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7년 3월 공연 총평/ 박정기

박정기의 공연산책 2017년 3월 공연총평

 

 

3월에는 모진 겨울을 이겨낸 봄의 꽃망울처럼 아름다운 공연이 많았다. 2017년 3월 공연작을 평하고, 극단 피악의 7시간 공연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의 굿 연작공연 2편, 그리고 광진문화재단 지원 애플씨어터의 명작연극 2편 평을 별도로 게재한다.

 

1, 연희단거리패의 카를 발렌틴 작, 정민영 역, 오동식 연출의 <변두리극장>

혜화동 게릴라극장에서 연희단거리패의 카를 발렌틴(Karl Valentin, 1882~1948) 작, 정민영 역, 오동식 연출의 주막극(酒幕劇:Kabarett drama) <변두리극장>을 관람했다.

카를 발렌틴(Karl Valentin)은 찰리 채플린 (Charles Spencer Chaplin,1889~1977)과 동시대 인물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두 사람은 전쟁 상대국인 독일과 영국에서 공연활동을 펼쳤다. 카를 발렌틴은 독일에서, 찰리 채플린은 영미지역이 활동무대였다. 카를 발렌틴은 대부분의 극장이 공습으로 파괴된 폐허가 된 도시의 선술집이나 주막 같은 장소에서 공연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채플린 역시 전쟁의 참화로 인간성마저 소멸되어가는 현장에서 대중에게 웃음을 제공했기에 후에 불세출의 예술가로 불리게 된 것이다.

정민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독문학 박사)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현대 독일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다. 2002년부터 여러 연극인들과 희곡 낭독 공연회를 결성해 번역과 낭독 공연을 통해 여러 나라의 동시대 희곡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카바레. 자유와 웃음의 공연예술≫, ≪하이너 뮐러 극작론≫, ≪하이너 뮐러의 연극 세계≫(공저), ≪하이너 뮐러 연구≫(공저)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욕망≫, ≪하이너 뮐러 문학 선집≫, ≪하이너 뮐러 평전≫, ≪욘 포세 희곡집. 가을날의 꿈≫, 욘 포세의 ≪이름/기타맨≫, 우르스 비드머의 ≪정상의 개들≫, 볼프강 바우어의 ≪찬란한 오후≫, ≪브레히트 희곡선≫, 독일어 번역인 정진규 시선집 ≪Tanz der Worte (말씀의 춤)≫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독일어권 카바레 연구 1, 2>, <전략적 표현 기법으로서의 추>, <하이너 뮐러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그리고 한국 무대의 “주워온 아이”>, <하이너 뮐러의 산문>, <한국 무대의 하이너 뮐러>, <Zur Rezeption der DDR-Literatur in Sudkorea> 등 많은 논문을 썼다. 주요 드라마투르기 작품으로 손정우 연출의 <그림 쓰기>, 백은아 연출의 <찬란한 오후> 등이 있다.

오동식은 청주대 연극학과와 동국대 연극학과 대학원 출신의 배우이자 연출가다. 연극 ‘백석우화 –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으로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과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연희단거리패의 단원이다.

출연작으로는 <백석우화> <길 떠나는 가족> <벚꽃동산> <리어왕> <궁리> <못생긴 남자> <템페스트> <햄릿> <세자매>외 다수작에 출연해 호연을 보였다.

연출작으로는 <채권자> <변두리극장> <트랜스 십이야> <길바닥에 나앉다> <코뿔소> <스트립티즈> 등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장래가 발전적으로 기대되는 연출가다.

연극 <변두리극장>은 몇 개의 단편을 모아서 구성한 연극이다. 카바레(酒幕, Cabaret)에 공연무대를 가설하고, 건반악기, 관현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등을 연주하는 인물들과 가수, 그리고 지휘자가 등장해, 전쟁의 각박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연주활동을 펼치며 이야기를 꾸며간다. 지휘자 부재중 연주자들의 지휘자 단점 캐기와 이를 듣게 된 지휘자의 분노, 고장 난 휘장과 휘장 속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가수의 오페라 내용과는 무관한 하반신의 동작, 아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과 아내, 무작정 편지를 기다리는 인물, 한 제본공이 책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반복해서 하는 통화와 그 밖에 내용 등이 익살맞게 연주 중간 중간에 펼쳐져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 특히 지휘자가 용수철로 된 지휘대에서 무대 위로 껑충 뒤편으로 뛰어오르는가 하면 특수한 신발로 용수철에 고정을 시키고 몸을 회전시키며 곡예를 하듯 지휘하는 지휘자 모습은 기억에 남는다.

전쟁 중 독일이 클래식 음악을 고집하고 연주할 때, 프랑스에서는 샹송(Chanson) 을, 미국에서는 재즈(Jazz)가 대중선호음악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클래식음악은 일부계층에서만 선호하게 되었고, 샹송이나 재즈는 대중음악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극중 노래 지아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 이태리)의 오페라 투란도트(Trandot)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 (Carmen)의 “하바네라(Habanera)”는 동시대의 대표적인 음악으로 이 연극에서 당대의 독일인의 음악취향과 적절히 부합되는 곡이다.

미국영화 베니 굿만 스토리(The Benny Goodman Story, 1956)에서 연주자가 2차 대전 중 적기의 공습으로 폭탄이 바로 연주장 인근에 투하되는 현장에서, 중단하지 않고 트럼펫 연주를 계속하던 모습이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윌리엄 사로이언(William Saroyan,1908~1981,미국)의 희곡 혈거부족(穴居部族, The cave dwellers)에서 예술가들이 이차대전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텅 빈 극장에 모여들어, 그 곳에 기거하며, 낮에는 걸인행각을 펴고, 밤에는 무대에 올라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역시 필자에게는 잊을 수 없는 명작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 연극의 대단원에서 붕괴(崩壞)되는 카바레(酒幕, Cabaret)에서 연주하다 건물의 잔해(殘骸)에 깔리는 연주자들의 모습은, 남북과 동서가 날이 갈수록 대치되고 적대시되는 상황에서, 일종의 경고처럼 느껴졌다면 필자만의 과장된 생각일까?

이승헌, 윤정섭, 김아라나, 신명은, 박현승, 최동혁, 이승복 등 연기자들의 열연과 탁월한 성격창출은 객석의 폭소와 갈채를 불러일으켰고, 무대제작 김경수, 조인곤의 조명디자인, 김한솔의 무대감독 등 스텝 진이 이룩한 무대 역시 분위기상승과 극적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카를 발렌틴(Karl Valentin) 작 정민영 역 오동식 각색/연출의 <변두리극장>은, 연희단거리패가 이 불안정한 시국과 난세에 모든 관객에게 제공한 친 대중적이고, 근심걱정을 잊도록 만드는 한편의 메가톤급 웃음 폭탄의 투척처럼 느껴지는 걸작 공연물이다.
3월 4일

2, 극단 민들레의 이동준 제작, 심영섭 작곡 음악감독, 송인현 작 연출의 <임꺽정 그가 온다>

예그린씨어터에서 극단 민들레의 이동준 제작, 심영섭 작곡 음악감독, 송인현 작 연출의 <임꺽정, 그가 온다>를 관극했다.

임꺽정(林巪正, 1504~ 1562년 1월 3일)은 조선 명종 때의 황해도 지방의 백정 출신 도적이다. 경기도 양주(楊州)의 백정으로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불평분자를 규합하여 민가를 약탈하였으나, 아전과 백성들이 도와 잡지 못하였다.

1559년(명종 14년)부터 황해도·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관아를 습격하고 관리를 살해하는 한편 창고를 털고 빈민에게 양곡을 나누어 주었다. 황해도 장연(長淵)·옹진(甕津)·풍천(豊川) 등지에서 관군이 토벌을 하려 했으나 백성들이 내응하여 이를 피했다.

1560년(명종 15년)부터 점차 세력이 위축되던 중 1562년(명종 17년) 음력 1월에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으로 인해 구월산(九月山)으로 철수하여 항전하다가 잡혀서 사형을 당했다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조선의 3대 도적으로 홍길동·장길산과 임꺽정을 꼽았다. 성호가 3대 도적으로 이들을 꼽은 것은 비단 대도(大盜)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당시 위정자들은 이들을 도적떼로 몰고 갔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위정자에 대한 농민의 저항이자 신분해방의 부르짖음이 담긴 의적(義賊)이라는 시각이 담겨있다.

송인현은 서울예대 출신의 배우 겸 작가이자 연출가다. 중요 무형 문화재인 봉산 탈춤 전수, 경기도 화성에 민들레 연극 마을 만듬, 국제 아동 청소년 연극 협회 한국 본부 이사장, 현재 극단 민들레 대표를 맡고 있다. <깨비깨비 도깨비>, <백두 호랑이>, <놀보, 도깨비 만나다!> 등을 직접 쓰고 연출하고, 생태극 <까만 닭>을 공연했다. 어린이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 <똥벼락>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했다.

<임꺽정 그가 온다>는 임꺽정의 스승이었던 가파치가 주인공이다, 임꺽정이 안성군 칠현산 칠장사에서 주지인 가파치 승려에게 무술을 배우고 일곱 명의 동료와 도원결의를 맺고,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고위관료를 축출하고, 나라를 바로잡는 다는 명목으로 세를 규합해 나섰으나 실패로 끝나고 모두 죽음을 당했다. 임꺽정의 사후 10년이 지나자 가파치 승려는 은거해 살며, 고아인 난희를 데려다 딸처럼 기른다. 이웃 총각인 서우가 난희를 연모하지만, 부모가 진 빚을 갚지 못해 군역으로 끌려간다. 그런데 고을의 윤참판이 난희의 미모에 음심을 품고 강제로 끌어다 음심을 채운다. 그러니 어찌 아비인 가파치가 잠자코 있을 것인가? 10년 전 제자 임꺽정이 세를 규합해 부패를 척결하려 했듯이 가파치도 세를 규합해 무리를 이루어 관아에 대항하려 한다. 가파치의 세가 만만치 않으니 조정에서는 토벌대를 파견한다. 여러 차례 승패를 건 싸움이 벌어지지만, 결국 가파치는…..

송인현과 정홍채가 가파치로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난희 역으로 한민희, 젊은 왕 역으로 김경희, 장재윤, 김태완, 안영주, 이요셉, 김혜진 등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 그리고 열창과 연주로 갈채를 받는다.

안무 배혜령 김경희, 조안무 신종철, 무술지도 원 진, 조명디자인 이성호 상명대교수, 조명감독 김혜란, 음향감독 조현지, 무대디자인 김준성, 의상디자인 이효수, 소품 탈제작 서공회, 기획 홍보마케팅 장계숙 박여진 최유리 김명진 등 스텝 진과 연주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민들레의 이동준 제작, 심영섭 작곡 음악감독, 송인현 작 연출의 <임꺽정, 그가 온다>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3월 5일

3,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에우리피데스 작, 로버트 알폴디 각색 연출의 <메디아>

명동예술극장에서 김윤철 예술감독, 에우리피데스(Euripides) 작, 로버트 알폴디(Robert Alfoldi) 각색 연출의 <메디아(Media)>를 관극했다.

세 명의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들 중에서 에우리피데스는 가장 “현대적”인 인물로 꼽힌다. 현대적이라는 표현은 에우리피데스가 실제로는 소포클레스와 거의 동시대 사람이었으면서 그 보다 두세 달 먼저 타계한 점으로 더욱 부각되기도 하는데, 에우리피데스는 여성에 대해 동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점, 다른 작가들보다 사실주의적인 작품성이 탁월한 점, 비극을 멜로드라마 또는 희극과 혼합한 점, 그리고 그리스 신들을 회의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등으로 한층 현대적인 작가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에우리피데스는 평생 “현대”적인 작품을 쓴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이 하는 일상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으며, 그러한 사실적인 작품 세계는 당시의 통념으로 비극으로 간주되기에는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개별 작품들도 (상대적으로 나약한) 플롯의 사용이라든가 코러스 활용을 축소한 점, 그리고 구설수에 오를 정도의 주제 등으로 비난을 면치 못했다. (비록 훗날 멜로 드라마와 희비극의 귀감이 되기는 했지만) 그가 희극과 비극을 혼합한 작품을 쓴 것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항목은 그가 전통적인 도덕률에 입각하여 그리스 신들을 쉽게 타락하기도 하는 인간의 수준으로 묘사한 점이다.

에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와는 달리 에우리피데스는 아테네 정치나 사회 활동 등에 활발하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아테네 령의 살라미스 섬에서 부유층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좋은 환경에서 자란 부유층의 아들답지 않게 그는 기질적으로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이었고 바깥 세상에 한데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관망하기를 더 좋아했고 또 당시의 사회적. 철학적 운동들을 검토해 보기를 좋아했다. 그가 작품 속에서 거칠고 우악스러운 여성 인물들을 자주 다룬 것으로 미루어, 에우리피데스는 평온치 못한 결혼 생활로 인하여 여자를 싫어하게 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극작가로서 에우리피데스는 동시대 어느 작가보다도 더 그럴 듯한 여성 인물을 창조했고 또 여성에 대해서도 훨씬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 주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주 에우리피데스의 철학과 극작술 등에 대해 조롱조로 에우리피데스 작품 중의 장면들을 발췌하여 희화화했다. 에우리피데스는 평생에 걸쳐 완성한 총 92편의 작품 중에서 5편의 작품만이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불운을 겪지만 그의 명성은 사후에 급속도로 커지게 되며 그는 작품의 독창성과 독립적인 사고방식으로 찬양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극작술 대부분은 시대의 고금을 막론하고 극작가들에 의해 모방되는 모델이 된다.

현존하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모두 18편이다. 그 중에서도 잘 알려진 작품 순으로 나열해 보면 <알세스티스>(Alcestis, 438 B.C.). <메디아>(Media, 431 B.C.).< 힙폴리튀스>(Hippolytus, 428 B.C.).<안드로마케>(Andromache, ca. 424 B.C.). <탄원자들>(The Suppliants, ca. 420 B.C.). <트로이 여인들>(The Trojan Women, 415 B.C.). <엘렉트라>(Electra, ca. 412 B.C.).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Iphigenia in Tauris, ca. 410 B.C.). <헬렌>(Helen, 412 B.C.).<오레스테스>(Orestes, 408 B.C.). <바카에>(The Bacchae, ca. 406 B.C.).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Iphigenia in Aulis, ca. 406 B.C.) 그리고 연대 미상의 풍자극인 <싸이클롭스>(The Cyclops)등이다.

로버트 알폴디(Robert Alfoldi, 1967~)는 1991년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 공연영상 아카데미 (Film and Theatre Academy of Budapest) 출신의 배우이자 연출가이다.

1998년 <베니스의 상인(Merchant of Venice)>으로 부다페스트 시 제정 그해의 최우수 연출가상과 비평가 상 (Critics’ Award and the Award of the City of Budapest for the Best Director of the year for)을 수상하고, 1995년 야사이 마리 상과 미래 상(Jaszai Mari Award and Pro Future Award)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헝가리 공화국 공로훈장 (Republic of Hungary Merit Neatcross)을 수상하고, 2012년에는 그 해의 예술가 상 (The Artis of the year)을 수상했다.

2008년에 부다페스트 국립극장 예술감독 (the Artistic Director of the National Theatre, Budapest)에 취임해 향 후 5년 간 헝가리 국립극장의 연극을 혁신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일부 우파 기독교 극장 연맹 (Right-wing Christian TheaterAlliance)과 좌파 자유주의 극장 연맹(Federation of left-wing liberal theaters)의 비판을 받았다. 2016년에는 방한해 국립극단의 <겨울 이야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메디아>에 관한 신화에서는 테살리아의 왕인 이올코스의 펠리아스가 조카 이아손에게 ‘황금 양털’ 을 찾아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명을 내린다. 이아손은 황금 양털을 찾아 아르고 호를 타고 콜키스 – 지금의 조지아(그루지야) 지역 – 로 갔는데,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인 <메디아>가 이아손에게 한눈에 반해 버린다. 족보를 따져 보면 메디아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이자 <오딧세이아>에 나오는 키르케의 조카로, 마법에 능하여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찾도록 도와주고 뒤에 그를 따라 콜키스에서 도망친다. 그 와중에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자기 남동생을 살해해 시체를 토막 내 바다에 뿌린다. 그리고 이올코스에 왔는데, 펠리아스는 사실 이아손이 자기 왕위를 빼앗을 거라는 신탁을 받아서 이아손을 멀리 쫓아버리려고 불가능한 사명을 준 거였고, 진짜로 이아손이 돌아오자 입을 싹 씻는다. 그러자 메디아는 ‘펠리아스를 회춘시켜 주겠다’ 며 펠리아스의 딸들을 속여 딸들이 펠리아스를 독살하게 만든다. 그리고서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코린토스로 도망치는데,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 (오이디푸스의 뒤를 이은 테바이 왕 크레온과는 동명이인) 이 딸 글라우케를 이아손에게 주겠다고 하자 이아손은 글라우케를 받아들고 <메디아>를 버린다. 복수심에 사무친 <메디아>는 독이 묻은 옷을 보내 글라우케와 크레온을 살해하고 아테나이로 도망쳐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에게 의탁하고 몸과 마음을 밀착시킨다. 자식이 없던 아이게우스 사이에서 아들도 낳는데, 갑자기 아이게우스의 잃어버린 아들 테세우스가 등장하자 테세우스를 독이 들어있는 술로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아들을 데리고 도로 콜키스로 도망친다. 거기서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은 삼촌을 살해하고 아버지의 왕위를 되찾아 준 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훗날 아들이 콜키스의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메디아> 로 바꿨다. 한편 이아손은 실의에 빠져 아르고 호 배 밑에서 자다가 썩은 뱃고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비명횡사했다.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메디아>는 코린토스에서 버림받은 메데이아가 이아손에게 복수하는 부분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작품에서 <메디아>는 글라우케와 크레온뿐 아니라,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두 아들마저 자기 손으로 살해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원래 신화에서는 <메디아>가 아들들을 시켜 글라우케에게 독이 묻은 옷을 선물로 전해 주게 했고, 분노한 코린토스 시민들이 아들들을 살해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에우리피데스는 <메디아>가 복수의 일환으로 이아손의 대를 끊고 가정을 무너뜨려 고통스럽게 살도록 만들기 위해 스스로 아들들을 살해하였다고 구성한 것이다. 이 ‘복수를 위한 자식 살해’가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메디아>는 자식 살해를 결행하기 직전, 유명한 독백을 통해 ‘자신의 ‘격정’이 ‘숙고’보다 강력하다’ 는 대사를 읊는다. 이렇게 자신의 격정으로 인해 자신과 아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결단은, 마치 <일리아스>의 첫 구절인 ‘분노’, 아카이아 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준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대한 모방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메데이아가 <일리아스>의 영웅들과 다른 점은, 메데이아의 내면 갈등과 고뇌가 훨씬 더 극명하게 묘사된다는 것이다.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명예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단순무식하고 평면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에 반하여 메데이아는 자식들을 죽이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들의 눈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결행을 결심하는 복잡한 내면 심리를 긴 독백을 통해 보여 준다. ‘격정이 숙고보다 강력하다’ 고 외치는 메데이아의 위 대사는 <일리아스>의 ‘분노’를 연상시키지만, 그 이면 깊숙이에 보이는 고뇌로 인해 메데이아의 분노는 더욱 묵직하고 처절하게 느껴진다.

또한 메데이아는 다른 비극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자신의 행동이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것임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비극적 운명을 선택한 성격창출이다. 예컨대 다른 명작 비극인 <오이디푸스 왕>을 보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혀냄으로써 비극에 빠지게 되나, 출생의 비밀을 밝히려는 자신의 시도가 비극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메디아>는 긴 독백을 통해 자신의 내면 갈등을 폭풍처럼 발산하고, 자신이 하려는 행동이 끔찍한 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비극적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에서 다른 비극 주인공들과 대조된다.

무대는 백색벽면으로 둘러싸여진 일종의 회당이나 강당 형태의 공간이다. 천정에 거대한 원통형의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원작의 코러스 대신 16명의 미모의 여인이 등장하고, 정면 벽좌우에 내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하수 쪽 중앙 벽면과 객석 가까운 무대 좌우에도 등퇴장 로가 있다. 십여 개의 의자, 환자이동침구, 단검이 사용되고, 후반에 천정에서 거대한 원통형 아크릴 통이 내려와 메디아의 자식 살해 장면에 밀폐된 공간으로 사용된다.

연극은 도입에 <메디아>의 비명 같은 외침에서 시작해, 16인의 여인 중 코러스 장 격인 여인의 대사와 여인들 간의 대에서 극적 상황이 객석에 전달되고, 훤칠한 미남 크레온이 등장하면서 극의 분위기가 상승하기 시작한다.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현대 서양의 한 왕궁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구성되고, 원작의 내용을 답습했으나, 현대의 잔혹극처럼 연출된다.

이혜영이 <메디아>로 출연해 일생일대의 명연을 해 보인다. 의상과 착용하는 신, 구두 또한 작중인물의 성격설정이나, 극적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대사 하나하나 미세한 동작에 이르기까지 노력한 결과가 무대에 드러나 기억에 남는다. 김정은의 코러스 장 역은 물론, 황연희, 문경희, 최지연, 김민선, 김수연, 정혜선, 김수아, 김혜나, 황미영, 황선화, 최아령, 이은주, 박선혜, 최지혜 등 코러스 역마다 자신들의 성격창출과 연기력을 확실하게 드러냄은 물론, 남명렬, 하동준, 박완규, 손상규, 임영준의 탁월한 성격창출과 호연은 물론, 아역으로 출연한 배강유 배강민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전체 출연자의 연기력의 조화는 극을 고품격 고수준으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해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번역 우르반 일렉산드라, 공연대본 윤성호, 의상 진태욱, 무대 박동우, 조명 김창기, 분장 백지영, 소품 김혜지, 음향 유옥선, 레지던스 연출 정승현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에우리피데스(Euripides) 작, 로버트 알폴디(Robert Alfoldi) 각색 연출의 <메디아(Media)>를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3월 16일

4, 극단 노을의 오세곤 예술감독, 강재림 작, 김기현 음악, 이신영 연출의 음악극 <츤데레>

노을소극장에서 극단 노을의 오세곤 예술감독, 강재림 작, 김기현 음악, 이신영 연출의 음악극 <츤데레>를 관극했다.

강재림은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석사출신으로 극단 노을 대표이자 작가 겸 연출가다. 현 MTM 연기강사 및 교육진흥원 연극 강사, 세명 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희곡문학 신인작가상 수상 <팔관회> <오박사의 복수> <눈의 여인> <인터뷰> <지구침공> 뮤지컬 <킹 오브 드림스> 가족 극<바리의 여행> 그 외 다수 작품을 집필했다.

연출작으로는 <에브리 맨> <왕은 죽어가다><오박사의 복수> <눈의 여인> <별이 빛나는 밤><결함><킹 오브 드림스><바리의 여행> <소나기 2>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한 장래가 발전적으로 예측되는 작가 겸 연출가다.

이신영은 연극학박사로 성결대학교 조교수다. 서울연극협회 정책조정분과 위원장, 극단 노을 상임연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경기문화재단 연극분야교육위원 겸 평가위원이다. 200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 선정, 2009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국내우수작 선정, 2010 서울복지대상 연극프로그램부문, 2010 수원화성연극제 공식초청, 2013 마로니에 여름축제 공식초청작 선정, 2015 서울연극인대상 남자배우연기상수상작 연극<수업>을 연출했다.

연출작품으로는 <우리읍내>, <청중>, <인디아나존스>, <우리 젊은 날의 일기>, <우리들이 원하는 건>, <엄중한 감시>, <수업>, <연극 TV동화 행복한 세상>, <인터뷰>, <길>, <사랑해> <고백> <뻥짜귀족> <1984 안양읍내>, 뮤지컬 <우리읍내>, <꿈의 사람 요셉>, <아인슈타인의 시간여행> <한정담> <독산동 우시장>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츤데레>는 안 그래 보이면서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극은 독산동 우시장이 배경이다. 서울 독산동 우시장은 맛좋은 한우를 파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도매상이지만 먹거리 골목이 있고, 유명 맛 집을 TV로 소개해 식당마다 손님으로 늘 북적거린다. 수입이 짤짤하지만, 식당을 운영하기 위해 빚을 지고 운영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육곡간은 영업시간이 길지 않지만 식당은 대부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고 술을 팔기에 자연히 취기 어린 사람들의 주정이 연출되기도 하고, 불량배나 폭력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여인이 혼자 살며 빚을 지고 운영하는 식당에는 금전으로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유부남도 있다. 더구나 여인의 모습이 괜찮은 편이니, 건물주가 침을 흘리며 가까이 하려든다. 식당을 하는 사람들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고, 밤늦게 귀가할 때 불량배가 칙은 거리고, 몹쓸 짓을 하려고 들지만, 그 때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나이가 등장해 위기에서 구해준다는 설정이다. 그 사나이는 우시장에서 고기를 썰고 저미는 일을 하며 말도 없고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성격이다. 여주인공인 빚 진 식당 집의 딸인 여고생을 불량배로부터 구해주기도 한다. 불량배가 앙갚음을 하려 무리를 이끌고 등장하지만, 사나이는 칼에 찔리면서까지 여고생을 구해준다. 어머니인 빚 진 식당주인은 건물주에게 몸과 마음을 밀착 시킬까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무뚝뚝한 정의의 사나이에게 살포시 마음을 열지 않을 수가 없다. 대단원에서 폭력배와 사생결단을 한 정의의 사나이가 그동안 일을 해서 모은 돈을 빚진 여인에게 보내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에서 공연은 끝이 난다.

박우열이 무뚝뚝한 사나이로 출연해 명연을 해 보인다. 류정준이 더블 캐스팅되어 출연한다. 공승아가 빚진 식당주로 등장해 역시 명연을 해 보인다. 김예랑이 여고생 딸, 손정윤이 딸 친구, 이상민이 딸의 친구로 더블 캐스팅되고, 윤무열, 소상일, 김기태, 문연진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열창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음악감독 김기현, 음악편곡 김지혜, 안무감독 이지은, 제작감독 이원현, 연기감독 이정하, 무대디자인 최병훈, 조명디자인 박성민, 의상디자인 이화선, 의상 원혜연, 제작PD 박새롬 이일균, 음향오퍼 황인혜, 조명오퍼 김영은 박용진, 조연출 기획 김영은 문연진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노을의 오세곤 예술감독, 강재림 작, 김기현 음악, 이신영 연출의 음악극 <츤데레>를 남녀노소 누구나 관람해도 좋을 친 대중적 걸작 음악극으로 탄생시켰다.
3월 18일

5, 극단 프랑코포니의 레오노르 콩피노 작, 임혜경 번역 드라마투르기, 까띠 라뺑 연출의 <벨기에 물고기>

알과핵 속극장에서 극단 프랑코포니의 레오노르 콩피노(Léonore Confino) 작, 임혜경 번역 드라마투르기, 까띠 라뺑 연출의 <벨기에 물고기(Le poisson belge)>를 관극했다.

<벨기에 물고기(Le poisson belge)>는 프랑스 극작가이자 배우인 레오노르 콩피노(Léonore Confino)의 2015년 발표공연작이다. 이 작품으로 작가 레오노르 콩피노는 같은 해 몰리에르 상 작가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출연 배우 제랄딘느 마르티노는 여배우 연기상을 받았다. <빌딩> <반지> 등의 희곡을 발표 공연했다.

번역과 드라마투르기를 한 임혜경 숙명여대 프랑스 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신임 한국불어불문학회 제50대 회장이다. 임 교수는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몽펠리에III대학교에서 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85년부터 숙명여대 프랑스 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2012~2014년 문과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극단 프랑코 포니’ 대표를 맡고 있다. 1991년 대한민국문학상 번역 문학상 신인상, 2003년 한국문학 번역 원 번역 상, 2014년 서울연극인대상 번역상 등을 수상했다.

<벨기에 물고기> <두 한국의 통일> <이 아이> <당지 세상의 끝>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렸지> <동물없는 연극> <유리알 눈> <고아뮤즈들> 그 외 한국문학 불역출판을 했다.

연출가, 까띠 라뺑(Cathy Rapin)은 파리 7대학에서 최인훈 희곡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한 독특한 이력이다. 까띠 라뺑은 프랑스에 한국 연극을 가장 많이 소개한 번역자로 2003년 한국문학 번역원 번역상을 임혜경 교수와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시인이자, 연출가, 번역가인 한국 외국어대학교 불문과 교수인 까티 라뺑(Cathy Rapin)이 느끼는 감정을 독백하듯 풀어낸 <맨살의 시(MISES A NU COREENNES)>가 출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극은 도입에 어느 겨울날,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익셀르 호수 앞 공원에서 중년여성과 소녀가 공원 벤치에서 만난다. 큼지막한 진주 귀걸이, 바둑무늬 목도리를 한 중년여성이 벤치에 앉아 먹는 초코바를 바라보며 배가 고프다고 구걸하는 소녀의 모습이 애처롭다. “엄마 아빠가 죽었어?”하며 애를 쫓아내려는 중년여성의 남성음성에서 비로소 중년여성이 아닌 남성임이 관객에게 알려진다. 남성은 자기가 먹다 버린 초코바 껍질을 핥아 먹는 소녀에게 뭔가 먹이려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간다.

아파트는 거실 벽이 커다란 창문처럼 되어있고, 벽에는 여러 개의 사진틀이 걸려있다. 옷걸이는 기울어 있고, 거실엔 노트북 한 대, 창문 뒤쪽으로 제법 커다란 욕실이 있다는 설정이다. 소녀는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못했다며 목욕을 하겠다고 조른다. 소녀가 목욕을 하러 들어간 사이에 중년남성은 소녀의 가방을 열어 집 주소와 이름 그리고 전화를 찾아내고, 곧바로 전화를 건다. 그러나 받는 사람이 없다. 소녀는 물고기처럼 물을 좋아해 욕탕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아니 한다. 중년남성은 소녀를 부르다가 욕실 안으로 들어간다. 소녀가 욕탕에 머리를 묻고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남성은 놀라서 깨워 데리고 나온다. 소녀는 물속에서 문어와 놀았다며 즐거워한다. 중년남성은 소녀의 배에 있는 깊은 상처를 발견하고 놀란다. 소녀는 상처가 아니라 물고기의 아가미라며 변명을 한다. 중년남성은 이가 튼튼하지 못해 의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소개가 된다.

남성이 외출하고 귀가하면서 신문을 가지고 들어온다. 신문에는 소녀의 부모가 사고로 죽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걸 벌써 알고 있는지 소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중년남성과 소녀의 생활이 시작된다. 주말까지만. 중년남성은 단 이틀만 소녀가 자기 아파트에 머물도록 허락한다. 이 며칠이 자신의 삶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오리라곤 상상하지 못한 채. 소녀의 부모가 지난 금요일 차 사고로 숨졌으며, 사람들이 사라진 소녀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고, 그 이야길 듣고도 소녀는 별다른 동요도 없고, 친척들에게로 가지 않겠다고 버티기까지 한다. 모든 일이 중년남성으로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진다. 이제 중년남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소녀를 잊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중년남성과 소녀의 동거는 우연이 필연으로 되듯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에 <벨기에 물고기> 한 마리가 곁들여진다.

<벨기에 물고기>라는 제목은 중년남성이 소녀에게 권유한 일본식 장례의식에서 비롯된다. 이 의식은 눈물을 모은 어항에 물고기 한 마리를 넣어두고, 7일 후 튀겨 먹는 것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이 하는 특별한 장례 절차를 실현하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때리고 놀라게 하여도 물고기는 기절하지 않는다. 둘은 팔딱팔딱 뛰면서 생을 포기하지 않는 물고기를 살려두기로 한다.

죽지 않는 물고기처럼, 누구에게나 지울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러나 때때로 그 무언가를 평생 감추고 간직하다가 필연적인 상대를 만나면 살포시 드러내 보이며 고백을 하듯이 두 사람의 고백이 동화처럼 엮어진다. 대단원에서 중년남성과 소녀는 서로의 아픔과 지울 수 없는 슬픔을 서로 감싸주며 서로를 따뜻하게 포옹을 하는 장면에서 <벨기에 물고기>처럼 영원히 살아남게 된다.

전중용이 중년남성으로 출연해 여성보다 더 여성답고 품격 높은 연기로 명연을 펼친다. 성여진이 소녀로 출연해 관객을 동화의 나라로 이끌어 가고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2인의 연기력의 조화와 기량이 관객을 도입부터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대단원에서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 낸다.

무대디자인 심채선, 조명디자인 김철희, 영상디자인 이지안, 애니메이션 서평원, 의상디자인 박소영, 분장디자인 장경숙. 작곡 최다율, 포스터 그래픽디자인 박재현, 연습자닌 웹마스터 김보경, 인쇄 세종인쇄, 영상기록 신정철, 영상오퍼 김형용, 조명오퍼 이도경, 음향오퍼 박제아, 자막오퍼 장은솜, 조연출 김형용 등 제작진과 기술긴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기량이 하나가 되어, 극단 프랑코포니의 레오노르 콩피노(Léonore Confino) 작, 임혜경 번역 드라마투르기, 까띠 라뺑 연출의 <벨기에 물고기(Le poisson belge)>를 작가와 연출가의 창의력이 제대로 드러난 우수 걸작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3월 18일

6,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이강백 작, 이수인 연출의 <심청>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이강백 작, 이수인 연출의 <심청>을 관극했다.

이강백은(1947~)전북 전주 출생으로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 후「셋」(1972), 「알」(1972), 「파수꾼」(1974) 「결혼」(1974), 「보석과 여인」(1975) 「족보」(1981), 「쥬라기의 사람들」(1982), 「호모 세파라투스」(1983), 「봄날」(1984) 「유토피아를 먹고 잠들다」(1987), 「칠산리」(1989), 「물거품」(1991), 「동지섣달 꽃 본 듯이」(1991) 「북어대가리」(1993), 「자살에 관하여」(1994) 등을 발표하고, 1982년 동아연극상, 1986년 대한민국문학상, 1989년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하였으며, 『이강백희곡전집』이 평민사에서 8권까지 간행되었다. 2016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연극 <배우 우배>로 은상을 수상했다.

연출가 이수인은 경남 밀양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사회대 지리학과 출신(91학번)으로 극단 한강, 극단 오늘 대표 역임했고, 現 떼아뜨르 봄날 대표이자 작가 겸 영화감독, 연극연출가다.

2004년 장편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를 각본 감독하고, 2006년 <떼아뜨르 봄날> 명칭으로 창단. 대표 및 상임연출을 맡는다.

2006년 6월-8월, 창단공연으로 <그녀가 돌아왔다> 연출, 2008년 2월 – 4월, <페드라-오래된 염문> 2008년 10월-11월, <그녀가 돌아왔다>, 2008년 12월, 음악극 <클럽 명월관> 연출, 2009년 <페드라 스캔들> 각색, 2009년 12월, <맥베스> 연출, 2010년 4월, <발코니> 각색, 연출, 2010년 9월, <전에도 그랬어> 연출, 2011년 2월, <낭만비극 오이디푸스> 각색, 연출, 2011년 5월, <낭만비극 오이디푸스> 각색, 연출, 2011년 10월-11월, <노부인의 방문> 각색, 연출, 2012년 5월 <왕과 나> 작, 연출, 2013년 7월 <왕과 나> 작, 연출, 2013년 12월 <해피투게더> 작, 연출, 2015년 2월 <메데아>각색, 연출, 2015년 4,5월 <그리스의 연인들> 각색, 연출, 2015년 관악극회 <헤이그 1907> 작 연출로 성공을 거두었다.

2015년 제2회 윤영선 연극상, 제52회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 제4회 레드어워드 상 등을 수상한 앞날이 발전적으로 예측되는 미남 연출가다.

<심청>은 2016년 5월 원로 이강백 작가의 칠순기념연극으로 혜화동 나온씨어터에서 공연되었다.

무대는 선주의 집이다. 마당이 넓다. 하수 쪽에 자리한 공간 벽 쪽으로 악사 네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중앙 오른쪽에 있는 안방에는 새로 인당수에 제물로 받칠 처녀가 머무는 방이다. 방 앞으로 부엌으로 가는 통로가 있어, 음식상과 술상을 내오기도 한다. 마당 하수 쪽에 대문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긴 나무걸상을 세로로 놓아 선주의 세 아들이 걸터앉기도 한다.

연극은 심청을 비롯한 많은 처녀들을 제물로 사서 인당수에 빠뜨린 선주(船主)의 이야기다. 큰 부자가 된 노(老) 선주에게는 장성한 아들 세 명이 있고, 배의 경리를 담당한 장정이 등장한다. 하녀 대신 말끔한 모습의 남성이 부엌일을 맡아 음식상과 술상을 봐오고, 가끔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펴기도 한다. 안방에는 팔려온 처녀가 머무는 곳이고, 심청이가 왕비가 되었기 때문에, 팔려온 처녀들은 마마라는 존칭으로 불린다.

이번에 팔려온 처녀는 주정뱅이 부친에 의해 겉보리 스무 가마니에 팔려왔다는 설정이고, 인당수에 제물이 되는 것이 억울한지, 식음을 전폐하고 기진한 모습을 보이며 누워있다. 선주가 부드럽고 다정한 말씨에 공손한 모습으로 음식 들기를 권하지만 처녀의 귀에는 그 소리가 마치 당나귀 귀에 찬송가 부르기나 마찬가지로 들릴 뿐이다. 그런 모습이 한동안 계속되니, 당연 자식들은 역정을 내고, 당장 끌어내 인당수에 싣고 가 바다에 빠뜨리자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선주는 여직 것 보이던 행동과는 달리, 새로 사온 처녀에게 왕비를 대하듯 예우를 하며 음식 들기를 권한다. 선주의 세 아들도 처녀를 달래 음식을 들도록 설득시킨다.

지극정성을 보인 때문인지 처녀는 음식을 들고, 문맹을 면하려고 언문도 배워 드디어 “박 간난” 이라고 이름을 써 보인다. 노령의 선주는 그러 모습의 처녀에게 부성애를 느끼게 되고, 그동안 인당수에 빠뜨려 제물로 희생된 수많은 어린 처녀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배의 경리를 담당한 장정에게 처녀를 데리고 멀리 도망을 치라고 권하며 참회의 모습을 보인다. 처녀는 처녀대로 그동안 자신을 팔아버린 아버지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보였지만, 선주의 마음씨에 감동하여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지워버린다.

제삿날이 다가오고 박 간난 처녀에게 왕비의 복장을 입히니, 겉보리 스무 가마니에 팔려온 가난한 집 딸의 모습이 아니라, 천상의 선녀가 하강한 듯싶은 모습으로 탈바꿈을 한다, 선주는 그 모습에 감탄 감동하고 박 간난 처녀를 죽이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장정과 멀리 떠나라고 거듭 권하지만, 이번에는 처녀 자신이 인당수의 제물이 되기를 바라고 스스로 걸음을 옮길 태세를 보인다. 드디어 다음날 새벽 아들들과 사공들이 처녀를 데리고 떠난다.

홀로 남은 선주는 상념에 쌓인 채 자신이 인당수로 뛰어드는 환상과 더불어 마루 끝에 앉았다가 마당으로 떨어져 운명을 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송흥진, 정새별, 이 길, 신안진, 윤대홍, 이두성, 박창순, 김승언, 강영환, 강경호, 김솔지, 김재겸 등 출연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연주자의 연주와 노래가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갈채를 이끌어 낸다.

특히 귀에 익은 연주곡이나 영화주제가, 무용음악 등이 극 내용과 어우러져 관객을 감상의 경지로 이끌어 간다.

드라마터그 우수진, 움직임지도 이두성, 무대디자인 정 영, 조명디자인 성미림, 소품디자인 박현이, 의상디자인 김동영, 분장디자인 김근영, 음악감독 박소연, 음향감독 엄태훈, 무대감독 최소현, 사진 김두영 조하린, 동영상 이재훈, 그래픽디자인 김우연, 무대제작 수무대, 음향오퍼 이민지, 조연출 김수정 등 스텝진의 노력과 열정이 드러나, 떼아뜨르 봄날의 이강백 작, 이수인 연출의 <심청>을 작가의 창의력과 연출가와 출연진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3월 19일

7, 산울림고전극장 창작집단 LAS의 에우리피데스 원작, 이기쁨 각색 연출의 <헤카베>

신촌 산울림소극장에서 창작집단 LAS의 에우리피데스 원작, 이기쁨 각색 연출의 <헤카베>를 관극했다.

헤카베(Hekabe,Εκάβη)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왕비이다. 트로이 전쟁으로 남편과 자식들을 잃자 분노와 슬픔으로 개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트로이의 마지막 왕비로 남편 프리아모스(Priamos)와의 사이에서 많은 자녀를 두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녀는 트로이 함락으로 남편과 아들들이 목숨을 잃고 딸들이 희생제물이나 노예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 때문에 서양 문화권에서는 헤카베는 비극적인 어머니상으로 자주 묘사된다. 그리스어 표기에 따라 헤카베(Hekabe, Εκάβη) 또는 라틴어 표기에 따라 헤쿠바(Hecuba)로도 불린다.

그녀의 출생이나 부모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며 이는 오랜 기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저승의 여신 페르세포네의 딸 에우노에(Eunoë)와 소아시아 중부 프리기아(Phrygia) 왕 디마스(Dymas)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헤카베를 프리기아 왕국을 흐르는 사카리아 강(Sakarya River)의 신 상가리우스(Sangarius)와 요정인 메토페(Metope)의 딸이라 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문헌에 따르면 헤카베는 트로이 전쟁으로 인해 자식들을 잃는 큰 슬픔을 겪어야 했다. 《일리아스》에 따르면 헤카베의 장남인 헥토르(Hector)는 트로이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전쟁을 진두지휘하며 파트로클로스(Patroklos)를 비롯한 많은 적들을 물리친 영웅이었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다짐한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 시체는 마차에 매달려 끌려 다녔다. 그녀의 또 다른 아들 파리스(Paris)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Menelaos)의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와 그리스 동맹군과 트로이 사이의 전쟁을 일으켰다. 파리스는 아킬레우스를 죽였으나 그리스 연합군 필록테테스(Philoctetes)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헤카베의 딸 카산드라(Cassandra)는 목마(木馬)를 성 안으로 들이지 말 것을 간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트로이 함락 후 카산드라는 전리품으로 아가멤논의 포로가 되었으나 결국 아가멤논의 아내에게 살해당했다.

호메로스의《일리아스》에서 헤카베는 주변인물로 다루어졌으나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4∼BC 406)의 작품 《헤카베》와 《트로이의 여인들》에서부터는 비극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포로가 되어 그리스 군에게 끌려가던 헤카베는 막내 딸 폴리크세나(Polyxena)가 아킬레우스의 망령을 달래기 위한 제물로 희생당하자 절망한다. 그러던 중 헤카베는 트라키아 왕 폴뤼메스토르(Polymestor)에게 피난 보내 양육을 부탁한 막내아들 폴리도로스(Polydorus) 마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수를 다짐한 헤카베는 폴리메스토르를 유인해 두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고 그의 아들들을 죽였다. 헤카베가 자식들의 시체를 보고 실성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헤카베는 특히 개 전설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폴리메스토르에게 복수를 한 헤카베는 개로 변해 트리키아를 떠돌았다고 한다. 노예가 된 헤카베가 오디세우스(Odysseus)를 향해 분노와 저주의 말을 부르짖자 불쌍히 여긴 신들이 그녀를 개로 만들어 탈출을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개로 변한 헤카베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그녀가 묻혀 있다고 알려진 헬레스폰트 해협의 퀴노스세마(Kynossema, 개의 무덤)가 있는데 그 곳은 뱃사람들이 항로를 찾을 때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난 당하는 어머니이자 비극적인 여주인공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헤카베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오늘날까지 시, 연극, 문학, 음악 등에서 다양하게 등장해 왔다.

이기쁨(1984~)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의 연출가로 창작집단 LAS의 상임연출이다.

연출작으로는 <정옥이> <장례의 기술> <호랑이를 부탁해!> <서울 사람들> <성은이 망국하옵니다> <운현궁 로맨스> <대한민국 난투극> <경성스케이터>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손> <용의자X의 헌신>등을 연출한 앞날이 발전적으로 예측되는 미모의 여성연출가다.

창작집단 LAS의 <헤카베>는 법정에서의 재판과정 연극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남편과 자식을 잃은 <헤카베>가 자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들을 죽인 폴뤼메스토르의 두 눈을 찔러 멀게 했기에 피고인으로 등장한다. 트라케의 왕이자 <헤카베>의 사위인 폴뤼메스토르가 피해자이자 원고다. 재판장은 트로이 정복을 위한 그리스 원정군의 총대장인 아가멤논이다. 기원전 12세기가 시대적 배경이지만, 21세기의 코리아와 일맥상통한다.

무대는 1m 높이의 사각의 단이 법정이고, 벽에는 좁고 넓은 구멍의 그물모양의 천 여러 개 늘어뜨려 놓았다. 용도에 따라 의자를 이동배치하고, 조명으로 장면전환을 이룬다.

남녀 6인의 등장인물이 1인 다 역으로 출연하고, 법정에서의 원고와 피고인의 공방으로 역사적 배경과 사건의 전모가 들어난다. 내용은 에우리피데스의 원작을 따랐으나, 법정장면으로 함축시켜 각색 연출되고, 마치 현재 국정농단사건의 법정공방을 예견한 듯싶은 연극이라 관객의 공감대가 극의 도입부터 형성된다. 트로이 원정에서부터 10여 년 간의 전쟁과 아킬레우스의 사망,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목마로 전쟁을 승리로 바꾸고,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장남 헥토르가 전사하자, 그의 부인 <헤카베>는 포로로 그리스로 끌려온다. 막대한 트로이의 보물저장 장소를 아는 헤카베의 아들 폴리도로스를 처형한 폴뤼메스트로, 그것을 알고 폴뤼메스트로의 두 눈을 찔러 멀게 한 <헤카베>의 법정공방이 사건의 진위를 놓고 벌어진다. 대단원에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헤카베>는 포뤼메스트로를 감추고 있던 단검으로 찌르고 자신도 자결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곽지숙, 윤성원, 김정훈, 이새롬, 조하나, 조용경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정하린, 조연출 이다빈, 무대 서지영, 조명 정유석, 음악 윤지예, 음향 윤찬호, 의상 분장 김선화, 영상 고동욱, 사진 발일호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창작집단 LAS의 에우리피데스 원작, 이기쁨 각색 연출의 <헤카베>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3월 25일

8, 극단 동백의 가오싱젠 작, 오수경 번역, 박상하 연출의 <버스정류장>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극단 동백의 가오싱젠(高行健) 작, 오수경 번역, 박상하 연출의 <버스정류장>을 관극했다.

가오싱젠(高行健)은 1940년 중국 동부 장시 성[江西省] 간저우에서 은행 간부인 아버지와 연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연극과 글쓰기에 흥미를 갖도록 교육했다. 중일전쟁직후의 혼란 속에서 성장했으나, 여유 있는 가정환경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고 미술적 재능도 갖추었다. 훗날 그가 소설가로, 극작가로, 비평가로, 또 화가로 전방위적 예술 활동을 펼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이와 같은 유년기의 문화적 배경이 깔려 있다.

베이징[北京] 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1960년대 이후의 청년기는 그의 문학의 토대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새뮤얼 베케트와 베르톨트 브레히트, 에우제네 이오네스코 등을 통해 유럽의 아방가르드 문학과 실존주의연극을 접한 그는 베케트와 이오네스코의 작품들을 손수 번역해 중국에 소개하는 한편, 1975년부터는 문예지 〈중국 재건 中國再建〉의 프랑스 문학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희곡과 소설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문학적 주제라 할 수 있는 실존주의 개념을 정립해 나갔다.

196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그에게 시련을 안겨 주었다. 당국의 지식인 하방(下放)정책에 따라 시골로 강제 전출된 데다가 아내로부터 버림받는 아픔까지 겹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써온 많은 원고를 불태워야 했던 기억은 “스스로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과 같은 쓰라린 고통”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었다. 그는 집필을 계속했고 1979년 마침내 작품 출판과 외국 여행의 자유를 얻었다.

1980~87년 그는 단편소설·평론·희곡을 왕성하게 집필하는 한편 문학논쟁의 중심에 나섰다. 모더니즘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에 도전한 평론 〈현대소설기교초탐 現代小說技巧初探〉(1981)으로 격렬한 논쟁과 당국의 집중 감시를 촉발했으며, 브레히트와 베케트, 앙토냉 아르토에게서 영감을 얻은 실험적인 희곡 〈절대신호 絶對信號〉(1982)를 베이징 인민예술극장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에 그 여세를 몰아 희곡 〈버스 정류장 車站〉(1983)을 무대에 올렸으나,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서양문학과 공모한 정신적인 공해’라는 당국의 비판에 당면했다. 이어 소설 야인 野人〉(1985)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1986년에는 희곡 〈피안 彼岸〉의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의 평론 〈현대희곡이 추구하는 것에 대하여 對一種現代戱劇的追求〉(1987)가 이러한 표현의 부자유에 대한 문학적인 대응이라면, 그가 같은 해에 프랑스 망명을 결행한 데 이어 톈안먼 사건 뒤 중국공산당을 탈당한 것은 분명한 정치적 대응이었다.

그의 자전적 소설 〈영산 靈山〉(1982)과 내면세계의 탐색을 더욱 심화시킨 <한 사람의 성경 (一個人的聖經)〉(1999), 희곡 〈버스 정류장〉 등의 작품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었으며 곳곳에서 상연되고 있고, 작품 <영산(靈山)>으로 200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가오싱젠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중국 당국의 정치적 검열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한 변방의 작가가 세계문학의 중심에 진입하는 극적인 사건이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의 문학이 “보편적인 가치를 담고 있으며 신랄한 통찰, 참신한 언어로 중국 소설과 희곡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30여 차례 국제적인 전시회를 가진 화가답게 자신의 작품집 표지를 손수 그리며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는 이 노(老) 중국계 망명 작가에게 프랑스 정부는 8년 전 문화예술훈장을 수여했다.

오수경 교수는 서울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대만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다.

오수경 교수는 대학 학부에서는 중국 고대문학의 이해, 중국 근대문학의 이해, 중국민간가요와 대중문화, 중국 희곡과 미디어문화를 강의하고 있으며, 대학원에서는 중국 희곡 연구, 명청 희곡 연구, 중국 지방희 연구, 강창문학과 지역문화, 중국 현대희곡 연구, 중국 속문학 연구 등의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중국 희곡의 텍스트 연구에 그치지 않고 공연과 공연 환경에 대한 연구를 통해 중국 연극사 이해의 폭을 넓힌 대표적인 연구자이며, 한중 수교 이후 지금까지 중국과의 공연 예술 교류, 무형문화유산 교류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온 중국 전문가이다. 연극 평론가와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張協狀元》과《琵琶記》의 비교연구” (“中國戱曲”), “《五倫全備記》연구—민간남희연출본의 특색” (“中國文學”) “試探南戱音樂體制中曲破的運用” (“文獻”), “奎章閣本《五倫全備記》初考” (“中華戱曲”), “明初民間戱劇環境硏究” (“民俗曲藝”), “從“文本”問題看中國戱劇硏究的本質回歸” (“戱劇藝術”) “중국 호랑이연희 연구” (“민속학연구”) “중국 고대 호랑이신앙 연구” (“비교민속학”), “중국 전통극의 현대화 작업에 관한 연구” (“성곡논총”), “韓國傳統藝能的傳承現況及其反思” (“非物質文化遺??究集刊”)等 60여 편이다.

연출가 박상하는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러시아 모스크바 슈킨 연극대학교에서 실기석사(M.F.A)를 취득한 후, 기티스(GITIS, 러시아 연극예술 아카데미)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극단, 연희단 거리패 등에서 스타니슬랍스키 연기워크샵을 했으며, ‘결혼’, ‘북어대가리’, ‘결혼피로연’, ‘생일파티’, ‘담장 위의 고양이’, ‘바냐삼촌’ 등을 연출했다. 현재 극단 ‘어우름’, ‘유리가면’, ‘시나위’에서 상임연출을 맡고 있으며, 한국연극교육학회 이사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Bus Stop)>은 1955년 윌리엄 인지(William Inge)의 동명희곡으로 발표 공연되었고, 마릴린 먼로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소개된 바가 있다. 눈으로 막힌 시골 마을의 술집에서 무희와 카우보이가 서로 만나는 광경을 묘사한 희곡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을 전후해 각 극단과 대학 극으로 공연되었다.

가오싱젠의 <버스정류장(車站)>의 내용은 어느 토요일 오후,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중년의 말 없는 남자와 60세가량의 노인, 28살의 아가씨와 19살의 껄렁껄렁한 젊은이, 30살의 안경을 쓴 사내, 큰 가방을 든 애기 엄마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공구 배낭을 든 숙련공 한 사람과 회사 간부 한 사람이 차례차례 정류장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도착한 순서대로 줄을 선다. 그런데 젊은이는 도대체 줄을 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새치기 당할까 염려가 되는 노인은 자꾸 그에게 줄을 서라고 재촉한다.

마침내 기다리던 버스가 저 멀리서 다가온다. 사람들은 우쭐우쭐 버스를 타려고 움직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버스는 정류장에 서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목소리가 큰 사람은 소리 지르고, 발 빠른 젊은이는 달려가지만 소용이 없다.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사람들은 예의 그 줄을 유지하면서 이제나 저제나 오직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버스마다 서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여전히 눈으로 버스 오는 방향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려준다. 버스를 기다리다 해가 저물고, 이제는 시내로 가봤자 허탕만 칠뿐인데도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내가 떠난 뒤 기다리던 버스가 오면 어떻게 하지? 기다린 것이 너무 아깝잖아.”
처음에는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찾아왔던 정류장이건만 이제는 그저 기다림 그것이 전부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속절없이 기다리다 문득 시계를 보니 이 무슨 조화인지, 그 사이 10년은 지나버렸다는 설정이다. 그럼 대체 이들은 지금까지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단 말인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버스정류장 팻말을 보니 정류장의 이름도 세월의 바람에 지워져 버린지 오래라, 이제는 버스가 정류하지 않는 곳이라는 내용이다.

‘가오싱젠’의 작품은 기존의 중국 연극에 비해 창의적이며 실험적인 요소들이 다분히 강한 작품들이다. 단순히 작품을 통해 사상의 미화나 선동이 아닌 극작품을 통해 중국의 전통을 지키고 새롭고 참신한 발전상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가오싱젠’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위치와 비중은 매우 크다 하겠다. 사회의 다양한 부류와 대화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서 드러내는 언어는 새로운 창조언어이며 중국문학의 새로운 발전상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무대는 버스 정류장이라는 우뚝 솟은 낡은 팻말과 보도보다 약간 높은 승객이 올라서서 기다릴 수 있는 영역이 마련되어 있다. 등장인물 각자 어울리는 소품, 륙색, 연장통, 가방 등을 지니고 출연한다. 버스가 지나가는 음향효과가 극과 어울리고, 비가 오는 소리 등이 분위기 창출을 한다.

유지선이 아이엄마, 김현정이 아가씨, 박세정이 마주임, 김선호가 안경잡이, 박래영이 노인, 민경석이 청년, 김기현이 목수, 이희재가 말없는 사람 등 출연자 전원의 작중인물에 따른 성격설정과 연기가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갈채를 이끌어 낸다.

드라마터그 윤현숙, 총괄제작 강경동, 총괄기획 김혜진, 작곡 음악감독 신요한, 작곡 음향 정경인 문소현, 조명디자인 김정훈, 의상디자인 음향오퍼 허예지, 포스터디자인 박효진, 무대동작 조하영, 조연출 이효선 김지은, 기획 홍승우 안희은 이미지 이효진 박인서, 조명오퍼 이동호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간 동백의 가오싱젠(高行健) 작, 오수경 번역, 박상하 연출의 <버스정류장(車站)>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3월 26일

9, 게릴라극장 폐관공연 연희단거리패의 페터 투리니 작 윤시향 번역 채윤일 연출의 황혼

게릴라극장 폐관공연 연희단거리패의 페터 투리니(Peter Turrini) 작, 윤시향 번역, 채윤일 연출의 <황혼(Alpengluhen)>을 관극했다.

게릴라극장은 2004년 3월에 개관하여 2017년 4월에 폐관하기까지 250여 작품을 공연한 혜화동 연극공연의 산실이다. 명륜동 성대 입구에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를 2016년 겨울에 개관해 공연장을 옮김으로써 더욱 발전적인 공연장의 면모를 드러냈다.

페터 투리니(Peter Turrini)는 1944년 오스트리아의 쌍트-마가레텐에서 태어나 희곡, 시, 시나리오, 방송극, 소설, 연설문 등을 썼으며 1971년부터 20년에 걸쳐 여러 번 상과 훈장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쥐사냥 Rozznjogd> <돼지 도살> <끝내주는 날> <유아 살해> <두 명의 주인을 섬기는 하인 (Der Diener zweier Herren)> <알프스의 불빛(Alpengluhen)> 그 외 다수 작품을 발표 공연했다. 특히 그의 처녀작 <쥐사냥 Rozznjogd(1971)>이 비인의 민중 극장(Volks theater)에서 공연되었을 때, 노골적인 언어와 공격적인 주제로 인해 비평가들의 가장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관객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으며 ‘불편한 향토 작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의 치밀한 구성과 처음부터 숨 돌릴 틈 없이 관객을 몰아붙이는 긴장감, 강렬한 주제로 인해 그는 ‘실험적 언어의 천재적 마술사’라는 칭호를 받으며 현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레츠 부근에서 집필을 계속하고 있다.

번역을 한 윤시향(尹詩鄕) 원광대 명예교수는 함경북도 무산 출생으로,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독일 쾰른대학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수학했다. 원광대 유럽문화학부 교수 및 공연 영상 학 전공 교수, 한국브레히트학회 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 부회장, 한국여성연극인협회 공동대표, 한국연극학회 편집위원, 한국 I.T.I. 감사, 서울신문 자문위원, (사)한국공연예술원 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원광대 명예교수로 있으며, 2인극 페스티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공저로 <브레히트의 연극세계> <하이너 뮐러의 연극세계> <15인의 거장들> <유럽영화예술> 외 다수가 있고, 역서로<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시체들의 뗏목> <햄릿머신>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메데이아> 외 다수가 있다.

연출가 채윤일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정말 부조리하군> <의무적 희생자들> <불가불가> <사중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한 게릴라극장장이자, 극단 세실 대표다.

<카덴자>로 1991년 日本동경 <타이니 엘리스페스티벌> 참가, <산씻김> 1998년 스위스 <취리히 세계연극페스티벌> 공식초청참가, 스위스 4대도시순회공연(라시드뽕, 제네바, 취리히, 벨린쵸나)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연출가다. <불가불가>로 1988년 한국백상예술대상 및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1988년 최우수연출가’ <나는 개처럼 살고 싶지 않다>로 1996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연출상 수상, <깔리귤라> 로2000년 기독교 문화대상 연출상 수상, <불꽃의 여자-나혜석>으로 2001년 동아연극상 연출상 수상, 조명, 무대, 음향분과 회원들로 구성된 무대예술전문인협회 선정 2003년도 ‘올해의 예술인상’ 수상했다.

백색의 촘촘한 판자로 이어진 벽과 중앙에 창문이 있고, 벽 너머 복도가 보인다. 방안에는 야전침대 긴 나무의자, 옷걸이 대야와 양철통이 바닥에 놓이는 등 산장의 일실이다.

실명을 한 듯 초로의 남성은 담당직원이 지시를 하면 가끔 새 울음소리를 실제와 방불한 음색으로 크게 발성을 하는 것으로 전직이 성우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알프스의 산록이라는 설정이면 분명히 두툼한 옷을 걸쳐야 하는데, 전라로 잠을 자고 깨어나서 맹인용 검은 안경을 우선 찾아 얼굴에 걸치고, 내복을 하나하나 집어 입고 중절모를 쓰는 것을 보면, 눈이 덮이지 않은 따뜻하고 양지바른 언덕인 듯싶다. 맹인은 양치질도 한다.

조명이 들어오면, 웬 여인이 긴 나무의자에 옆으로 기대어 잠이 들어있고, 맹인은 그녀를 초대한 듯 무척 반기는 표정이다. 여인은 잠이 깨어나자마자 위스키 포켓 병을 꺼내 들이킨다. 맹인협회에서 보낸 책읽어주는 여자라는 설정인데, 맹인의 눈앞에서 젊은 산장직원과 주린 듯 몸을 밀착시키는 모습에서 이곳으로 온 책읽기와는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을 쥐어주면 몸을 제공하는 그런 여인이라는….

그러나 맹인은 정중하게 그녀를 대한다. 마치 귀부인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다. 여인은 책읽기보다 맹인의 성적욕구를 북돋아주려는 듯 맹인의 중요부분을 쓰다듬고 문지르고 별의별 마찰을 다 해보지만 맹인의 주요부분은 고요한 돈 강이나 센 강처럼 잔잔하기만 할 뿐이다. 그녀는 색색의 콘돔을 맹인에 손가락에 끼어주기도 한다. 그녀는 다시 밖의 산장직원에게 추파를 던진다.

그러다가 맹인의 귀부인을 대하는 듯 정중한 태도와 고전문학을 전공했다는 고백에 여인은 상스런 가발을 벗어 던지고 짙게 한 화장을 지우며, 자신은 야한 직업과는 관계가 없고 맹인협회 사무원이었고, 로미오 같은 지고지순의 사랑 남을 찾아 이곳으로 왔노라고 고백을 한다. 밖에서 산장책임자의 요청으로 맹인은 새 울음소리를 능숙하게 발한다. 여인은 자신은 여배우 출신이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30년간 줄리엣을 맡았던 여배우라고 고백을 한다. 그 고백에 맹인은 최초 원자폭탄 투하 참관자로 갔다가 실명한 인물로 소개가 되었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로 실명했다는 고백을 하며 자신은 연출가이고 평생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주인공을 찾았으며 바로 당신이 내가 찾던 그 줄리엣이라며 반가움을 표한다. 여인은 그 소리에 솔깃한 듯 맹인의 소리에 동조하는 태도를 한동안 보인다. 그러다가 여인은 트렁크를 챙겨들고 헬맷을 들고 들어온 젊은 직원과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떠나버리고 만다. 맹인은 홀로 남아 처량하게 로미오가 발코니 아래에서 줄리엣을 향해 읊조리던 대사를 외우기 시작한다. 그때 창문이 열리면서 젊은이와 떠난 줄 알았던 여인이 등장해 맹인을 향해 줄리엣의 대사를 읊는다. 당신은 왜 로미오인가요? 왜 원수인 캐플릿 사람인가요? 하며….. 두 사람의 주고받는 대사와 함께 방안에는 짙은 알프스의 황혼이 붉은색으로 들어차기 시작하면서 공연은 끝이 난다.

명계남이 맹인으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로 일생일대의 명연을 펼친다. 김소희가 상대여인으로 출연해 약동감 넘치는 변화와 성격설정으로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안윤철과 노심동이 젊은 직원과 산장책임자로 등장해 역시 호연을 보인다.

무대 김경수, 조명 조인곤, 음악감독 이승헌, 움직임자문 김윤규, 조연출 이혜선, 무대감독 김한솔, 무대 소품 의상제작 월산프로젝트, 기획 오동식, 홍보 이채경, 마케팅 원선혜, 사진 김용주, 홍보디자인 황유진, 조명오퍼 김준호, 음향오퍼 이승준, 진행 조승표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기량과 열정이 드러나, 게릴라극장 폐관공연 연희단거리패의 페터 투리니(Peter Turrini) 작, 윤시향 번역, 채윤일 연출의 <황혼(Alpengluhen)>을 연출가와 연기자, 그리고 스텝 진의 기량이 조화를 이룬 기억에 길이 남을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3월 30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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