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다산왕/ 김태희

날카롭거나 유쾌하거나 <내일은 다산왕>

 

김태희

 

작, 연출 : 류동민

단체 : 유유상종앙상블

공연일시 : 2016년 5월 26일 – 6월 12일

공연장소 : 키작은소나무극장

관극일시 : 2016년 5월 29일

 

 

미세먼지가 연일 서울 하늘을 뒤덮으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환경부가 고등어구이를 미세먼지의 원인으로 지적했고 갑작스레 생선구이집 매출이 격감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정부의 정책이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한다면 지나친 걸까.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책 결정이나 정부 인사의 돌발적인 발언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여파는 상당히 크다. 유유상종앙상블이 선보인 <내일은 다산왕>은 그런 정부의 갑작스럽고 돌출적인 언행이 미치는 파급력을 유쾌하게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순산을 위한 신체적 조건을 선천적으로 갖추고 태어난 조금박은 공장에서 일 하던 가난하고 순박한 여공이었다. 그런 그녀가 결혼을 하는 시기와 맞물려 10년 안에 아이를 강제적으로 셋이나 낳아야 하는 출산 장려 정책이 발표된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이 뒤따르는 것은 물론이고 왜 아이를 낳을 수 없는지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덕분에 아이를 낳기 위해 남성의 성욕을 증진시키기 위한 단백질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아이를 가장 많이 출산한 여성을 가리는 ‘다산왕 대회’가 개최되기에 이른다. 갑작스럽게 발표된 출산 장려 정책 때문에 그야말로 웃지 못 할 기이한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정책은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까지 감시하고 감독한다.

 

이 작품의 풍자성이 가장 고조되는 장면은, 정부의 출산 정책이 다시금 변화하는 대목에서다. 조금박은 타고난 신체적 조건으로 갖가지 출산 신기록을 세우고 각종 출산 제품을 판매하면서 유명인사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녀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가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무의미해진다. 그녀가 20번째 아이를 출산하던 해, 정부는 출산 장려 정책을 폐지하고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산아 제한 정책을 새롭게 발표한다. 그동안 출산 장려를 위해 제공되었던 복지 혜택들은 사라지고 각자 아이를 알아서 기르라는 입장만 되풀이 할 뿐이다. 다산왕으로 화려하게 살았던 조금박의 인생은 다시금 가난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 조금박이 애초에 아이를 많이 낳았던 이유는 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을 받고 ‘다산왕’의 타이틀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반대로 정책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그녀의 삶 역시 방향을 잃고 말았다.

 

과장된 설정, 과잉된 유쾌함은 작품의 풍자성을 배가시킨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작품은 ‘다산왕’을 뽑는다는 기이한 설정을 극 전면에 내세운다. 조금박에게서 대박의 기운을 감지하는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 그녀가 참여하는 다산왕 경연대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갖가지 출산 신기록 등 이 작품에는 흔히 B급 코드로 정리되는 과장되고 뒤틀린 설정들이 난무한다. B급 코드를 작품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 양상은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다. 그것은 주제와 긴밀하게 작동할 수도 있고 혹은 그것 자체로 소비되기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경우 과장된 설정, 과잉된 유쾌함은 주제와 밀접하게 공명하며 작품의 주제 의식을 부각시키는데 기여한다.

 

한편 이 작품의 시작은 고등학생인 조금박이 갓 태어난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버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실수로 생긴 아이를 버리고 이내 죄책감에 아이를 찾으러 오지만 이미 베이비박스는 텅 비어진 뒤다. 그 후 그녀의 내면에 죄책감이 자리 잡고 정책의 변화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된 순간, 그녀의 죄책감은 성장한 아이의 환영으로 그녀를 찾아온다. 이 서사는 작품의 내용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고 조금박이 내면을 고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이지만 인위적으로 접붙여진 서사라는 느낌이 강하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 일부 등장하는 여성의 ‘나이 듦’에 대한 고찰도 서사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한다. 사실 출산이라는 영역은 생물학적 연령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나이든 조금박이 더 이상 출산을 이어가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젊은 여성들에게 갖가지 타이틀을 내어 주는 장면은 그래서 더 서글프다. 다만 이 장면들이 보다 섬세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단순히 생계 수단의 박탈 정도로 연결되고 있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연극 무대는 현실을 강하게 투영할 수밖에 없다. 조금박의 삶을 뒤흔드는 정책의 급변은 실상 우리가 현실에서 왕왕 마주치는 것들이기도 하다. <내일은 다산왕>은 그런 의미에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풍자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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