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장윤정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어온 방식
<단편소설집>

 

장윤정(연극평론가)

작: 도널드 마굴리스 (Donald Margulies)
연출: 이곤
번역/드라마터그: 마정화
극단: 극단 적(的)
공연일시: 2016/08/12-08/21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관극일시: 2016/08/20 4pm.

 

danpyunsosul

 

인류의 명맥이 유지되어 온 과정에는 교육이 존재한다. 인류의 삶이 시작된 이래로 교육은 지속 · 발전되어왔고 생존을 위해 본능에 의거했던 교육은 인간형성과 사회존립을 위한 교육으로 발전되어왔다. 가르침과 익힘의 관계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었고 그렇게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어온 중간에 순자(荀子)는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래된 신화처럼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스승의 시대는 겁 없이 무섭게 돌진하는 젊은 피에 여러 번 위태로움을 겪고, 결국 거셌던 히말라야가 어느새 완만한 능선으로 깎여져버리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그렇게 역사는 지속되어왔다. 도널드 마굴리스의 <단편소설집>은 그러한 인류가 유지되어온 방식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단편소설집>에는 문예창작과 교수 루스 스타이너와 대학원생 리사 모리슨이 등장한다. 루스는 재능 있는 리사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리사는 루스에 대한 동경과 존경으로 일말의 의심 없이 모든 것을 배워나간다. 늘 그렇듯 이미 중천에 떠있던 태양은 지기 시작하고 애송이 같던 빛줄기는 찬란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루스는 물리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노쇠해져갔고 리사는 건장해져갔다. 가르치기를 시작할 때 루스는 위치변화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굳건한 입지에 믿음이 있었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했기에 선심 쓰듯, 재능기부를 하듯 삶에 있어서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가르치기를 시작하고 즐기기까지 했다. 루스가 가르치기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내비치는 리사의 태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게 루스는 가르치기를 통해 인정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으리라. 반면 리사는 루스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자신에 대한 욕망의 세계를 유지 및 분출하고 충족시켜나간다. 그것은 아직 사회 속에서 제대로 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였기에 일어나는 강렬한 인정욕구 같은 것이다. 각자의 인정욕구와 사회 정체성은 어느 한 쪽이 성장할수록 나머지 한쪽은 본의 아니게 생채기를 입고 만다. 존경하는 선생님밖에 없을 것 같았던 리사가 점점 리사 본인에게 집중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이 하나인 것처럼 느꼈을 루스는 인간은 결코 하나일 수 없다는 오래된 명제를 확인하듯 분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상처받는다. 그것은 리사 또한 마찬가지다. 리사가 꿈꾸던 아름다운 사제관계 같은 것은 없었으며 상처받은 채 둥지를 떠나간다. 그렇게 둘은 또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 작품 속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 글 혹은 예술과 삶의 천착관계, 작품 속에 나타나는 작가의 삶, 작가가 주장할 수 있는 작품 소유권의 범위, 작품에 나타나는 진정성과 작가의 경험 유무 등. 이 다양한 이야기들은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했을, 여전히 하고 있을 문제들이다. 그 어떤 문제도 명쾌한 해답은 없으며 펜을 놓을 때까지 지속될 고민들일 것이다. 작품에서는 작가 도널드 마굴리스가 실제로 겪었던 고민들을 점철해놓은 듯 각 인물들의 강렬한 외침에서 간절함이 묻어난다. 이 한데 묶이지 않을 문제들은 절묘하게도 두 인물의 관계문제로 귀결된다. 루스의 민감하고 지극히 사적인 과거를 리사가 자신의 장편소설집 소재로 사용하여 둘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마는데 이 파국은 두 인물이 너무나도 가까워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루스와 리사는 서로의 삶이 각자의 삶에 영향을 끼칠 만큼 공통분모가 많아져버렸다. 리사가 루스를 소재로 한 것은 그만큼 루스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어느새 루스가 곧 자신의 삶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감히 글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작품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루스에 대한 자신의 확신이 있었고 진정성이 있었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단순히 리사가 루스의 삶을 소재거리로 흥미로워서 접근한 것은 아니리라. 그렇게 두 인물을 통해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것 같으면서 거꾸로 두 인물의 세계가 너무 많이 겹쳐버렸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는 답을 유추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단 두 명이 나오는 2인극이다. 그렇기에 두 인물의 힘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스승과 제자의 위치 전복은 예상 가능한 구조이나 그 힘의 전복이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극의 흐름에 따라 인물들의 성격변화가 나타나며 그 과정에는 반복과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단편소설집> 또한 마찬가지다. 스승과 제자의 힘의 위치관계는 차후 변화되고 스승은 위치가 전복되어가는 과정을 불안하면서도 받아들여야하는, 이제는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하는 인물이다. 배우 전국향은 그런 인물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어른인줄 알았던 스승이 괜한 불안과 질투로 흔들리고 그러다 관계변화를 인정하며 동료의 관계로 승화하려했던 인물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각자 제대로 된 삶을 정립하려면 독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예술가라면 더 할 것이다. 예술만큼 자기 세계가 뚜렷하고 확고해야 살아남는 분야가 또 있을까. 진정한 예술가로 거듭나려면 루스와 리사는 분리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 분리의 과정을 배우 전국향은 매우 복합적인 모습으로 인간적인 스승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리사는 루스의 외적 ·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인물인 만큼 자신의 색깔이 뚜렷하고 확고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처음엔 자신에게 믿음이 부족하였으나 점차 자신의 세계에 신뢰가 생기고 더욱 단단하고 튼튼해지는 인물인 것이다. 초반의 자신감이 부실했던 때마저도 그 내면 깊숙한 밑바닥에는 절대 놓지 않는 자신만의 고집스럽고 분명한 세계가 있는 인물이다. 애송이 같던 젊은이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은 말투나 외모 변화 이외에도 분명히 예술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나타나리라. 그런 점에서 배우 김소진은 존경하는 거장을 마주한 젊은이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었으나 한편 리사라는 인물을 명징하게 드러내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리사의 화법 대부분이 끝을 올리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긴 하나 부적합한 억양으로 다소 어색함이 묻어나기도 했다. 리사는 루스에게 건네거나 물어보기 위해 끝을 올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말하는 화법이 아니었을까.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매사에 평서문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본인이 본인에게 물어보듯 혼자 말하는 것처럼 올려 말하는 듯한 화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이 작품은 두 인물의 입장에 대하여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다소 루스에 대하여 좀 더 친절하게 표현되고 있는 면도 있으나 리사의 내면 또한 미묘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두 인물은 각자 서로를 벗어나서 한 단계 더 성숙해졌다. 이것은 세대변화의 모습이면서 역사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이며 스승과 제자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필수불가결한 결론이다. 다만 이 땅의 스승들은 정말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 것일까? 오로지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하는 것이 진정 숙명일까? 어쩌면 이것은 ‘무엇을’ 배우고 가르치느냐의 문제는 아닐까? 스승과 제자는 언제든 제자와 스승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고정되지 않는 관계는 스승과 제자가 아닌 새로운 관계로 거듭나게 한다. 발전된 서로의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세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리라. 스승과 제자는 그렇게 성숙해갈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많은 스승들, 또 결국 스승이 될 수많은 제자들이 너무 서글퍼지지 않겠는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