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6년 10월 공연총평/ 박정기

박정기의 공연산책 2016년 10월 공연총평

10월에는 정치적 분란과 동요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연극에 대한 열정과 의지로 공연을 계속한 연극인들의 수준급 공연이 이어졌다. 우선 10월 공연총평을 게재하고, 제2회 윤대성 희곡상 당선작 공연총평, 인천 문학시어터의 공연작 총평,
그리고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 개관작 평을 별도로 게재한다.

1,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남육현 번역 연출의 <햄릿>

문화공간 엘림홀에서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남육현 번역 연출의 <햄릿>을 관람했다.

금번 <햄릿> 공연은 한국최초로 5시간의 원작대로의 공연이다.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의 남육현 교수의 열정과 의지로 드디어 한국의 셰익스피어 <햄릿> 공연이 세계 정상 수준임이 확정된 느낌이다.

남육현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런던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을 창단해 셰익스피어 전체 작품을 공연할 목표로 현재 17개의 작품을 공연했다. 남육현 교수의 태산(泰山) 같은 의지와 금강석을 뚫는 천착(穿鑿)의 장인정신, 그리고 예술혼(藝術魂)이 금번 <햄릿> 공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필자가 관람한 역대 햄릿 역을 한 배우는 김동원, 최무룡, 최상현, 오지명, 김동훈, 길영림(마로위츠 햄릿), 양재성, 노주현, 유인촌, 김석훈, 이명호(블랙 햄릿), 김명수, 장준호, 강신구, 김수용(뮤지컬 햄릿), 박은태(뮤지컬 햄릿), 박세욱(뮤지컬 햄릿), 김태훈(인천시립극단 햄릿) 최윤석, 김동현, 이호협 류지완, 최수호, 정보석, 최종윤, 황성현, 박기륭, 임준식, 이승헌, 이태형, 심하윤, 박상협……… 김강우, 김동원, 오준호 등 이다.

햄릿을 맡은 배우들은 맡은 역에 혼신의 열정과 기량을 다한다. 물론 함께 출연한 연기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남성배우들은 누구나 햄릿 역 하기를 원하고, 3막 1장의 “To be or not to be…”를 노래가사 외우 듯 암송한다.

내용은 원작을 따르지만 근자에 이르러 축소 변형된 공연이 많고, 3, 4명으로 축약시킨 공연도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 뿐 아니라, 고전을 변형시킨 공연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세를 이루는 작금의 현실이니 누가 그것을 탓하랴마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제대로 공연하는 단체는 드물고, 원작공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적 배경을 우리의 고대사로 바꾼 작품도 있고, 등장인물을 대폭 축소, 난자질을 가해 변형 각색한 공연작품도 많다. 개중에는 우리의 고대사로 변형시킨 작품을 영국 본고장으로 가져가 공연을 해, 갈채를 받고 수상을 한 극단도 있다. 그러나 동세대나 후대들을 위해 원작공연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공립극단이나 개개 극단의 공연담당자들은 이 절실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물론 국공립극단을 제외한 각 극단의 재정적 어려움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원작을 제대로 공연하는 경우에는 연출자나 스텝 그리고 출연자의 기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에, 능력부족을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변형된 작품을 공연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작대로의 공연을 할 뿐 아니라, 지난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나 금년 서거 400주년에 맞춰, 휴식시간을 제외한 다섯 시간의 원작 <햄릿>공연을 함으로써 한국 셰익스피어 작품 공연 사에 새로운 이정표와 금자탑을 쌓게 되었다.

무대는 희랍풍의 회백색 기둥 여섯 개를 세워놓고, 정면에 두 단 높이의 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왕과 왕비의 의자를 놓거나, 연극 후반에 무덤자리로 사용이 된다. 무대 좌우에 입체로 된 정사각의 검은색 조형물을 배치해 장면변화에 따라 이동 시키고, 반원형의 입체 조형물도 무대 좌우에 배치해 출연자가 거기에 앉는다. 무대 배경의 검은 휘장이 등퇴장 로가 되고, 객석 출입구도 등퇴장 로로 사용이 된다. 마지막 결투장면에서는 식탁과 술잔, 그리고 펜싱 검 등이 사용된다. 백색연막을 무대에 깔아 극적분위기를 상승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숙부인 클로디어스가 햄릿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원작을 제대로 공연했기에 클로디어스는 물론 레어티스, 호레이쇼의 비중도 상승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연극은 도입에 유령출현장면에서부터 햄릿과 호레이쇼의 등장, 클로디어스왕과 거트루드 왕비의 품격을 갖춘 우아한 모습, 폴로니어스와 레어티즈, 그리고 오필리어의 제대로 된 성격창출, 특히 남성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오필리어의 미모와 의상변화, 극중 배우들과 후반 무덤 파는 사람의 발군의 기량, 그리고 대단원에서의 가슴을 조이게 하는 펜싱 결투장면과 마무리를 하는 포틴부라스까지 모든 출연자들의 연기력이 남육현 교수의 연출력과 조화를 이루어, <햄릿> 원작의 공연을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작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오준호가 햄릿, 박주현이 오필리어, 양영호가 클로디어스, 한록수가 거트루드, 국 호가 볼티먼드, 포틴부라스 부대장, 정연신이 코닐리어스 대사와 무덤 파는 사람, 오철근이 폴로니어스, 엄현호가 레어티스, 박조원이 마셀러스, 영국대사, 정성훈이 길던스턴, 해적, 변도준이 호레이쇼, 전정욱이 포틴브라스, 이원호가 프란시스코, 무덤 파는 사람, 김영혁이 바나도, 임정아가 로젠크런츠, 극중 왕비, 이시언 사자, 최민석이 신사 등 호연과 열연으로 무대를 장식한다. 다만 대사전달이 명확하지 않은 연기자들이 있어 재훈련이 필요하다 하겠다.

조연출 이도협, 조명오퍼 최민석, 음악 음향오퍼 이시언, 그래픽디자인 박조원 등 기술진의 노력과 기량이 드러나,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남육현 번역 연출의 <햄릿>을 한국연극사에 기록될 성공적인 원작공연으로 탄생시켰다.
10월 2일

2, 국립중앙박물관극장 용 윤정건 원작, 이종훈 각색 연출의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국립중앙박물관극장 용에서 ㈜위키컴퍼니,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스토리팜의 윤정건 작, 이종훈 각색 연출의 <불효자는 웁니다.>를 관람했다.
윤정건(1940년~)은 경주출생, 서울대학교 출신의 방송작가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왕의 여자> <아내의 반란> <사랑한다 웬수야> <애자 언니 민자> 그 외 많은 방송극을 집필했다.

가요 <불효자는 웁니다>는 1938년에 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으로 많은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고, 대중들이 따라 불렀다.

가사를 소개하면,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흐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여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님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의 줄거리는, 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 절망만 가득했던 시절. 시골 행상 최 분이는 아들 박 진호가 서울의 일류대학에 합격 했다는 통지를 받는다. 그것은 찬란한 희망이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대학에 진학시키겠다고 다짐한다.

서울로 상경하던 날 진호는 평소 좋아하던 고향처녀 옥자와 사랑을 맺고 앞날을 약속한다. 그러나 박 진호가 서울의 부잣집 여학생 김 주희의 가정교사가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고, 자신과 자신을 위해 고생한 어머니와 사랑하는 옥주, 그리고 서울 여학생 주희의 접근과 밀착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진호는 결국 자신의 보장된 장래를 위하여 김 주희를 선택한다.

최 분이는 아들의 변모가 걱정스러우나 차마 아들의 앞길을 막지 못한다. 그것만이 아들을 위하는 길이라 여겼기에… 옥자는 김주희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알고 절망한다. 진호의 결혼식 날, 가장 당당해야할 진호의 어미니 최 분이는 너무나도 초라한 자신의 모습, 그리고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한 채 구석에 팽개쳐진 자신의 처지에 분노와 슬픔을 느끼지만 상류사회에 끼어든 아들의 모습에 위안 삼아 쓸쓸히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날 옥자는 무작정 상경의 길을 택한다.

어머니를 시골에 혼자 내버려둔 채 그저 풍족한 뒷받침만을 효도로 여기는 진호의 심정… 그리고 무작정 상경한 옥자의 정신적 육체적 타락이 펼쳐진다.

옥자는 기둥서방 따개비의 집요한 협박을 받는다. 따개비는 재벌사위로 입신한 진호의 어머니를 찾아가 진호의 위선과 출신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뜯어내기 위함이다. 자신을 앞세워 최 분이까지 위협하는 따개비의 모습에서 옥자는 발작적으로 따개비의 가슴을 칼로 찌른다. 그 순간 기차가 다가온다. 열차사고의 현장엔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와 최 분이의 도민증만 남는다. 따개비의 시체는 도민증으로 인해 최 순이가 죽은 것으로 처리된다.

10년 후, 거리의 노숙자가 되어버린 최 분이가 등장한다. 육신은 존재하면서도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있는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도 밝힐 수도 없는 처지가 연출된다. 그것은 조건 없는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비렁뱅이 노숙자 최 분이는 지친 몸을 이끌고 정신병원을 찾는다. 사고 당일의 쇼크로 정신착란을 일으킨 옥자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어루만지며 10년을 살아온 바닥 인생들인 것이다. 그러나 초점을 잃은 듯한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부모의 사랑 “남녀의 사랑”’ 그 진정한 모습이 관객의 가슴을 때린다.

죽음을 감지한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핏줄에 끌려 아들 진호의 집 주위를 맴돈다. 성공한 아들을 안아보고 싶어도 그 앞에서는 얼굴을 감춰야 하고, 아들의 행복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어머니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광경이 연출된다.

최 분이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늘 상 집 앞에서 보는 노숙자 노파에게 진호는 이 추위에 몸조심하라며 돈을 쥐어준다. 돈을 쥐어주는 손을 최 분이는 마지막으로 꼬옥 잡아본다. 아들이 떠난 후 최 분이는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아들의 집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한편 옥자는 정신병원에서 기적적으로 기억을 되찾는다. 그리고 최 분이의 죽음을 알려주려고 박 진호에게 연락한다.

묘소에서 만난 옥자의 이야기로 비로소 10년 전 열차사고의 비밀이 알려지고, 이름도 주소도 없이 한 노숙자의 죽음으로 처리된 어머니, 바로 자신의 집 앞에서 죽은 바로 그 노숙자 노파가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통곡하는 진호의 후회와 오열에서 악극은 막을 내린다.

연극은 도입에 백색 중간막이 내려진 무대전면 무덤가에서 전개되고, 대단원에서도 무덤가에서 마무리를 한다. 무대는 백색 천으로 된 중간 막을 사용하고 중간부분을 개폐하거나 열어 장면전환에 대처한다. 거대한 느티나무의 아랫부분이 인상적이고, 나무 위로 잎이 천정전체를 뒤덮고, 배경에 영상으로 나뭇잎이 흩날리는 장면, 눈보라가 치는 장면을 투사해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서울 장면은 백색의 중간 막의 앞부분에서 펼쳐진다. 등퇴장 로는 무대 좌우가 된다. 환자이동의자를 사용하고, 음향효과로 기상의 변화를, 녹음된 연주로 출연자들의 노래 반주와 무용을 하도록 연출된다. 부분조명으로 장면변화나 출연자의 등퇴장과 극적효과를 높인다.

연극은 도입에 해설자가 등장, 신파조의 대사로 서막을 열고, 젊은 남녀출연자들의 노래와 춤이 악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거기다가 주요배역을 맡은 출연자들의 절제된 연기력이 기존의 악극보다 고수준 고품격으로 극을 형성시킨다. 합창단과 무용단의 노래와 춤도 고수준의 뮤지컬과 흡사해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주요배역 출연진도 과거의 신파극처럼 과장되게 표현되지 않고 절제된 표현으로 감동을 유발시키고, 고품격 고수준의 악극으로 이끌어 가려는 연출자의 기량이 감지되는 현대에 걸 맞는 악극으로의 탄생으로 평가된다.

김영옥, 고두심, 김재건, 이홍렬, 김성근, 김대균, 이종원, 안재모, 이유리, 이연두, 정운택, 이종박, 문제령, 윤빛나, 고영민, 이동욱(아역), 김준혁(아역), 이선영, 이민한, 정주희, 손민정, 김정윤, 박현호, 박래찬, 오수아, 구명훈, 유리나, 박진원, 이정수, 최가현, 박은지, 곽소영 등 출연진의 호연과 열연, 노래와 춤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정철, 기획 신주선, 조명감독 이상봉, 음악감독 엄기영, 의상 분장 소품 김종한, 안무감독 문성우, 음향감독 김현산, 무대미술 임충일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위키컴퍼니,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스토리팜의 윤정건 원작, 이종훈 각색 연출의 <불효자는 웁니다.>를 고품격 고수준의 새로운 걸작악극으로 탄생시켰다.
10월 4일

3, 서울시극단의 김은성 작, 김광보 연출의 <함익>

세종M시어터에서 서울시극단의 김은성 작, 김광보 연출의 <함익>을 관람했다.

김은성은 1977년 전남 보성군 출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동라사>가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파크희곡상과 동아연극상을 수상하였다. 2010 대산문화재단 대산창작기금(희곡부문)을 수여받았다. <죽도록 죽도록> <시동라사> <연변엄마> <앞집아이> <순우삼촌> <달나라 연속극> <찌질이 신파극> <뺑뺑뺑> <로풍찬 유랑극장> <뻘> <목란언니> <썬샤인 전사들>을 발표 공연하였다. 현재 극단 달나라 동백꽃 대표다.

<함익>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변형시킨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을 현대 한국으로 바꾸고, 햄릿을 여성으로, 오필리어를 남성으로, 숙부 왕을 새어머니로, 그 외의 햄릿의 분신, 폴로니어스를 여성으로, 그리고 광대들을 연극과 학생들로 설정하고, 햄릿 원작 도입에만 등장하는 버나도를 주요배역으로 부각시키고, 어린이, 원숭이인간 등을 등장시킨다.

무대는 검은색의 중간 막을 사용해, 중앙에 투명 문을 거울처럼 만들어 햄릿인 함익이 자신과 분신을 들여다보며 연기하고, 중간 막을 상승시키면 기업의 회장실, 학교 연극연습실, 그 외의 장면으로 연출된다.

햄릿인 함익을 부호이자 기업 총수의 외동딸로 설정하고,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돌아온 연극학과 교수로, 현재 햄릿연출을 맡아 연습중이고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소개된다. 도입에 함익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대사를 영어로 읊조리면, 영상으로 한글 자막이 무대 외벽에 투사가 된다. 함익의 아버지와 새 어머니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을 데리고 등장하면, 원작의 오필이어의 부친인 폴로니어스 역으로, 호남 사투리를 구사하는 여성이 오필리어의 어머니 역으로 설정 등장해 호연을 보이고, 오필리어 역의 남성 오필형이 등장해 함익에게 반지를 주며 청혼을 하기도 한다. 물론 연극에서는 함익의 새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와 새 어머니가 친 어머니를 독살했다는 복수심이 노정되기도 하지만, 400년 전에는 왕권이 법보다 우선시 되었기에 왕자 단독 복수작업을 펼쳤다는 것이 수긍이 가지만, 2016년 현재 엄연히 법치국가이고 형법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모친을 살해한 증거나 자료를 제시함이 없이 혼자서 복수심에 불타올라 고뇌하며 환각제를 사용해 부왕의 망령이 아닌 자신의 분신과 대화를 하는 장면이라든가, 철모르는 어린이 말만 듣고 따르는 인간 원숭이를 증오심으로 칼로 난자해 죽이는 장면, 폴로니어스의 아들로 설정된 오릴리어가 아닌 오필형 보다는 함익의 제자이자 연극학과 복학생인 오연우에게 마음을 살포시 열기 시작하는 장면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오연우는 햄릿 원작의 도입인 성벽장면에만 잠깐 등장하는 버나도 역을 맡은 학생인데, 함익의 마음을 자극시킨 때문인지 후에는 주인공 햄릿 역을 맡게 된다. 환각제를 사용해 분신과 대화하는 함익의 모습은 레즈비언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함익 부친의 기업총수다운 모습과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호통을 치는 장면은 함익의 복수심을 오그라들게 만든다. 여성 폴로니어스의 아들 오필형은 함익에 눈에 들기에는 부족한 인물인 듯싶고, 함익이 정을 들인 복학생 정연우와 그리고 그 정연우에게 주인공 햄릿을 맡기고 심혈을 기울여 연출한 연극 햄릿이 학생들의 반대해석으로 실패로 끝이 나니, 아버지와 새 어머니가 실망한 모습으로 객석을 떠난다. 주인공을 한 정연우가 허탈한 듯 무대에 널브러지면, 연출을 하던 여학생 연출자도 나란히 누워버린다. 대단원에서 함익은 자신의 분신과 함께 안개 자욱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최나라가 함익으로 출연해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지연이 분신으로 출연해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고, 윤나무가 정연우로 출연해 여성관객의 시선을 끌어 들인다. 강신구가 함익의 부친인 기업총수로 출연해, 원작의 클로디어스를 능가하는 성격설정으로 갈채를 받는다. 황성대, 구도균, 박기덕, 이원희, 김두봉, 김수아, 나석민, 조아라, 송철호, 이정주, 전운종, 정보연, 이세영, 박진호, 호효훈, 장석환, 정유진, 유원준, 한정훈, 박 현, 이희순, 최동혁(아역)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은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무대미술 박동우, 조명 김정태, 의상 홍문기, 분장 이동민, 소품 정윤정, 안무 금배섭, 음악 장한솔, 음향 남윤수, 무대감독 장연희, 조연출 이은영 윤영은, 기획 제작 이재진 최상윤, 홍보 행정 김수진, 그래픽디자인 원승락, 온라인디자인 박은하, 사진 윤문성, 홍보 스팟 박영민 그 외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서울시극단의 김은성 작, 김광보 연출의 <함익>을 독특한 구성과 설정으로 젊은 관객이 관람하기에 적합한 <햄릿>원작변형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10월 6일

4,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작, 유효숙 역, 김민정 윤색, 장 랑베르 빌드와 로랑조 말라게라 공동연출의 <로베르토 쥬코>

명동예술극장에서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es) 작, 유효숙 역, 김민정 윤색, 장 랑베르 빌드 (Jean Lambert-wild)와 로랑조 말라게라(Lorenzo Malaguerra) 공동연출의 <로베르토 쥬코(Roberto Zucco)>를 관람했다.

베르나르-마리 콜테스(1948~1989)는 프랑스 작가로 <서쪽 부두>(1985),<목화밭에서의 고독>(1986),<사막으로의 회귀>(1988),<흑인과 개들의 격투>(1989) 등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공연이 되었고, <살렝제>(1995), <외로움>(1998), <유산>(1998), <미친 소송>(1999) 등 10여개 번역 작품과 연구서가 불문학자 임혜숙, 유효숙, 안치운 교수 등에 의해 출판되었다.

국립극단의 연극 <로베르토 쥬코(Roberto Zucco)>는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es)의 유작(遺作)이다. 작가는 지병(持病)으로 40대 초반에 작고했다. 병적 사고와 병든 작가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도 작가와 흡사한 병적사고를 가진 듯싶은 연출가들의 의해 공연이 되고는 했다.

이번 프랑스와 벨기에의 공동연출을 담당한 장 랑베르 빌드 (Jean Lambert-wild)와 로랑조 말라게라(Lorenzo Malaguerra)도 50대 초반이라, 같은 사고를 가진 연출가들이 아닌 가 의심스럽다.

현재 국립극단이나 국제공연예술제 담당자들이 건강한 꿈과 희망을 관객에게 제시하는 작품보다는 엽기적이거나 병적이거나 기괴하고 비이성적이거나 외설적인 작품을 들여다 공연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대부분이 과거에는 명작이나 명작의 원형보다는 변형작품을 들여오고, 건강한 작품보다는 비이성적이거나 병적인 작품을 들여다 공연했기에 그런 풍토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한국연극의 발전을 위해 재고해야 할 문제다.

무대는 객석을 향한 검은색 반원형 벽면에 일곱 개의 문이 달려있다. 장면변화에 따라 벽면에서 선반을 돌출시켜 출연자가 앉을 수 있도록 하고, 의자를 배치해 여성출연자가 앉도록 했다. 반원형의 두꺼운 벽면 뒤로 오르는 계단이 있어 벽의 위에서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비가 퍼붓거나 다량의 꽃잎이 흩날리듯 천정에서 가늘게 절단한 종이를 무대로 쏟아내려 극적효과를 상승시킨다.

연극은 도입에 아버지를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간 로베르토 쥬코가 탈옥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쥬코는 먼저 집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는 쥬코를 꺼려하고 두려워한다. 작업복을 가지러 왔다며,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쥬코는 어머니마저 살해한다.

장면이 바뀌면 아름다운 언니와 동생 자매가 등장한다. 곧이어 주정뱅이 아버지와 불량배 같은 오빠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언니는 동생을 돌출된 선반 같은 의자 밑에 숨도록 한다. 벌거벗은 몸으로 아버지는 어머니가 감춰둔 술병을 찾으러 다니고, 아버지와 아들이 부산을 떨다가 언니와 함께 퇴장하면, 동생은 쥬코를 안내해 들어온다. 쥬코와 동생과의 대화와 동작에서 두 사람은 밀착된 관계임을 짐작케 한다.

장면전환이 되면, 성매매업소의 정경이 펼쳐지고, 형사와 포주가 등장해 업소관련 이야기를 한다. 형사가 퇴장하면, 쥬코가 커튼을 들치고 모습을 드러낸다. 쥬코는 형사가 간 방향으로 따라 나간다. 잠시 후 비명소리와 함께 성매매를 하는 여인이 들어와 쥬코가 형사를 살해한 후 권총을 빼앗아갔다고 전한다.

한편 쥬코는 차가 끊긴 시간 한 지하철역에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서 늙은 신사를 만나 첫 열차가 다닐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동생은 오빠와 함께 경찰서로 들어간다. 동생은 벽에 붙여놓은 쥬코의 몽타쥬를 단번에 알아본다. 그리고 형사에게 쥬코의 관해 이야기한다.

쥬코는 우아한 모습의 부인이 앉아있는 공원의자에 가서 부인과 얘기를 하다가 차 열쇠를 달라며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다 부인을 총으로 위협을 하고 그 부인의 아들을 총 쏘아 살해한다. 그리고 계속 쥬코를 따라오는 부인에게 자신이 태어난 베니스로 간다며 종적을 감춘다.

장면이 바뀌면 동생을 데리고 오빠가 등장해, 동생이 순결을 잃었다며, 성매매업소에 동생을 파는 광경이 전개 된다

동생이 성매매업소에 팔려간 것을 안 언니는 분노와 비탄으로 세상을 저주한다.

한편 관록파 형사는, 살해범은 반드시 범행 장소로 되돌아온다며, 자매 중 여동생을 데리고, 범행 장소에서 기다린다.

형사의 말대로 쥬코가 범행 장소에 등장한다. 자매 중 동생이 알아보고 쥬코에게 달려가 껴안는다. 잠복했던 형사가 알아차리고 그를 체포한다.

대단원에서 쥬코는 다시 감옥 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는 감옥에서 다시 한 번 탈출을 시도하고, 화염으로 인해 벽 위에서 떨어져 죽는다.

총 15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연극은 등장인물의 긴 독백에서 작중인물의 대사라기보다는 작가를 대변하는 느낌이고, 시종일관 암울한 분위기의 연속으로 공연이 계속되었기에 종반부에 태양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대사는 관객과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백석광, 김정호, 문경희, 김정은, 김정환, 김수연, 심완준, 황선화, 우정원, 안병찬 등 국립극단 단원들의 발군의 기량을 발휘한 열연이 원작의 배역의 성격을 200% 살려내고, 작품의 기괴한 장면 하나 하나마다 실감나고 적나라하게 묘사해 낸다.

무대디자인과 의상 장 랑베르 빌드(Jean Lambert-wild), 의상 이윤정, 조명 르노 라지에(Renaud Lagier), 소품 김혜지, 음향 최환석, 분장 김영아, 통역 배정은 최정은, 조연출 문새미, 조연출보 최봉문, 연습기록 윤영성, 컴퍼니 매니저 최주희, 프로듀서 지민주 김철순, 책임프로듀서 정명주 까트린 르푀브르(Catherine Lefeuvre)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합하여, (재)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es) 작, 유효숙 역, 김민정 윤색, 장 랑베르 빌드 (Jean Lambert-wild) 로랑조 말라게라(Lorenzo Malaguerra) 공동연출의 <로베르토 쥬코(Roberto Zucco)>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10월 9일

5, 극단 고래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해성 각색 연출의 고래햄릿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극단 고래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해성 각색 연출의 <고래햄릿>을 관람했다.

이해성은 1969년 부산 출생. 부산 충렬고, 중앙대 국문과 졸업했다. 현재는 극단 고래 대표이자 배우 겸 극작가 연출가로 활동하며 청주대학교 연극학과에 출강하고 있는 훤칠한 미남에다 한국연극의 기대주이다.

주요수상경력으로는 2007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남편을 빌려드립니다>, 2007 제10회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고래>, 2008 밀양연극제 희곡상<고래>(작/연출), 2010 창작팩토리 대본공모 선정<살>, 2014 제7회 대한민국 연극대상에 <빨간 시>로 작품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하였고, 2015 서울연극제에 <불량청년>으로 무대예술상을 수상하였다.

극단 고래는 2011년에 창단되어 <고래> <살> <빨간시> <전하의 봄> <사라지다> <불량청년>외 다수 작품을 공연했다.

이해성은 <고래> <살> <빨간 시> <치유> <전하의 봄>그리고 <사라지다>에서 그 자신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펼쳐 보일 수 없는 세계를 무대 위에 그려내고 있다. 독창적일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은 현실적이지만 신화적 바탕에 큰 줄기를 세우기도 하고, 만만치 않은 철학적 사유가 내재해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는 죽은 자와 산자가 함께 등장하고, 시적언어로 대사를 읊조리고, 노래도 부르며, 연극을 몽환처럼 이끌어 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대 작가들이 애써 외면하고, 거부하는 인물까지 작품 속에 주인공으로 설정을 해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그렇기에 관객은 그의 작품공연이 시작되면서 도입부부터 극 속에 빨려 들어가게 되어 대단원까지 주시를 하게 된다.

<고래햄릿>에서도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등장을 한다. 햄릿 부왕의 유령 뿐 아니라, 죽은 뒤 폴로니어스의 유령도 함께 등장한다. 400년 전의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이끌어 와 출연자들이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다. 열정적인 아르헨티나 탱고에 맞워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가 열정적인 춤을 펼치고, 여색을 탐하는 것으로 설정된 클로디어스는 오필리어를 범하기까지 한다. 광대패가 아닌 극단고래 단원들이 농악을 연주하며 등장하고, 햄릿이 연출한 부왕살해 연극장면은 오페라의 유령의 명장면과 주제음악으로 연출된다. 30년 전 클로디어스는 왕이 된 형에게 사랑하던 여인 거트루드를 양보했고, 햄릿은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의 사이에서 잉태된 씨였고, 태어나기는 햄릿부왕과 거트루드가 왕과 왕비로 맺어졌을 때 태어난 것으로 설정이 된다. 그 사실을 안 연후에는 햄릿은 숙부가 아닌 친부를 살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햄릿의 친부로 설정된 클로디어스는 왕 자리를 빼앗으려고 형을 살해하고, 옛 애인 거트루드를 되차지한다. 또 여색을 탐하기에 오필리아까지 범한다. 그런 후 입에 붙은 거짓말로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즈에게 햄릿이 오필리어를 강간하고 버렸기에 오필리어가 자살을 했노라고 전한다. 대단원에서 햄릿과 레어티스의 결투장면에서 햄릿 모친 거트루드가 독배를 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칼에 찔린 레어티스가 자신의 칼날에 독을 바른 것은 자신의 아버지 폴로니어스를 죽이고 오필리어를 강간한 복수 때문이라고 하니, 햄릿은 레어티스의 부친을 살해한 것은 고의가 아니었고, 오필리어를 범한 적이 결코 없노라고 한다. 그제서야 레어티스는 클로디어스에게 속을 것을 알고 클로디어스의 흉계와 거짓을 햄릿에게 알리니, 분노한 햄릿은 클로디어스를 살해한다. 그 장면에 햄릿부왕의 망령과 폴로니어스의 망령이 등장해 시종일관 사태를 지켜보고 결말이 나자 두 망령은 퇴장을 한다. 첫 장면에서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등장한 햄릿 부왕의 망령은, 햄릿에게 복수하라고 말 대신 심판하라는 소리를 하고 대단원은 역사적 심판으로 결말이 난다.

무대는 두 개의 커다란 소대를 기둥처럼 세우고, 정면에 두 계단 높이의 대와 그 오른쪽에 욕조를 세운 것 같은 조형물이 있고, 그 앞에 평상처럼 생긴 긴 탁자를 놓아 장면변화에 따라 이동배치하기도 한다. 정면에 영상을 투사해 출연자의 심적변화를 나타내기도 하고, 영국군의 진출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잉글랜드의 장수 포틴브라스가 등장할 때에는 긴 보조다리를 착용해 엄청난 큰 키의 인물로 설정이 되고, 극중극에 등장하는 남녀 배우의 가창력은 실제 뮤지컬 배우인 듯싶은 기량을 드러낸다.

지춘성, 이영숙, 정원조, 김동완, 이대희, 홍철희, 이지혜, 최지숙, 유민경, 최준수, 허지행, 신장환, 이운호, 백유리, 안영주, 이명신, 오찬혁, 이사랑, 박윤, 김혜진, 이은주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설정은 물론 호연과 열연 그리고 열창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폴로니어스 지춘성, 클로디어스 김동완, 거트루드 이영숙의 연기는 살만하다.

무대 서지영, 조명 성미림, 음악 김동욱, 영상 윤형철, 분장 장경숙, 사진 이지락, 드라마투르그 이단비, 연희 제희찬, 의상 장원경, 탱고안무 양동탁, 안무 김유진, 조연출 최지숙 남기헌 임소은, 기획 이현정 변신영 이송이 양이배 한아름 주최 주관 광진문화재단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노력과 열정이 합하여, 극단 고래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이해성 각색 연출의 <고래햄릿>을 남녀노소 누구나 관람해도 좋을 걸작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10월 12일

6, 극단 삼각산의 김정숙 작, 김대환 연출의 <959-7>

혜화동 예술공간 혜화에서 극단 삼각산의 김정숙 작, 김대환 연출의 <959-7>을 관람했다.

김정숙은 <틀> <천국에서의 하루> <오래된 이야기> <아카시아 꽃잎은 떨어지고> <또랑> <봉숭아 꽃> <우리 집 변소간 옆 감나무 아래는> <반달> <구름 사다리> <천국 안내소> <959-7번지> <연어 하늘을 날다> <지금 이별할 때> <눈오는 봄날> <그 집에는> 등을 발표 공연한 작가 겸 연출가이자 극단 무대지기의 대표다.

2004 김천전국가족연극제 연출상 – <우리집 변소간 옆 감나무 아래는(일명 홍시 열리는 집)>, 2006 경기도 연극제 희곡상 – <홍시 열리는 집>, 2007 파파프로덕션 창작희곡공모전 가작 – <959-7번지>, 2010 전국 연극제 대통령상 – <눈오는 봄날>, 2010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2012 전북 연극제 희곡상 – <그 집에는…>, 2013 전북 연극제 연출상 – <959-7번지> 등을 수상한 금년 40세의 장래가 발전적으로 예측되는 미모의 여성 연극인이다.

김대환(1960~)은 킴스컴퍼니 대표이고 연출가다. <흥부굿> <뮤지컬 들풀의 노래> <왼쪽 나라 오른쪽 나라> <하나님 비상이에요> <눈사람은 허수아비를 좋아했지만> <풍 물> <전람회에서 생긴 일> <서울 말뚝이> <울 엄마 어렸을 적에> <오늘 반찬은 무얼 먹을까> <장화신은 고양이와 놀기> <말괄량이 길들이기>을 연출했다.

무대는 신을 벗고 정면 계단을 오르면 주택의 거실로 설정된 공간이다. 하수 쪽이 노모의 방과 화장실로 통하고, 상수 쪽은 딸들의 방이다. 무대 앞쪽의 조명이 비추어진 공간은 사진관으로 설정이 되고 등받이가 없는 둥근 의자가 놓인다. 식탁과 의자를 배치해 음식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정면 벽에 영상으로 이집의 대문의 모습, 동네 모습, 선친의 사진, 칠순기념 가족사진이 투사된다.

이 연극은 칠순을 맞은 어머니와 다섯 명의 자녀, 그리고 그 사위와 며느리의 이야기다.

노모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어렵게 다섯 자식을 키웠고, 앞으로 일주일 후면 칠순을 맞는다. 노모는 남편과 고생해 처음 마련한 959-7번지 집에 살며 자녀들이 가정을 이뤄 하나 둘 떠날 때까지 이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

장남과 장녀는 어머니의 칠순잔치를 잘 차려드리려고, 그럴듯한 음식점을 찾아다닌다. 가족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친척과 친지들을 초대해 제대로 잔치를 치를 계획을 한다. 장녀가 맏딸이라, 장녀의 의견을 동생들이 존중한다.

장녀보다 연하인 장남이 금전적인 문제를 책임지려 하고, 하객과 하객에게 줄 선물에 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누이동생 두 명과 막내인 아들도 누이와 형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며 따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소개된다. 집안 어른이면 대부분이 그렇듯이 노모는 가족들만 모여 식사나 하자는 소리를 하지만, 내심은 쩍 벌어진 잔치를 어찌 싫어하랴?

가족은 사진관에 모여 노모와 기념촬영을 한다. 그런데 자녀들 모두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풍족하지는 못하다. 장녀는 주점을 경영하며 실직자인 남편과 사는데, 남편은 사고뭉치에다가, 젊은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인물이고, 장남 역시 젊은 나이에 결혼한 지가 얼마 되지를 않아 아직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둘 째 딸은 작가 지망생인데, 아직 등단조차 못해 결혼은커녕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형편이고, 막내딸은 회사를 나가지만 미혼의 몸으로 현재 임신 중이라, 가족에게 알리기도 그렇고 안 알리자니 그렇기에 사정이 딱하기가 말로써 형언하기가 어렵다.

작가지망생 딸이 막내딸에게 펀드투자대금 명목으로 맡은 돈을 사기를 당하고, 막내딸은 임신중절을 해야 할 돈이 필요한데, 언니에게 맡긴 돈을 사기를 당했다고 하니, 어머니 잔치치를 돈도 보태야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어려움에 처한다. 게다가 막내아들은 오토바이 매매 문제로 사고를 일으키니, 칠순잔치를 할 돈도 부족한데다가 혼전 임신한 막내딸 문제, 막내아들의 오토바이 문제까지 급작스레 들어갈 돈이 밀려닥치니, 자녀들 간에 분란이 일어나 서로 치고 받기에까지 이른다.

칠순 날이 가까워 오고 노모는 미장원에서 모처럼 단장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노모는 친지들에게 자신의 칠순잔치에 오라고 전화를 한다. 그리고 혼자 사는 노인이면 대부분 그렇듯이 먼저 간 남편 사진에 대고 이야기를 한다.

칠순전날 노모가 사는 959-7번지 집에서 함께 모이기로 자녀들을 노모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런데 날이 저물도록 자녀들은 한명도 나타나지 않는다.

장면이 바뀌면 노모의 영정사진을 든 장남이 검은색 정장차림으로 등장을 하고, 뒤 따라 검은 상복차림의 가족들이 뒤따라 들어온다. 방바닥에 포장한 커다란 사진액자가 놓여있다.

가족은 노모의 영정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 앞에서 막내아들이 잘못했다며 울음을 터뜨리자 자녀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 모습을 들여다보며 잘못을 사과한다. 그러다가 바닥에 놓은 포장한 물건을 끄른다. 사진관에서 찍은 노모의 칠순기념사진이다.

미소를 띤 노모의 모습과 굳은 표정의 자녀들의 사진이 대비가 되어, 가족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 두 사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웃음을 터뜨리다가 참지를 못하고 방바닥에 뒹굴기 시작한다. 가족들의 웃음이 계속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노모로 장미자 선생이 출연해 절제된 연기와 정확한 대사 전달로 모처럼 관객에게 연극의 진수를 감상토록 만든다. 류지애가 장녀, 하덕성이 맏사위, 박찬국이 장남, 박시화가 며느리, 이미애가 둘째 딸, 홍하영이 막내딸, 현진호가 막내아들로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키고 갈채를 이끌어 낸다.

프로듀서 송정바우, 조명 채동훈, 디자인 김진화 등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삼각산의 김정숙 작, 김대환 연출의 <959-7>을 연출가와 출연자의 기량이 제대로 발휘된, 남녀노소 누구나 관람해도 좋을 걸작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10월 13일

7, 극단 산수유의 레지날드 로즈 작, 김용준 번역, 류주연 연출의 <12인의 성난 사람들>

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에서 극단 산수유의 레지날드 로즈 작, 김용준 번역, 류주연 연출의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관람했다.
레지날드 로즈(Reginald Rose, 1920~2002) 원작의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약 10년 간 CBS를 통해 방영된 인기 드라마다. 원래는 무대공연을 위해 집필한 단편 소설이었다.

16세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뒤, 이를 참관한 12명의 배심원들의 평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배심제(陪審制, jury system)는 법조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 재판 과정에 참여하여 범죄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사법제도를 말한다. 특히 영미 권 국가에서 중요한 제도이다. 종류로는 기소를 평결하는 대 배심(the grand jury)과 재판을 참여하는 소 배심(the petit jury)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부터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국민 참여 재판제도로 배심 제도가 실시되어 있는데 이름은 참심제 같지만 강제력이 없다.

소 배심(the petit jury)은 또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으로 구분되는데, 형사사건의 경우 배심원의 만장일치로 유죄여부를 판단하며, 민사사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책임을 결정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소년의 살인은 소 배심에 속한다.

11명의 배심원이 소년의 유죄를 확신하는 반면 한 명의 배심원은 11명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죄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소년의 대변인이 국선변호사인 점, 증인들의 증언이 믿을 수 없다는 이 두 가지를 들어 누가 보아도 유죄인 사건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다루고 있는 살인과 같이 예민한 사안, 기술적, 전문적으로 접근해 들어가야 할 부분에 대해 과연 일반시민에 불과한 12인의 배심원들이 정확하고 정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유죄를 주장하는 배심원들의 상당수가 판결보다 개인적인 문제에만 관심이 있어 한시라도 빨리 논의를 끝내고 싶은 심정들뿐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배심재판의 모순과 부적절함을 비판 대에 올린 연극이다.

영화에서는 배심원 12인이 백인이고, 살해용의자는 흑인소년이다. 배심원들이 처음부터 소년의 유죄를 주장하며 성의를 보이지 않은 것은 그 소년이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고, 인종편견을 빗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로 기억된다.

연극의 내용은 아버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소년의 재판에서 배심원이 평결에 도달할 때까지 배심원들이 제한된 공간에서 논의 하는 모습을 그렸다. 법정에 제출된 증거나 증언은 피고인인 소년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것이며, 배심원의 대부분은 소년 의 유죄를 확신한다. 전체 배심원 일치로 죄가 된다고 생각 했는데, 단 한명의 배심원이 소년의 무죄를 주장한다. 그는 다른 배심원들에게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증거의 의심스러운 점을 하나하나 재검증 할 것을 요구 한다.

그 한명의 배심원의 열정과 권유, 추리에 의해 처음에는 소년의 유죄를 믿지 않던 배심원들의 마음도 서서히 변화가 찾아온다.

마지막까지 유죄라고 부르짖던 인물은 자신의 아들에게 주먹으로 뺨을 맞은 인물로 자식에 대한 원한을 살해용의자에게 풀려는 듯 한 심정을 드러내다가 대단원에서 결국 무죄로 돌아선다.

원작자인 레지날드 로즈(Reginald Rose),는 1955년에 이 작품을 연극으로 각색 했다. 향후 여자 배우가 캐스팅 되는 경우 ” 12 Angry Jurors ” ( 12 명의 성난 배심원 ) 및 ” 12 Angry Women ” ( 12 명의 성난 여자 )로 제목을 바꾸는 등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극단 산수유의 연극에서는 남녀로 구성된 12명의 배심원과 정리 1명으로 구성된다.

무대는 철제 봉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하수 쪽 출입구는 잠그도록 되어있다. 상수쪽에 화장실이 있고, 울타리 안에 의자와 앉을 수 있는 도구가 배치되어있다.

암전상태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소년을 두고 배심원의 평결이 시작된다. 남성 9인과 여성 3인이 배심원으로 구성된다.

고등학교 축구코치, 은행원, 사업가, 주식 중개인, 페인트 공, 세일즈맨, 야구광, 건축가, 시계공, 차고주인, 광고인 등 다양하다.

주인공인 건축가의 무죄추정을 시작으로 11인의 유죄주장이 무죄로 평결되는 극적전개 그리고 귀결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연출가 류주연은 극단 산수유의 대표다. <길, 그 여자를 만나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 <기묘여행> <냉동인간> <동물 없는 연극> <주머니 속 선인장> <허물> <청중> <괴물> <하퍼리건> <사소한 물음> <금지된 작난>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연출한 장래가 발전적으로 예측되는 예쁜 여성연출가다.

홍성춘, 강진휘, 남동진, 이종윤, 유성진, 신용진, 한상훈, 현은영, 김애진, 박시유, 반인환, 홍현택, 서유덕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설정은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이희순, 의상디자인 최 원, 조명디자인 박성희, 조명어시스트 박소라, 음악감독 윤민철, 조연출 오세창, 기획 홍보 강선영 김시내, 디자인 사진 김 솔 등 기술진과 제작진의 노력과 열정이 드러나, 극단 산수유의 레지날드 로즈 작, 김용준 번역, 류주연 연출의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우수 걸작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10월 19일

8, 2016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선정작품 극단 죽죽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낙형 각색 연출의 <맥베드-이것은 또 하나의 굿이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016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선정작품 극단 죽죽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낙형 각색 연출의 <맥베스(Macbeth)>를 관람했다.
최초의 <맥베스> 영화는 1948년에 명배우 오손 웰즈(Orson Welles , 1915~1985) 가 감독한 <맥베스>이다.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하고 셰익스피어 원작의 줄거리를 따랐으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로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으나, 상징성과 기법에서 현재는 좋은 영화로 평가를 받는다.

1971년에 제작된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1933~). 감독의 <맥베스>는 세 명의 마녀가 아니라, 수많은 마녀와 마녀의 나신, 그리고 레이디 맥베스까지 몽유병 상태에서 나체로 출연을 시키는 등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이 많은 영화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극단 신협이 1950년대 초반 6 25 동란기간에 <햄릿> <오셀로> <맥베스>를 공연했다.

<맥베스(Macbeth)>는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주인공 <맥베스>는 국왕 덩컨(Duncan)의 사촌으로 귀족이며, 반란군을 진압하는 등 많은 전투에서 공적을 쌓은 훌륭한 장군이다. 인간성이 풍부하지만 연약한 성격에다 강렬한 시적 감수성을 지닌 그는 어느 날, 장차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리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엉뚱한 야망을 품는다. 그의 아내 역시 그에게 왕이 되라고 부추긴다.

그는 덩컨 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점점 많은 사람을 죽이는 폭군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맥베스 부부는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으로 공포와 불면의 나날을 보낸다. 마침내 부인은 몽유병의 발작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맥베스도 왕자 맬컴(Malcolm)과 함께 잉글랜드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쳐들어 온 맥더프(Macduff)의 칼을 맞고 죽는다. 권력의 욕망이 비극적 종말을 불러온 것이다. 이제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왕자 맬컴이 왕위에 오르고 스코틀랜드는 질서가 회복되어 안정을 되찾는 등 모든 비정상적인 것들이 바로 잡혀 제자리를 찾게 된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짧은 작품이며, 사건이 신속하게 집약적으로 전개되는 특성이 있다. 작품의 구성을 보면 부차적 사건(sub-plot)이 없고 플롯은 오로지 주인공 <맥베스>에게 집중되고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주의는 <맥베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극은 주인공 한 사람에 대한 분석 이상의 그 무엇을 제공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맥베스>의 왕위 찬탈 과정에서 보는 것처럼 마녀들의 예언이 곧장 현실로 이루어지는 등 사건이 속도감 있게 집약적으로 전개되어 관객에게 강렬하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비극의 구조는 3부로 되어 있다. 제1부는 극의 갈등을 일으킬 사건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제시부분(Exposition)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짧은 소동과 혼잡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화제에만 올라 관객을 긴장시킨다. 제2부는 갈등의 시초·전개·기복을 취급하는데 이것을 갈등부분(Conflict)이라 한다. 여기에서는 사건이 생장하고 절정(Climax)을 지나 전환점에 달한다. 제3부는 갈등의 결말이다. 여기에 이르면 흔히 전쟁이 벌어지고 사건이 자연스런 파국적 결말을 맞게 된다. 이것을 대단원(Catastrophe)이라 한다. <맥베스>는 이러한 전형적인 셰익스피어 비극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김낙형 연출가는 세종대학교 출신으로 연출과 극작가와 배우 전천후를 아우르는 연극인이다. 세종대 극예술 연구회 출신으로 처음 배우로 연극을 시작한 그는 극작과 연출까지 활동범위를 넓혔다.

76극단에서 시작된 그의 연극시대는 혜화동1번지 3기 동인, 극단 죽죽의 창단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대담한 해체와 표현은 평론가들로 하여금 그를 주목하게 만들며 최근 이루어진 다양한 연출활동은 그가 실험적인 작품들만이 아닌 일상의 드라마와 삶의 면면을 세심하게 살피는 데에도 역량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지상의 모든 밤들>, <나의 교실>과 더불어 <맥베드>의 카이로국제연극제 대상까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에서 우수함과 열정을 인정받고 있다.

극단 죽죽의 <맥베드-이것은 또 하나의 굿이다>는 이오네스코 ( Eugène Ionesco )의 <의자(椅子)들( Les Chaises )>보다도 더욱 강렬한 의자연극(椅子演劇)이다.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극작가 외젠느 이오네스크의 대표적 2인극인 <의자들>의 내용은 결혼한 지 75년 된 노부부가 현실과 단절된 삶에서 느끼는 짙은 고독을 그려냈다.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언어를 통해 노부부의 비극을 부각시킨다. 노부부는 끊임없이 손님을 맞는데, 실제로 손님은 등장하지 않고 노부부가 손님에게 하는 대사만 나온다. 극중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내놓는 의자를 통해 관객은 손님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심화되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와의 소통 문제에 대한 깊은 고뇌를 그려낸 전위극이자 실험극의 표상이다.

극단 죽죽의 <맥베스>의 무대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교실에서 볼 수 있는 수 많은 작은 나무의자를 무대에 배치하고, 출연자들이 그 의자를 들고 돌리고 밀고 당기고 휘두르고 던지고 받으며 극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상승시킨다. 결투장면도 창이나 검 대신 의자를 사용한다. 버남의 숲의 이동장면도 의자로 대신한다. 의자를 배열해 그 위에 모포를 덮어 식탁으로 사용하고, 의자를 쌓아올려 탑 형태의 의자조형물을 만들어 놓고 쓰러트리기도 한다. 도입에 허공에 매달린 의자라든가 무대 좌우에 흩어져 있는 의자가 관객의 눈길을 끌고, 출연자가 의자를 빙글빙글 돌릴 때에는 혹시 그게 객석으로 날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하면서 관극을 하게 된다. 허공에는 그네가 매달려 있어 맥베스가 극중 기어오르고 거꾸로 매달리며 연기를 하기도 한다. 배경에는 창으로 보이는 사각의 종이가 부착되어있고, 그 종이가 달린 벽체가 이동되면 직사각의 통로가 보이고 그 통로는 출연자들의 등퇴장 로가 된다. 무대 바닥에는 여러 개의 굵은 촛대의 불이 밝혀져 있고, 출연자들이 촛불을 각자 들고 등장을 해, 조명이 없는 공간에 촛불만으로 극이 시작되니, 관객의 몰입도가 상승됨은 물론이고, 음악도 현악기와 금관악기로 연주되는 비장 침울한 음곡도 극적 분위기 상승을 주도하고, 관객의 심장으로 파고드는 듯싶은 느낌을 준다.

연극의 도입에 속삭이듯 <맥베스>를 외치며 등장하는 원작의 마녀 역을 하는 남녀 출연자들과 극의 중간에 등장하는 마녀 역의 남녀 출연자는 마치 현악기와 손풍금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연출되고, 넓적한 얼굴의 맥베스, 길쭉한 모습의 뱅코우, 온건한 모습의 던컨, 둥근 모습의 맥다프, 건장한 모습의 남성마녀, 강인한 모습의 여성마녀,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젊은 시절 모습에 방불한 레이디 맥베스, 특히 흑색과 백색 의상차림으로 등장해 광적인 열연을 펼 때에는 관객의 시선이 레이디 맥베스에 집중되기도 한다. 특히 출연자들의 검은 색 의상과 촛불로 극의 분위기는 도입부터 제대로 조성이 되고, 맥베스, 뱅코우, 던컨, 맥더프, 남녀 마녀들의 의자를 사용한 동선 활용과 불꽃 튀는 열연은 극을 절정까지 치솟도록 이끌어 간다. 대단원은 도입에서처럼 맥베스가 건장한 남성출연자에게 눈을 헝겊으로 가린 채 질질 끌려 들어와 의자에 앉혔듯이, 마지막 장면도 맥베스가 끌려 나가다 의자에 무너지듯 앉혀지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성홍일, 박채익, 이철은, 장명갑, 이재인, 이자경, 김민경, 이창수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극의 분위기를 상승 하강시키며 관객을 시종일관 극 속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무대 최영환, 조명 주성근, 소품 박현이, 의상 이명아, 분장 김근영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2016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선정작품 극단 죽죽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낙형 각색 연출의 <맥베스>를 세계시장에 내 보여도 좋을 한편의 걸작 조형예술연극으로 탄생시켰다.
10월 22일

9, 상상만발극장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해성 재창작 연출의 코리올라너스

CJ아지트 대학로에서 상상만발극장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해성 재창작 연출의 <코리얼라너스>를 관람했다.

재창작 연출을 한 박해성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이다. <십 이분의 일>로 제1회 Project Bigboy 선정, <타이터스>로 CJ영페스티벌 연극부문 우수상, <믿음의 기원2:후쿠시마의 바람>으로 2015년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된 발전적 앞날이 예측되는 연출가다.

<황혼의 시> <십 이분의 일> <타이터스> <아이에게 말하세요-가자지구를 위한 연극> <영원한 너> <천개의 눈> <비상사태> <믿음의 기원 2:후쿠시마의 바람> <유사유감> <믿음의 기원 1> <3분 47초> <자유가 우리를 의심케 하라> <코리올라너스> 등을 연출했다.

<코리올라너스>는 1608년경 쓰여 졌을 것으로 여겨지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이다. 귀족 계층과 민중 계층의 극심한 대립을 갈등의 축으로 하는 이 극의 겉 줄거리는 이 극을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극으로 읽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코리올레라너스>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많은 극들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민중적인 목소리뿐 아니라 반 귀족적 태도까지도 내포한 작품이다. <코리올라너스>는 매우 정치적인 극이지만, 정치극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비극이다.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로마의 공화정은 시민적 자유의 보장이라는 맥락에서 이상적 정치 체제로서 기능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평민의 정치 적 자유와 공공선의 증진을 위해 시민 각자가 스스로 정치 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골고루 부여되어야하지만, 정치적 권리는 평민은 제외된 채 여전히 소수의 귀족과 호민관들에게만 주어져, 공화정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는 평민의 권리는 볼 수가 없고 정치권력 층의 농단과 부패로 인해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갈 것이라는 제시를 한다. 이처럼 셰익스피어가 그린 로마 공화정은 이상적 정체(政體) 로서 기능할 수 없다는 점을 <코리올라너스> 개인의 생애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1613년에 쓴 <헨리 8세>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었는데 이 연극이 공연되던 글로브 극장에 화재가 나서 이 극장이 소실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616년 셰익스피어는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52세로 타계했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비극이 <코리올라너스(Coriolanus)>다. 이 비극은 정치성이 너무 짙다고 하여 그가 살던 시기에는 공연이 되지 않았다. 근자에 이르러 영국 BBC방송에서 제작되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12월에 국내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경기고등학교 출신 화동연우회에서 <코리올라너스(Coriolanus)>의 한국초연이 이루어졌다.

카이우스 마르티우스는 기원전 500년경 로마 공화정 초기의 유명한 장군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당시 로마의 최대 적이었던 라티움 지역의 볼스키 족의 수도인 코리올을 함락시켰다고 하고 하여 코리올라너스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로마 스키피오 장군이 아프리카 대륙의 카르타고를 격파하였다고 하여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라는 칭호를 얻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코리올라너스는 로마가 강력한 이민족의 위협을 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섰을 때 귀족의 의무로서 전쟁에 출정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물론 민중은 환호한다.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은 그는 마침내 집정관으로도 거명이 된다. 귀족들의 집단인 원로원은 대찬성이고, 민중을 대변하는 호민관은 반대한다. 호민관으로는 시시니어스와 브루터스가 나온다. 여기서 브루터스는 시저를 죽인 브루투스와는 다른 사람이다.

호민관은 왜 코리올라너스를 싫어했을까? 이유는 원래 귀족 명문가 출신의 코리올라너스 장군이 지나치게 권력을 많이 가질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호민관은 코리올라너스가 건방져서 민중을 무시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코리올라너스가 집정관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 공작을 벌였다. 그 당시는 원로원의 세력은 약해지고 호민관의 세력은 강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호민관의 이러한 작업은 가능했다. 그래서, 코리올라너스는 아예 민중의 적으로 매도되어 로마에서 추방되고 만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전쟁을 승전으로 이끌었는데 자신을 추방시킨 로마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코리올라너스는 그전에 자신이 쳐부수었던 볼스키 족에게 가서 로마를 같이 치자고 설득한다. 그래서 로마를 공략하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 함락 직전까지 몰고 간다. 이에 당황한 로마는 코리올라너스의 어머니로 하여금 코리올라너스를 설득하라고 적진에 보낸다.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감성 공략은 성공하고 만다. 로마를 치겠다고 하여 군대를 기꺼이 내준 볼스키 족의 오피디어스 장군은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코리올라너스를 볼스키 족 장군들은 칼로 찔러 암살한다.

작품 재창작을 우리 현실에 어울리도록 각색을 했기에 내용전달이 명확한 것은 물론이고, 무대를 세 겹의 원형으로 객석을 배치하고 십자형의 통로와 원형객석 사이의 통로를 동선으로 활용하고 십자형 통로 끝에 높은 연설 대를 배치했기에 관객이 아닌 청중구실을 하도록 연출을 했다. 또한 무대 벽 상층부 전체를 한 바퀴 두른 스크린을 만들어 거기에 시위대 영상과 자막을 투사하고, 시대를 현대로 옮겨 가상의 국가를 로마로 설정했지만 우리의 현실과 방불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의상도 현대와 고전이 융합된 복장과 군복을 착용하지만 낯이 익은 의상이라 현실감을 증폭시킨다. 칼 대신 권총을 사용하고 주인공을 암살할 때는 단검을 사용한다. 그리고 호민관 대신 원로원이라 호칭한다.

강명주가 코리올라너스의 어머니 볼럼니아로 출연해 탁월한 연기로 갈채를 받는다. 선명균이 시시니어스, 신안진이 메니니어스, 최요한이 브루터스, 허정도가 마셔스 코리올라너스, 김훈만이 오피디어스, 변효준이 아드리안, 김 현이 타이터스로 출연해 출연자 전원이 적역을 맡은 듯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열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무대 조명 김형연, 영상 음향 윤민철, 의상 조상경, 분장 이지연, 사진 장우재, 조연출 무대감독 장한새, 조연출보 이혜리, 기획 이시은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상상만발극장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해성 재창작 연출의 <코리올라너스>를 우리 현실에 어울리는 걸작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10월 25일

10,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케네스 맥밀란(Kenneth Macmillan) 안무, 세르게이 에스 프로코피에프(Sergei S. Prokofiev) 작곡, 폴 코넬리(Paul Connelly) 지휘/연주, 줄리 링컨(Julie Lincoln)과 유리 우치우미(Yuri Uchiumi) 공동연출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을 관람했다.

발레의 역사에 대해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비롯되었다는 설과 그리스 시대에까지 소급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리스의 발레 전통이 그 문명의 소멸과 함께 일단 침몰되었다가 르네상스를 맞아 부활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자료에 의하면 1489년 밀라노 공 갈레아조와 이사벨라의 결혼식에서 베풀어진 막간극이 사실상 발레의 유래다.

그 후 르네상스의 진원지 피렌체의 메디치家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에서 발레가 크게 융성했으나, 16세기 이후로는 그 무대가 프랑스로 옮겨진다.

발레가 프랑스에 최초로 도입된 것은 1552년 피렌체의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할 때다. 이탈리아에서 크게 명성을 떨치던 음악가이자 안무가였던 베르지오 조소가 카트린느의 시종으로 프랑스에 가게 된 것이 프랑스에 발레가 뿌리내리게 된 계기가 된다. 남편 앙리2세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섭정을 맡은 카트린느는 아들 프랑스와 2세를 발레에 심취케 한 후 자신이 권력을 좌지우지할 셈으로 발레 진흥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1581년에는 세계 최초의 발레단 (Le Ballet Comique de Reine])을 창단해 발레가 융성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옮겨져 그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것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의 합성어인 <발레>(Ballet)라는 용어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카테린느 왕비 이후, 발레에 열광했던 루이 14세에 의해 1661년 <음악. 무용 아카데미>가 창립되면서 발레는 바야흐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스스로를 태양왕으로 자처했던 루이14세는 발레를 구경하는 데 만족치 않고, 몸소 춤을 추었고, 그에 힘입어 몰리에르 같은 당대의 문화계를 지배하던 인물들이 발레에 열광했던 탓으로 발레는 더욱 융성하게 되었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1811년 빈센초 갈레오티(Vincenzo Galeotti 1737~1816)가 안무한 작품이 덴마크 왕립발레단에 의해 공연된 이후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처음으로 안무한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Leonide Lavrovsky 1905~1967)와 존 그랜코(1958년), 케네스 맥밀런(1965년) 등이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다.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의 안무는 클래식 발레에 러시아적 캐릭터에다가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팬터마임 적 요소 등을 가미해, 춤보다 마임과 검술 등이 많고, 거리의 장면은 자연스럽고 활기가 넘도록 안무했다.

케네스 맥밀란은 한 술 더 떠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드라마틱 발레로 창출해 냈다. 작중인물의 성격을 원작대로 부각시키고, 무용수에게 배우나 마임이스트를 뛰어넘는 감정표현을 이끌어 내도록 안무했다. 세부 동작은 물론, 손가락 하나에서부터 팔 다리의 펴고 오그리기, 눈동자와 방향과 고개 짓 하나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감정전달을 무대 위에 구현해 냈다.

그의 안무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이다.
작곡가 프로코피에프에게 <로미오와 줄리엣> 무곡을 작곡해 볼 것을 권유한 사람은 안무가 디아길레프였다.

현대음악 작곡가 프로코피에프가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고전적 스타일로 작곡에 손을 댄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인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라브로프스키의 안무로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케네스 맥밀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용수들에게 음악과 일치된 감정이입, 그리고 철두철미한 심리표현은 물론 관능적인 요소까지 가미한 안무로,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1965년의 런던 로열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40여회의 커튼콜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이번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은 케네스 맥밀란의 안무와 줄리 링컨과 유리 우치우미의 공동연출, 그리고 폴 코넬리 지휘와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극장을 들어서면 명작의 고향풍경이 막 대신 펼쳐져 있다. 동화에 나옴직한 두 개의 성(城)이 먼발치로 떨어져 그려있어,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막이 열리면, 아름답고 화려한 무대장치에 객석에서는 “와-!”하는 감탄이 터져 나오고, 무대에는 배경 가까이 대리석기둥과 아치형의 출입구, 그리고 높은 계단과 테라스 등이 만들어져 있고, 군중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면, 그들이 착용한 고풍스러운 의상과 분장에 또 한번 감탄사를 발하게 된다. 게다가 100여명의 출연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율동에 맞춰 군중장면에 임하는 데서 연출가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동선 운용을 감지할 수 있고, 베로나 광장에서 상대를 원수라 여기는 캐퓰렛家의 청년과 몬테규家의 청년들이 등장하고, 서로 적대감으로 칼을 뽑고 결투를 시작하는 장면은 그간 연극이나 영화에서의 결투장면 못지않은 맹렬한 칼싸움으로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공연에 온 정신을 몰입시킨다. 청년 몇 사람이 칼에 찔려 쓰러지면, 에스칼루스 왕자가 분노에 찬 걸음으로 등장해 양가를 질타한다. 그리고 캐퓰렛 영주와 몬타규 영주를 화해시키려 하지만, 겉으로만 응할 뿐 내심은 전혀 화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우리의 남북 관계를 외국인들이 보는 심정과 비견되는 장면이다. 장면전환이 되면 캐풀릿家정문으로 장치가 바뀌고,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줄줄이 문으로 들어간다. 마스크를 쓴 로미오와 친구들이 등장해 캐퓰렛 성안으로 잠입하듯 들어간다. 이윽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연회장면이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의 독무, 2인무, 3인무, 군무 등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래위층 발코니에 자리 잡은 인물들도 율동에 맞춘 움직임으로 군중 씬은 조화를 이루고 활기로 가득찬다. 드디어 줄리엣이 레이디 캐퓰렛과 유모를 따라 등장하면, 그녀의 앳되고 청초하고, 초저녁별 같은 모습에 객석의 시선이 그녀의 일신에 집중된다. 로미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실연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방황을 하는 입장이지만, 줄리엣을 보는 순간 로미오는 큐핏의 화살을 심장에 정통으로 맞은 바로 그러한 모습으로 사랑의 화석이 된 듯 꼿꼿한 자세로 줄리엣을 바라본다. 전기가 통해서일까 영감일까 신의 계시일까 줄리엣 역시 로미오를 보는 순간 한동안 얼어붙은 듯 로미오를 바라본다. 이윽고 둘은 서로에게 다가간다. 줄리엣의 약혼자 파리스나, 오라비 티볼트의 만류를 뿌리치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운명처럼 다가가 파드되를 추기 시작한다. 줄리엣의 한 송이 민들레의 씨앗처럼 공중을 날듯 그 맑디맑은 향과 체취를 흩날리며, 어린 숫 사슴보다 상큼 발랄한 로미오의 율동에 몸을 맡기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어린이 관객이나 성인관객이나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저마다 로미오가 되고 줄리엣이 된 느낌으로 공연에 몰입된다. 이윽고 달빛 속에 명 발코니 장면이 펼쳐진다. 두 사람이 사랑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장면은 팬터마임과 마찬가지로 표현되지만, 두 사람은 달빛 아래에서 혼신의 열정으로 자신의 사랑을 상대에게 전달하고 발코니에서 내려와 펼치는 파드되는 갈매기나 백조의 비상처럼 영혼까지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싶은 절묘한 명무로 기억에 삭여진다.

이 장면은 마치 1968년에 제작된 프랑코 제피렐리가 감독하고, 레너드 위팅과 올리비아 하시가 주연해, 주제가인 “What is a youth”를 전 세계에 히트시킨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명 발코니 장면과 견줄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향후 성당에서의 비밀 결혼식 장면이라든가 묘지장면 뿐 아니라, 장면에 비치된 성모상이라든가, 건물에 장식으로 세워놓은 조각상은 공연의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조형물이 되었고 공연의 흐름과 극적인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조형물이 되었다.

원작과는 달리 대단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자살 장면으로 공연은 마무리가 되지만, 객석은 감동에 젖어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줄리엣의 알렉산드라 페리는 연극적 마임과 테크닉으로 줄리엣 보다 더 사랑의 화신다운 예술적 향기로 무대를 채워 50대의 연령을 극복해 낸다. 황혜민, 강미선, 김나은….유니버설발레단에 이런 천재 발레리나가 있었다니….줄리엣을 완벽하게 춤으로 표현해 낸 그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로미오 역의 막심 샤세로고프, 에르만 코르네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이동탁의 기량이 여성관객의 시선을 로미오에게 고정시키고, 머큐쇼 역의 이고르 콘타레프,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강민우, 티볼트 역의 예브게니 키사무디노프, 알렉산드로 세이트칼리예프, 이동탁, 벨볼리오 역의 강민우, 이고르 콘타레프, 샤오 쿤, 패리스 역의 알렛산드로 세이트칼리예프, 예브게니 키사무디노프, 막심 샤세고로프 등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고, 캐퓰릿 영주 곽태경, 캐퓰릿 부인 강예나, 오혜승, 최지원, 에스카루스 황재원, 로잘린 한상이, 최지원, 왕혜지, 로잘린의 친구 이가영, 유모 강민영, 로렌스 신부 몬태규 영주 김현우, 몬태규 부인 오혜승, 최지원, 왕혜지, 배현경, 거리의 연인들 오혜승, 왕혜지, 김유선, 에블리나 고드노바, 아나스타샤 데미아노바, 줄리엣의 친구들, 환상이, 배현경, 김유선, 에블리나 고드나노바, 이다정, 성사미, 천씽위, 베린 코카바소글루, 그리고 마이클 웨글리, 제임스 프레이저, 배희경, 스즈키 리나, 오타 아리카, 제시카 오버튼, 알렌다 윗젤, 박은기, 윤기연, 홍서희, 사공다정, 알렉산드라 윌슨, 일레인 블랭크, 키라 로즈 메튜스, 우나 나가오카, 남기은, 서혜원, 이하연, 조연재, 샤오쿤 크리스토퍼 로빈 안드레아, 서동은, 류 이페이, 김경원, 양천청, 달라트 자라로프, 김정원, 이근희, 제임스 프레이저, 유 하이쑤안, 루이스 가드너, 샤이 건, 김동철, 바이르 타비노프, 조나단 바르셀로 실베라, 필리포 안토니오 루사나, 마이클 웨글리, 박제현, 등 출연자 전원의 열정과 기량이 어우러져 드라마틱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단장 문훈숙, 예술감독 유병현, 객원 지도위원 예브게니 네프, 지도위원 황재원, 유지원, 이주리, 진헌재, 안지원, 이준규, 강남심포니오케스르라 지휘 폴 코넬리, 강남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성기선, 악장 김경아, 총무 박성호, 최문선, 단무장 정승원, 악보 김보현과 단원 여러분의 연주가 조화를 이루고, 무대감독 전우연, 조명감독 서경원, 음향감독 이태훈, 무대제작감독 박순용, 장필규, 의상감독 정연주, 영문감수 앵 이노우에, 소품 이미선, 작화 박영애 윤미연 김진, 전혜주, 이유빈, 전영수, 가발 설희영, 분장 김진영, 홍보 김세영 등 스텝진의 노력과 열정이 드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케네스 맥밀란 안무, 세르게이 S. 프로코피에프 음악, 폴 앤드류스 무대 의상 , 마사오 이가리시 조명, 줄리 링컨&유리 우치우미 연출의 드라마틱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세계정상급 고수준 고품격의 발레공연으로 탄생시켰다.
10월29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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