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오채까담] 연극교과목, 예술인 복지 문제 외 / 대학로포럼

2015 오채 까담

 

주 제 : 연극교과목, 예술인 복지 문제 외

일 시 : 2015년 8월 11일 오전 11시

장 소 : 대학로 노을 소극장

 

참석자: 채승훈(연출가), 오세곤(평론가, 연출가), 이신영(연출가), 이채원(서기)

 

이: 안녕하세요! 오늘 ‘오채까담’은 최근 연극과목이 기존의 미술, 음악처럼 일선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지정되는 것에 따른 의미와 파장 그리고 우리 연극인들이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보고, 연극인 복지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서 의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 2015년 교육과정 개정안에 연극이 고등학교 일반선택 예술교과로 들어간다고 결정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작년 9월에 발표되어 작년 말부터 교육과정을 짜는 일을 시작해서 올해 9월에 공시가 됩니다. 교육과정에 의해서 교과서가 개발되어야하고, 아마 2016년까지 교과서가 개발 될 것이며, 2017년쯤이면 시범학교 정도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2018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어떤 학교나 연극을 예술교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음악, 미술만이 정규교육과정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곳에 연극도 들어가게 됩니다. 연극의 입장에서만 좋다는 것을 넘어서서 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입니다. 연극이 들어가면 이후 무용도 영화도 들어 갈 수 있겠죠. 예술교육의 다원화를 위해서 연극, 무용, 영화 세 장르가 같이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 중 연극이 처음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사실은 연극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의외로 일반 연극인들은 자신들 작업에만 빠져 있고, 교수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하는 일들 빼고는 신경을 못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쫓아다니고 거기에 참여하고 조언하고 하는 일은 굉장히 미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바로 오늘 오후가 공청회라 출판사도 오는데, 연극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서 연극교과서도 여러 종류로 개발이 되고 그랬으면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연극계가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를 해야 하는데, 걱정과 우려가 됩니다. 나는 책임연구원이기에 홍보를 한다고 하긴 했지만, 광범위하게 전파된 것 같지는 않아서 걱정이 됩니다.

 

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연극이라는 교과목을 접하게 되면,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꼭 커서 연극을 하지 않더라도 올바른 관극훈련이랄까 그런 것들을 받게 되어 관객 저변확대에 큰 도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또한 연극이라는 과목이 생겼다고 해서 무조건 학교마다 당장 연극교과목이 생기진 않겠지만, 점차로 많은 연극관련 교육자들을 필요로 할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어찌 보면 답보상태에 있는 우리 연극 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 생각하는데요, 연극인들이 관심이 없는 이유가 뭘까요, 홍보가 덜 돼서 그런 것일까요?

 

오: 힘들어서 그래요. 간신히 자기 연극하거나 간신히 이렇게 사는데 다른 것에 관심 갖고 하기가 역부족이죠. 그렇게 이해를 해야 해요.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채: 연극 조기교육이 음악이나 미술처럼 보편화 된다면 우리 연극계에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이 어려운 작품도 이미 알고 있는 경우에는 훨씬 더 친근감을 가지고 관극하기 용이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조기교육의 보편화가 연극관객의 저변인구를 확충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죠. 이번에 일반선택과목으로 격상되었다는 것은 그래서 우리 연극인들에게는 생존의 터를 넓히는 큰 변화의 시점으로 생각 할 수 있죠. 청소년들에 대한 조기교육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학생특별활동 교강사라든가 특정학교에서 하는 선택과목으로서의 연극교육 등은 계속 존재되어 왔지요. 오세곤 선생 같은 경우는 연극교육 분야에 앞장서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분인데, 어쩌면 연극인들이나 대학교수들이 연극교육에 대한 관심이 처음 같지 않은 것은 연극교육운동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다보니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다시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 연극인, 연극과 교수들에게 부여된 책임이라고 해야 하나요, 즉 연극교과목이 되도록 많은 학교에서 채택되어지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학생들이 연극과목을 듣게 되었을 때, 어쩌면 우리 연극계의 위기탈출구의 비상구가 그 곳에서부터 생길 수 있음을 우리 연극계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 : 사실 연극교과목이 선택과정으로 지정되는 것이 매우 험난한 길이었고, 특히 기존의 미술과 음악 분야에서 반대가 특히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채승훈 선생님 말씀처럼 앞으로 되도록 많은 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지정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향후 몇 년이 굉장히 중요한 것은 데요. 우리 연극계에서 어떤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까요?

 

오: 일단은 아주 직접적으로 교장선생님들이 채택을 해주어야하니 교장선생님 연수라던가 이런 곳에 가서 연극교육이 얼마나 학생들에게 효과적인지 설명하고 그다음이 학부형이니 그 분들에게도 연극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말을 해야 합니다. 교육청에도 협조요청을 해야 할 것이구요. 그것 말고도 일은 많습니다. 교육자들이 현장에 가서 꼭 필요한 내용을 가지고 필요한 방향으로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노력도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 교직이수자들은 전부 연극 관련 학과에서 키워내고 있는데 제대로 지도자를 잘 양성하고 있는지도 우리 스스로 반성을 해야 합니다. 교직이수자외에도 문화예술교육사도 있는데 문화예술교육사 제도를 운행하고 있는 학교가 많지만 과연 우리 연극계가 일반인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는가도 생각해야 해요. 교과서가 개발된 후 교과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연수도 많이 필요할 것이고, 다양한 워크샵도 개최되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단순히 “연극이 좋아서 이 만큼 했어요”가 아닌 그것에 필요한 시스템, 교육자, 교과서가 세밀하게 준비되어야 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100인데 99가 되도 실패이고 50이 되도 실패입니다. 그래서 100이 최소이고 100은 넘어야 하며, 99까지 갔다고 아깝게 실패했다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필요한 요소들이 일정한정도의 완성도를 넘어서야 해요. 그런 것을 가지고 아주 냉정하게 반성해 봐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연극계가 해야 되는 거죠. 역량이에요, 연극계 역량이 그것을 해내느냐 못해내느냐에 따라서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사실은 기회를 만들었지만 이 기회가 제대로 기회가 되느냐 한 번 있고 마는 일과성 행사로 끝나느냐는 연극계가 어떻게 역량을 발휘해서 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채: 그런 계획과 일정표를 오 선생 같은 분들이 제시해야 합니다. 연극인들은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잘 모를 수도 있으니 이런 중요한 교육정책을 앞에 두고 그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극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얘기해줘야 합니다. 공청회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대부분의 연극인들은 그 자체를 모를 수 있어요. 연극인, 교수들이 각기 어떤 방식의 행동플랜을 가져야하는지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때에 다른 공부한 것 보다 음악시간에 선생님 반주로 다 같이 노래를 불렀던 추억, 또 미술 하면 봄가을에 야외에 나가 사생대회 했던 추억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우리 연극도 선택학교가 확대되고 많은 학생들이 듣는다면 연극 발전에 획기적인 큰 대안이 된다고 믿습니다. 아까 이신영 선생이 음악이나 미술 쪽에서 반대가 있지 않겠느냐 했는데, 제가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옛날에 이해랑 선생님에게 들었던 얘기입니다. 과거에 서울대학교가 예능 쪽으로 학과들을 만들 때, 먼저 음악전공과 미술전공을 만들고 다음에 연극전공을 만들기로 되어 있었답니다. 그런데 먼저 만들어진 음악과 미술 교수들이 연극전공 설치를 반대했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서울대에 연극과는 없으며 다른 국립대에서도 역시 만들어지지 않았고, 일반 사립대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차별화되니까 과거에 연극은 딴따라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이 갖게 되기도 하였죠. 이해랑 선생님의 언급이 사실이라면 결국 우리나라 예술 풍토에 굉장한 오류를 가져 온 큰 사건이라고 보면 됩니다. 연극 교과목이 유럽이나 구미에서는 오래 전부터 초중등 교육과정에 중요한 과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타 다른 예술들과 똑같이 존경받고 있지요.

 

이 : 외국과 달리 우리 나라의 경우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에 연극영화과가 개설되어 있지 못한 것이 치명적이군요.

 

채 : 이해랑 선생님이 무척 화내시면서 우리나라에서 연극문화가 마치 이류인 것처럼 취급받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러던 것이 이렇게 연극 교육과정에서 발전적 변화가 있다고 하니 늦었지만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예술교육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초창기부터 일반 중고등학교 교과목에 음악과 미술 넣고, 체육은 있어야하니 체육 속에 무용을 겨우 넣고 연극은 빼고 이렇게 불균형적인 교육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연극이 학생들에게 교육하기 어려운 장르라는 것은 핑계일 뿐입니다. 연극인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잘못된 과정들이 많이 유감스러운거죠. 어떤 것은 고상한 예술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되고, 그러면서 예술에도 층위가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거죠. 아주 잘못된 우리 근대 예술사입니다. 음악이건 미술이건 연극이건 과거에는 다 똑같이 귀족들에게 불려나가 하대 받던 예술들이었습니다. 세익스피어나 모짜르트나 미켈란젤로나 다 같습니다. 같은 운명체라는 상호존중이 필요하지요. 소위 문화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는 그런 차별화된 인식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에 연극이 일반선택과목으로 개정된 것은 그런 면에서 여러 잘못된 문화를 바로 맞추는 좋은 계기도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음악이나 미술에서 반대 목소리가 있었죠, 있었는데, 반대 명분은 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급작스럽게 연극이 들어오면 현실적으로 혼란이 오지 않겠느냐. 그것이고, 그래도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것이 이미 일반인들을 위한 연극을 2000년대부터 준비를 했고, 많은 종류는 아니지만 초중고용 교과서 5권을 냈고, 교과서 지침서 5권을 내서 총10종의 책을 연극계에서 발간을 했어요. 그리고 예술강사로서 일반인들에게 연극을 가르친 사람들이 이미 오륙백명 활동 중이고, 교육이 가능한 사람 1000명 이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직이수자가 연극만 천여명이 있다고 예상합니다. 그런 적지 않은 수가 교육훈련을 받았거나 교육자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어쨌든 잘 모르기 때문에, 연극계에서 준비도 안 하고 갑자기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말하는데, 그것은 충분히 우리가 그렇지 않다고 설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선, 토론의 장이 열리거나 이런 일은 없었어요.  언제든 그럴 용의가 있다고 해도 안 열리더라구요. 단지, 그 분야 관계자들만 교육부에 가서 항의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의 분위기는 이미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에 반대하고 말고 할 필요도 없고, 이미 국가에서 교육과정까지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보다는 이제 어떻게 자리 잡게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이미 그동안에 음악이나 미술교육에서 상당부분 연극적인 요소들도 들어가 있어요. 사실 통합예술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는 것은 이미 그 분야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죠. 연극은 모든 것을 종합할 수 있는 틀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같이 예술교육 차원에서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라고 해서 음악이나 미술쪽에 깨어 있는 분들은 이야기가 돼요. 현실에서는 당연히 어렵죠. 왜냐하면 기존의 음악교사 미술교사들의 반대가 있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예술의 시수를 늘려주고 연극을 넣은 것이 아니기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는데, 그것을 위협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같이 노력해서 예술교육을 정상화 시키고 활성화 시키자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실은 정규교과시간 말고도 예술이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많거든요. 게다가 일반과목의 도구과목에 예술과목의 이용이 좋거든요. 그냥 역사를 가르치는 것보다 예술을 합쳐서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이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과학 선생님이나 수학선생님이나 역사 선생님들 중에서도 그렇게 활용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그랬을 때 예술은 어떠한 과목과도 만날 수 있는 모든 학교에서 꼭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음악이건 미술이건 연극이건 무용이건 이런 것들이 전체적으로 예술이 교육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증대시켜가면서 같이 노력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은 그렇게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초기의 몇 년 동안 자리를 잡아야하는데 어느 부분에서 준비가 미흡하거나 또는 호응을 못 끌어내어 아예 싹도 자라지 못하고 끝내면 안 되니까 그런 부분에서 걱정을 해야죠. 예를 들어서, 실제로 연극영화 교사들이 임용되어 있는 학교들이 있어요. 예고 말고도 특성화고등학교요. 특성화고등학교에도 일반 과목들이 있단 말이죠. 그 특성화 고등학교는 연극영화 교사들이 있는 학교들이에요. 그래서 일반 학생들에게 일반 과목을 한다하면 훨씬 수월하겠죠. 뭐 그런 식의 가능성을 봐야 하는 것이고, 굉장히 정교하게 우리가 접근해야 하는데, 영역 다툼 쪽으로 간다면 해결이 안나요. 정말 공동의 발전을 위한 목표설정과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되도록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피해가 없이 같이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고민을 늘 해야 합니다.

 

이 : 채선생님 말씀대로 연극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일반 사람들에게 일상과 동떨어진 굉장히 고급 예술로 포장되어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일반 시민들이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의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앨리트 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클라식한 음악에서 실용음악으로의 전환이 우리 연극계에도 꼭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오: 사실 지금 고등학교 일반선택에서의 연극만 이야기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는 어떻게 되었나하면, 먼저 초등학교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국어과목에 연극이 대단원으로 들어갑니다. 중학교는 단원으로 포함되구요.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하도록 교육이 짜지는 겁니다, 고등학교에는 예술 교과에 연극이 들어가는 거구요. 뭐 아시겠지만 80년대 초까지는 연극영화과 나온 분은 국어교사 자격증을 줬어요. 그래서 국어교사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있습니다. 이 말은 국어와 연극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80년대 초 이후로 그 관계가 멀어져 다시 붙이기 힘들어요. 국어 쪽에서 연극과의 연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 예전에 비해 많지 않은 어려움은 있지만, 어쨌든 큰 차원에서, 총론차원에서 그것이 결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연극교육은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극이 국어와 만날 수 있는 것은 아주 좁게 보면 희곡이 문학과 만나고 말하기 듣기 쓰기 등 언어와 긴밀하게 연결되죠.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면서 자기 말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지 어떻게 전달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는 거죠. 사실은 국어에서 다 하고 있으면 연기에서 안 해도 돼요, 이미 국민 모두가 자기가 어떻게 말하는지 알 수 있고,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 있다면, 자기 말이 잘 전달되는지 알 수 있고,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고, 이렇게 된다면 소통이 된다는 것이죠. 연극은 소통의 기본이에요. 소통이 첫 번째 역량입니다. 협업 능력이나 상상능력이나 구성능력도 좋아지죠. 국어 교과에서 연극은 그동안은 희곡이 있어도 잘 몰라서 건너뛰거나 그랬는데 이제는 너무 커져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육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훨씬 유리하겠죠. 국어 교사들도 협회에 연락하면 금방 예술 강사가 도와줄 수 있다라는 등 어디 예술 강사가 도와주고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것이 우리 연극계의 역량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희곡이 있는데 이 희곡의 공연을 매번 영상으로 본다는 것이 좀 그렇겐 하지만 이런 교보재를 만들어 줄 수는 있다는 거거든요. 영상으로 먼저 보고, 방학 때 그런 공연들이 학생들을 위한 공연도 계속 되고, 뭐 본인들이 하겠다면 도와줄 수 있는 대본이나 교보재들을 줄 수 있는 그런 식의 것들이 좋으면 겁이 안 나거든요. 그런 것들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는가인데, 아까도 얘기 했지만 워낙 열악하니 문제입니다. 지금도 교육과정을 짠다고 하면 수학이나 역사나 이런 곳에는 수십 개의 학회가 모여서 뭐가 옳으냐에 대한 치열한 다툼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현주소임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정말 다 지켜보면서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당장 나서서 지적하고 올바른 상황으로 어떻게 만드느냐를 의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채: 연극인들에게 홍보를 해서 필요할 때 힘을 얻는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극과 교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고요. 연극관련 단체나 학회들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서 이제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큰 과수원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이제 다른 이야기 하나 해보면 좋겠습니다. 일반 연극단체에서 작품 선정 시에 늘 고민하게 되는 것이 저작권 문제인 것 같습니다. 특히 번역극의 경우 작가 사후 60년이 지나야 작품 허락을 득하는 것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번역극의 저작권이 작가에게 있는지 번역자에게 있는지 에이전시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무척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해결 되어야 되는지 예술인들만 고민을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국가적인 지원이나 시스템은 없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채 : 저작권은 당연히 지켜야죠. 하지만 하고는 싶은데 턱도 없이 비싸게 부르면 안하면 되는 거고요.

 

오: 예술 당사자들은 그것에 대해 여유로운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제 에이전시가 꼈을 때, 작가들을 에이전시가 미리 잡았을 때가 문제인 거죠. 우리 연극인들이 영세하니까 과정을 겁을 내거든요. 또 혹시 했다가 많이 달라고 할까 봐요. 또 경고도 하구요. 사실은 또 겁도 나는 것이 나도 오래전 이야기지만 대구 시립 극단에서 <우리읍내> 번안을 해달라고 하고, 저작권까지 해달라고 해서, 뭐 그때 대구시립극단이 처음 생겼으니까 그런 쪽으로 역량이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해서 내가 수소문해서 에이전시에 연락했더니 객석수를 다 계산해서 저작권료를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번안료에 반을 내야할 수 있는 그런 경우가 된 거에요, 실제로 상업극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에이전시에 연락했다가 그 극장의 객석수를 다 계산하는 바람에 현장조사 알바비 용돈을 주고 나니 나는 무료봉사 꼴이 되었어요. 물론 호소를 했어요, 객석의 대부분은 초대권이라구요. 그런 것들이 있으니 겁이 나요, 행정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에 겁이 나기도하고 액수가 클까 봐 염려하는 것도 있구요. 아까 이신영선생이 말한 것처럼 국가라든지 어디든지 어떤 지원기관이 됐든지 지원이라는 것을 창작뿐만 아니라 행정지원이라던가 어떤 원칙을 마련해서 협상을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게 상업적인게 아니라서 어차피 적자가 나는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플러스로 저작권료를 내야하는 것에 대해서 사실은 학교도 마찬가지고, 요새 뮤지컬같은 경우 학교들도 굉장히 난처해요. 문제가 되거든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명쾌한 규칙과 원칙들이 필요하지 않은가 합니다. 그리고 능력 안 되는 극단에는 상담해주고 나서주고 지원해주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작권료를 내주는 것이 아니더라도 사실 저작권료는 최소화 시키는 노력을 해주고 이것은 제작비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죠. 사실 저작권료는 내는 게 맞아요. 그리고 저작권은 굉장히 여러 가지 저작권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채승훈 선생이 연출한 작품이 있다면 연출저작권료가 있구요, 내가 번안을 했다면 번안저작권료가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정확하게 알고 번역자들도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직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 정당하게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음악하는 사람들도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면 저작권이 들어오는데 저작권이라는 것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 우리는 그렇게 인식해야합니다. 다만 극단들이 너무 영세하고 힘드니까 그리고 행정능력도 약하니까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 행정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죠.

 

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연출가들은 많이 햇갈립니다. 저작권이 원작자에 있는지 번역자에게 있는지.

 

오: 둘다 받아야 합니다. 물론 번역자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죠. 김미라교수님 같은 경우에 아라발을 할 때 한국에서 하는 공연은 김미라 교수님께 다 저작권을 주기로 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서는 다 받으셨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원작자와 번역자 둘 모두의 허락이 필요해요.

 

이: 제가 <수업>공연을 몇 년에 걸쳐 꽤 오래 연출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상업공연으로 오해되었는지, 모 협회에서 공연 횟수 이런 걸 적용해서 저작권료를 내라하더군요. 이뿐만 아니라 예전에 팜플렛에 사용했던 글씨체를 도용했다고 사용료를 내라는 공문이 우리 극단 포함 여러 극단에 공문으로 날라오기도 하더군요. 결국 시간이 지나 자연적으로 해결되었지만, 이러한 연락들을 받을때 무척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예술행정을 위한 컨설팅이나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채: 저작권 협회가 있죠?

 

오: 거긴 주로 저작권 보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채: 연극제작을 하는 극단들의 입장을 도와주는 행정은?

 

오: 그런건 못 들어 봤어요.

 

이: 오늘 얘기할 마지막 내용은 복지에 관한 것입니다. 주로 포털 사이트나 TV에서 예술인들의 죽음에 다루고 있는 것은 깊이가 없으며, 표면적인 사항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예술인복지법이 통과되고, 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져 일련의 복지혜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적재적소에 쓰이고 있는지, 혹 사각지대는 없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 연극인들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채 : 김운하 연극인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연극계에 복지라는 개념이 들어온 것조차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약 10년 전쯤에 처음 언급되기 시작해서 지금의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만들어지고, 나아가 예술인복지법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역사이구요, 그전에는 복지라는 말조차도 없을 정도로 아무런 여력도 노력도 없었지요. 비빌 언덕 하나 없이 사방으로 힘든 난관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었죠. 이제 나라 경제가 좋아지고 복지에 신경을 쓰게 되고, 당연히 예술인 복지, 연극인 복지는 필요한 것이 되었죠. 저는 이번에 김운하 씨가 사망한 것에 대해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보다도 정신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은 부분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을 단언할 수는 없겠죠. 복지라고 하는 것이 경제적, 현실적인 복지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예술인들의 정신세계를 위무할 수 있는 정신적인 복지도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저도 아픈 기억이 있어요. 우리 극단에 있던 친구인데, 7,8년 전 쯤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그 친구는 경제적으로 안 좋았던 것은 아니에요. 연극이 그에게 죽음을 주었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워낙 복합적이니까요. 하지만 가끔, 우리 연극계가 희망 없는 그 제로섬게임 같은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연극이 우리 삶에 정신적 풍요와 보람을 주는 종착역이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연극을 한다는 것이 경쟁이나 헛된 목표를 위한 새로운 출발선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상호경쟁을 통해서 대체로 이겨야만이 장밋빛 미래가 있다거나 하는 일반 사회의 통념에 연극계 역시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청년기에 연극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연극은 굉장히 아름답고 벅차며 항상 즐겁고 우리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것이었죠.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삶에 에너지를 주었던 연극이 어느 순간 도리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런 것을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해요. 물론 그중에 경제적인 현실도 크게 작용한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현실이 항상 우리 옆에서 괴롭힐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를 하는데,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또는 건강을 해칠 정도로 자기를 놓아버리는 이러한 식의 괴로움을 주는 것이 연극이라 한다면 우리 연극계의 공존방식, 운영방식 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강한 의문이 드는 겁니다. 이런 것을 돌이켜보자는 것이죠. 젊어서 연극을 바라보았을 때의 순수한 생각은 점점 사라져버리고 연극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인기냐, 돈이냐, 명예냐 이런 것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엉뚱한 생각일 수도 있긴 한데, 우리 연극계에 상이란 상은 다 없앤다고 할 때, 우리 연극계에 어쩌면 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좀 우습나요? 하지만 계속해보죠. 이런 저런 상들이 있는데, 연기자가 날이 가도 연기력을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 많은 상 하나 받지 못했을 때 자괴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요새 영화나 티비드라마로 많이들 픽업되는데 거기서 성공한 배우들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배우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많은 기회를 갖는 연극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연극인들, 쉬지 않고 작품 섭외가 오는 연극인들에 비해 그렇지 않은 연극인들, 심각한 자괴감을 가질 것이라 생각해요. 의욕이나 희망을 반감시키거나 꺾어버리는 요소들입니다. 그런 경쟁적인 요소들이 있기에 연극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연극이 산업과는 다른 거 아닌가요. 그리고 개인적인 얘기입니다만 차제에 저는 앞으로 저에 대한 개인 연극상을 거부하겠습니다. 극단원들이 있기에 다른 상까지 제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제 개인상은 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증인이 되어주세요.

 

오: 뭐, 그런 고민을 할 때가 됐어요, 저도 최근에 글을 하나 썼는데 정재진 선생이 단양으로 내려갔죠, 몇 년 전에는 이상직배우가 구례로 내려갔어요. 주경야연이라는 표현을 갖다 썼는데, 농사를 지으며 연극을 한다. 그것을 자존감으로 생각이 든다. 우리 연극인들은 연극인으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건가, 그리고 그게 아까 채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유명해지고 부름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상대적 차이가 크다라고, 또 유명하고 부름을 받는 사람들은 과연 연극인들로서의 자존감이냐, 또 일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것에 대해서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해요. 지금 이야기의 발단이 김운하 배우지만, 거기에 혹시라도 그런 어떤 모든 세계는 음영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너무 심해져서 그 그늘 쪽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냐, 그리고 사실은 그 사건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이, “아! 연극인들 스스로 자기보호를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겠구나.” 그러니까 자기 보호를 할 수 없는 탈진상태,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자신이 되게 중요한 거잖아요, 그게 참 필요하거든요. 연극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보호 할 수 있다, 그럼 자기를 보호하려면 자존감은 기본이에요. 그런 부분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연극인 복지재단에서도 연극인들이 자기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하고 있고, 어떤 프로그램이 좋을지도 사무국에서 생각하고 있는데요. 사실 무슨 일만 터지면 언론에선 사각을 들먹이는데, 그 복지 사각에 저는 반감을 표시했어요. 법이 어떻게 만들어져도 사각은 생기기 마련이에요. 이게 안 생기게 하려면 그것은 사람이에요. 그러면 어쨌든 예술인들을 위한 예술인 복지재단이 있어요. 연극인들은 연극인 복지재단이 있구요. 그랬을 때,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 사실은 막 누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들으면 찾아다니면서 긴급하게 그것을 구조할 수 있는 그런 결정권과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김운하배우 불행한 사고를 당했던 날, 발견되고 친구들이 전화를 돌렸을 때, 그 날이 일요일이어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자동응답만 돌아가더래요. 그나마 나중에 연극인 복지재단에서 알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법만 가지고는 안 되는구나, 긴급하게 쓸 수 있는 예산이 필요하고, 직원들에게 재량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과잉 대응이었어도 처벌하지 않고, 소극적 대응을 할 경우 처벌을 하는 이런 식으로 사각을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은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사각은 생겨요, 제대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말이에요. 사실은 작년에 예술인 활동 운영 지침을 제가 만들었어요. 거기에 근본적으로 제가 썼어요. 스스로 자기를 예술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것이 되어야 한다. 자기정체성이 되게 중요하다. 규정을 많이 만들었지만 이 규정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예술인이라고 판단되면 넣을 수 있어야 된다라는 문구도 넣었어요.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해석을 하면 다 예술인으로 포함할 수 있는, 뭐 띄엄띄엄 작업을 하던 그런 사람들도 다 넣을 수 있게 했고, 사각이라는 것은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다 없앨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각이라는 단어가 타이틀 뽑기는 참 좋으나 그것은 대책이 되지 않아요. 국회에서 법 개정하려고 찬반 공청회하고 이렇다고 한들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한 것은 이게 근본적으로 우리가 연극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점검해 봐야 하지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나는 김운하 배우에 대해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고독사라고 표현해요. 혼자서 죽었단 말이에요.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요. 그 상태가 물론 다른 이유로 심장마비라거나 이런 것이 왔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게 좌절과 절망 상태에서 점점 더 자기가 축소가 돼서 무기력 상태가 되어서 그냥 죽었다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따져봐야 해요. 연극인들에게 연극이 무엇이냐, 이것이 그렇게 과연 가치가 없는 것이냐. 물론 돈의 액수로 따지는 것도 있지만, 아까 시골에 가서 농사지으면서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돈하고 상관은 없어요. 우리는 봐주는 사람들이 있고 연극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간 것이잖아요. 그 사람들은 자존감이 최상이어서 내려가는 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또 얼마 전 변방연극제가 문예위 지원을 안 받고 모금으로 예산을 마련했죠. 물론 연극인들이 지원제도에 너무 치이고 있는 상태에서 아까 채선생이 상도 안받겠다고 한 것처럼 지원 싹 안 받고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그런 꿈들을 꾸기 때문에 그런 실험들이 실패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어서 다들 조금씩이라도 십시일반해서 그게 성립이 되었을 거에요. 어쨌든 시도는 그 절박함에 대한 어떤 표현이거든요. 우리가 정말 자존심이 제일 중요한 거지 이렇게 지원금의 노예가 되어 지원받으면 하고 지원 받지 않으면 하지 않고, 이런 것을 보았을 때 연극 혼은 없어진 것이잖아요. 이런 상태에 대해서 어떤 강렬한 몸부림을 쳐본 것이다 생각을 해요.

 

채: 연극을 한다고 하는 것이 인생에서 우리에게 플러스요인, 보람, 한마디로 정신적으로 풍요를 가져다주는 존재가 되어야하는데, 막상 우리가 출발선상에 섰을 때는 지금처럼 단계를 설정한다거나 또는 단계를 부추기는 문화, 상처주기 쉬운 비평의 문화라든가, 항상 몇 팀만 골라서 줘야하는 심사의 문화, 시상의 문화 이런 것들을 겪어야 하죠. 예술성과는 관계 없는 어떤 요소들이 그런 단계들을 올라갈 때 작용하진 않을까, 이런 어떤 생각들, 그런 생각들이 도리어 오늘 하는 연습이나 공연이 행복한 종착역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장애를 주는 것이라는 거죠. 그런 경우는 현재의 어떤 복지로도 해결이 되지 않아요. 항상 연극인들은 이중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경제적인 고통과 함께 정신적인 고통까지요. 그 두 개가 함께 해결되는 사람들은 피라미드의 맨 위에 있는 몇몇 사람들뿐입니다. 나머지 100명중에 99명은 그 이중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건데 그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요. 이 시대에 연극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한다고 말했던 과거의 선배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있지만요.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지 않느냐. 목숨은 무슨 도대체 뭐를 위해 거는 것이냐. 생각을 해볼 때, 연극인들을 무슨 정글에서 적자생존 하라고 하는거냐, 그런 죽고사는 문화로 내던져버리는 것이 맞는 것이냐 하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 우리가 연극의 복지를 얘기하고 예술의 복지를 얘기할 때, 경제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면을 위로 해줄 수 있는지, 그들의 현재의 고통이 무엇인지, 그 다음에는 그것을 거둬 낼 수는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허상과도 같은 피라미드를 허물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기댈 곳 없는 연극인들, 젊은 연극인들도 그렇고 나이를 먹은 연극인들도 그렇고, 기회를 남들보다 못 받는 사람들, 주목을 받지 못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고 그들을 태양아래 끌어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현실적인 것만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오: 근본적인 고민을 당장 시작해야겠다, 자꾸 대증요법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마무리할게요.

 

이: 예술인들, 특히 우리 연극인들을 위한 복지에 경제적인 면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앞서 시급한 것이 정신적인 면의 복지 그리고 우리 스스로 연극을 왜 선택하게 되었고 앞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연극정신의 회복 또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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