 그림에 국악과 무용을 곁들여 친 대중적인 해설로 공연을 이끌어 간다.>

겸재(謙齋) 정선(鄭歚), 표암(豹菴) 강세황),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불염재(不染齋) 김희겸(金喜謙), 양촌(陽村) 마군후(馬君厚), 화재(和齋) 변상벽(卞相壁),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그리고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그림 중 잘 알려진 작품이나, 속화, 춘화 등 대중적인 그림에 들어있는 숨은 이야기를 해설자과 입담과 함께 출연자들이 평시조, 군악, 계명곡, 타령, 소리, 민요, 판소리 등을 피아노, 기타, 피리, 해금, 가야금, 대금, 타악 등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춤사위를 곁들임으로써 관객과의 공감대와 감성과 정서를 이끌어낸 공연이다.

<화통콘서트> 공연에서 그림이 소개된 화가들의 내력을 소개하기로 한다.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은 조선후기의 화가,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이다.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어 20세에 관직에 나가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했으나 30세를 전후하여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山水寫生)의 진경(眞景)으로 전환하여 동방 진경산수화의 종화(宗畵)가 되었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조선의 문신, 서화가이다. 자는 광지(光之), 호는 표암(豹菴),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1776년 기로정시에 갑과 1등으로 급제하고, 예조판서에까지 올랐다. 정조 때에 천추 부사로 베이징에 갔을 때, 그의 서화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을 정도로 서화에 뛰어났다. 글씨는 전서·예서를 비롯한 각 체에 모두 능했고 그림은 특히 산수·사군자 등에 뛰어났다. 그의 화풍은 정선(鄭歚)을 계승한 것으로 담담하면서 격이 있고 개성이 뚜렷하였다. 그는 당시 화단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후원자 또는 추진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서로 <표암집>이 있으며 그림으로 <난죽도>, <산수도>, <영통동구도> <자화상> 등이 있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그 고유색 짙은 조선 독자 문화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탄생하여 문화의 최후를 장식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던 화가이다. 김홍도(金弘道)는 7~8세 되던 해에 그의 천재성이 인정되어 사대부 화가 강세황(姜世晃)에게 인정받아 그의 훈도 아래 시문서화(詩文書畵)를 익혔기 때문에 성리학적 소양을 어느 정도 몸에 지닐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성리학을 사상 기반으로 하고 있던 진경시대 문화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듯하다. 단원(檀園)은 그림 재주를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이었기에 모든 화과(畵科)의 그림에 능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경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단원이 지목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이전 화가들이 그리지 않았던 민중들의 삶을 그려낸 풍속화들을 많이 남겼는데 그의 풍속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서당>, <씨름> 등이 있는데 농사짓는 사람, 빨래하는 아낙 등을 그렸다. 이는 당대로선 상당히 놀라운 전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학자들은 김홍도의 풍속화가 정조의 개혁정치와 관련이 깊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그 외에 신윤복(申潤福)과 마찬가지로 춘화도를 많이 그린 편인데, 운우도첩의 경우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춘화도첩으로 꼽힌다.

“불염재(不染齋) 김희겸(金喜謙 1392~1910)”은 조선 중기의 화가다.
일명 희성(喜誠). 자(字)는 중익(仲益), 호(號)는 불염재(不染齋) 또는 불염자(不染子), 일명 김희성(金喜誠), 본관(本貫)은 전주(全州)다. 서울 인왕산(仁王山) 아래 옥류동(玉流洞)에서 살았다. 1748년 숙종(肅宗, 1661~1720, 조선의 제19대 왕. 재위 1675~1720) 어진(御眞)을 개모(改摹)할 때 장득만(張得萬, 1684~1764, 조선의 화가)⋅장경주(493) 부자(父子)⋅정홍래(535) 등과 함께 참여하였으며, 그 공으로 변장(邊將) 벼슬을 받고 경상도 사천(泗川) 현감(縣監)을 지냈다.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당대(當代) 최고의 문인화가(文人畫家)이며 이론가인 강세황(姜世晃)은 그를 당대의 명가(名家)로 손꼽았으며, 그림을 어전(御殿)에 바치면 곧 왕의 마음에 들게 하였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하였다. 작품으로 <산수도(山水圖)>⋅<석천한유도(石泉閑遊圖)>⋅<오수청천도(午睡聽泉圖)>⋅<우수조옹도(倚樹釣翁圖)>⋅<한암초충도(寒巖草蟲圖)> 등이 있다.

“양촌(陽村) 마군후(馬君厚)”는 조선 후기의 화가이며, 생몰년은 미상이다. 자는 백인(伯仁)이며,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림을 잘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특히 인물과 영모(翎毛)에 뛰어났으며, 1851년(철종 2)의 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촌녀채종도 村女採種圖〉는 시골에서 밭가는 여인들을 그린 풍속 장면이다. 이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수하승려도 樹下僧侶圖〉와 〈묘도 猫圖〉,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쌍토도〉등이 전한다.

“화재(和齋) 변상벽(卞相壁)”은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밀양, 자는 완보(完甫), 호는 화재(和齋)이다. 숙종 때 화원(畵員) 거쳐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1763년과 1773년 두 차례에 걸쳐 영조 어진(英祖御眞) 제작에 참여하였다.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고양이[卞猫], 변계(卞鷄)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초상화도 잘 그려 국수(國手)라는 칭호를 받았다. 조선 후기 사실주의 화법의 전개에 중요한 구실을 했으며, 사생풍 동물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표작으로 (화조묘구도〉와〈고양이와 참새〉,〈암탉과 병아리〉등이 있다.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은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이다. 자는 이숙, 호는 현재(玄齋),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겸재(謙齋) 정선(鄭歚),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또는 관아재(觀我齋) 조영석을 사인삼재(士人三齋)라고 부른다. 심사정(沈師正)은 일찍부터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공부하여 중국의 남화와 북화를 종합한 새로운 화풍을 이루어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1748년(영조 24년)에 왕의 어진을 그리는 모사중수도감(摸寫重修都監)의 감동(監董)이 되었다. 특히 화훼(花卉), 초충(草蟲)을 비롯하여 영모(翎毛)와 산수화에 뛰어났다. 화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 <파교심매도 灞橋尋梅圖> <맹호도(猛虎圖)> <화수초충도(花樹草蟲圖)> 덕수궁 미술관 소장의 <추포도(秋圃圖)> <화항관어도(花港觀漁圖)> <계산고거도(溪山高居圖)> <운룡도(雲龍圖)> 간송미술관 소장의 <촉잔도(蜀棧圖)> 개인 소장의 <전가악사도(田家樂士圖)>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시문월색도(柴門月色圖)> 외에 다수가 있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 ?)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과 더불어 조선 4대 풍속화가로 손꼽힌다. 신윤복도 도화서의 관원이 되는데 관직은 첨정과 첨절제사에 이르렀다. 인물화와 풍경화 외에도 많은 양의 풍속화를 남겼는데, 그 중에는 양반의 위선적인 태도와 이중 잣대를 풍자하고 부녀자들의 자유연애와 애환을 묘사했으며 해학이 담긴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1800년 정조 사후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그의 작품 활동도 쇠퇴기에 접어든다. 그가 남긴 작품은 1813년의 작품까지 전해지는데, 대략 1813년 이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정확한 사망일과 사망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작품으로는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미인도(美人圖)> 등이 있다.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이나 여성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화려한 색을 사용하여 기생이나 무당의 그림을 즐겨 그렸으며, 시골 주막의 서민적인 풍속 또한 날카로운 화필로 잘 그려냈다. 시정 촌락의 풍속도 중에서도 기녀(妓女)·무속(巫俗)·주점의 색정적인 면을 많이 그린 풍속화가로서 현실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이는 유교주의 사회에 대한 예술 면에서의 항의였고, 인간주의의 표방이라는 평가와 양반 사회에 대한 풍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첩>에는〈단오도(端午圖)>〈연당(蓮塘)의 여인(女人)〈무무도(巫舞圖)>〈산궁수진(山窮水盡)〉〈선유도(船遊圖)〉등이 있고, <미인도>와 <풍속화첩>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무대는 오른쪽에 건반악기와 타악기, 현악기, 목관악기 등 연주자의 자리가 마련이 되고, 배경에는 이름난 화가들의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동물화 등의 각종 그림을 영상으로 투사하고, 동화영상으로 운치를 더한다. 객석 가까이에 놓인 불꽃 형태의 여러 개의 등은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남녀 무용수의 춤사위는 서양의 어느 춤 못지않은 예술성과 율동미로 해서 관객의 탄성을 불러일으키고, 연주자들의 출중하고 탁월한 기량이 공연의 수준을 100% 상승시키고, 해설자의 구수한 해설과 함께 공연을 성공으로 이끌어 간다.

이소영의 수묵동화 영상, 유태환의 음악감독, 손철주의 해설, 정마리의 노래, 소명진의 해금, 이신예의 판소리, 김빛여울의 민요, 이민주와 황태인의 무용, 김성수의 팝핀, 조승현의 작곡, 김석순의 편곡, 류영은의 피아노, 이준혁의 기타, 오경준의 피리, 소명진의 해금, 최세윤의 25현 가야금, 신승민의 대금, 김도희와 김다솜의 타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중구 문화예술감성단체 여민(대표 김영옥)의 <화통(畵通) 콘서트>를 친 대중적이고, 총체적인 예술공연작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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