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오민아

청소년을 위한 발라드: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오민아

 

원작: 에드몽 로스탕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각색: 김태형
연출: 서충식
드라마터그: 김옥란
단체: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공연일시: 2015/05/09-05/24
공연장소: 소극장 판
관극일시: 2015/05/17 오후 3시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에 의해 제작되었다. 최근 몇 년간 국립극단 청소년극 시리즈의 연구와 개발의 행보는 몹시 의미 있다.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소외되어 있던 청소년들에게 연극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청소년의 기호와 생활을 이해하고 다소 경직되어 있던 세대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청소년극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이다. 이런 관점에서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청소년이 연극에 관심을 갖고 그 안의 의미를 수집해갈 수 있었던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말해도 좋다. 관객석을 채운 청소년들을 실컷 웃고, 울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랑에 대한 성찰의 기회 또한 제공했기 때문이다. 몰론 성인 관객들의 호응도 충분히 유도했다. 이는 아마도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가 사랑이라는 보편의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청소년극은 주로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소 비판적인 색채로 그려왔다. 그 과정에서 간과하기 쉬웠던 청소년들의 밝고 경쾌한 면모들에 대한 조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라노라는 인물의 사랑을 통해 청소년의 사랑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시도는 훌륭했다. 청소년은 극장을 방문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등장인물을 만나고 이를 통해 21세기의 사랑 혹은 청소년 스스로의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1. 21세기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네 명의 등장인물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의 원작은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이다. 원작이 주인공 시라노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면,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시라노는 물론 드 기쉬와 크리스티앙의 사랑에도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러한 구성은 극의 입체감을 만들어냈지만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먼저, 드 기쉬는 성대한 결혼식이나 따뜻한 벽난로를 빌미로 록산느의 ‘사랑’을 구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본이면 사랑도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 21세기의 전형적 인물 중 하나이다. 게다가 드 기쉬는 록산느가 친오빠처럼 지내는 시라노와 자신이 사랑하는 크리스티앙을 통솔하는 지휘관이기도 하다. 명예와 권력까지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록산느가 원하는 것은 ‘생활’이 아닌 ‘사랑’이다. 록산느는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을 전쟁터로 보내지 않기 위해 드 기쉬를 속이려하다 실패한다. 분노한 드 기쉬는 부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간다. 그리고 혹독한 전장에서도 이들에게 냉혹한 태도를 취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그가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크리스티앙과 전장을 지켜야만 했던 시라노를 대신해 록산느를 지킨다는 설정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뒤, 수녀가 된 록산느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드 기쉬가 극의 결말부분에 등장해 진정한 사랑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은 사족으로 느껴졌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로 남겨두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 작품에서 드 기쉬 이외에 새로이 강조된 인물은 크리스티앙이다. 그는 록산느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오로지 자신의 외모를 통해서만 사랑을 쟁취하고자한다. 그의 태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외모지상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그러나 록산느는 외모보다 영혼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따라서 크리스티앙 또한 외모만으로는 록산느의 사랑을 소유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시라노의 영혼이 필요하다. 시라노의 편지를 통해 사랑을 얻고 그 사랑을 유지하면서도 그는 완전히 록산느를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시라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랑의 방식을 찾고자 할 때, 죽음이라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크리스티앙과 시라노의 대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가치에 대한 질문의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두 남자가 한 몸이 되어 록산느를 사랑한다는 설정은 흥미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록산느를 향한 구애의 과정에서 두 인물의 우애나 의리와 같은 섬세한 감정이 표현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21세기에는 다소 구시대적으로 여겨지는 낭만주의자 시라노가 있다.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희생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시라노가 읊는 사랑의 시들은 록산느를 전쟁터까지 오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진실한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게끔 만드는 지점이었다. 시라노의 사랑은 충분히 객석에 전달되어 죽음 앞에서 비로소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시라노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록산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작품의 제목이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이듯, 록산느라는 여성인물은 작품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원작에서 록산느는 남성들의 사랑을 받는, 다소 수동적 인물로 다뤄졌다. 이번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에서는 록산느를 전면에 내세워 여성의 사랑을 좀 더 능동적인 입장에서 그려보고자 시도했던 것 같다. 그러나 위 세 명의 남성 등장인물들에 비해 캐릭터가 미약했던 것은 자명하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에게 록산느라는 인물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허락되지 않았다. 단지 마지막 장면에서 록산느가 배낭을 메고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난다는 긍정적인 분위기로 극을 처리하려고 했던 시도는 보였으나, 이러한 시도는 극 전체를 통해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음에도 가장 미비한 부분으로 남겨진 점이 못내 아쉽다.

 

  1. 사랑을 마주하게 하는 오브제들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낭만 활극’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서정적이면서도 동적인 무대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연출이 오브제를 다루는 방식이 몹시 흥미로웠다.

무대는 나무나 기둥 같은 정적인 것과 밧줄과 같은 동적인 것의 조합을 통해 아주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먼저 나무는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서정적 오브제이다. 고통, 질투, 환희와 같은 사랑의 감정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밝게 빛나는 장면은 몹시 아름답다. 특히 이 감정들을 열어보고 닫고 매다는 과정의 섬세한 움직임이 돋보였다. 따뜻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연출 장면이었다. 이러한 감정들은 시라노의 펜 끝에서 탄생되는데 이는 편지가 영혼이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시라노와 록산느의 믿음과도 맞닿아 있다. 나무는 단순히 서정적인 장면이 연출될 때에만 활용되지 않는다. 드 기쉬가 록산느와 시라노의 이야기를 엿듣는 장면에서도 익살스럽게 사용된다. 이 장면에서 드 기쉬의 과장된 연기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반면, 밧줄은 그들의 흔들리는 욕망과 넘치는 에너지를 표현하기에 효과적이었다. 배우들이 밧줄을 활용해 무대의 가로, 세로, 위, 아래를 활보했던 장면들은 극에 활기를 불러 넣었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사다리도 효과적이었다. 세로로 우뚝 솟아있던 사다리가 가로로 배치됨으로써 사랑을 구애하는 달콤한 장소가 처절한 전쟁의 현장으로 변화하는 장면과 겹쳐지는데 적절히 사용되었다.

서정적이고 동적인 오브제들의 조합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기 위해서 한 인간이 겪어야할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담는데 효과적이었다.

 

  1. 그 외 사랑을 보여주는 것들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극의 흐름을 안정감 있게 만들어 주는 데에는 음악의 역할이 컸다. 클래식한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은 연극을 관람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또한 음악이 기쁨이나 슬픔을 표현하는 용도로 쓰여 단순히 배경으로 머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극에 개입해 분위기를 주도하는가하면, 악사들 또한 극을 구성하는 배우의 역할로 참여해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조명은 초반부에서 따뜻한 노란색 위주로 쓰이다가, 전쟁 장면에서는 붉은 색, 죽음의 순간에는 보라색 위주로 쓰였다. 자칫 도식적인 느낌이 들 수 있었지만 전체적인 극의 흐름에 맞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작되었지만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어른들에게도 자신의 소년소녀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상을 떠나 가치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연극의 힘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는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과 같은 무거운 주제는 물론이고 사랑, 자유, 우정, 분노, 배신과 같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을 청소년의 시각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작업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여, 청소년이 연극이라는 틀을 통해 좀 더 성숙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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