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날숨의 시간들/ 김태희

사선(死線) 안과 밖, 어디에도 없는 그 곳 <탈출, 날숨의 시간들>

 

– 김태희

 

작 : 박찬규
각색 : 고선웅
연출 : 고선웅
단체 : 극단 마방진
공연일시 : 2016.12.9. – 25
공연장소 : 국립극장 KB 청소년 하늘극장
관극일시 : 2016.12.13

 

 

북한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 미디어에서 다양하게 형상화되어 왔다. 그 스펙트럼은 적에서부터 골칫덩어리 혈육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펼쳐지지만 결국 타자라는 점은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냉전이 붕괴되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유화되면서 기존의 북한 관련 표상과는 다른 ‘탈북자’라는 존재가 수면 위로 부상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전히 타자이지만 그렇다고 예전의 표상으로 묶이기엔 어딘지 부족한, 그런 존재들이었다. 연극계에서 탈북자 문제가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은 <목란언니>가 아닌가 싶다. 탈북자가 등장하는 것도 모자라 그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던 곤란함에 대해 토로하는 이 작품의 등장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점을 예비해주는 신호탄이었다. <탈출, 날숨의 시간들>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이야기다. 확실히 그 동안 우리 사회는 탈북자 문제에 익숙해졌다. 탈북자에 대한 우리 연극의 인식은 <목란언니> 속 그것에서 얼마나 변화했을까. <탈출>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 것인가.

 

질기고 질긴 여성수난사

 

작품은 긴박한 움직임으로 시작된다.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숨 가쁜 여정은 그들로 하여금 말을 잃게 만들었다. 탈북자들은 중국 공원들의 감시를 피해 짐들에 섞여 트럭을 타고 한발만 내딛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험한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기어서만 지나갈 수 있는 동굴을 지나고 모아둔 돈을 베트남 뱃사공에게 탈탈 털어주고서야 이들은 남한으로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 아무런 대사 없이 진행되는 장면들이지만 남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마음과 상황의 긴박함은 오롯이 객석으로 전달된다. 이들이 비로소 자신들의 이야기를 발화하는 것은 남한으로 가는 뗏목위에서다. 뮤지컬 배우가 되겠노라, 만두집을 하겠노라. 각자의 가슴 속에 꿈을 간직한 채 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펼칠 남한에 도착한다.
하지만 남한의 현실은 이들에게 녹록치 않다. 남한 사람에게도 퍽퍽하기만 한 현실이 이들에게 결코 다를 수 없다. 택배 배달, 택시 운전수, 패스트푸드 알바 등 다양한 직종에 취업을 하지만 남한사람들은 탈북자들을 비하하고 견제한다. 이들은 여전히 이 곳에서 타자로 존재한다.
긴박한 탈출을 형상화했던 극의 전반부에서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교적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 어떤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지기 보다는 사선(死線)을 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런데 이들이 남한에 도착한 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급격히 경직된다. 서사의 초점은 이제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자매에게로 모아진다.
북한 사투리를 쓰고 북한에서 부르던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자매가 남한에서 뮤지컬 배우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자매는 아버지를 남한으로 데려오고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몇 개월 기약을 두고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정말 몇 개월만 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되면서 이들은 노래와 함께 자신의 성(性)을 상품화해야했고 점차 빠져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자매의 이야기에서 탈북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버리면 사실상 이들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여성수난사에 그치고 만다. 가난해서 일본으로 공장으로 팔려가야만 했던 그 많은 여성들과 자매는 닮아 있다.
여성수난사가 여전히 대중 서사의 저변에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여성을 타자이자 약자로 만들고 있음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탈북자라는 그녀들의 신분이 더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음은 분명하다. 다만 그녀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지나치게 익숙한 문제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이 노출된다. 의미심장하게 시작되었던 작품 초반부와 달리 작품 후반부는 질기고 질긴 여성수난사의 반복에 그치고 만다.

 

 

만두집 그 여자의 교훈

 

탈북자들이 사선을 넘어 도착한 남한은 자본주의 사회다. 그러나 남한의 자본주의는 본래의 순기능 대신 역기능을 곳곳에서 노출하고 있는, 문제적 국면에 처해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과 함께 인권마저도 자본과 교환해야하고 고용관계는 정당한 계약보다 갑에게 더 무게가 쏠리는 불균형적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자매의 서사 중간 중간 전개되는 다른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탈북자는 배달이 늦었다는 이유로 배달이 거부된 햄버거를 떠안아야 한다. 탈북 과정에서 팔이 잘린 군인은, 온전한 노동력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보다 심화된 문제 의식은 택시 기사로 일하는 탈북자의 에피소드에 투영된다. 그가 운전하는 택시에 탄 승객들은 그가 탈북자임을 확인하자 탈북자를 비하하는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탈북자에 대한 단순한 비하를 넘어서서, 자신들의 세금이 이들의 정착을 위해 쓰이고 있다는 점에 분통을 터트린다. 타자에 대한 단순한 불쾌감은 이제 자본과 국가의 복지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로 확장되고 상대적 박탈감은 곧 약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드러난다. 지극히 처절한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드러낸 남한 사회의 이면들은 만두집을 열겠다던 젊은 부부에게로 집약된다. 남한에 도착한 탈북자 무리들 중에서 남한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인물은 이들 부부밖에 없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택시 기사, 택배 기사를 비롯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때 이들 부부는 만두집을 열고 가게를 번창시키는 데 성공한다. 덕분에 부부는 함께 사선을 넘은 동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어려울 때 돈을 빌려주며 이들의 구심점이자 유일하게 비빌 언덕으로 자리 잡는다.
흥미로운 것은 분점을 내고 가게를 확장하는 동안 변화하는 만두집 주인 여자다. 남편은 한결같이 같은 옷을 입고 만두를 빚으며 함께 사선을 넘은 동지들을 챙기지만, 그의 부인은 갈수록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사선을 넘은 동지들을 가게 종업원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어느새 남한의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녀의 변화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 가게에서 일하는 탈북자들은 그녀를 사모님으로 대하고 그녀와 시급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 이들의 관계는 동지에서 자본주의적 관계로 재편된다. 남한사회에 정착하는 방법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가정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만두집 그 여자가 이들에게 남긴 교훈은 철저히 남한의 자본주의에 동화되라는 것, 그것에 다름없다.

 

사회가 어두운 민낯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천박한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탈북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이제는 먹고 살기 힘든 내 삶을 위협할 수 있는 타자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렇다. 여기도 사지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사선을 넘었는가. 아니, 어디가 사선의 밖이고 어디가 사선의 안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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