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문학경기장 내 문학시어터 공연작총평/ 박정기

인천 문학경기장 내 문학시어터 공연작총평

 

 

인천광역시 남구 매소홀로 문학경기장 내 야구장 1루 지하에 마련된 문학시어터(관장 김문광)는 좌석 144석의 소극장이다. 10월 들어 <고금소총(古今笑叢)>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리퍼블릭 리어> 등 3개 작품을 공연했다.

1, 극단 놀이와 축제의 김문광 작, 진정하 연출의 <고금소총(古今笑叢)>

인천 문학경기장 내 문학시어터에서 극단 놀이와 축제의 김문광 작, 진정하 연출의 <고금소총(古今笑叢)>을 관람했다.

<고금소총(古今笑叢)>은 민간에 전래하는 문헌소화(文獻笑話:우스운 이야기)를 집대성한 설화집으로, 대략 19세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속에 수록된 소화집의 편찬자는 대개 알려져 있다. 1947년송신용(宋申用)에 의하여 ‘조선고금소총(朝鮮古今笑叢)’이라는 제목으로 제1회 배본에 ≪어수록 禦睡錄≫이, 제2회에 ≪촌담해이 村談解頤≫·≪어면순 禦眠楯≫이 한 권으로 묶여 정음사(正音社)에서 출판되었다.

1959년 민속자료간행회에서 ≪고금소총≫ 제1집이 유인본으로 간행되었는데, 이 속에는 서거정(徐居正) 편찬의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 홍만종(洪萬宗)의 ≪명엽지해 蓂葉志諧≫, 송세림(宋世琳)의 ≪어면순≫, 성여학(成汝學)의 ≪속어면순≫, 강희맹(姜希孟)의 ≪촌담해이≫, 부묵자(副墨子)의 ≪파수록 破睡錄≫, 장한종(張寒宗)의 ≪어수신화 禦睡新話≫, 그 밖에 편찬자 미상의 ≪기문 奇聞≫·≪성수패설 醒睡稗說≫·≪진담록 陳談錄≫·≪교수잡사 攪睡襍史≫ 등 모두 789편의 소화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1970년조영암(趙靈巖)은 ‘고금소총’이라는 표제로 소화 379편을 번역하고 그 원문까지 인용하여 명문당(明文堂)에서 발간한 바 있다.

소화(笑話)로서의 특징은 한문소화로서 일반적인 소화와 구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소화는 구전하여 전래하는 구비전승인데, 여기에 수록된 소화는 이미 몇 백 년 전에 문헌으로 정착되어 전하고 있고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며, 수집, 편찬한 작자들이 대개 한학자이자 문장가요, 관료나 양반들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분·성격·주제·구성 등이 일반 구비소화와 판이한 데가 있다.

오직 웃음을 유발시키는 이야기요, 단편형식을 취하는 점에서는 일반소화와 다를 바 없으나, 역시 문장화되어 전하기 때문에 작품으로서의 짜임새나 표현기교는 훨씬 세련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한문소화는 학자나 양반 등의 특정인에 의하여 수집, 편찬되었기 때문에, 편찬자의 창의와 윤필(潤筆)이 가미되어 순수한 구비전승물로 볼 수 없으며, 좀더 과장하여 편찬자의 창작적 의도에 의하여 씌어진 것도 있다.
김문광은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졸업. 만화가 출신이며, 유학 후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 ‘H2’, ‘환타지스타’ 등 수백 권의 만화를 번역. 그 외 소설, 논문, 영상, 희곡, 비즈니스, 전문서 등의 번역서가 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번역과 창작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인천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했다. 현재 인천 문학시어터 극장장이다.

진정하는 배우이자 연출가다. 극단 놀이와 축제, 씨∙아리 소극장 대표, 학산소극장 예술감독이다. 1989년 11월 극단 미션 창단대표, 유리동물원, 민들레 작은 천국, 쥬라기 사람들, 아일랜드 외 20여 작품 출연했다. 뮤지컬 가스펠 나의이름 버리고, 불의가면 외 10여 작품 연출하고, 천지창조와 그 밖의 일들 외 40여 작품 기획, 제작했다.

무대는 텅 비어있는 공간이다. 사운드 디랙터 지종호는 음향효과와 음악, 그리고 백색 연기를 분무해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색담콘서트 ‘고금소총’은 색깔 넘치는 사또 일가의 요절복통 야담 한마당으로 극단 ‘놀이와 축제’에서 준비했다. 고전 해학집 ‘고금소총’을 바탕으로 엮은 가금 따끈한 가족이야기로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고을 사또 박명준은 매일 매일 골치가 아프다. 몸 뜨거운 아내가 밤마다 보채는 데다 발정 난 강아지 같은 아들 준구 녀석이 온 동네 처자들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동네가 조용할 날이 없다. 생각다 못해 장가를 들이고자 하니, 소식을 들은 준구는 색시될 처자를 보겠다고 야밤에 담을 넘고, 준구를 짝사랑하던 몸종 앵두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노총각 이방의 가슴에는 불이 붙는다. 여기에 새로 들어온 며느리까지 합세해 한판 색깔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진다.지혜롭지만 한량 기질 넘치는 사또 박명준, 그 아비를 딱 닮은 아들 준구, 맨날 당하는 줄도 모르고 잡혀사는 아내 오씨, 준구를 몸으로 키운 몸종 앵두, 그런 앵두를 짝사랑하는 충직한 이방, 그리고 멋모르고 시집온 몸 뜨거운 어린 며느리 이슬이. 이 야하지만 행복한 사또 일가의 왁자지껄한 일상이 마당극의 형식을 빌어 펼쳐진다.

조선시대 민속야담집 ‘고금소총’의 에피소드를 발췌해 하나의 드라마로 엮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쓴 김문광 문학시어터 극장장은 “고령화시대에 들어 중장년층의 건강한 성을 다룬 코미디가 있어도 좋지 않겠나”라는 생각에 작품을 준비하게 됐다며 “일종의 회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어서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에 맞춰 능청스러우면서도 낯뜨거울 수 있는 대사들을 읊어댄다. 그럼에도 천박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모두 가족이고 서로 사랑함이 마땅한 부부이기 때문”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이 작품은 제33회 인천항구연극제에 처음 제작 참가했으며, 이후 3주간 대관공연을 해 많은 관람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황도석, 지성근, 최미라, 배소희, 이병철, 이기석, 김시진, 함혜영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에 따른 밝고 희극적인 성적 표현은 관객의 폭소를 유발하고 갈채를 받는다, 연출가 지정하와 사운드 디랙터 지종호의 기량이 드러나 극단 놀이와 축제의 김문광 작, 진정하 연출의 <고금소총>을 중장년과 노년층에 어울릴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10월 1일

2, 인천 극단 한 무대의 테네시 윌리엄스 작, 김문광 번역 각색, 최종욱 정영민 공동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인천 문학시어터에서 인천극단 ᄒᆞᆫ무대의 테네시 윌리암스 (Tennessee Williams,)작, 김문광 번역 각색 최종욱 정영민 공동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를 관람했다.

극단 한 무대는 2002년에 창단해 <색시공> <일중일간의 외박> <느낌 극락 같은> <달아달아> <물의 기억> <아버지의 달> <율려보자스라> <학이 되어 날다> <달의 정원> <용서> <능허대 사랑비> <무화과 꽃 피었네!> <엄마가 섬 그늘에> <닻> <바람꽃> 등을 공연했다. 연출가인 최종욱 대표와 부인인 진윤영 극작가가 이끌어 온 극단이다.

테네시 윌리암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가 집필해 1947년에 초연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와 제시카 탠디(Jessica Tandy), 킴 헌터(Kim Hunter)가 출연하여 1949년까지 855회의 공연을 이어갔고, 1948년에는 퓰리쳐 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하였다. 이후 1951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에는 말론 브랜도와 함께 비비안 리(Vivien Leigh)가 출연해 아카데미 어워즈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비비안 리와 킴 헌터가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칼 말든(Karl Malden)의 미치 역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향후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랜도는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상징처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다.

1983년 텔레비젼 리메이크판에서는 안 마가렛 (Ann-Margret) 월터 매튜, 진 해크만, 글렌다 잭슨이 출연했고, 1984년 제작된 영화에서는 안 마그렛 트리트 윌리암스(Treat Williams), 비버리 단젤로(Beverly D’Angelo), 랜디 퀘이드(Randy Quaid) 등이 출연했으나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었다.

1995년 글렌 조단(Glenn Jordan)이 감독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는 알렉 볼드윈(Alec Baldwin)과 제시카 랭(Jessica Lange), 존 굿맨(John Goodman), 다이안 레인( Diane Lane), 패트리시아 허드(Patricia Herd)가 출연했으나 역시 평은 전작을 추월하지 못했다.

2008년에는 <더 콘스탄트 가드너(The Constant Gardener)>로 2005년 아카데미 어워즈 수상경력의 여배우 레이첼 와이즈(Rachel Weisz)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 뒤부아(Blanche DuBois) 역으로 런던의 돈마 웨어하우스(Donmar Warehouse) 무대에서 열연해 비비안 리(Vivien Leigh) 이후 새로운 블랑쉬로 절찬을 받는다. 레이첼 와이즈는 2002년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더 쉐이프 오브 씽스, The Shape of Things>에서 에블린 역할을 맡아 시어터 월드 어워드(Theatre World Award)를 수상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여주인공 블랑쉬는 미국 남부의 몰락한 지주의 딸 출신으로 결혼에 실패한 후, 방탕한 생활을 하다 동네에서 쫓겨나 뉴올리언스의 동생 스텔라를 찾아온다.

블랑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와 <묘지>라는 선으로 갈아탄 후 <낙원>역에서 내려 동생의 집에 도착한다. 동생 집에서 자신은 교직에 있다가 휴가차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귀부인 행세를 한다. 한편 동생 스텔라는 난폭한 남편 스탠리에게 혹사당하지만 남편과의 성생활에 만족해 참아가고 있다. 저녁마다 이 집 식탁에서는 노동자들의 포커 판이 벌어지고, 술 마시고 떠드는 소리로 늘 왁자지껄하다. 블랑쉬는 밝은 빛 아래 얼굴을 들어내기를 꺼려하고, 늘 조명이 어둡거나 갓을 씌운 불빛 아래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모습으로 스탠리의 포커친구 노총각 미치를 유혹해, 결혼하려 하지만 스탠리가 그녀의 행실 나쁜 과거를 폭로하면서 두 사람의 결혼약속은 깨지고 만다. 블랑쉬는 음주로 차츰 신경이 쇠약해져가고, 스텔라가 출산하러 병원에 입원한 날 스탠리는 술에 취한 블랑쉬를 강제로 범한다. 향후 블랑쉬는 정신이상 증세가 심해지고, 사람들이 지켜보는데서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면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는 상수 쪽이 침실이고 하수 쪽에 거실 겸 부엌과 식탁, 의자, 그리고 냉장고가 보인다. 하수 쪽에 이집 출입문이 있고, 정면에 욕실로 들어가는 문과 그 오른쪽에 내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전등이 있고, 거기에 연등 같은 등피를 씌운다. 출입문 밖으로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계단 위에도 이층방의 문이 있다. 집 밖 상수 쪽에 통로가 보이고 이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이다. 집의 정면 객석 가까이에 긴 나무의자가 놓여있다.

연극의 도입에 블랑쉬의 등장에서부터 대단원에서 블랑쉬가 정신병원 의자와 함께 퇴장하는 장면까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Tchaikovsky Symphony NO.6 ‘pathetique)과 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Grieg: Peer Gynt, Morgenstimmung) 등 클래식 음악이 극과 어우러져 극적 분위기 창출과 극적효과를 상승시키고 조명의 강약과 변화 또한 극적 분위기 창출에 주요한 효과를 발휘한다.

박성희가 블랑쉬로 출연해 비비안 리(Vivien Leigh)를 연상시키는 미모와 탁월한 연기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는다. 박진성이 스탠리로 등장해 호연과 열연을 펼쳐 갈채를 받는다. 안지영이 스텔라로 출연해 역시 호연과 열연을 펼친다. 차호석이 미치로 출연해 훤칠한 미남에다 호연으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김시진과 김기현이 블랑쉬와 스텐리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하고, 박윤희와 김근형이 스텔라와 미치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방용원이 스티브로 출연해 연극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신용우가 정신과 의사로 특별출연한다.

기획 뉴스드림 ㈜ 에쓰디, 조연출 김태영, 드라미트루기 진윤영, 무대감독 김홍택, 무대디자인 최강석, 음향감독 이병복, 조명감독 이봉열, 분장 이선주, 무대미술 전성종, 의상 김정연, 진행 조황래, 홍보 홍선인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인천 극단 ᄒᆞᆫ무대의 테네시 윌리암스 (Tennessee Williams,)작, 김문광 번역 각색, 최종욱 정영민 공동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엘리아 카잔(Elia Kazan, 1909~2003) 감독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를 연상시키는 고수준 고품격의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10월 9일

3, 인천극단 아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고기혁 용선중 각색 용선중 총연출 이화정 공동연출의 리퍼블릭 리어

인천 문학경기장 내 문학시어터에서 극단 아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고기혁 용선중 각색, 용선중 총연출, 이화정 공동연출의 <리퍼블릭 리어>를 관람했다.

<리어왕>은 무대는 물론, 수많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앤드루 맥컬로우(Andrew McCullough)가 연출하고 오손 웰스(Orson Wells)가 주연한 1953년 영화 <리어왕>, 코진체프(Grigory Kozintsev)가 연출하고 유리 야벳(Yuri Jarvet)이 주연을 맡은 1970년 러시아판 <리어왕>, 구로사와 아키라(Kurosawa Akira) 연출, 일본풍으로 각색된 1985년 란Ran), 장 뤽 고다르(Jan-Luc Gordard)가 연출 버지스 메레디스(Burges Meredith)가 주연을 맡은 1987년 <리어왕>등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역작들이다.

그 외에도 <리어왕>은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조나단 밀러(Jonathan Miller)가 연출하고 마이클 호던(Michael Hordern)이 주연한 1982년 BBC TV <리어왕>, 마이클 엘리엇(Michael Elliot) 연출로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가 주연을 맡은 TV <리어왕>이 대표작이다.

<리어왕(king Lear>)에 나타난 가치관의 갈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550년대에서 1600년대 초까지의 영국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1601년 에섹스(Essex)백작은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지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직 후계자를 두지 못한 상황에서 전통귀족과 신흥귀족 그리고 중산계급은 1610년대에 이르러 상호간의 대립을 드러냈다. 특히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Spanish Invincible Armada)를 격퇴하는데 중산계급의 주도적 역할과 세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의회에서의 중산계급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타협과 균형이 깨지게 되었고, 이는 엘리자베스 사후 제임스 I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더욱 심해졌다.

<리어왕>이 집필된 시기로 추정되는 1604-5년경은 이런 정치적 갈등이 엘가치관의 분열과 결부됨으로써 영국과 전 세계에 대 혼란이 닥쳐올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작품 속엔 정치적 질서체계는 물론 인간과 세계를 연관시켜주는 종교적, 철학적 혼란까지 나타나고 있다.

I막에서는 리어왕의 비극적 결함이 드러난다. 그것은 곧 그의 통찰력의 결핍, 고집과 노망, 규정해 놓은 질서의 파괴 행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첨을 거부하고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 사랑을 거래하기를 거절한 코딜러어와 코딜리어를 변호하는 켄트를 리어왕이 추방하는 것은 그가 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고, 이 때문에 리어왕은 받아 마땅한 불행을 겪게 된다. 그가 왕국을 분할하고 왕권을 이양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왕권을 방기하는 것이며,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를 저버리는 질서파괴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리어가 왕관을 벗는 순간 중세적 위계질서는 무너져버린다. 그가 왕관을 벗고도 왕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중세적 위계질서의 체계가 갖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는 광인이 되어 누더기를 걸치고 폭풍우 속을 헤매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코딜리어는 이 극에서 기존 질서체계를 지탱해주는 경직된 형식의 한계를 제일먼저 깨달은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경직된 형식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들의 말을 흉내 내지 않고, 리어왕의 요구에 ‘아무 말씀도 드릴 것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없다’라는 대답은 리어왕을 정점으로 하는 질서체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극적으로 보면 그녀는 불란서 왕과 결혼하여 영국을 떠남으로써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혼돈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체계가 대두 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상적 관념으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양식이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고 하는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면, 리어왕의 세계에서의 합당한 인간관계는 거너릴과 리건으로 대변되는 형식과 코딜리어로 대변되는 내용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가능한 것이 된다.

코딜리어가 영국을 떠나게 된 후, 거너릴과 리건은 통치권을, 에드먼드는 상속권을 위해 기존의 가치와 규범과 인륜을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작가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을 에드거와 올버니를 통해 이루어 나간다. 에드거가 극한적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삶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가는가 하면, 올버니는 그와 같은 인간관계를 근거로 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올버니는 극의 전반에는 에드거처럼 소극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사회가 혼돈 속에 빠져들어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4막 2장에서부터는 전혀 다른 인물로 나타난다. 그가 자신을 ‘공명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코 용기를 발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듯 그는 혼돈 속에 방황하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분명한 판단기준과 공평한 안목을 갖춘 인물로 바뀌어 에드거와 함께 혼란된 질서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단원에서 코딜리어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리어가 코딜리어와 화해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한다.

역사란 끊임없이 경직된 기존질서체계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고통과 회생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리어왕>은 그런 역사적 전환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혼돈과 그것의 극복과정을 냉철하게 탐색하는 극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험극장 허규 연출의 리어왕, 극단 76 기국서 연출의 리어왕, 인천시립극단 김철리 연출의 리어왕, 국립극단의 윤광진 연출의 리어왕 등의 공연에서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살리며 이낙훈, 기주봉, 서국현, 장두이 등 리어를 맡아 탁월한 기량으로 열연을 펼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무대는 건축 공사장처럼 철봉을 가로세로 엮은 철제조형물을 삼면 벽 앞에 세워놓고, 위로 오를 수 있게 철판을 여기저기 비스듬히 걸쳐놓았다. 철제조형물 뒤쪽에는 수많은 상자 곽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극 전개에 따라 출연자들이 상자 곽을 이동시켜 기둥처럼 쌓아올리고 또 허물어뜨리기도 한다. 무대 하수 쪽에는 연주석이 있어, 북과 놋대접으로 박자와 소리를 내,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인천극단 아토에 공연에서는 리어가 세 딸에게 재산을 분배하기로 하면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체재를 바꾼다. 두 딸은 아버지 앞에서 새 공화정이 들어서면, 집권을 위한 정치공약을 발표한다. 물론 표심을 얻으려는 공약이지만 리어는 두 딸의 공약에 공감을 하고, 막내 코딜리어가 표심잡기 공약발표를 거부하자 분노하고, 두 딸에게만 재산을 분배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당한 정책이라도 반대당은 반드시 트집을 잡고 물고 늘어지기는 마찬가지라, 리퍼블릭 리어 시대에도 정당한 정책과 정견발표를 개그 코미디처럼 묘사해 흠을 잡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결국 왕정이나 독재체재가 아닌 공화정, 리퍼블릭을 선언했지만, 애국보다는 끼리끼리의 정권야욕을 위한 끝없는 투쟁을 바라보며 리어는 막내 코딜리어를 끌어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박경근, 최한결, 손인찬, 정성원, 이화정, 이정현, 윤원기, 정세희 등 출연자 전원의 체조선수 같은 철봉 오르기와 매달려 내려오기는 물론, 성격창출과 열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프로듀서 이화정, 움직임 음악 고기혁, 무대 조명디자인 용선중, 무대감독 강동엽, 의상 김유미, 홍보사진 영상 김희천, 오퍼레이터 윤채연, 진행 송재연 김유미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인천극단 아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고기혁 용선중 각색, 용선중 총연출, 이화정 공동연출의 <리퍼블릭 리어>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10월 23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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